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76화 (76/250)

76화. 잔치(2)

“싸! 싸! 호르르르~! 아싸! 좋다~!”

신바람은 어깨춤을 추고, 그 옆에서 나와 정진은 발이 보이지 않도록 스텝을 밟았다.

손도 쉬지 않았다.

쉴 새 없이 손가락 박수를 치며, 무대를 뱅뱅 돌며 흥을 돋웠다.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의 형제들이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자~! 어떤 곡 갈까요~”

신바람은 여전히 어깨춤을 추며, 가장 먼저 올라온 어르신께 물었고.

그 어르신은 큰소리로 외쳤다.

“잡초 가겠습니더~!”

“나이스 초이스! 잡초! 갑니다아~!”

신바람은 전자 기타를 매고, 키보드 앞에 섰다.

키보드의 어떤 버튼을 누르자, 비트가 나오기 시작했다.

뽕작 뽕짝 뽀봉 짜작 뽕짝

비트가 나오기 시작하자, 신바람은 ‘잡초’의 초반부 멜로디 부분을 기타로 연주했다.

띠리 디띠디리 띵! 띵! 띠리리 띵~~

왼손은 키보드, 오른손은 기타.

동시에 연주하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열심히 스텝을 밟는 와중에 정진에게 물었다.

“와~ 형, 대박인데? 신바람 선생님이 악기를 저렇게 잘 다루셔?”

“야, 선생님 경력이 얼만데? 그럼 노래만 부르는 줄 알았냐? 악기 못 다루는 사람이 곡을 어떻게 쓰겠어?”

“아…….”

‘흙장난’ 곡을 신바람이 썼지?

1번 타자로 마이크 잡은 어르신은 할아버지의 친척 동생으로 보였다.

“행님~ 만수무강 하이소~!”

할아버지는 두 손을 높이 올려서 박수를 보내며 좋아하셨고.

신바람이 만든 흥의 불꽃에 어르신은 ‘잡초’로 기름을 부으셨다.

관객이 주도하는 무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신바람은 이름처럼 신바람을 아주 잘 일으켰다.

‘마스터.’

칠순 잔치에서 신바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마스터라고 부른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요술램프 지니 마스터’였다.

마법처럼 그의 손끝에서 ‘흥’은 끝없이 피어났다.

1번 타자 어르신 이후로 너도나도 마이크를 잡으려고 안달이었고.

할아버지를 축하해 주기 위한 노래자랑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신바람은 키보드와 기타로 악보 하나 없이 모든 곡을 연주했다.

노래 제목만 듣고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지…….

곡을 알고 반주를 맞추는 건지, 분위기에 따라서 반주를 맞추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어찌 보면 반주가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근데, 또 자세히 들어 보면 조금씩 다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기명기 보는 기분이었다.

난 신나게 춤을 추다가 인간 주크박스 신바람이 신기해서 정진에게 물었다.

“싸~ 싸~! 형! 저것도 당연한 거야?”

“아니, 묘기 부리시는 거 같은데? 아니면 이런 쪽 일을 많이 해 보셨거나.”

“…….”

신바람은 환히 웃으며 계속 흥을 돋워 주었다.

스텝을 밟으며.

양손으로 기타와 키보드를 다루고.

그러면서도 입은 쉴 새 없이 놀렸다.

좋아~ 좋아~ 아싸 가오리~!

너무 올드한 표현만 빼면…….

신바람에게 배울 게 많아 보인다.

* * *

자가자가 장 자자장 자가자가

1시간 경과.

신바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쉬지 않고 반주를 했다.

이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할아버지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셨다.

그 와중에 신바람은 마이크가 사이좋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계속 신경 썼는데.

그는 매의 눈으로 아직 마이크를 한 번도 잡지 않은 사람을 체크했다.

“자아~ 이번에 큰 따님 한번 모셔 보겠습니다!”

―우와아~!

큰 고모가 호명되었다.

큰 고모가 영 눈에 띄었다. 아무리 수줍어도 할아버지 칠순인데 너무 빼고 있었다.

김 부장을 비롯한 다른 형제들은 이미 다 한 곡씩 불렀다. 큰삼촌은 세 곡이나 불렀다.

큰 고모는 자리에 앉아서 신바람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큰딸! 뭐 하십니까? 효심이 이거밖에 안 되는 건가요?”

자가 장장~ 뽕짝 뽕짝

흥이 깨져 버리지 않게 계속 비트를 넣어 주면서 신바람은 멘트를 이어 갔다.

‘효심’이라는 단어에 큰 고모가 움찔했다.

