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잔치(1)
“칠순 잔치?”
정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고, 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형!”
정진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 가야지! 당연한 거 아니야? 잔치면 가야지. 하하. 근데 칠순이 너네 할아버지 이름이야?”
“…….”
처음엔 황당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정진 정도 나이라면…… 모를 만도 하다.
신바람은 뭔가 고민하는 눈치였고, 난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 친할아버지 생신이야. 70세 되시는 생신.”
“아~ 그러니까 생신 잔치구나?”
“맞아~ 오래 사신 걸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쭉 건강하시라고 자식들이 축하 잔치 해 드리는 거야.”
“으휴~ 하여간 이 똑똑이.”
정진은 그러면서 내 볼을 꼬집었다.
“너 어쩌면 이렇게 모르는 게 없냐?”
“볼 좀 놓고 얘기해줄래.”
아무리 내가 정진을 형으로 대하고 있지만, 이렇게 볼까지 꼬집히며 애 취급을 당하는 건 상당히 불편하다.
“하하.”
내가 째려보자, 정진은 웃으면서 내 볼살을 놓았다.
“그럼~ 더더욱 가는 걸로 할게. 당연히 가야지!”
난 신바람을 바라봤다.
“선생님은요?”
“…….”
“사실 선생님께는 초대라기보다는 섭외라고 말씀드리는 게 맞을 거 같은데.”
“응?”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정동희가 눈썹을 올렸다.
난 계속 말했다.
“저희 할아버지 칠순 잔치 사회를 맡아 주셨으면 하거든요.”
“뭐어?”
이제야 신바람이 반응을 보였다.
“사회는 무슨 사회냐? 그렇게 사회 볼 사람이 없냐? 젊은 사람들 놔두고 무슨 오십 넘은 가수를 초청해서 사회를 보라고 해?”
“아…… 그게 사실 사연이 있어요. 하하.”
그리고 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방송을 보다가 할아버지께서 내게 칠순 잔치 메인 가수를 부탁하셨고. 그래서 나와 딱 맞는 사회자가 필요하다는 거.
“그러니까 잔치 내내 너랑 나랑 둘이서 계속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거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때 정진이 가슴을 두들기며 말했다.
“덕후야, 서운하다? 나는 왜 빼냐?”
“하하! 당연히 형은 나랑 세트지.”
신바람이 이해를 못 하는 표정을 짓기에 난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 저도 경험도 없고, 분위기 제대로 살리지 못할까 싶어서 내키지는 않는데요.”
“…….”
“할아버지가 원하세요. 생일이니 주인공 뜻대로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강하게 말씀을 하셔서…….”
“…….”
이 말에 신바람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봤을 때는 거절하고 싶은데, 할아버지 생신이라고 하니 차마 쉽게 말은 못 하겠고.
어떻게 말을 할지 고민하는 듯싶었다.
그가 거절의 뜻을 입 밖에 내기 전에, 한마디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 아빠가 신바람 선생님 꼭 오시래요. 안 온다고 하시면 전화 달라고 하시던데.”
“갈게.”
신바람은 바로 승낙했다.
* * *
일주일 뒤, 궁전회관.
토요일 정오부터 할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준비하기 위해 온 가족들이 움직였다.
5형제의 전 가족이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였다.
가족이 많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와 정진은 동선을 체크하고, 신바람은 궁전회관 직원과 식순, 음향과 영상, 준비한 멘트 등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오늘 준비한 곡들을 정진과 맞춰 보며, 손가락 박수 연습을 하고 있는데…….
“너가 덕후구나? 동희한테 얘기 많이 들었다.”
건장한 체격에 올백 머리를 한 남성.
나이는 한 오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몸이 아주 두꺼웠다.
그리고 그 옆에 정동희가 있었는데, 그가 웃으며 말했다.
“덕후야? 처음 뵙지? 형 아빠야. 너한테는 큰고모부가 되지.”
“아~ 안녕하세요!”
난 바로 깍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김 부장의 배다른 형제인 고모들은 명절 때마다 보고, 작은고모부도 간혹 함께 오신다.
