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선곡(1)
휴~ 늦여름인데도 많이 덥다.
결국 각자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왔고, 덕분에 일석이 어머니도 뵙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덕후야, 오랜만이네~?”
난 일석이 어머니께 인사했고, 반갑게 받아 주셨다.
“어유~ 일석아. 너는 무슨 노래자랑을 나간다고? 노래도 못 부르는 게.”
일석이는 아주머니의 핀잔에도 굳은 의지를 담아 대꾸했다.
“엄마, 전국민노래자랑이 노래만 보는 게 아니야.”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행사 이름이 ‘노래자랑’인데. 일단 노래는 기본이지!”
그래도 일석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두고 봐. 본선에 진출할 테니까.”
아주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랴~ 맘대로 해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근데 무대 올라가서 내 아들이라는 말만 하지 마라.”
“싫은데? ‘김복자 여사님, 사랑합니다~!’라고 할 건데?”
“어헛!”
갑작스러운 본명 발언에 아주머니는 얼굴이 벌게지셨다.
“너, 용돈 한번 끊겨 볼래?”
“아, 알았어~ 죄송, 죄송.”
“엄마 이름 입 밖에 내지 말랬지?”
주먹을 드는 김복자 아주머니의 모습에 일석이는 황급히 가드를 올렸다. 가드에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꽤 익숙해 보였다.
난 어머니와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얘들아!”
접수 창구에 있는 직원이 우리를 불렀다.
아까 일석이와 둘만 왔을 때는 접수 대기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우리밖에 없었다.
“너희들 접수하러 온 거 아니니?”
“맞아요.”
“어서 이리로 오렴.”
일석이 먼저 접수를 했다.
직원은 아줌마의 신분증을 대조해가며 주소를 확인했고, 금방 접수는 끝났다.
“다음~!”
난 어머니와 함께 접수 창구 앞에 섰다.
접수 직원은 내가 건넨 신청서를 보더니.
“김덕후…… 너구나?”
직원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고 물었다.
“신청서에는 본명을 적어야 하는데…… 이거 본명 맞니?”
“…….”
바야흐로, 지금은 2010년.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05년과는 다르다.
이름을 지을 때 내가 우려했던 일들…….
덕후라는 이름이 가진 파급력.
2007년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8년쯤에는 ‘덕후’라는 용어가 사회 전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이제 ‘덕후’라는 단어는 완벽하게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덕후는 ‘특정 분야나 취미에 열중해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시간이 앞으로 훨씬 더 흐른 뒤에는 순수하게 그 의미로만 쓰이지만, 막 사회에 퍼지기 시작하는 이때만 해도 약간은 비하하는 의도도 담긴 뜻이었다.
덕후의 어원인 일본어 ‘오타쿠’로 소개되었던 사람들의 특이해 보이는 경향 때문이다.
접수 직원의 물음에 어머니는 표정이 어두워지셨다. 어머니도 ‘덕후’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접수 직원에게 대답했다.
“네, 본명입니다.”
“풉!”
이 말에 접수 직원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 대박! 이름 뭐야~”
“…….”
그때 어머니의 표정이 험악하게 변하며 말했다.
“웃어?”
“…….”
어머니는 필(feel) 받으면 얼굴이 무시무시해진다. 그 빡센 김 부장도 어머니에게는 꼼짝 못한다. 어머니는 동네에서도 부드러운 킬링 포스로 유명하시다.
‘웃어?’라는 한 마디에 접수 직원은 곧바로 웃음을 멈추었다.
“흠!”
접수 직원은 표정을 굳히고 내 이름 옆에 괄호를 열고 적었다.
[김덕후(본명)]
젠장…….
“다른 분들이 오해하실 수 있어서 이렇게 적는 거니까 이해해 주세요.”
앞으로 난 이름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이 주목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접수가 끝난 후, 일석이에게 물었다.
“일석아, 너 연습 어떻게 할 거니?”
“글쎄…… 우선 뭘 할지 고민해 봐야 해서. 어차피 난 노래는 아니잖아?”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일석이는 스스로를 잘 안다는 것이다.
이러면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내 목표는 본선 진출이니까. 우선 인터넷으로 전국민노래자랑 예전 것 좀 찾아보려고.”