“아버지 칠순입니다~ 형제들 뭐 하십니까? 보고만 계실 겁니까아~!”

막내 고모와 큰삼촌은 큰 고모의 양팔을 잡아 일으켰다.

“언니~ 어서 와. 내가 도와줄게.”

“누나~ 뭐 해?”

큰 고모도 나가려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건지, 두 사람의 손길을 완강하게 거절하지는 않았다.

“아유~ 참, 노래 못 하는데.”

큰 고모가 가까이 다가오자, 신바람이 물었다.

“뭐 부르실래요?”

큰 고모가 말하기 전에 옆에서 막내 고모가 눈치를 주었다.

“언니, 어머니 은혜, 사모곡 이런 거 부르지 마. 눈치 없게.”

“…….”

“아버지 칠순이잖아. 불편하지 않게 해 드리자.”

큰 고모는 막내 고모의 말에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부를게요.”

“…….”

신바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옆에 있는 막내 고모와 큰삼촌은 경악했다.

“이 분위기에 그 노래를 부른다고?”

“누나! 그 부드럽고 교양 있는 곡을?!”

큰 고모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난 빠른 곡은 못 불러. 그나마 이게 내가 부를 수 있는 가장 빠른 곡이야.”

큰삼촌이 답답한 듯 말했다.

“누나, 남행열차 정도는 알잖아?”

“몰라~ 나 그 노래 몰라.”

부르기 싫어서 알면서 모른다고 하는 것 같았다.

신바람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좋습니다, 나이트에서도 블루스 타임은 있거든요! 1시간 쉬지 않고 달렸으니까, 한 박자 쉬어 가죠!”

큰 고모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요? 블루스요?”

신바람은 더 대답하지 않고, 비트를 바꿨다.

밤바바밤 밤바바 밤바바밤 밤바

갑자기 가라앉은 비트에 도리도리를 하고 있던 어르신이 짜증 난다는 얼굴로 신바람을 보았다.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아~ 우리~ 옆 사람과 손에 손을 잡고! 가슴과 가슴을 맞닿으면서어~ 살며시~ 아주 포근히~ 안아 볼까요?”

밤바바밤 밤바바 밤바바밤 밤바

신바람의 말에 맞춰서, 김덕후와 정진이 손을 맞잡고 살짝 안으며 사교 댄스를 추듯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두 아이는 신바람의 보조 역할을 정말 충실히 잘하고 있었다.

두 아이의 포즈를 본 사람들은 곧바로 신바람의 의도를 이해하고, 가까운 사람과 부르스 자세를 취했다.

코스모스 하늘하늘 피어 있는 길~

큰 고모의 노랫소리.

김덕후는 깜짝 놀랐다.

‘어? 큰 고모도 성악을 하셨었나?’

이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성악 발성이었다.

겨울이 싫어서 꽃 속에 숨었나~

어쨌든 노래가 좋으니, 부르스에 집중하기는 좋았다.

―여보~ 부르스 한번 춥시다.

―자기야~ 일로 와 봐

―누님~ 손 한번 잡아 볼까요?

―할아버지~ 나랑 춤춰요.

김 부장은 어머니와

큰삼촌은 여자 친구.

막냇삼촌은 막내 고모.

할아버지는 손녀와 함께 손을 잡았고.

다 함께 휘적휘적 무대를 산책했다.

김덕후는 그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

‘정말 나이스 타이밍이네!’

* * *

헉. 헉.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제대로 올라온 흥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 않는다.

무대 위로 올라와서 놀고 계신 어르신들은 에너자이너같았다.

평소에 앓던 관절염도 모두 사라진 듯.

정말 모두 신명 나게 노셨다.

나와 정진. 그리고 신바람만 지쳐가는 것 같다.

뜨거운 호응에 우리도 흥이 올랐지만 그래도 직업 정신을 갖고 있기에.

아무래도 이성을 좀 가지고 놀고 있다.

그래서 슬슬 힘든 걸 느낀다.

“선생님, 언제까지 해요?”

벌써 2시간은 훌쩍 지났다.

일부 집이 먼 분들만 먼저 갔고, 대부분은 그대로 남아 있다.

건반을 치는 신바람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손가락 관절에 무리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슬슬 정리해야지. 내 손이 못 버티겠다.”

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이 분위기를 과연…… 끊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땀과 술에 절었지만, 눈에 생기가 넘치는 사람들.

모두 신바람을 집중했다.

“오늘 주인공이시죠?”

―우와아~!

―형님! 형님!

―아빠! 아빠!

