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방송 시청(2)
“중요한 타이밍에 뭐야?”
TV에 내 얼굴이 나온 직후였다.
큰삼촌은 짜증 섞인 투로 말했지만, 누군가를 향해 한 말은 아니었다.
정말 TV에 내 얼굴이 나옴과 동시에, 핸드폰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명절 때 아니고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핸드폰 벨소리는 잘 들을 일이 없다.
두 분의 벨소리를 듣는 것도 좀 신기했는데.
할아버지의 벨소리가 아리아리 쓰리쓰리로 시작하는 ‘강원도 아리랑’.
할머니 벨소리가 ‘겁쟁이’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난 처음에 막냇삼촌 벨소리인 줄 알았다.
“엄마, 버즈 좋아해?”
막냇삼촌의 물음에 할머니는 민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좋아하면 안 되니?”
“아니, 뭐 안될 건 없는데…… 걔네가 나보다도 어릴 텐데…… 쩝.”
막냇삼촌은 기분이 이상한지 입맛을 다셨다.
김 부장만 종료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지도 않고 끊어 버렸고.
―네? 아 네…… 네 고맙습니다. 저 일단 끝나고 전화드릴게요. 네네.
나머지 가족들은 짧게 통화하고 끊었다.
“아니…… 평소에 연락도 없던 애가…… 덕후를 어떻게 알아보고.”
큰삼촌은 전화를 끊은 뒤 중얼거렸다.
“누군데?”
막냇삼촌의 물음에 대답했다.
“중학교 동창.”
“아~ 성식이 형? 그 형 덕후 돌잔치에 왔었잖아.”
“돌잔치에서 본 이후로 만난 적이 없는데, 덕후 얼굴을 기억한다고?”
“덕후가 흔한 이름은 아니니까.”
“그런가…….”
막냇삼촌도 웃으며 말했다.
“나도 방금 전 여자 친구한테 전화 온 거야.”
“덕후 때문에?”
“응.”
“걔는 어떻게 알고?”
“몰라, 사귈 때 얘기한 적이 있었나 봐. 기억이 안 나네.”
큰삼촌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하여간 신기하네. TV가 대단하긴 하구나. 어떻게 얼굴 나오자마자 난리냐? 하하.”
“그러니까. 그래서 TV 출연하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아지나?”
막냇삼촌이 키득거리며 대꾸했다.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쉿, 조용히 해. 더 얘기하려거든 나가서 해라.”
김 부장이 시선을 TV에 고정한 채,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 * *
[안녕하세요~ 꺾고 꺾고~ 또 꺾고. 여러분의 마음을 꺾고 흔들어서 마셔 버릴~ 캬!]
“…….”
[신화초등학교 1학년 김덕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러면서 화면 속의 나는 엉덩이를 흔들며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
하아~ 젠장, 숨고 싶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고.
“풉!”
삼촌들은 입을 막고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누나는…….
“에이~ 짜증 나!”
대놓고 싫어했다.
“덕후가 아주…… 열심히 했구나? 하하!”
결국 막냇삼촌이 한마디 하고는 깐족대며 내 멘트를 따라 했다.
“마음을 꺾고 꺾고 흔들어 마셔 버릴~ 캬! 푸하하!”
마음 같아선 한대 쥐어박고 싶다.
“이야~ 삼촌 소개팅 나갈 때 이거 좀 써먹어도 되냐?”
할머니가 내 굳은 표정을 보시고는 나섰다.
“얘야, 너무 그러지 마라. 아주 귀엽구만 뭘 그러니?”
그래도 자꾸 막냇삼촌이 장난치면서 떠들자, 김 부장이 한번 째려봤고.
그제야 막냇삼촌은 입을 다물었다.
[글은 3살 때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방송은 쭉 이어졌고. 가족들은 쥐 죽은 듯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TV에만 집중했다.
그러다가 정진이 인사하는 부분이 나왔는데, 그가 오랜만에 방송에 출연했다고 하자.
“그래~ 나도 쟤 안다. 작년에 나와서 엄청 잘하던데.”
아침마당놀이 애청자이신 할머니께서는 정진을 바로 알아보셨다.
