85화. 날개를 달다
옷 가게 사장은 나를 찬찬히 위아래로 훑었다.
나이는 김 부장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들어 보인다.
날 보는 눈빛이 탐탁지가 않다.
“이 꼬맹이가 무대에서 입을 거라고요?”
“…….”
“무슨 무대에 나갈 건데요?”
“전국민노래자랑이요.”
김 부장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대답했고, 사장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조그만 녀석이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었구만~ 뭐 일생의 이벤트 하나 만들려나 봐요? 하하!”
나를 깔보는 듯한 눈빛인데, 기분이 안 좋아지려 했다.
김 부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누나가 말했다.
“아빠, 우리 딴 데 가자. 굳이 여기서 살 필요 없잖아.”
“여기가 옷 종류가 제일 많고, 유명한 집이야. 아빠가 알아보고 온 거야.”
사장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넌 좋은 아빠 만났구나. 내 아들 같았으면 정신 차리라고 귀싸대기 올려 붙였을 텐데. 학생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으잉?”
“손 치워요.”
난 내 머리에 얹은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말했고.
사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날 보며 말했다.
“어이쿠야, 무섭구마잉. 눈깔 보소?”
이 아저씨가 미쳤나?
내가 흥분해서 뭔가 말하려는데, 김 부장은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만해라.”
“아빠! 저 아저씨가 먼저…….”
김 부장은 내 말을 막고서는 사장에게 말했다.
“다른 말씀은 하시지 말고요, 옷만 파시죠. 저희 옷 사러 온 거지, 훈수 들으러 온 거 아니니까.”
김 부장의 눈빛이 쎄했다.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
사장은 꿀꺽 침을 삼키고는 대답했다.
“흠! 이, 이쪽으로 오시죠.”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옷이 다양하게 많았다.
온통 반짝이 옷들뿐이었는데, 옷에 반사된 빛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 정도로 가게 안은 옷들로 인해 눈이 부셨다.
“소문이 맞네.”
김 부장은 흡족한 얼굴로 말했고, 옆에서 사장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하하, 그럼요. 트롯 무대의상은 저희 집만 한 곳이 없죠.”
“흠…… 네.”
“근데, 옷을 맞추실 거죠?”
김 부장은 날 향해 물었다.
“옷 맞출 시간이 되겠냐?”
“내일이 예선전인데?”
김 부장은 사장에게 물었다.
“가능할까요?”
“절대 불가능하죠. 두 사람이 붙어도 무대의상 하루 만에 제작하는 건 어렵습니다.”
“흠…….”
김 부장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고압적인 자세로 사장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네?”
“안 된다면서요. 그럼 대안을 제시해 보세요.”
참나, 어이가 없었다. 옷 가게 사장이 본인 부하 직원인가.
말하는 태도가 참…….
근데 사장은 김 부장의 말투와 행동에 말린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할 것처럼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이미 제작되어 있는 옷을 사용해야죠.”
“얘 사이즈에 맞는 게 있을까요?”
“흠…….”
사장의 시선이 날 향하면서, 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 키가 몇이냐?”
“155에요.”
난 초등학교 6학년 평균 키에 가깝다. 반에서 딱 중간 정도 한다.
사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저희 집에 애들 옷은 없거든요? 제가 애들 가수 한다고 깝죽거리는 거 안 좋아해서요.”
꿈틀.
김 부장의 이마에 핏줄이 한번 솟았다가 내려갔다.
“근데 얘한테 성인 남자 옷은 안 될 거 같고…… 여자 옷이라면 사이즈가 맞는 게 있겠네요.”
“여자 옷?”
“네, 여성 트롯 가수요.”
사장은 또 떨떠름한 표정으로 날 보고는 물었다.
“너, 무슨 색 좋아하냐?”
“핑크요, 핫핑크.”
“젠장, 생긴 대로 노네.”
아오, 혈압 올라!
사장은 안으로 들어가서 비닐에 싸인 옷 두 벌을 가지고 나왔다.
* * *
“자, 봐라.”
두 옷 모두 핑크색이었는데.
하나는 재킷에서 바지까지 위아래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꽃사슴이 그려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흑장미가 옷 전체에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고, 전체에 은은한 반짝이가 들어가 있었다.
