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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78화 (78/250)

78화. 단련의 시간

어머니는 달려와 김 부장에게 와락 안겼다.

웬만해서는 두 사람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애정 표현은 안 한다.

간혹 둘이 손을 잡기만 해도 난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볼 수가 없다. 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여보~ 축하해요!”

“하하! 고마워, 다~ 당신 덕분이야!”

덜컹.

방문이 급하게 열리면서 할머니가 달려오셨다.

“아이고~ 우리 아들~!”

“하하!”

할머니는 김 부장을 와락 안으며 소리치셨다.

“장하다~ 장해! 어째 우리 아들 승진 소식은 이렇게 빨리 들리니?”

“하하, 어머니 아들이 잘나서 그런 거겠죠?”

“맞다~ 맞어! 우리 아들이 참 잘났지!”

김 부장도 많이 기쁜가 보다.

평소에 안 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잘났다느니 그런 말은 절대로 안 하는 사람인데.

“그럼 이제 뭐니? 김 차장이었으니까…….”

“이제 김 부장이죠!”

“어이쿠, 우와~”

회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부장’이라는 직급은 안다.

정규직으로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직급. 이사로 시작되는 임원직은 엄연히 말하면 계약직이다.

김 부장은 42세의 나이에 ‘부장’이라는 직급을 단 것이다.

내가 김 부장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밤낮없이 회사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인 것을 회사에서도 알아보고 인정해 주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형~ 축하해! 42세에 부장이면 진짜 빠른 거 아니야?”

막냇삼촌이 물었다.

“뭐~ 글쎄다~ 그 나이에 임원 하는 사람도 있는데 뭐.”

“에이~ 그건 진짜 특이 케이스고. 대단해, 난 아직도 주임인데.”

막냇삼촌은 올해 34세.

늦은 나이에 어렵게 취업했다.

본인이 주임이라고 투덜대지만, 난 게으른 막냇삼촌이 취업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형수님! 오늘 뭐 삼겹살이라도 구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호호, 그럴까요?”

“당연히 그래야죠! 제가 가서 사 올게요!”

“네에!”

어머니는 음식 준비하러 부엌으로 들어가셨고.

막냇삼촌은 곧바로 나갔다.

난 옆에서 다 듣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TV만 보고 있었다.

“덕후야, 아빠 승진했는데 축하한다고도 안 해 주냐?”

할아버지의 말에 난 눈은 그대로 TV에 고정한 채, 입만 움직였다.

“축하해.”

“오냐, 고맙다.”

김 부장이 피식 웃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지난 5년간 나와 김 부장과의 관계?

그냥 여느 집안의 부자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난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고, 굵직한 이벤트가 없다 보니 김 부장과 부딪힐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일도 잘 없었다.

이젠 나도 김 부장에게 대놓고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서로 자연스럽게 피한다.

그냥 무미건조한 부자 사이.

2회차 인생을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느샌가 김 부장은 내게 직장 상사가 아닌 아빠로서의 이미지가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덜컹.

막냇삼촌은 정육점에 뛰어갔다 왔는지 금세 돌아왔다.

“자~ 오늘 달려 봅시다! 아빠도 가볍게 약주 한잔하자!”

“오냐~ 그래야지.”

할아버지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짤랑. 짤랑.

막냇삼촌이 들고 있는 검은 봉지에서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 * *

나의 5년을 정리하자면…… 한마디로 ‘단련의 시간’이었다.

간혹 무대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정진과 지방 공연을 다닌 거 말고는 학교와 음악 공부에 집중했다.

특수 학교에 전학 가는 걸 김 부장과 잠깐 논의한 적이 있었으나, 초등학교 때는 그럴 필요 없는 거로 서로 의견이 일치했다.

중학교 진학 시에 다시 고려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학원 교육에 집중하게 되었다.

음원 수익으로 교육비를 충분히 마련했었고, 5년 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흙장난’에서 수익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교육비로만 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돈 걱정은 하지 않고, 마음껏 배울 수 있으니 난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별의별 것을 다 배웠다.

