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보여 주다(2)
놀이터에서 오늘을 날려 버리게 싸아~
방울형제의 마지막 춤사위를 정신 놓고 바라보고 있는 방청객들.
빠바밤!
드디어, 노래는 끝났다.
방울형제는 환한 미소와 함께 큰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꿀꺽.
방청객들은 잠깐의 순간.
박수 치는 것도 잊고, 침을 꼴깍 삼켰다.
뭔가…… 역사를 본 것 같았다.
엄청난 역사의 시작.
방청객들이 전문가는 아니지만, 방울형제의 공연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지금 역사적인, 대단한 걸 현장에서 목격한 것 같다는.
와아아―!
두 아이가 인사를 끝내고, 손을 흔들 때쯤에야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방청객의 대부분은 4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었지만.
그중 어울리지 않게 30대 초반의 젊은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녀가 소속된 산악회에서 단체 방청권을 받았다며, 회원으로서 자리를 채워 달라고 하여 온 것이다.
콩닥. 콩닥.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하. 지연 엄마야! 저 꼬마 애들 쥑이네!”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경상도 사투리로 걸쭉하게 말했다.
“…….”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연 엄마는 뭐라 대꾸할 정신도 없었다.
“와 이라노? 어디 아파?”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지연 엄마.
어디 아픈 건 아니었다.
‘이 감정, 뭐지? 뭔가 막혀 있던 피가 도는 기분이야.’
지연 엄마의 시선은 김덕후에게 고정되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괜찮나? 지연 엄마야.”
“괜찮아요.”
심호흡을 천천히 하고 말했다.
“와 그러는데?”
지연 엄마는 이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다른 걸 물었다.
“언니, 아침마당놀이 처음 온 거 아니라고 했죠?”
“응? 맞다. 몇 번 왔었지. 아 아빠가 방송국에서 일하니까.”
"그럼 방송국에 아는 사람 있어요?”
“있지.”
“그럼 저…… 저기 핑크색 옷 입은 꼬마 애 한번 만날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돼요?”
“…….”
지연 엄마의 말에 아줌마는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니가 왠일이고? 평소 말도 잘 안 하는 애가 내한테 이런 부탁을 다 하고.”
지연 엄마의 눈빛은 제대로 덕통사고를 당한 듯했다.
수줍음이고 뭣이고,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는 강한 일념만 눈빛에 가득했다.
“언니, 가능해요?”
아줌마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그건 어렵다~ 아무리 관계자를 알아도 출연자를 만나게 해 주는 건 힘들다~”
“…….”
이 말에 지연 엄마는 입술을 깨물었다.
‘안 돼. 어떻게 해서든 꼭 봐야 할 거 같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모르잖아!’
“그럼 출연진이 나가는 길은 아세요?”
방울형제는 노래를 끝낸 후 패널 자리에 앉았고, 다음 진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연 엄마는 여전히 김덕후에게서 눈을 고정한 채 말했다.
“지연 엄마야. 그래도 말할 때는 상대방 눈도 좀 마주치고 해야 안겄나.”
“언니, 나 급해요!”
그녀의 눈과 귀는 김덕후의 하나라도 놓칠까 봐 집중하고 있었다. 준비 시간이 끝나기 전에 정보를 얻어야 했다.
“알았다~ 신경질은! 나가는 길은 알지~ 와? 거서 기다리게?”
아줌마는 이제야 지연 엄마의 눈빛을 읽은 것이다. 한 아이에게 꽂혀 있다는 걸.
“다행이다. 좀 알려 주세요.”
“와~ 쟤가 좋나? 하긴 많이 귀엽구만. 저런 아들 있으면 안 좋겄나.”
아줌마는 흐뭇한 얼굴로 말했지만, 지연 엄마는 30년 인생 중 가장 진지한 순간이었다.
“귀여운 게 아니라, 멋있거든요?”
* * *
“얘들아, 물 좀 마셔.”
남자 MC는 정진과 내게 물통을 건네주었다.
무대를 끝마치고, 우리는 패널 자리에 앉았다.
이제 공연에 대한 심사평을 들으며 얘기를 나눈다.
그리고 공연 얘기가 끝나면, 우리가 마지막 순서이기 때문에 곧바로 결과 발표를 듣게 될 것이다.
“고맙습니다.”
난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어머~ 물 마시는 것도 귀여워.
―꼬마 애가 어쩜 이리 멋져 보일까?
노래 끝난 지 5분여가 지났지만, 방청석은 여전히 술렁이고 있었다.
몇몇 극성스러운 아주머니들은 눈 한번 마주칠 때마다 양손을 흔들고 난리였다.
“너희들 정말 잘한다.”
남자 MC의 말에 여자 MC도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요. 준비를 정말 많이 했나 봐? 그치?”
정진이 멋쩍은 미소로 답했다.
“경연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여름방학 내내 지방에서 훈련했었다고요. 방송 경험이 없을 뿐이지, 무대는 많이 서 봤어요.”
“그럼…… 그 말이 진짜였던 거야?”
남자 MC의 말에 우리는 둘 다 웃었다. 아마도 여름방학 내내 지방을 돌며 훈련했다는 것도 믿지 않았던 모양이다.
