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69화 (69/250)

69화. 방송 시청(1)

“뭔 소리 하나 했더니.”

터벅. 터벅.

성 피디와의 미팅을 마치고.

방송국 복도를 걸어가며, 정동희가 중얼거렸다.

“다 알고 있는 걸 얘기하고 있어?”

“…….”

“뭐 새로운 방송 제안이라도 하려나 했지.”

“에이~ 형! 이제 첫방 했어. 거기다가 아직 TV에도 안 나왔는데, 좀 오버다. 하하.”

정동희는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 하여간 니 덕분에 별일을 다 경험했다. 방송국이라는 곳이 사람 흥분시키는 힘이 있네.”

“하하. 그래? 옆에서 지켜만 보는데도?”

정동희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얀마, 지켜만 보다니? 그게 얼마나 긴장되는 줄 아냐? 형은 솔직히 리사이틀에서 피아노 연주했던 거 보다 뒤에서 지켜보는 게 더 떨리던데?”

“그래?”

“응. 무대에 너희를 세우기 위해서 함께 준비했잖아. 뭐랄까…… 너희가 무대에 서는 동안만큼은 내 분신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음…… 대략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방울형제가 무대에 대표로 섰을 뿐이지, 이 무대를 위해 가장 많은 준비와 고민을 한 사람은 정동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조그만 세트장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이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송출되는 거잖아. 엄청난 영향력.”

“…….”

“그걸 상상하면, 확실히 사람을 흥분시키는 무언가 있어.”

난 지금까지 준비했던 것들을 무대에서 실수 없이 성공해야만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정동희가 방금 말한 것들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꽤 큰일을 해냈구나 싶다.

“덕후야~!”

방송국 로비에서 정진과 신바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생각보다 오래 안 걸렸네?”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니까.”

“안 되지~ 회식해야지.”

지금 시각 저녁 9시 30분.

평소 같으면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다.

정진은 정동희를 향해 말했다.

“동희 형! 회식할 거죠? 이대로 못 가요~ 너무 배고파.”

“하하, 그냥 뭐 좀 먹고 가자고 하면 되지. 회식이 뭐야~ 하여간 요즘 애들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정동희는 신바람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간단하게 떡볶이 어떠세요? 애들 배고프긴 할 거 같아요.”

“그러시죠.”

“얏호!”

정진은 신나서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나는 개다리 춤…….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가자! 형이 쏜다!”

* * *

정동희를 따라서 JBS 정문을 막 지날 때쯤.

“저기…….”

나와 정진은 떡볶이 먹을 생각에 정신이 약간 나가 있었다.

이 나이 때만 해도, 떡볶이는 참 귀한 음식이었다. 어머니가 사 줘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까.

“우하하, 형~ 나 떡볶이 3인분 먹어도 돼? 순대도 먹어도 되지?”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어! 형이 다 사 줄 테니까. 먹다 남으면 싸 가도 돼!”

“이얏호!”

나와 정진은 손뼉을 맞추며 방방 뛰며 좋아했다.

“저기……!”

정문을 막 나설 때 보였던 한 여성분이 보였는데, 이상하게 가는 방향이 같다고 생각했었다.

“저기요.”

“저희 부르신 거예요?”

정동희가 나섰다.

그제야 여성분을 자세히 보았는데.

긴 머리를 한 갈래로 곱게 따서 허리 뒤에 찰랑거렸고.

하얀 얼굴에 살짝 광대가 올라가 있다. 강인한 듯하면서도 순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보통 체형에 젊어 보였는데, 그래도 아주머니 같았다.

아이를 낳은 여성 특유의 체형이었다.

현재 내게 여자는 어머니뿐이기 때문에, 아주머니 특징이 너무 잘 보인다.

“네…….”

우리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여성분을 바라봤다.

“누구신지…….”

정동희가 다시 말을 걸었다.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해야 하는데, 아주머니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뭐랄까…… 굉장히 수줍어하는 표정이다. 눈도 잘 못 마주치고, 땅만 보고 있었다.

“지연 엄마, 아, 아니.”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을 뱉었다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말했다.

