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어떤 제안(2)
“음반? 그러니까 곡을 내자고?”
“네.”
김 부장은 대답 대신 묘한 눈길로 정동희를 바라봤다.
‘네가 내 의중을 모르지 않을 텐데…….’
방금 이 말이 김덕후가 한 말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앞뒤 보지 않고 의욕적으로 나설 수 있으니.
하지만 정동희라면 얘기가 다르다.
“왜?”
김덕후를 최소한 중학생까지는 정식 데뷔는 시키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처음에 음악을 하겠다며 김 부장에게 다가왔을 때 조건을 걸었었다.
그중 하나가…….
‘교육방식은 내가 결정한다.(중학생때까지)’
이 조건의 속뜻은 정식 데뷔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시킨다는 거였다.
그 자리에 정동희도 있었다.
이런 김 부장의 의중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 큰삼촌, 덕후를 연예계로 진출시키자는 게 아니라요…….”
정동희는 김 부장이 오해하는 것 같아서 먼저 이 말부터 하였다.
“덕후가 만든 노래가 워낙 인기가 좋아서 제안이 많이 오고 있어요. 솔직히…… 큰삼촌 좀 부담되시잖아요.”
“뭐?”
이 말에 김 부장이 눈썹이 한껏 올라갔다.
‘이 녀석이?’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아~ 큰삼촌, 제발요. 조금만 참으시고 말을 끝까지 들어 주세요.”
“…….”
“큰삼촌의 형편에 대해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요. 어느 가정이든 아이 음악 교육시키는 건 부담이 꽤 되는 일이에요. 우리 집은 안 그랬을 거 같으세요?”
김 부장은 자존심이 강하다. 정동희 또한 그걸 잘 알기에 오해할 수 있는 부분들은 미리 얘기하는 것이다.
“전 이걸 기회라고 보거든요. 큰삼촌이 걱정하는 게 뭔지 아는데요…… 요즘엔 ‘얼굴 없는 가수’라는 게 있어요.”
“얼굴 없는 가수?”
“네.”
김 부장은 좀 관심을 보였고, 정동희는 이제야 좀 자신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음반만 내고 활동은 안 하는 거예요. 브라운아이즈 아시죠? 그 가수처럼요.”
‘방울형제를 브라운아이즈에 비교를 하다니…….’
아무리 김 부장이라도 브라운아이즈를 모를 리 없다.
“야, 너는 비교를 해도…….”
“그냥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든 거죠. 하하. 남자 듀오인 점도 똑같고요.”
정동희는 멋쩍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이 노래가 얼마나 인기가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전 덕후 교육비로는 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
“큰삼촌, 교육에 돈은 중요해요. 돈 걱정은 안 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으면 좋은 거잖아요.”
김 부장은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 그는 회사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 봐야 월급은 고정이고, 승진이나 성과급을 통해서 수입이 조금 늘어나는 것 말고는 없는데.
그렇게 늘어나 봐야…… 일 년에 천만 원도 안 될 것이다.
현재 월급으로 대가족을 부양하는 것조차도 벅찬 상황이다.
교육시켜야 할 자식이 김덕후만 있는 게 아니다. 딸 김지아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내 자식을 벌써부터…….’
내키지도 않고, 자존심도 상했다.
“레코드사에서 연락이 온 거냐?”
“네, 세 곳에서 연락 왔어요.”
“…….”
“그들 나름대로 시장 조사를 하나 봐요. 흥행 조짐을 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이 말도 하던데.”
정동희는 김 부장 눈치를 살짝 보고는 말했다.
“아침마당놀이 녹화 방송에서 노래만 따서 듣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고…….”
“뭐어?”
이 말에 김 부장은 언성을 높이며 반응했다.
정동희는 말을 이어 갔다.
“가만히 있어도 시장에 암묵적으로 퍼질 거라고요. 왜 가만히 있냐고 하던데요.”
김 부장은 고민했다.
‘젠장, 내 아들이 어렵게 만든 걸 공짜로 듣는다고?’
이 말에 김 부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알았다. 괜찮은 곳으로 미팅 잡아라. 아, 아니야, 그냥 네가 알아서 약속 잡고, 빨리 녹음하러 간다고 해.”
“알겠어요!”
* * *
정동희와 김 부장이 대화를 나눈 그날 밤.
난 짧게 얘기를 들었다.
‘흙장난’을 음원으로 만들 거라고.
예상 못 했던 일이라 황당했지만, 어쨌든 난 김 부장이 결정하면 따라야 한다.