“너, 진심이구나?”
“당연하지! 덕후, 너는 연습 어떻게 할 거야?”
일석이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네 목표는 최우수상이잖아.”
일석이의 말에 아줌마도, 어머니도 놀라지 않았다.
5년이 흘렀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이지.”
난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주머니와 어머니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선…… 노래 연습도 중요하지만 전략을 좀 짜 보려고. 경연이니까.”
내 말에 일석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물쭈물하며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그를 향해, 내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
“일석아, 그럼 내일 만날까? 같이 연습하자.”
일석이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 * *
이틀 뒤.
난 학교를 끝마치자마자, 집이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어제 일석이와 연습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일석이는 막춤을 연습하고, 난 노래 연습을 했는데.
어차피 팀으로 같이 나가는 게 아니기에, 서로 객관적으로 봐줄 수는 있었다.
어제 서로 평한 것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일석 : 재미없는 막춤. 오글거려서 못 봐주겠다.
김덕후 : 잘은 하는데, 지루해.
우리는 오랜 시간 가깝게 지낸 친구 사이라서, 평가에 가감이 없었다.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서로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덕분에 난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지루해…… 지루해…….’
이 말이 자꾸 맴돌았다.
처음엔 초등학생의 시각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초등학생의 눈길까지 잡아끌 수 있어야 진짜 괜찮은 무대가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목표는 ‘최우수상’이니까.
무작정 연습만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연습 대신 조언을 구하러 멘토를 찾아온 것이다.
신바람의 집.
띠띠띠띠. 띠리리리~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갔다.
“선생님~!”
온갖 장비들이 어질러져 있는 작업실 겸 원룸.
실내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덕후 왔냐?”
작업실 안쪽 깊숙한 곳에서 신바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그는 담배를 비벼 끄고는 일어나서 창문을 열어서 환기시켰다.
“얀마~ 오늘 연습 날도 아닌데, 왜 왔냐?”
“그냥 놀러 왔어요.”
“놀기만 해야 돼. 나한테 교습은 직업이야.”
하여간 신바람은 직업 정신이 투철하다.
난 평소에 항상 앉던 자리에 엉덩이를 깊숙이 넣고는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렸다.
“쥬스 한 잔 주세요.”
“짜샤, 니가 갖다 마셔.”
“에잉~ 손님 접대가 영.”
“뭐래? 건방진 녀석.”
신바람과 나는 격의가 없다.
당연히 난 그를 선생님으로서 존중하고, 그의 실력과 경험을 존경하지만.
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는 정말 편한 사이가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김 부장보다 나와 신바람 사이가 더 부자 관계처럼 보일 것이다.
“뭐 하세요?”
“뭐 하긴, 밥벌이 중이지.”
신바람은 건반을 누르고, 비트를 넣으며 곡 작업을 하고 있었다.
“누가 의뢰했어요?”
“정성.”
“네?!”
정성이라면…… 꽤 유명한 가수인데? 예전에 김천 자두 포도 축제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근데, 분명 그때는 신바람과는 앙숙 관계처럼 보였었다.
“두 분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요?”
“그 새끼가 원래 그래. 형님~ 형님~ 이러면서 곡 의뢰하더라. 그러다가 나중에 내가 거꾸러지면, 그때는 또 벌레 보듯 하겠지. 뱀 같은 자식.”
“…….”
“괜찮아~ 원래 그런 새끼니까. 난 그냥 돈만 벌면 돼. 그리고 걔한테는 할증 붙여서 수수료 청구할 거니까.”
“하하.”
근데…… 참 멜로디가 낯익다.
“이거 얼마 전에 양상두한테 준 곡이랑 비슷한 거 아니에요?”
“얀마, 원래 곡이라는 게 그런 거야.”
신바람이 만든 곡들은 정말로 다 엇비슷하다. 공장에서 곡을 찍어 내는 느낌. 그는 정말 밥벌이하듯 곡을 만들어 낸다.
곡의 퀄리티를 떠나서, 어떻게 이렇게 쉽고 빠르게 곡 작업을 하는지…… 가만히 보면 놀랍다. 이것 또한 분명 재능이다. 신바람은 오십이 넘은 나이에 재능을 찾은 것이다.