화려한 쌈마이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고급진 느낌이랄까.
볼수록 마음에 쏙 든다.
이 옷을 입으면 마치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와…….”
내 시선은 단번에 흑장미 핑크 옷에 꽂혀 버렸다.
사장의 태도는 맘에 안 들지만, 옷 퀄리티는 괜찮네.
나 또한 서 봤던 무대가 적지 않고, 지방 공연에서 꽤 많은 가수들을 봐 왔지만.
이 의상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김 부장은 내 눈빛을 읽은 듯했다.
시선을 흑장미 핑크에 붙들려서는 꼼짝도 못 하고 있으니.
김 부장이 턱으로 흑장미 핑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덕후야, 한번 입어 볼래?”
“응? 으응.”
잠시 후, 탈의실에서 난 옷을 갈아입고 나왔고.
“우와…….”
웬만해서는 나한테 탄성을 보내지 않는 누나도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 부장도 살며시 미소 지었다.
사장도 툴툴대듯 말하지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쳇, 곱상하게 생겨서는…… 여자 옷이 딱이네.”
거울을 봤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덕후야, 이걸로 할래?”
“응.”
난 간단하게 대답했다. 여러 말이 필요 없었다. 빨리 이 옷을 입고 무대 위를 날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사장이 핑크색 넥타이를 건네며 말했다.
“이거 해 봐라. 그것만 입어서는 너무 여자애 같아 보여서.”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넥타이를 받았다.
난 능숙하게 넥타이를 매려다가 멈췄다.
‘아…… 이러면 안 되지.’
전생에 넥타이는 수도 없이 매어 봤지만 여기서 넥타이를 매면 100% 이상해 보인다.
“아빠, 좀 해 줘.”
“아, 그래.”
가만히 지켜보던 김 부장이 다가와서 넥타이를 매어 주었다.
“…….”
김 부장과 이렇게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 본 건 내 기억엔 없다.
잠깐이지만 너무 어색하다.
“자, 됐다.”
다시 거울을 봤는데…… 확실히 훨씬 낫다.
잘되는 집은 이유가 있다. 사장이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지, 눈썰미는 있다.
“바지 기장이 좀 긴데, 내일 찾으러 오세요. 수선해 놓을 테니까. 그 정도는 금방 되거든요.”
예선전 가기 전에 찾아오려면 오전에 들려야 한다. 김 부장은 회사에 누나는 학교에 있을 시간이다.
나 혼자 와야 한다.
김 부장은 날 향해 물었다.
“찾아올 수 있겠어?”
“당연하지. 한번 와 봤잖아.”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장에게 물었다.
“얼마예요?”
김 부장의 물음에 사장은 눈치를 살피더니 손가락 4개를 펼쳤다.
“손이 많이 가는 거라…….”
40만 원이라는 의미인 것 같은데.
김 부장은 굳은 표정으로 사장을 보다가.
“진짜 그 가격이에요?”
사장은 내 눈치를 살피고는 말했다.
“그럼요! 제가 설마 없는 가격 말씀드리겠습니까? 그리고 마음에 쏙 드는 옷은 찾기 힘들어요. 아드님이 좋아하는 거 같은데.”
뭐야…… 흥정 들어가니까, 갑자기 나 아드님 된 거야?
“하아…… 그럽시다. 여기요.”
김 부장은 신용카드를 내밀었는데.
“저희가 현금밖에 안 됩니다. 현금 없으시면 계좌이체를 하셔도 되는데…….”
김 부장의 이마에 힘줄이 다시 꿈틀거렸다.
마음 같아선 여기서 사지 말고 다른 집에 가자고 말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늦었다. 이미 이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 버려서…….
“후우…… 계좌번호 불러 봐요.”
“하하. 네. 전국은행 0604―XXX…….”
김 부장은 텔레뱅킹으로 이체했고, 사장은 메시지로 입금 내역을 확인 후 활짝 웃었다.
“입금 확인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부장은 바로 뒤돌았다.
“덕후야, 옷 챙겨라. 지아야, 가자. 배고프지?”
“응.”
난 살짝 묵례하고 뒤돌아서 갔고.
멀리 뒤에서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사하는 거 보소? 어른한테는 90도로 인사를 해야지, 하여간 싹수가 노란 것들은…….”