“노해민이라고 해요.”

“아…… 네 정동희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지연 엄마의 눈빛은 살그머니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 눈빛에서…… 뜨거움? 열정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매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용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덕후야.”

“네, 네?!”

갑작스러운 다정한 부름에 난 살짝 당황하여 대답했다.

“오늘 무대 너무 잘 봤어.”

“…….”

“방청석에 있었거든.”

아…… 오늘 방청객 중 한 분이시구나.

“아, 네 고맙습니다.”

난 활짝 웃으며 대답했고.

그러자, 지연 엄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머…….”

그녀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려는 듯 손부채질을 했다.

“이제 됐어. 어서 가 보렴. 실례했습니다.”

지연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뭐야? 그러니까…… 나 만나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녹화 끝난 지 1시간이 다 되었는데?

“아줌마!”

뒤돌아가는 지연 엄마를 향해 난 달려가서, 손을 잡았다.

덥썩.

“오늘 무대 봐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히히.”

난 이빨을 활짝 드러내며 개구쟁이 처럼 웃었고.

지연 엄마는 얼굴이 환해졌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실 거죠? 저 앞으로도 계속 노래 부를 거거든요.”

지연 엄마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대답했다.

“그럼! 당연하지. 나…… 덕후 팬됐거든. 첫눈에……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어.”

지연 엄마는 이제야 용기가 생긴 듯했다.

그리고…… 기분 탓인가?

환하게 웃고 있는데,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혀 있는 것 같다.

“전화번호 알려 주실래요?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또 무대에 서는 날 꼭 연락드릴게요.”

팬이라는데. 내 생애 첫 팬이라는데, 너무 고마웠다.

“응. 016―.”

“아, 잠깐만요. 동희 형!”

난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정동희를 불렀다.

“어, 덕후야.”

“아주머니 핸드폰 번호 좀 저장해줘.”

“으응?”

정동희는 내가 부르니까, 일단 가까이 다가왔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 팬이시래.”

“응? 아~ 아~~”

이 말에 정동희는 활짝 웃었다.

“하하! 고맙습니다. 번호 불러 주세요.”

“호호. 네, 016―4X…….”

정동희는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한 후 물었다.

“성함이?”

“노해민인데…… 에이~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냥 지연 엄마라고 해 주세요.”

지연 엄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정동희는 번호를 저장하며 물었다.

“아, 딸이 있으신가 봐요?”

“호호, 네. 이제 10살이에요.”

헛…… 딸이 나보다 누나네?

와…… 근데 젊어 보이는데, 아무리 많이 봐도 삼십 대 초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결혼을 일찍 하셨나 봐요?”

정동희도 나이를 물어보기는 좀 그랬는지, 이렇게 돌려서 물었다.

“네, 많이 일찍 했죠. 이십 대 때는 애 키운 기억밖에 없으니까.”

정동희는 웃으며 물었다.

“근데 덕후 팬이 돼요?”

애만 키웠으면 애는 질릴 만하지 않냐는 의미였다.

“그러니까요~ 저도 참 신기하네요. 근데 난 왜 덕후가 애처럼 안 느껴질까?”

지연 엄마는 진귀한 보석을 보듯이 약간 거리를 두고 날 바라봤다.

“흠, 시간이 좀 늦어서요.”

정동희는 이제 자리를 정리하려 했다.

“아 네.”

“그럼 다음에 덕후 공연할 때 연락드릴게요. 앞으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는 환하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내게…….

1호 팬이 생긴 것 같다.

* * *

녹화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평소처럼 똑같이 학교를 다니고, 집에 오면 혼자 기타 연습을 하거나 친구들과 놀러 나간다.

내 삶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노래 연습을 하며, 정신없이 지냈던 10일.

성 피디에게 들은 게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하고 있었는데, 녹화가 끝나고 아무런 연락도 없다.

신바람은 연락 두절이고, 정진도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정동희도 녹화 날 이후 전혀 소식이 없다.

녹화를 준비하던 10일간 학과 일정을 너무 방치했기 때문에, 바쁠 거라는 얘기는 들었었다.

