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정성을 다하다(2)
일석이와 두 아이는 열심히 연습했다.
노래 실력과 상관없이 전국민 노래자랑에는 필승 코드가 있다고 신바람이 얘기해 줬다.
‘단체 + 분장 + 엽기 컨셉’
단체와 엽기 컨셉은 준비되었다.
이제 분장만 하면 되는데, 팀을 결성하기로 한 날에 난 바로 의뢰를 해 놓았다.
인형 탈 업체에서 뱀 탈을 빌려서 씌어도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약하다.
우리 같은 생각을 하는 팀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과 차별화된 포인트를 만들려면 창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외형만 주문했고, 디테일한 부분은 그 외형에 덧붙여서 직접 만들 생각이다.
어차피 일석이와 친구들에게 춤, 노래 연습 따위는 필요 없다.
탈 제작에 온 역량을 집중하면 된다.
이틀 뒤, 일석이의 집.
기덕이와 종권이는 투덜대고 있었다.
“아~ 뭐야, 진짜. 노래자랑 나간다면서 어떻게 된 게 몇 날을 계속 색종이만 붙이고 있고.”
“그러니까 말이야. 이게 뭐냐고. 누가 인형 자랑 나가고 싶대?”
이렇게 투덜댈 때면 난 간단하게 응수했다.
“너희들 TV 출연하고 싶니? 안 하고 싶니?”
“…….”
“TV에 나오고 싶으면 잔말 말고 해. 원래 가수들은 무대 위 3분을 위해서 1만 시간을 보내는 법이야.”
잠자코 있던 일석이도 한마디 했다.
“그 1만 시간을 눈깔 붙이면서 보내진 않을 것 같은데?”
“조용히 하고 열심히 하자.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 건데, 너까지 툴툴대면 어떡하냐?”
“미안……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그만.”
난 노래 연습은 며칠 전에 이미 끝마친 상황이었고, 매일 1시간 정도 목 푸는 것 외에는 나도 의상 제작을 도왔다.
일석이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함께 작업하는 게 즐거웠다. 함께 준비하는 과정이 하나의 놀이 같았다.
“푸하하! 그게 뭐냐?”
“똬리를~ 틀어 봐~!”
뱀 탈을 쓰고서 개다리춤을 추는 일석이를 보며, 우리는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전국민노래자랑’ 예선 2일 전.
의상이 완성됐다.
일석이와 아이들의 팀명은 이렇게 지었다.
‘땅꾼과 뱀돌이’
* * *
싸~ 싸~ 내 안에 똬리를 틀어 봐~
현실일까 아닐까 사실일까 아닐까~
머리에 이슬람 터번을 쓰고 노래 부르는 일석이와 은박지로 뱀 비닐을 만든 의상에 뱀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기덕이와 종권이.
정말 혼자 보기 아까웠다.
동작은 최소한으로 맞추면 된다. 의상이 가장 중요한데, 연습하다가 망가질 수 있으므로 30초 정도 보다가 난 바로 정지시켰다.
“자, 자, 그만.”
짝짝짝.
난 세 사람을 향해 박수를 쳤다.
“최고야! 진짜 기가 막힌다, 내가 심사 위원이라면 이거 본선 진출 안 시키고는 못 배긴다.”
“휴~ 더워.”
“다들 고생했어~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기덕이는 뱀 탈을 벗으며 말했다.
“야, 근데 나랑 종권이는 이게 TV출연 의미가 있는 거니?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
엇, 이런 예리한 질문을?
분위기를 타고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하지 않고 넘어가길 바랐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이거 그냥 일석이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니야? 괜히 힘만 들고. 갑자기 회의가 드네.”
“무슨 소리야? 나도 얼굴은 보이긴 하지만 우리 엄마도 못 알아보실걸?”
그 말도 틀리지 않다. 일석이 또한 머리에 터번을 쓰고, 얼굴의 반을 수염으로 가렸기 때문에.
난 두 아이가 변심하지 않을까 싶어서 급하게 다가가서 말했다.
“얘들아, 이제 와서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받을 건 다 받아 놓고.”
애들이 문서로 달라고 하여, 아이스크림 10회 이용권을 사인까지 넣어서 주었다.
“치…….”
“너희들, TV 출연이 부담스러운데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상품권 받은 거 아니었니? 이제 와서 맘이 바뀐 거니? 그러면 안 되지. TV 출연하고 싶은 맘이 들었다면, 상품권은 돌려줘야지.”