하지만 큰고모부. 그러니까 정동희의 아버지는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었다.
큰고모부는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그래서 해외 출장이 잦은데, 한국에 있는 날보다 해외에 있는 날이 더 많을 정도다.
“음악 영재라고 동희가 그렇게 칭찬을 하더라. 집에서 자기 얘기보다 네 얘기를 더 많이 할 정도니까.”
“아빠, 내가 언제 영재라고 그랬어? 천재라고 했지.”
“하하!”
정동희의 말에 우리는 다 함께 웃었다.
부자간이 참 친근해 보였다.
우리 집과는 딴판이네.
큰고모부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덕후가 메인 가수라고 들었는데.”
“네? 아, 하하. 가수라기보다는 뭐…… 그냥 분위기 띄우는 거죠.”
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8살이라고 했지?”
“네, 맞아요.”
큰고모부는 눈에 이채를 드러내며 말했다.
“참 대단하구나. 말하는 거나 생각하는 거나.”
“…….”
그때 멀리서 큰고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가 봐야겠구나. 오늘 같은 날은 큰사위라서 많이 바쁘구나.”
“하하, 네.”
“여튼 지켜보마.”
큰고모부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자리를 떴다.
“오늘 멋지게 한번 해 봐라.”
오후 5시.
잔치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직계가족은 정 가운데에 섰다.
촬영기사가 행사 시작하기 전, 자리가 깨끗할 때 직계가족 전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정확하게는 16명인데, 아직 결혼 전이지만 큰삼촌 여자 친구도 포함하였다.
―찍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잔치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는데…….
정말 어마어마했다.
우리 집에 이렇게 가족이 많은 줄 몰랐다.
“덕후야, 인사해라. 포항에 사시는 셋째 이모할머니네야. 처음 뵙지?”
“안녕하세요.”
장남인 김 부장은 행사장 입구 옆에 서서 손님들을 맞았고.
난 그 옆에 딱 붙어서서, 열심히 인사했다.
정말 인사하다가 모가지가 빠질 것 같았다.
“아빠.”
“응?”
“우리 가족이 원래 이렇게 많았어?”
김 부장이 차근히 설명해 주는데…… 머릿속으로 세어 보다가 포기했다.
이모할머니만 10분이 계시고.
할아버지의 형제분들도 9분이 계신다.
그분들의 가족, 가족의 형제자매. 그 형제자매의 자식들, 거기다가 결혼까지 했으면…….
줄줄이 사탕이었다.
이 많은 가족 손님들을 맞다 보니, 새삼 친할아버지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연예인도 아닌 평범한 한 사람의 생일잔치에 가족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것.
그 자체가 할아버지의 70년 역사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인사하면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스피커에서 신바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오늘 와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고희연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
―오늘 사회를 맡은 노란 바람~ 신! 바! 람! 인사 올립니다~!
노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바람은 정중히 인사한 후.
―축하 무대로 오늘 칠순 잔치의 문을 열겠습니다! 요즘 대한민국이 방울 소리에 난리 나신 거 아십니까?
―네~!
―JBS 아침마당놀이에서 얼굴을 알린 이후, 광폭 행보를 하고 있는! 두 아이의 방울 소리! 그 방울 소리는 엄청납니다! 여심을 울리는 방울 소리죠.
신바람은 손을 쭉 뻗으면서 나와 정진을 소개했다.
―방울형제가 부릅니다! 흙장난!
―우와아~!
―덕후 화이팅!
와우, 이것이 피붙이의 파워인가?
환호성이 장난 아니다.
내가 할아버지의 장남 김진하의 아들 김덕후라는 걸, 이곳에 계신 가족들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세균 조심하라고
―우와악~!
―덕후 최고!
한 소절 부를 때마다 난리였다.
정진의 이름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약간 민망할 정도였는데, 정진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여긴 완벽한 내 홈그라운드니까.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후렴 부분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미끄러지듯 춤추자.
―까훗!
―와싸~
얼굴이 생소한 어르신 두 분이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하셨다.
분위기…… 진짜 쉽게 달아오른다.
