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어떤 제안(1)
“선생님! 조용히 해 주세요!”
“…….”
나의 다급한 표정을 보고, 선생님은 입을 다물었다.
뭔가 하고 돌아봤던 친구들은 모두 교실을 나갔고.
일석이만 나와 함께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선생님이 실수했니?”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고, 난 난감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생님, 저번에 제가 손가락 박수 친 이후에 학교 엄청 조심해서 다니는 거 모르시죠?”
“그랬니?”
선생님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조심히 다닐 필요가 뭐가 있어? 친구들이 그냥 너 좋아하는 건데?”
“글쎄요. 좋아하는 건지, 신기해하는 건지 저는 좀 헷갈리더라고요.”
“음…… 그래?”
난 살며시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지금 절 김 가수라고 부르신 건…….”
“아~!”
선생님은 날 불렀던 게 생각났다는 듯 말씀하셨다.
“지난주 토요일에 JBS에 나왔던 거. 덕후 맞지?”
역시…… 보신 거구나.
“네…… 맞아요.”
“호호!”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진짜 잘하더라. 덕후가 음악 재능이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아침마당놀이 보세요?”
“애청자야~!”
난 찬찬히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20대 중반의 젊은 여선생님이…… 왜 토요일 아침에 그걸 보고 계실까.
“덕후 너 진짜 멋있더라. 선생님이 TV보다가 심쿵했다니깐? 핑크 정장도 너무 멋지고~ 호호.”
그러면서 선생님은 대견하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왜 얘기 안 해 줬니? 난 그날 왜 갑자기 결석했나 했더니.”
방속 녹화 때문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고,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 못 나온다고 했었다.
선생님은 약간 서운한 기색이었다.
“방송 출연한다고 얘기 좀 해 주지. 그러면 반 친구들과 다 함께 보고 응원했을 텐데.”
“…….”
난 이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이제는 선생님께도 알려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더이상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다.
“선생님, 사실 제가 가수를 준비 중이에요. 방송 보셔서 아시겠지만 방학 때부터 훈련을 해 왔고요.”
“알어.”
“지금도…… 네?”
선생님의 말에 당황했다.
안다고? 어떻게?
“언제 얘기해 주나 했다. 저번에 학예회 때 아버님이랑 면담할 때 들었어.”
“아…….”
“아버지가 덕후에 대해서 꼼꼼하게 신경 많이 쓰시더라.”
선생님은 웃으며 얘기를 이어 갔다.
“덕후가 얘기해 주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어. 근데, 친구들이 너한테 관심 갖는 게 싫니?”
“음…… 저는 좀 확실히 구분해서 살고 싶어요. 제가 음악을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제 모든 삶이 그것에 영향받는 건 원치 않거든요.”
“…….”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여간 볼수록 신기하다니까. 덕후는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하고 의젓하니?”
최대한 신경 써서 어려운 단어 빼고 말한 건데. 그래도 좀 어색했나?
“그래~ 네 말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근데 말이다. 덕후야.”
선생님은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파도에 맞서는 것보다는 파도를 타는 게 낫지 않을까?”
“…….”
“난 가수로서 삶을 잘 모르겠지만, 과연 그게 명확하게 구분이 될지는 모르겠구나. 은둔자가 되지 않는 이상.”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로 말했다.
“거리 두지 말고, 구분 짓지 말고. 그냥 그런 관심도 옆으로 흘리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그게 되면…… 고민할 거리가 하나 없어지는 거잖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어쩔 수 없는 건 애쓰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의미인데.
하지만 그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먹는다고 바로 될 일은 아니다.
내가 전생에 가수로 살았던 것도 아니고, 가수는 처음이라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날 위해 해 준 말씀이니까, 일단은 알겠다고 해야지.
“네, 노력해 볼게요. 선생님.”
“그래~ 방울형제~ 화이팅이다.”
선생님 입에서 방울형제라는 이름을 들으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난 재빨리 인사하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안녕히 계세요!”
* * *
“야, 무슨 얘기를 그렇게 길게 하냐?”
일석이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선생님이랑 얘기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선생님은 너 참 좋아하는 거 같아.”
훗. 질투하는 건가?
8살 내 친구 일석이가 참 귀엽다고 느껴졌다.