손님이 옷 가게 사장한테 폴더인사를 하고 가라는 건가?
기분은 나빴지만, 그냥 무시하고 가려는데.
두둥.
김 부장이 멈춰 섰다.
어금니 쪽 근육이 울긋불긋하고, 이마 위 핏줄이 용틀임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김 부장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말했다.
“먼저 역에 가 있어라. 아빠 금방 뒤따라갈게.”
“왜?”
김 부장은 뒤를 힐끔 돌아보고는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계산이 덜 된 게 있어서.”
회사 다닐 때 몇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라서, 난 이 의미를 알고 있다.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릴게.”
“가라면 가.”
후욱―!
순간 엄청난 포스가 느껴졌다.
뭔가 공기가 훅 하고 밀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멍하니 보고 있자, 누나가 나섰다.
“알았어, 아빠. 덕후야, 먼저 가자.”
난 누나에 팔에 붙들려 끌려갔다.
옷 가게.
사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내부 정리 중이었다.
덜컹!
거칠게 문 여는 소리에 사장은 깜짝 놀랐다.
“누구야? 매너 없게.”
중얼거리며 문 앞으로 갔더니.
김 부장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서 있었다.
“어? 뭐 놓고 간 거…… 있으세요?”
심상치 않은 기운에 사장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고.
“야 이, 개새끼야.”
김 부장의 첫마디였다.
“감히 누구를 욕해? 내 아들을 욕해? 어? 싹수가 뭐 어째? 확 뒤질라고.”
“네…… 네?”
떡 벌어진 어깨에 저승사자 같은 얼굴. 차가운 목소리로 씹어서 뱉어 내는 욕설.
‘개새끼야’ 한마디에 사장은 얼어 버렸다.
“아오~! 진짜!”
김 부장은 화를 못 이기겠다는 듯, 발로 옷 가게 안에 있던 걸상을 걷어찼다.
사장은 기세에 눌려 벌벌 떨고만 있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경찰에 신고…….”
“신고? 신고해 봐. 미친 새끼야. 어디 사냐? 밤길 잘 다닐 수 있겠어? 뒤통수에 눈깔 달려 있냐?”
김 부장은 흡사 깡패 같았다.
양복 입은 깡패.
확~!
급기야 왼손으로 사장의 멱살을 잡고, 한 대 칠 듯 주먹을 올려서 사장 얼굴 앞에 멈추었는데.
사장은 김 부장의 주먹을 보고 벌벌 떨었다.
주먹 마디 위로 온통 굳은살이 박여 있고, 흉터투성이였다.
“제발…… 제발…….”
김 부장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떨고 있는 사장을 바라보다가, 멱살을 풀었다.
“잘못했지?”
“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아들이 옷 찾으러 올 텐데. 잘해, 당신이 어떻게 했는지 아들한테 물어볼 거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난 기회는 두 번 안 줘.”
* * *
다음 날.
드디어 전국민노래자랑 예선전 날.
난 오전에 어제 갔던 동대문 시장에 수선된 의상을 가지러 다녀왔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내 손에 든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 뭐니? 너, 옷 가지러 간 거 아니었니?”
오늘 본 사장은 어제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손님은 왕이라더,, 난 정말로 잠시 왕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수선된 옷을 입혀 준 후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불편한 데 없는지 하나하나 체크해 주었고.
거기다가 옷 가지러 온 사람에게 마사지는 왜 해 주는지…….
너무 극진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심지어 오늘 공연 파이팅 하라며 별의별 선물도 챙겨 주었는데.
“홍삼 세트에 종합 선물 세트, 티셔츠…….”
어머니는 내가 들고 온 걸 살피며 미심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아무래도 이상한데?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들고 왔니?”
“택시 태워 주시던데요.”
“…….’
영문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 집에 자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사지가 아주 시원했다.
지금 시각 12시 30분.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난 무대의상과 가방을 챙겨서, 현관 앞으로 나섰다.
어머니께서 함께 가시겠다는 걸 난 혼자 가겠다고 했다.
“가려고?”
“네.”
난 출정 인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어머니께 정성을 담아 인사했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날 향해 소리쳤다.
“우리 아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