[전 그냥 인스턴트 식품 같은 거였죠. 아니면 뭐 씹다 버리는…….]
“…….”
어린 나이에 방송 출연하여 유명해졌지만, 반짝 관심받고 이어 가질 못했다.
정진의 회의적인 인터뷰에 가족들 전체가 좀 숙연해졌다. 나라고 그러지 말란 법 없으니까.
특히 김 부장과 할머니의 표정이 굳어 보였다.
“꼬마 애가 대단하네. 그래도 떨쳐 내고 다시 방송에 나온 거 보면~ 의지가 있어! 성공할 놈이구만!”
센스 있는 큰삼촌이 긍정적인 말로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연 소개와 함께, 정진과의 만남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정진 형 때문에 제 여자 친구가 떠나갔습니다.]
흡!
이 대목에서 가족들은 일제히 날 바라봤다.
이게 뭔 개소리냐는 듯.
“야~ 니가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어디서 개뻥을!”
막냇삼촌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고.
할아버지도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덕후야, 사람이 진실되어야 한다. 그러면 안 돼.”
‘너 설마 여자 친구가 있었어?’
이런 반응은 전혀 없었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온 가족은 내가 뻥치는 걸로 받아들였다.
집→학교→음악.
이런 내 활동 패턴을 가족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자 친구는커녕, 친구들과 잘 놀지도 않았다.
“하아…… 씨. 편집될 줄 알았는데.”
편집이 되기는 했다. 저 얘기 나왔을 때의 MC의 일그러진 표정은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듣는 듯한 모습만 아주 잘 편집되어 나왔다.
[정진 군을 처음 봤을 때, 공격적으로 대한 건…….]
[네…… 저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게 한 남자니까요.]
“하아~ 젠장,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급기야 막냇삼촌은 자리를 떴다.
‘오글거려서 더 못 보겠네!’
밖으로 나가며 말하는 그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아…… 가족들과 함께 방송을 지켜보니 힘드네.
경험 부족이다. 다음부터는 방송 나올 때는 피해 있든지 해야지.
서로 민망하다. 나도 그렇지만 가족들 또한 어금니를 꽉 깨물고 TV를 지켜봤다.
이후에 잠을 안 자는 상태로 일주일을 버텼고, 산악 구보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행히 산악 구보를 할 때 배낭 무게를 40㎏까지 올렸다는 내용은 편집되어 있었다.
좀 전의 내 연애사 인터뷰 때문인지, 가족들은 안 믿는 눈치였지만.
어머니의 눈빛은 살짝 불안해져 있었다.
“덕후야, 이것도 과장해서 하는 말이지? 그렇지?”
“하하, 맞아요. 저렇게까지는 안 했어요. 염려 안 하셔도 돼요.”
“그래……? 다행이다.”
아…… 초조하다.
그냥 사연은 빨리 끝내고,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된 게 다른 출연자들보다 사연 내용이 훨씬 길게 잡혔다.
실제 녹화할 때는 다른 출연자들이 사연 임팩트도 더 컸었고, 길게 했었는데…….
너무 임팩트 있어서 편집을 많이 당한 건가?
근데 이런 내 마음과 다르게 사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저희는 여름 훈련 중에 김천 자두 포도 축제에 갔었습니다.]
헉! 아…… 안 돼.
이 부분에서는 도저히 함께 볼 자신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난 거실에서 나와서 화장실 쪽 벽 뒤로 가서 숨었다.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전 8살이었고, 집 밖을 그렇게 오래 나와 보는 건 처음이었어요. 축제라 그런지, 엄마 손 잡고 다니는 아이들이 많던데…… 부러움과 그리움을 견디기가 어려웠습니다.]
“흑…….”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최대한 소리를 안 내시려고 하는데, 가슴이 쓰리셨는지.
계속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셨다.
“애미야…….”
할아버지가 조용히 휴지를 건네었고.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그저 눈물만 닦아 냈다.
‘또르륵…….’
벽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 사연도 오버한 거였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진심이었다.
TV 속의 내 눈빛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히 박혀 있었다.
“하아…… 젠장.”