상품권 돌려달라는 말에 두 아이의 표정이 새초롬해졌다.
기덕이는 종권이의 눈치를 보다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야, 야, 그냥 하는 말이지, 누가 안 한대? 하기로 했고 연습까지 이미 다 했는데 해야지.”
가만히 지켜보던 일석이가 말했다.
“얘들아, 무대 끝난 다음에 탈 벗고 인사하면 되잖아? 그리고 만약 수상을 하게 된다면, 그것도 너희랑 똑같이 나눌 거야. 팀명이 ‘땅꾼과 뱀돌이’라고 해서, 너희들 졸병처럼 대하지 않을 거니까.”
일석이의 말에 두 아이의 표정이 수그러들었다.
잘해 봐야 인기상일 텐데, 인기상 상금이 컸나? 상금 규모는 관심이 없어 알아보지 않았다.
어쨌든 아이들이라 그런지 참 순수하다. 욕심도 순수하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도 순수하고.
“그래, 그래. 우리 이왕 하는 거 재밌게 하자~”
난 일석이의 말에 이어 파이팅을 불어넣었다.
의상을 조심스럽게 벗은 후 우리는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일석이가 고마웠는지, 조용히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가 놓았다.
난 괜찮다며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전국민노래자랑.
왠지 일석이에게 큰 선물을 주게 될 것 같다.
* * *
예선 1일 전.
내일 13시까지 예선 장소에 집합이다.
학교에서는 외부 행사로 인정해 주었고, 다행히 결석 처리 없이 학교를 가지 않게 되었다.
‘땅꾼과 뱀돌이’는 내일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완전 신이 났다.
수업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는데, 일석이가 물었다.
“덕후야~ 오늘도 우리 집에서 모이는 거야?”
나 또한 참가자이지만, 무대 준비에 있어서는 이들에게는 선생님이다.
“아니~ 내일 결전의 날이잖아. 전날에는 그냥 쉬는 거야. 밖에 나다니지 말고 각자 집에서 쉬어. 그리고 의상 점검 꼼꼼하게 하는 거 잊지 마. ‘땅꾼과 뱀돌이’는 의상에 모든 게 걸려 있어.”
“알지~ 연습한 기억은 없고, 옷 만든 기억밖에 없는데. 하하.”
종권이의 말에 모두가 함께 웃었다.
“그래~ 그럼 어서 가. 내일 보자!”
“덕후야! 너도 잘 쉬고 내일 보자! 화이팅!”
일석이와 인사 후, 난 집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발걸음이 가볍다.
내일 드디어 예선전에 참가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무겁거나 부담되지는 않았다.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민노래자랑은 실력으로 승부 보려는 참가자에게 변수가 많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하지만 기대된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마음껏 나를 보여 줬으면…….
“다녀왔습니다~”
“어~ 덕후 왔니?”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셨다.
“어서 손발부터 닦고~!”
“네~!”
오후 5시.
난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중요한 일전을 앞두고 오늘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보내려 한다.
“김덕후.”
누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어서 나와.”
“왜?”
“나오라면 나와.”
난 뭔가 싶어서 방문 밖으로 나갔다.
누나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뭐야?”
“어서 옷 입어, 나가게.”
“갑자기 왜? 설명을…….”
우리 누나는 속은 깊지만, 친절한 편은 아니다.
“가면서 설명하면 되잖아. 빨리! 늦는 거 아빠가 싫어해.”
“아빠?”
난 얼떨결에 옷을 입으며 반문했지만 여전히 설명은 없었다.
누나는 현관을 나서며 어머니께 말했다.
“갔다 올게.”
“오냐~ 차 조심하고. 동생 잘 데리고 다녀.”
“알았어.”
누나를 따라서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고.
우리는 시내로 향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거긴 왜?”
“몰라, 아빠가 너 데리고 거기로 오래.”
“근데 누나, 오늘 학원은…….”
“신경 안 써도 돼. 그건 내가 알아서 하니까.”
나 때문에 수험 준비하는 누나가 시간을 내준 거야?
외고 준비한다고 요즘 바쁜 거 같던데.
“이 정도는 나 혼자서도 갈 수 있는데.”
“까불지 마, 어디 초등학생이.”
누나는 시니컬하게 말하고는 날 힐끔 바라봤다.