“야, 별로 좋은 얘기도 아니야.”
“쳇.”
문방구 앞을 지나가는데, 아주머니 세 명이 꼬마 애들과 있었다.
“엄마~ 나 하얀색 살래!”
“안 돼, 파란색으로 사. 하얀색은 때가 너무 잘 탄단 말이야.”
“힝~ 친구들은 다 하얀색 신는데.”
실내화를 고르는 중이었고, 아이들은 3~4학년 정도 되어 보였다.
“어?”
그때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내 얼굴이 뚫어질 듯 노려본다.
왠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눈을 깔았다.
선생님 말씀을 생각해 보려 했지만, 쉽지 않다. 이럴 때 그냥 당당하게 나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수줍고 피하고 싶은지.
―승은 엄마, 지난주 토요일에 아침마당놀이 봤어?
―당연히 봤지. 왜?
―쟤 봐 봐, 쟤
나를 처음 발견한 아주머니가 날 향해 손가락질을 했고.
다른 아주머니들도 일제히 날 바라봤다.
―어머. 어머.
―핑크 정장 입고 나왔던 애 아니야?
―이름이 뭐였더라?
―몰라, 이름은 기억 안 나. 그냥, 애들 둘이 나왔었잖아.
일석이는 그 아줌마들의 눈짓을 보고 내게 말했다.
“아는 분들이야? 인사할까?”
“…….”
어려서 그런 건지, 멍청한 건지.
일석이를 보며 약간 헷갈릴 때가 있다.
“아는 분들인데, 내가 이렇게 눈을 피하고 있겠니?”
“아…… 그럼 가자.”
하지만 이미 늦었다.
우리는 아주머니들에게 둘러싸였다.
“얘~ 너 혹시 아침마당놀이에 나왔던 그 아이 맞지?”
날 처음 발견한 아주머니가 날 향해 물었다.
책가방을 메고, 팔다리가 짦은 추리닝 차림.
내 무대를 기억하고 묻는 아주머니에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민망했다.
하지만 이미 알아본 걸 어떡하나.
“아, 네 맞아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아주머니들은 손뼉을 치고는 깔깔대며 좋아했다.
“어머~ 영광이다. 얘. 너, 우리 동내 살았구나? 신화초등학교 다니니?”
“네.”
“우리 아들이랑 같은 학교네~ 호호.”
아주머니들은 입에 터보를 달고, 속사포 랩을 쏟아 내셨다.
방송이 어땠으며, 춤이 멋있고, 노래가 기가 막혔으며…… 너네 아빠는 무슨 일 하냐는 질문까지.
그래도 다행인 건 칭찬 일색이었다.
“옆에는 친구니?”
“네.”
“그래. 둘 다 일로 와 봐. 아줌마가 아이스크림 사 줄게.”
“네?”
그렇다면…… 땡큐죠.
일석이도 삐죽거리던 입이 헤벌쭉해졌다.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 내내, 아주머니는 시선은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잘생기고 멋져서 본다기보다는…… 신기해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름이 덕후라고?”
“네.”
난 아주머니가 사 준 아이스크림을 들고 인사했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저희 이만 가 볼게요. 늦게 가면 어머니가 걱정하셔서요.”
“어~ 그래. 그래.”
“어이구~ 효자네~”
“인사도 잘하고.”
별거 안 했는데도, 참 리액션이 좋다.
인사를 꾸벅하고 가려는데, 한 아주머니가 날 불러세웠다.
“덕후야.”
“네?”
“아줌마가…… 너희 정말 응원했거든? 그리고 같이 나온 아이, 이름이 뭐더라?”
“정진이요.”
“그래, 정진. 걔는 정말……. 하아, 멋있어…….”
“…….”
내 팬이 아니라 정진 팬이시구나?
“아, 그럼~ 제가 정진 형 사인받아서 나중에 드릴게요.”
“정말? 그래도 될까? 미안한데.”
“정진 형 좋아해 주시는 게 방울형제 좋아해 주시는 거죠. 뭐. 하하.”
“어머~ 부모님한테 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애가 참~”
난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가 볼게요.”
“그래~ 방울형제 화이팅~ 김덕후 화이팅~!”