그게 약속이니까.
그리고 신바람과 정진을 만나서 레코딩 작업을 한다는데……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덕후야~ 준비됐니?”
오늘 일요일.
난 나갈 준비를 마치고 정동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응~ 지금 나가. 다녀오겠습니다!”
난 정동희와 택시를 탔다.
“큰삼촌 진짜 안 가신대?”
“응.”
“웬일이야? 당연히 함께 가실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번엔 함께 가 주시길 바랐는데.”
“왜?”
“레코딩 사장님과 협의를 해야 하니까. 난 그런 경험은 없어서…… 만날 피아노 치고, 술 먹고 놀러 댕기기나 했지 뭐. 비즈니스를 알겠니?”
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신바람 선생님 계시잖아.”
“응?”
“그분 은근히 까칠하셔. 아빠도 신바람 선생님 계시니까 그냥 믿고 맡기신 거 같은데?”
“글쎄다…… 그분은 음악만 하시는 분 같아서…….”
신바람 얘기에 정동희는 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사실 지금도 신바람 선생님이 추천하신 곳으로 급선회해서 가는 건데…… 사실 좀 못 미더웠거든? 근데 큰삼촌도 이쪽으로 가라고 하셔서.”
“왜?”
“글쎄다. 여기 사장님이랑 만난 적이 있으신가 봐. 내 얼굴 아니까 장난질 못 칠 거라고 하시던데.”
아, 그럼 혹시.
“형, 혹시 지금 가는 곳이 필승엔터테인먼트야?”
“엇? 너도 아냐?”
알지…… 그 부담스러운 아저씨.
* * *
“하하~ 우리 가수님들 어서 와요~”
깡마른 몸매에 안경을 쓴 남자.
김천에서 봤을 때와 똑같다. 머리가 붕 떠 있는 것도 그렇고.
필승엔터테인먼트의 조필승 사장. 그가 우리를 반겼다.
신바람, 정진과는 건물 입구에서 만나 함께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냈니? 아, 오랜만은 아니구나. 난 최근에 TV에서 너희를 봤으니까. 으하하!”
과장되게 웃으며 조필승이 말했다.
“우리 덕후는 더 멋있어졌구나~? 드라마 찍어도 되겠어~ 원빈이 어렸을 때 꼭 너처럼 생겼을 거야.”
“…….”
오버는 여전하구나. 원빈이 나처럼 쌍꺼풀이 없냐? 그래도 좀 비슷한 걸 갖다 대야지.
“신 선생님도 잘 지내셨어요?”
“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필승은 정동희를 본 후, 신바람을 향해 소개해 달라는 듯 슬며시 물었다.
“누구……?”
“아~!”
조필승의 말에 신바람은 웃으며 정동희의 어깨를 두들겼다. 두 사람도 꽤 가까워졌다.
신바람은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하다가.
“방울형제의 프로듀서인 정동희 씨라고 해요.”
신바람은 정동희를 이렇게 소개했다.
정동희는 살짝 당황해했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동희라고 합니다.”
“아, 네. 조필승이라고 합니다. 프로듀서요?”
그러면서 정동희를 바라보는데, 경계하는 눈치였다.
“젊으시네?”
정동희는 말없이 싱긋 웃었다.
그의 경계하는 눈치가 불편했는지, 신바람이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이번에 아침마당놀이 출연한 거. 그거 다 정동희 씨가 제작한 거예요.”
“네? 진짜요? 노래까지?”
신바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편곡을 하셨고, 그 외에 무대 연출이나 컨셉 등 다 정동희 씨가 기획했어요.”
“오…… 혹시 어느 회사?”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회사 없고요, 대학생이에요. 덕후 친척 형이에요.”
“아~ 그러셨구나.”
조필승은 이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자기 밥그릇 뺏을 사람으로 오해했었나 보다.
“재능 있으시네~ 이쪽 분야에서 일해 보는 거 어때요? 우리 회사에서 인턴으로 써 줄 수도 있는데.”
조필승은 이때 약간 거들먹거리면서 말했고.
정동희는 그저 대답 없이 웃었다.
옆에서 정진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서울대생이 이런 조그만 회사에 왜 들어와? 어이가 없구만.”
조필승은 이 말을 듣고,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 자, 이쪽으로 앉으시죠.”
우리가 앉자마자 조필승은 계약서 먼저 꺼내었다.
[음원 대행 업무 계약서]
“우선 계약 먼저 하고, 레코딩 진행합니다.”