아무리 TV 방송이지만, 어머니께 이런 모습을 보여드린 게 너무 죄송했다.
차라리 김 부장 얘기를 할걸.
정진을 진짜 형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마치고, 어머니가 어느 정도 진정되셨을 때.
난 조용히 거실로 돌아왔다.
“아~ 갑자기 이 타이밍에 배가…… 하하!”
난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곧 공연이 시작되려 했다.
[자, 마지막 순서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들어 보죠!]
기다렸던 순간이 왔다.
내가 노래 부르는 걸 가족들이 어떻게 봐 줄지도 궁금했지만, 녹화된 영상을 보는 건 처음이라 나도 매우 궁금했다.
[방울형제가 부릅니다! 흙장난!]
무대가 바뀌려 하는데.
어머니가 날 부르셨다.
“덕후야.”
“네.”
“정진이라는 아이, 꼭 집에 한번 데리고 와라.”
“네?”
“엄마가 밥 한 끼 해 주고 싶구나. 고마워서.”
난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 * *
[빠바바밤~ 빠빠바바~ 빰!빰!]
전주 소리와 함께 무대의 나는 정진과 함께 토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엇쭈~! 아싸~!”
내가 춤을 추자, 큰삼촌은 흥이 나는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오~ 김덕후, 제법인데?”
막냇삼촌도 웃으며 흥미롭게 TV 속 내 모습을 지켜봤다.
[차~! 차~!]
박력 있게 구령을 붙으며.
나와 정진은 정말 에너제틱했다.
아이의 활력과 남자의 박력.
이 두 가지 합쳐진 기분이랄까.
TV를 통해서 3자의 입장에서 보니 좀 더 명확하게 보였다.
솔직히 동작이 잘 안 맞고,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꽤 봐 줄 만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데?’
나와 정진의 텐션이 너무 좋아서 보기만 해도 신이 났다. 절로 어깨가 들썩였다.
[가자아~!]
정진의 파트로 노래를 시작하고.
이어서 내 파트가 나왔다.
[엄마 말이 꼭 맞을지도 몰라]
[흙 보면 내 맘이 뜨겁게 달아올라!]
“오~!”
“대박~”
삼촌들은 내 노래에 즉각 반응했다.
“덕후야, 너 좀 한다?”
김 부장 닮아서 칭찬에는 인색한 누나도 웬일로 한마디 해 줬다.
“노래에 재능이 있다더니 진짜구만! 대박인데?!”
특히 큰삼촌은 완전히 흥분했다.
“아니, 그리고 이거 가사, 덕후가 썼다며?”
곡에 대해 얘기했던 것도 편집 없이 나왔었다.
“응, 맞아.”
“너, 천재 아니냐?”
이제 ‘천재’라는 말도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하다.
노래 부르는 내내 가족들은 신나하며 지켜봤고.
어머니도 활짝 웃으셨다.
“우리 아들~ 최고!”
김 부장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 또한 미세하게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삼촌들은 이 부분은 따라서 소리쳤다.
언제 가져왔는지 캔맥주를 부딪치며 내 노래를 즐겼다.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하하!”
나 또한 흥이 차올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족 앞이라 부끄럽고 뭐고 느낄 수도 없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삼촌들을 향해 외쳤다.
“아이 세이 흙! 유 세이 장난!”
좀 많이 흥분했다.
“흙!”
“…….”
‘장난’이라고 외쳐 줄 줄 알았는데, 삼촌들은 멀뚱히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당황한 듯 보였다.
난 센스를 발휘했다.
“내가 흙! 이라고 외치면 장난! 이라고 외쳐!”
“아~”
이제야 삼촌들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흙!”
“장난!”
“흙!
“장난!”
누나도 옆에서 소심하게 따라 외쳤고.
어르신들은 웃으며 이런 우리를 지켜봤다.
[우와아~ 흙장난! 흙장난!]
TV 속 방청객의 환호성이 우리 집 안을 뒤흔들었고.
우리 가족은 모두 완전히 흥이 올랐다.
근데, 노래 후반부부터 할아버지만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곡이 끝나자, 할아버지가 날 불렀다.
“덕후야.”
“네?”
“할아버지가 부탁 하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