“준비는 잘돼 가냐?”
“그냥 뭐…… 하는 거지.”
“그래, 너도 참 힘든 길 간다.”
“이해해 줘서 고마워.”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우리는 한참을 지하철을 타고 갔다.
누나와는 나이 차가 좀 나서일까.
그렇게 살갑게 지내지는 않는다. 누나는 완전 나를 애 취급을 하니까.
그래도 은근히 챙겨 준다.
“김덕후.”
[이번 역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응?”
“혹시 누나가 도울 일 있으면 얘기해라. 응? 알겠어?”
“응.”
“짜식, 조그만 게 하여튼. 가자.”
누나는 날 향해 피식 웃고는 앞장서서 갔다.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조그맣다고? 이제 누나랑 나랑 키 차이 거의 안 나는데.
* *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4번 출구.
계단을 올라가는데, 스멀스멀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아빠~!”
누나가 김 부장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핫, 지아야~!”
김 부장답지 않게 윗니를 활짝 드러내며 손을 흔든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김 부장의 무릎 위에 앉는 누나.
누나를 향해서만 활짝 웃을 줄 아는 김 부장.
두 부녀 관계는 정말 각별하다.
누나는 김 부장을 만나자마자, 팔짱을 끼며 좋아했고.
김 부장은 따뜻한 눈빛으로 누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 딸~ 배고프지?”
“괜차나~ 아빠야말로 출출할 텐데. 일하느라 고생 많았지?”
그러면서 김 부장 팔을 주물렀다.
“하하! 아빠 생각해 주는 건 역시 우리 딸밖에 없어!”
“헤헤!”
느끼해진 김 부장의 말투와 혀가 짧아진 누나의 발음.
두 사람 사이에 있으니 견디기 힘들다.
“왔냐?”
김 부장이 이제야 날 돌아보냐 물었다.
“어. 왜 불렀어?”
“따라와라.”
팔짱을 끼고 앞에서 걸어가는 김 부장과 누나.
난 그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동대문 시장.
처음 와 봤다. 전생에도 와 본 기억이 없다. 온 세상 옷들은 다 모아 놓은 것 같다.
구경하느라 정신없는데, 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연하려면 의상이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너, 무대에 선 지 오래돼서 마땅한 옷이 없잖아.”
무대의상 사 주려고 날 이곳에?
살짝 감동이 오려 했지만, 입 밖으로는 마음과는 다르게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공연 하루 전날 뭐 하는 거야? 이런 날은 쉬어야 하는데.”
“…….”
“그리고 겨우 예선전이라고. 예선전이야 뭐 대충 입고…….”
“대충?”
김 부장은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뒤돌아서 날 무섭게 바라보았다.
“대충이라고 했냐?”
“아니…… 뭐 그냥 예선전이니까, 다들 그렇게 편하게 입고 나온다고…….”
“정신 차려, 인마.”
김 부장의 낮은 목소리가 내 심장에 꽂혔다.
“조그만 것에도 최선을 다해야지. 대충이 어딨냐, 대충이?”
“…….”
“그리고 남들 얘기는 왜 하는 거야? 남들처럼 떨어지고 싶냐? 남들처럼 하고 남들 수준 정도만 되고 싶어?”
약간 정색하는 말투라 좀 당황하긴 했지만.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냥…… 아빠가 아들한테 하는 소리였다. 잘되라고 하는 소리.
이젠 시간이 좀 지나서일까. 난 김 부장의 웬만한 말에는 날카롭게 응대하진 않았다.
“달라야지, 내 아들 김덕후는 달라야지.”
“알았어. 근데 그냥 김덕후는 달라야 한다고 해 줘.”
그래도 자신의 부속물처럼 말하는 건 듣기 싫다. 어쩔 수 없는 사실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듣기 싫은 건 싫은 거다.
‘소망 양장점’
동대문 시장 구석진 곳에 여러 반짝이 옷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덕후야, 모든 일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누가 알든, 알아봐 주지 않든 모든 정성을 다 들여야 해.”
“…….”
“그래야 하늘이 돕는다.”
김 부장은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김 부장은 대뜸 말했다.
“제 아들이 내일 무대에서 입을 건데요.”
사장님은 눈을 멀뚱히 뜨며 김 부장을 바라보았다.
“눈에 확 띌 만한 가장 멋진 옷으로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