“근데 왜 온 거야?”
“놀러 왔다니까요?”
“놀러 오긴~ 옘병. 놀 줄도 모르는 녀석이. 자꾸 딴소리하지 말고, 어서 용건 말해. 바빠, 곡 찍어 내야 해.”
하여간…… 신바람은 눈치가 백 단이다.
“저…… 전국민노래자랑 참가 신청했어요.”
“아, 그래?”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가.
.
.
.
.
“뭐, 뭐어?!”
신바람의 동공이 기괴해 보일 만큼 커졌다.
* * *
“뭐, 뭐야, 갑자기?!”
신바람은 얼굴까지 벌게졌다.
몹시 흥분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왜 이렇게 흥분하세요?”
“야! 흥분 안 하게 생겼냐? 재야의 고수가 강호에 나선다는데!”
“하하, 저 고수예요?”
신바람은 좀처럼 칭찬은 잘 안 하기에 난 웃으며 말했다.
“흠! 됐고, 너 아빠랑 초등학교 때는 방송 출연 안 하기로 한 거 아니었냐?”
“아, 그게요…….”
난 김 부장과의 대화,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전국민노래자랑을 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설명해 주었다.
“아, 하긴. 전국민노래자랑은 찾아와야 참가할 수 있는 거니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지. 전국민노래자랑 따라서 이사 다니지 않는 한. 그런 미친놈은 없을 거고.”
이 말에 난 접수 신청할 때 만났던 카우보이 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하던데…….
“참가 신청까지 했다고?”
“네, 혹시 선생님은 전국민노래자랑 나가 본 적 있으세요?”
신바람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나가고 싶었지만 난 기회가 없었어. 내가 살던 동네에는 찾아오지 않더라고. 막상 내가 이사 가고 나면 찾아오고…….”
아…… 혹시나 했는데. 아무래도 도움받기 어려우려나?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지만 동료 가수 중에는 전국민노래자랑 출신이 많아. 트롯이 강세인 경연 대회잖아.”
난 고개를 끄덕였고.
신바람은 슬며시 눈을 치켜뜨고 날 바라봤다. 어느샌가 쉴 새 없이 누르던 키보드 건반 위에서 손을 내렸다.
“그래서 나한테 조언 구하려고 찾아온 거냐?”
“네…… 친구랑 연습 중인데, 별로라고 해서요.”
“흠…… 그래? 친구는 뭐야? 가수 지망생이야?”
“아니요, 그냥 TV에 한번 출연하고 싶다고 나간대요. 춤 연습만 하고 있어요.”
“아…… 그래? 복장 특이한 거 입으라고 해라. 병맛 느낌 나는 거로.”
노래 준비가 아니라는 말에 신바람은 바로 대답이 나왔다.
“아니면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춤사위를 준비하라고 해. 정성 들여서 준비하면 노래는 못 해도 출연 가능성이 있지. 아, 개인보다는 팀이 났고.”
그냥 팁이 술술 나온다. 말을 들을수록 신뢰가 간다. 역시 신바람 선생님.
“근데, 넌 뭘 부르는데 친구가 별로라고 한 거냐? 노래 뭐 선곡했냐?”
“참가 신청서 보니까, 3곡을 선곡할 수 있더라고요.”
<김덕후의 전국민노래자랑 선곡표>
1) 단장의 미아리 고개
2) 간대요, 글쎄
3) 용두산 엘레지
선곡한 노래들을 말하자, 신바람은 말없이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쉬었다.
“휴우― 환장하겠네.”
“…….”
“선곡에서부터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구만!’
신바람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얀마! 너가 무슨 기성 가수도 아니고, 전국민노래자랑에서 정통 엘레지 트롯을 왜 불러! 더군다나 1차 예선부터? 너, 잘못 생각하고 있어!”
신바람은 답답한 듯 말했다.
“전국민노래자랑은 그런 곳이 아니야, 특히나 1차에서는 밝은 노래를 불러야지!”
“…….”
신바람은 내 눈앞에 검지를 세우고 말했다.
“내 말 똑똑히 들어. 선곡 바꿔라.”
“네? 이미 제출했는데, 선곡을 어떻게 바꿔요?”
신바람은 살짝 웃고는 말했다.
“다 방법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