‘판소리, 기타, 피아노, 드럼, 방송 댄스, 웅변, 바이올린 등…….’

‘음악’ 분야로 치중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정말 가리지 않고 다 배웠다.

내 유년기의 음악적 역량은 ‘학원 교육’에 재능이 더해져서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노래 연습은 개인 교습을 통해서 했는데, 선생님은 신바람이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지식은 깊었다. 신바람이 불세출의 가수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스승으로서의 재능은 뛰어났다.

그는 대형 가수부터 무명 가수까지 수많은 가수들의 흥망성쇠를 옆에서 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스킬을 가졌는지 웬만한 건 다 알고 있었다.

신바람은 어떻게 보면 노력형 가수에 가까웠는데, 자신이 소화하지 못했을 뿐, 창법의 이론적 지식과 생활 습관 등 트롯 가수에게 필요한 모든 걸 아는 백과사전 같은 사람이다.

정진은 방송 활동으로 바빴고.

나 혼자 1:1로 신바람에게 집중 교육을 받게 된 건데, 어떻게 보면 이 또한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꺽기와 털기 고급 과정을 수료할 때쯤, 신바람이 내게 색다른 제안을 했었다.

“덕후야.”

“네, 선생님.”

“네가 지금 트롯 창법만 연습하고 있지 않냐?”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길래, 난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대답했다.

“네, 트롯 가수가 될 거니까요.”

신바람은 손을 턱에 괴고 고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다양한 창법을 배우도록 해라. 발라드, 락 등등.”

“네?”

난 황당해서 반문한 뒤, 그의 말을 곱씹었다.

‘왜지? 요즘 트롯이 너무 인기가 없어서?’

신바람과 이 대화를 했던 때는 내가 4학년. 즉, 2008년 트롯의 암흑기였다.

“전 잘되건 못되건 트롯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제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오직 트롯…….”

신바람은 손을 휘저으며, 내 말을 끊고는 말했다.

“얀마, 누가 트롯 하지 말랬냐? 선생님이 보기에는 몇 년 뒤에 다시 트롯 열풍이 불 거라고 생각하거든?”

“…….”

“원래 유행하는 장르도 왔다 갔다 하는 거야. 흥할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고. 트롯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음악이라 재능 있는 가수가 한 방 터뜨려 주면 또 금방 다시 뜬다고. 내 생각에는 곧 한 명 나올 때가 됐는데. 아마 올해 아니면 내년? 그때쯤일 거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2009년에 홍지영의 ‘사랑의 빠떼루’가 큰 인기를 끈다. 그게 바로 내년이다.

확실히 신바람은 뭐가 잘될지 알며, 시대의 흐름을 아는 사람임은 분명하다.

“점점 장르가 크로스오버가 되고 있는 시대라서, 하나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그리고 사람은 한 가지에만 너무 익숙해지면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해. 그러니 어릴 때 다양한 창법들을 조금씩이라도 익혀 놓는 게 좋겠다.”

근데 다양한 창법을 배워 두면 혼동되어 헷갈리지 않을까?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배우는 거야 어렵지 않겠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어 좀 염려가 되어서 물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신바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될 것 같으면 말을 안 했지.”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돼.”

곰곰이 생각하다가 트롯 열풍을 불고 온 경연 프로그램 ‘2019년 헬로우 트롯맨’에서 다양한 분야를 전공했던 참가자들이 실력을 뽐내는 장면이 떠올렸다.

흙장난 이후로, 난 전생에 음악과 관련된 기억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 복기하는 습관을 들였다. 이것은 신바람 선생님과의 교육이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2회차가 된 지 13년이 지났지만, 오히려 전생의 기억이 더 또렷한 것들이 많다.

기억도 노력하면 생생해진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다.

“알겠어요. 또 학원 등록해야겠네.”

근데 발라드와 락 창법 가르쳐 주는 학원이 있었던가?

어딘가 있겠지. 우리나라에 없는 학원이 어딨어?

* * *

6학년의 가을.

여름방학도 지났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9월이다.

토요일 오후, 거실에서 TV를 보는데 또 정진이 나왔다.