* * *
방송의 힘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겨우 아침 방송 한 번 출연한 건데도, 참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 주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조금씩 받아들였다.
여전히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날 알아보고 호의를 베풀 때면 좀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내가 그분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줬으니, 주고 싶은 거겠지라고 생각하면 받아들일 만했다.
슈퍼마켓에만 가도 깜찍이 소다 사면 알사탕 하나는 무조건 기본 서비스.
하지만 거만해지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방송이 나간 이후, 내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 부장. 그는 유심히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방송 나가기 전에 대놓고 경고했었다, 지켜볼 거라고.
그따위 말. 무시하고 싶었지만, 어쨌든 지금 내 아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김 부장이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여러모로 힘들어지니까.
그렇게 취한 듯, 살얼음을 걷는 듯 일주일여를 보냈는데…….
띵동! 띵동!
금요일 저녁.
정동희가 찾아왔다.
“동희야~ 요즘 너 자주 온다?”
막냇삼촌이 문을 열어 주며 반겨 주었고, 나도 ‘정동희’라는 단어에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으로 튀어 나갔다.
“혀엉~!”
“하하, 덕후야~!”
난 정동희를 와락 껴안았다.
엇? 그리고 옆에 송사무엘도 있었다.
“사무엘 형~ 왔어?”
“하하, 그래. 안녕하세요~ 들어가도 될까요?”
넉살 좋은 송사무엘은 이미 신발 벗고 들어와 있으면서 말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송사무엘의 얼굴도 익숙하다.
“형~ 어떻게 지냈어?”
“하하. 그냥 정신없었지.”
그러고 보니, 정동희가 몰라보게 수척해져 있었다.
약간 생명력이 떨어져 보인다고 할까?
“무슨 일 있었어?”
“잠깐만. 할아버지, 할머니 인사드리고.”
정동희는 방으로 들어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한 후 나왔다.
“덕후야, 너 요즘 안 힘들었냐?”
“응?”
“방송 나간 이후에 말이야.”
“아~ 쪼금?”
힘들었다기보다는 좀 번거로웠지.
“하아~ 그래?”
“왜 형?”
“말도 마라, 방송 나가고 나서 어찌나 별의별 곳에서 연락이 오는지.”
송사무엘은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보는데 장난 아니더라. 전화기 불나는 줄 알았다니까.”
정동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들 내가 방울형제 매니저인 줄 알어!”
“하하.”
그 말에 나도 따라 웃었다.
엄밀히 말하면 제작자이자 프로듀서에 가까웠지만.
매니저 역할도 함께 해 줬었지.
“큰삼촌, 안녕하세요.”
정동희는 안방에서 신문을 들고 나오는 김 부장을 향해 인사했다.
“어, 동희야. 왔냐?”
김 부장은 대수롭지 않게 인사하고 지나가려는데.
“큰삼촌.”
“응? 왜?”
“잠깐 저 좀 봐요.”
김 부장은 날 흘깃 바라본 뒤 말했다.
“덕후 얘기냐?”
“네. 하하, 덕후도 같이 볼까요?”
김 부장은 신문을 소파에 던져놓고 말했다.
“아니다, 둘이 보자. 안방으로 들어와라.
* * *
“무슨 일이냐?”
김 부장은 들어오자마자, 대뜸 용건부터 물었다.
그는 사무실이든 집이든 시간을 낭비하는 거 싫어한다.
“아 네, 다름이 아니라요.”
정동희도 그의 성향을 알고 있기에 뜸 들이지 않고 얘기했다.
“제가 방울형제의 매니저로 오해받고 있어서, 최근에 많은 제안을 받았거든요. 큰삼촌도 방송 영향 많이 느끼시죠?”
회사에서 김 부장의 가족을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지만, 김덕후가 야유회를 한 번 따라온 뒤부터 이제 모두 알고 있다.
김 부장은 요즘 회사 동료들로부터 한턱 쏘라는 얘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계속 얘기해.”
“큰삼촌이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해서…… 제가 웬만한 건 다 무시하는데요. 이건 좀 괜찮은 제안 같아서요.”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하라니깐.”
김 부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살짝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 네. 방울형제가 부른 ‘흙장난’있죠.”
“…….”
“음반 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