그냥 녹화 끝나니 다 굿바이 한 것 같다.

열정과 두근거림이 솟구치던 10일이 지나고, 이 지루할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

그리고 연습할 때는 계속 밖에 있다가 늦게 들어오니까. 김 부장 얼굴 자주 안 봐서 좋았는데.

“연습 잘하고 있냐?”

“뭐…… 그럭저럭.”

김 부장도 평소에 필요한 말만 하고, 얘기를 안 하는데.

오늘 웬일로 말을 건다.

“공부도 잘하고 있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야 뭐…… 공부랄 것도 없지.”

저녁 7시 30분.

삼촌들은 저녁 약속이 있는지 아직 안 들어왔고.

어머니는 마실 나가시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방에 계신다.

누나는 모르겠는데…… 어디 놀러 나갔나 보지.

어쩌다 보니, 김 부장과 단둘이 거실에 있었다.

“계속 있을 거야?”

난 김 부장과 둘이 있는 게 불편해서 물었다.

계속 거실에 있겠다고 하면, 난 방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방송이 내일이지?”

내가 묻는 말에는 대꾸 안 하고 김 부장이 말했다.

“그럴걸?”

내일이 방송 날이다.

그냥 TV에 내 얼굴이 어떻게 나올까 좀 궁금하지만, 무대에 설 때처럼 긴장되거나 하진 않았다.

“덕후야.”

김 부장은 묵직한 목소리로 날 불렀다.

“내가 왜 너 방송 출연을 허락했는지 알고 있니?”

“…….”

“넌 다르다고 해서 그런 거야. 다른 애들과는 다르다고, 흔들리지 않을 거라고 해서.”

김 부장은 위압감 느껴지는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일부터 너의 천지가 개벽할 거다. 네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주변이 달라질 거야.”

꿀꺽.

너무 무섭게 말해서,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정신 꽉 붙잡아야 한다. 이건 충고이자 경고니까. 명심해.”

“…….”

“난 널 지켜볼 거니까.”

김 부장이 말이 끝나고 난 피식 웃었다.

“거참 말 무섭게 하네. 아들을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

“아빠야말로 오버 좀 하지 마. 겨우 아침 방송 가지고 뭘…….”

* * *

다음 날 토요일 아침.

아침마당놀이 방영 시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우리 가족 모두 TV 앞에 모였다.

내가 출연한 걸 보겠다며, 평소에 토요일 아침부터 데이트하러 나가던 큰삼촌도 자리를 지켰다.

“이건 봐야지! 덕후가 TV에 나오는데!”

첫 번째 출연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덕후는 언제 나오냐?”

막냇삼촌의 물음에 대답했다.

“마지막. 다섯 번째야.”

“에이…… 그럼 끝까지 봐야겠네.”

우리 가족은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시청했고, 네 번째 출연자가 나올 때쯤.

“오늘 아침마당놀이 출연자들이 왜 이러냐?”

아침마당놀이를 간혹 보시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니 무슨 사연들이…… 그나마 네 번째 출연자가 정상적이네.”

“…….”

편집본만 보는 시청자들은 모를 것이다.

저 사제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걸.

……나도 굳이 얘기하진 않았다.

[보고~~ 싶다아~~]

큰삼촌이 엄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와~ 잘 부르네. 지금까지는 ‘핫한 형제’팀? 여기가 제일 잘했네. 여기가 우승했다고 했지?”

난 결과를 가족들에게는 얘기해 주었다.

“우승할 만하네. 잘하네.”

[네~ 마지막 참가자입니다!]

흡!

이 말에 순간 심장이 쫄깃해졌고. 가족들의 표정도 굳어졌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방울형제 팀입니다! 정진 군! 김덕후 군! 나와 주세요~!]

우와아~!

TV에 내 얼굴이 나오자, 우리 가족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근데, 그때…….

위이잉―! 위이잉―!

띠로리로리! 띠로리로리!

아리아리~ 쓰리쓰리~

겁쟁이랍니다아~

살다가~ 살다가~

띵도리동동! 띵도리동동!

전 가족 핸드폰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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