“쟤는 참 잘 나온다.”

할머니가 정진을 알아보고 말했다.

그냥 예능 프로였는데, 정진이 패널로 나와서 떠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칠순에 온 이후로 정진은 우리 가족과 거의 가족처럼 지낸다.

정진은 나보다 두 살 위니까, 올해 15살, 중학교 2학년이다.

이제 어린아이의 티는 별로 나지 않는다.

약간 미성숙한 어른 같은 느낌이랄까.

“쟤 원래 가수 아니냐? 요즘은 노래 부르는 걸 통 못 봤어. TV에는 많이 나오는데.”

막냇삼촌이 피식 웃으며 말했고, 난 그 말에 대꾸했다.

“삼촌, 가수는 연예인이야. 연예인이 방송에 나왔으면 됐지. 뭘 그래? 가수는 노래 부를 때만 TV에 나와야 하나?”

“그래도 그렇지, 노래를 너무 안 부르잖아.”

잠자코 정진을 보고만 있던 누나도 말했다.

“그렇긴 해~ 요즘 트롯이 한물 가서 그런가? 하긴, 우리 반에서도 트롯 듣는 애들은 없으니까.”

그리고는 TV를 물끄러미 보다가.

“그래도 쟤는 곱상하니까 TV에 나오는 거지. 말도 잘하고.”

정진은 아주 어릴 적 실패의 경험 덕분에 생존력이 정말 강했다.

음반을 내었다가 망하면, 바로 태세 전환하여 예능에 패널로 출연하고.

패널 출연 섭외도 잘 안 되면, 리포터로 나가기도 하고.

정말 끊임없이, 성실하고 끈덕지게 방송에 나와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아마 대한민국 국민 중에 정진을 모르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근데 쟤, 왜 요즘엔 집에 안 놀러 오니?”

누나의 말에 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왜, 관심 있어?”

“관심은~ 무슨?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누나는 정진보다 한 살 위다.

난 왁자지껄 웃으며 말하고 있는 정진을 보았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난 정진의 진짜 웃는 모습을 알고 있다. 노래 부르며 춤출 때 나오는 웃음.

지금 TV에 나오는 정진의 웃음은 진짜 웃음이 아니다.

그냥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내년이면 김 부장과 약속했던 방송 출연 가능 나이인 중학생이 되는데…….

과연 나에게 기회가 있을까? 너무 오래 쉰 건 아닐까?

TV 속 정진을 보면서 약간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 * *

“잠깐 나갔다 올게요!”

답답해서 우이천에서 같이 바람이나 쐴까 하고 일석이에게 연락했다.

우이천.

일석이는 먼저 도착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난 손을 흔들며 불렀다.

“일석아~!”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웃으며 물었다.

“밥 먹었냐?”

우리는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여전히 월계수동 빌라에서 살고 있다.

일석이와는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었고, 6학년이 된 5년 만에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아니!”

난 웃으며 일석이와 어깨동무를 했다.

“왜? 학교 때문에 심란하냐?”

일반 중학교를 갈지, 예술중학교를 갈지 저울질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예술중학교 접수 기간이라 이제 결정해야 한다.

“아니~ 그 때문이 아니야.”

TV를 보고 있는데, 계속 뭔가 답답했다.

내 안에서 뭔가 터지려 하는데, 꾹꾹 누르고 있는 무언가.

이제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난 아직도 많이 미성숙한 걸까? 얼마나 더 단련을 해야 할까? 지금도 내가 원하면 방송국에서 날 불러 줄까?’

두 번째 삶은 걱정 따위는 하지 말고 살자며 다짐했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우리는 대화하며 천천히 우이천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음? 뭐야?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몰려 있대?”

산책로 한쪽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일석이가 먼저 다가가서 기웃거리더니.

“어?!”

날 향해 빠르게 손짓했다.

“하하! 대박~ 덕후야! 일로 와 봐!”

“뭔데?”

“아~ 빨리 와 봐~! 우리 동네에서 이런 걸 다 하네?”

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일석이가 가리키는 현수막을 보았다.

[전국민노래자랑 : 노원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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