관객이 항상 이런 식이라면 공연할 맛 나겠는데?
이런 날 멈추지 말아 줘요.
놀이터에서 오늘을 날려 버리게 싸아~
어느덧 노래는 끝이 났고.
손님들은 큰 박수로 우리를 격려해 주었다.
―덕후야! 잘했다~!
―일로 온나~ 용돈 줄 꺼구마~!
노래가 끝난 뒤에, 분위기가 정돈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가만히 보니 우리 노래가 신난 영향도 있었지만, 오늘 제대로 놀려고 손님들이 작정하고 오신 거 같다.
―네~ 노래 잘 들었습니다. 가족 입장이 있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빰바바밤― 빰바바 빰빰―!
흥겨운 노래에 맞춰서 우리 가족 17명이 앞으로 나왔다.
―와~ 아버님이 왕성하셨나 봐요. 아주 대가족입니다.
―하하!
―그럼~ 우리 형님이 보통 아니셨지~!
―지금도?
신바람의 멘트에 장내에는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이후 생신 축하 노래, 케이크 커팅 및 건배, 헌주 등 식순대로 이어졌다.
식순의 마지막. 가족 인사.
사회자는 마이크를 김 부장에게 넘겼는데, 김 부장은 그 마이크를 큰고모에게 넘겼다.
“누님, 누님께서 대표로 인사하세요.”
“아니다, 네가 해야지. 장남 아니냐.”
김 부장은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누님께서 하세요. 누님이 저희 형제 중에 가장 어른이시잖아요.”
“흠.”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자, 할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셨고.
결국 큰고모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큰 딸이자 첫째, 김옥녀 인사드립니다.
―휘이익~!
―이쁘다~!
―오늘 먼 길 오셔서 저희 아버지 생신을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큰고모는 무난하게 인사말을 이어 가다가…….
―오늘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네요. 어머니도 이렇게 칠순을 맞이하셨으면…… 흑!
“…….”
돌아가신 큰할머니 얘기다.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친할머니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영문을 모르는 신바람은 눈을 끔뻑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고.
난 빨리 넘기라고 손짓을 보냈다.
―네~ 그럼 식순은 이걸로 마치고요! 이제부터! 본 게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신바람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크게 일갈했다.
“모두~~ 일어섯!”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영문 모를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바람은 다시 마이크를 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놀아 볼 건데요~ 칠순 잔치에서는 누가 효자 효녀인 줄 아시죠?
―네~!
―알다마다요!
손님들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박자 들어갑니다아~! 놀아 보세~! 얼씨구!
신바람은 마이크를 들고 무대로 나왔고.
신나는 뽕짝 리듬이 궁전회관을 울리기 시작했다.
뽕자락 뽕짝뽕짝 뽕자라락 뽕뽕 짝
싸~! 싸~! 와싸~! 싸!
신나게 어깨춤을 추며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신바람.
이 세상의 모든 흥이 그의 어깨에 깃든 듯. 정말 흥겹게 몸을 흔들었고.
얼굴은 하회탈처럼 웃고 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웃겼지만.
이상하게도 난 순간 코끝이 살짝 찡해졌다.
“뭐야, 언제는 안 오겠다고 뻗대시더니.”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오기 싫은 거 억지로 와서,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해 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분위기를 띄우려는 게…….
―호르르를~! 싸! 싸! 좋아 좋아 좋아! 싸! 싸!
어깨를 어찌나 튕기는지 저러다가 탈골될 것 같다.
신바람은 노래는 거의 안 부르고, 흥을 돋우기 위한 추임새를 계속해서 이어 갔다.
순식간에 고희연장은 광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덕후야! 뭐 하냐?!”
“응?”
“올라가!”
정진은 신바람이 있는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며 소리쳤다.
그래, 좋았어. 한번 놀아 보자!
오늘 할아버지께 효도 한번 제대로 하자!
퉷! 퉷!
난 손바닷에 침을 뱉고서는, 손뼉을 짝짝 치고 소리쳤다.
“가즈아!”
난 앞으로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