“…….”
조필승은 정동희와 신바람 표정을 살피고는 말했다.
“애들 앞에서 좀 그런가요? 나중에 할까요?”
“…….”
아직 사회 초년생조차도 아닌 순딩이 대학생 정동희.
20년 내내 음악만 해 온 신바람.
두 사람은 계약서 앞에서 그저 멍했다.
난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살피다가.
“아니요. 지금 하세요.”
결국 내가 나섰다.
계약이야 전생에 해외 서플라이어들과 수백 번 해 봐서 자신 있지만.
수위 조절이 잘되어야 할 텐데…… 난 지금 8살이니까.
내 말에 조필승은 정동희의 눈치를 살폈고. 정동희는 나와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할게요.”
계약서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흠…….
역시 아주 배타적이다. 필승엔터테인먼트가 ‘을’로 표시되어 있는데, 전혀 ‘을’ 같지 않은 ‘을’.
모든 게 회사 편의 위주다.
이 업계가 원래 이런가?
내용을 읽어 갈수록 과하다 싶은 부분이 많았다.
“사장님.”
“응?”
“그러니까 판매 유통처에 40%를 떼 주고 나머지 부분에서 60%에서 73%를 제작사가 가져간다는 거죠?”
“맞아.”
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어 말했다.
“그러면 음원 판매가 100원일 경우, 16원을 작사, 작곡, 편곡, 가수가 나눠 갖는 거네요?”
“아…… 뭐, 그렇긴 한데. 예시가 좀 그렇다……?”
조필승은 더듬거리면서 말했고, 설명을 들었는데도 정동희와 신바람은 멍해 보였다.
보아하니 신바람은 원래 계약서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 같고.
정동희는 경험 부족으로 보인다. 어리버리한 사람은 아니다.
난 잠시 생각하다가, 정동희를 선택했다.
“형, 우리 화장실 가자.”
“응? 갔다 와.”
“같이 가. 낯선 곳에서 화장실 혼자 가기 무서워.”
“뭐?”
피식. 정동희는 웃고는 따라나섰다.
“잠시만요, 화장실 갔다 와서 계약할게요.”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난 정동희를 향해 섰다.
“형,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그리고 절대로 내색하면 안 돼.”
“응? 왜 그러냐? 화장실에서 무섭게?”
“저 계약 말이야…….”
속닥. 속닥.
난 정동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 주었다. 최대한 자세히, 경우의 수까지 대비해서.
다 듣고 난 뒤.
정동희는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와…… 언제 계약서를 다 읽고…… 그리고 이거 뭐냐? 이 정도면…… 큰삼촌한테 배운 거니? 왜 이렇게 능숙해?”
“쉿!”
난 정동희를 조용히 시키고 말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해. 계약 잘되는 게 중요한 거잖아.”
“…….”
“형, 잘 기억해. 자잘한 건 내어 주고, 중요한 것만 챙기는 거야. 알겠지?”
* * *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정동희는 계약서를 잠깐 보는 시늉을 하고는 바로 조필승에게 말했다.
잊어 먹을 수 있으니, 바로 얘기하라고 알려 줬었다.
“사장님, 작성하신 계약서 내용대로 하는데요. 딱 두 가지만 바꿨으면 합니다.”
“아, 그래요? 한 번 들어 볼게요.”
“음…… 미리 말씀드릴게요. 지금 제안드리는 건 필수 조건이에요. 받아들이시지 못하시면 계약은 보류할 생각입니다. 저희가 계약서를 검토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말씀드릴 거니까요.”
“네?”
조필승은 살짝 식겁한 표정이었다.
“마, 말씀하세요.”
정동희는 조필승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덕후가 계약 내용 얘기할 때는 반드시 눈을 피하지 말랬어. 쫄리는 모습 보이면 안 된다고.’
“우선 계약 기간입니다. 음원 사용 계약 기간을 3년으로 적어 놓으셨는데, 너무 깁니다.”
“네? 이건 다들 그렇게 하는데.”
정동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시장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3년이나 묶어 둬야 합니까? 1년 계약으로 하고, 계약 만료 30일 이전 별도 요청이 없는 경우 1년 자동 연장하는 거로 하시죠.”
조필승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다음은요?”
꿀꺽.
정동희는 침을 삼켰다.
이번 게 중요하다. 김덕후가 알려 준 대로 그는 핵심만 찌르듯 말했다.
“정산 비율 조정 요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