―할아버지~!

신바람이 운을 떼자,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열렬히 외쳤다.

“어르신!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와아~!!

짝짝짝.

할아버지가 앞으로 나오자, 신바람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르신, 생신 축하드립니다!”

“하하, 고맙소. 덕분에 참 즐거워요.”

그리고 할아버지는 돈 봉투를 신바람 앞주머니에 꽂아 주었다.

“엇?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선물을 드려야 하는데.”

“하하, 괜찮아요. 그냥 삼촌이 용돈 준다고 생각하고 받아요.”

할아버지는 웃으며 신바람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신바람은 묵례를 살짝 하고는 마이크를 할어버지께 건네었다.

“어르신, 한 말씀 하시죠!”

“…….”

할아버지는 마이크를 잡았고.

일순간 모두 조용해졌다.

“제가…… 70년을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운을 떼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나기도 했지만, 많은 소중한 이들을 떠나보내기도 했죠.”

할아버지는 잠시 숨을 돌렸다가,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도 부모님이 있었고, 조부, 조모가 있던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오늘…… 70번째 생일을 맞으니. 어머니, 아버지가 많이 그립네요.”

“…….”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할아버지는 평소에 말씀이 적으시고, 몸이 한번 아프신 이후로는 약주도 잘 안 하신다.

이런 속 깊은 얘기는 내 기억엔 처음 듣는 거였다.

“나 김정근이, 칠십 평생 열심히 살았습니다. 잘 살았을지는 몰라도 열심히 살았어요. 육이오 사변 때 내 나이 16살이었지만 내 가족 지키려고 정말 악착같이 버텨 냈고요. 그리고 좋은 아내를 만나서 훌륭한 자식 5명이나 두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숨을 쉬시고는 큰 고모를 바라봤다.

“옥녀야, 애비도 니 엄마 죽고 나서 많이 슬펐다. 그 시절에 어쩔 수 없었다. 너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애비가 미안하다.”

큰 고모는 말없이 눈가를 훔쳤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여보, 시집와서 고생 많았소. 많은 고충이 있었던 거 잘 알고 있소. 미안하오.”

칠순 생일을 맞은 할아버지는 자꾸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자꾸 미안하다는 말 하지 마세요!”

난 순간 울컥해서 소리쳤다.

좋은 생일날에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하! 그래, 덕후야. 그래도 할아버지는 아주 행복하다. 미안하고 후회되는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행복해. 내 가족들 다 건사하고, 이쁜 손주들도 있어서. 하하.”

그때 신바람이 할아버지께 살짝 말했다.

“어르신, 이제 노래 한 곡 하고 끝내시죠. 노래는 밝은 노래가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진도아리랑’ 부르겠습니다.”

쿵짜작 쿵짝 쿵짜작 쿵짝

빠른 비트가 쏟아지고, 할아버지는 양손을 하늘로 뻗으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아리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할아버지의 구슬픈 소리가 궁전회관을 가득 채웠다.

신나는 리듬이지만, 그의 목소리에 묵직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문경새제는 왠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얼쑤!”

신바람은 추임새를 넣었고.

할아버지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불렀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의 가슴속엔 수심도 많다

할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입술을 한껏 찡그리며 우는데.

눈은 웃고 있다.

그러면서도 덩실덩실 춤을 췄다.

세월이 흐르기는 강물과 같고

인생이 늙는 건 바람결 같구나

할아버지의 울음 섞인 노랫소리.

큰 고모를 비롯하여 형제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할아버지의 춤사위를 지켜봤다.

김 부장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 년을 사는가

개똥 같은 세상이지만 둥글둥글 사세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음 아라리가 났네

숙연한 분위기 속에 할아버지의 노래가 끝나고.

신바람은 마이크를 잡았다.

“장남! 어디 계십니까?”

김 부장이 손을 들었다.

“장남이 어르신 업고 한 바퀴 돌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 부장은 성큼성큼 다가와 할아버지를 업었다.

“많이 무거울 텐데.”

“아니에요.”

한 바퀴 돌기에 앞서서 할아버지는 날 부르셨다.

“덕후야, 이리 와라. 너도 함께 돌자.”

“네, 할아버지.”

―우와아!

―생신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할아버지, 김 부장, 나.

이렇게 삼대는 함께 큰 환호를 받으며 한 바퀴 돌았다.

난 김 부장에게 업혀 있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 걸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진하야.”

“네, 아버지.”

“고맙구나. 아빠가 오늘 많이 행복하구나.”

김 부장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아버지…… 만수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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