“눈으로 보셨잖아요? 천재도 첫 무대를 이렇게 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정진은 날 향해 찡긋하고는 웃었다. 아마 날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정진은 날 천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내가 첫 무대에 울렁증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무사히 잘 끝내긴 했지만.
“호호. 이제 그만 물어보죠. 방송해야죠.”
여자 MC의 말에 남자 MC는 웃으며 답했다.
“하하, 그래. 궁금한 건 녹화할 때 얘기해야지. 둘 다 준비되면 얘기해라.”
정진은 내게 물었다.
“덕후야, 괜찮아? 다 쉬었어?”
“응, 괜찮아.”
이제 찼던 숨이 괜찮아졌다.
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저희 준비됐습니다.”
남자 MC는 스태프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네~ 우리 방울형제 팀. 땀 좀 식히셨어요?”
정진이 대답했다.
“하하. 네.”
“정말 엄청난 무대를 보여 주셨는데, 솔직히 깜짝 놀랐습니다. 에너지가 정말 대단하네요.”
“네, 뭐. MC님도 제 나이 때 이러지 않으셨을까요? 하하.”
“…….”
정진은 이제 완전히 긴장이 풀렸는지, 이빨을 털기 시작했다.
“흠! 특히 자작곡이라고 해서 좀 더 유심히 들었거든요. 곡이 중독성 있고 괜찮지만, 무엇보다도 가사가 곡에 아주 찰떡이더라고요? 나름 내용도 있고, 두 사람 나이대에 어울리기도 하고요.”
“말만 그러지 마시고, 나중에 앨범 나오면 꼭 구매 부탁드립니다. 하하.”
정진의 농담이 나쁘진 않은데, 상황에 뭔가 안 어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정진이 자꾸 입방정을 떨려 하자, 남자 MC는 인터뷰를 짧게 하고 심사 위원에게 공을 넘겼다.
무대 중앙 MC석을 기준으로, 왼쪽은 참가자들 자리, 오른쪽은 심사 위원 자리다.
“심사 위원님들 이야기 들어 보겠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가운뎃머리가 없는 할어버지가 안경을 고쳐 썼다.
“허허, 아이들이 제법이네요. 우선 저는 곡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옆에 계신 분들이 전문가시니까요.”
“…….”
“전형적인 후크송 전개인데. 멜로디라인도 괜찮습니다. 다만…… 흠. 시청자분들이 듣기 쉽게 설명드리자면요. 곡의 기승전결이 부족합니다.”
이말에 MC는 고개를 끄덕였다.
“승과 결이 빠져 있죠. 곡에 기와 전만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게 도입부와 후렴 부분밖에 없어요. 물론 후크송이라는 게 그렇긴 하지만, 흐름이 어색합니다. 그리고 가사는요.”
교수는 날 힐끗 바라봤다.
“8살 아이가 쓴 것을 감안하면, 흠 잡을 데 없습니다. 방울형제 팀, 수고 많으셨습니다.”
짝짝짝.
약간 혹평 섞인 호평이긴 한데.
근데 이전 출연자들 생각해 봤을 때는 혹평에 가까웠다.
‘아침마당놀이’에서의 심사평은 대부분 좋은 얘기만 해준다. 사연을 가지고 온 아마추어 출연자들이기 때문에.
“우리 평론가님은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음악 평론가는 표정이 좀 떨떠름해 보였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자꾸 우리 눈치를 보더니.
“방울형제 팀?”
“네.”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요? 혹시나 상처받을까 봐.”
“…….”
이 말로 이미 상처받았다.
상처받을 거 같으면 그냥 말을 말든가. 아니면 암말 말고 대놓고 물어보든가.
정진이 당당하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래야 저희가 배우니까요.”
남자 MC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살살해 주시죠. 아이들이니까요.”
“흠…….”
평론가는 잠시 생각을 하고는 짧게 말했다.
“일회성으로 쓰기에는 괜찮은 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괜찮다’는 표현이 들어가긴 했지만, ‘일회성’이라는 단어가 더 꽂히게 들렸다.
대놓고 뭐라 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데.
“아…… 아, 네. 그렇군요. 두 아이의 무대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나이에 비해 수준이 있는 무대였습니다. 10살, 8살이 이 정도 하면 잘했다고 해야죠. 어른들에게 용돈 잘 탈 거 같습니다.”
“음…… 심사평의 기준이 저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데요? 가수로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장기자랑이 아니라 방울형제는 가수 팀으로서 무대에 나온 거거든요~”
“그에 대해선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앞서 드린 말씀에 제 평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심하게 말씀 못 드리겠네요. 아이들이잖아요.”
이건 뭐지.
대놓고 혹평하는 거 보다 더 기분 나쁘다.
음악 평론가에게는 우리 무대가 뭔가 안 좋게 느껴졌나보다.
공연 중에 심사 위원들 쪽으로 가서 엉덩이 몇 번 팅겼는데.
이 음악 평론가만 똥 씹은 표정이었다.
뭐…… 각자의 기준이 있는 거니까.
난 그러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아오, 젠장. 기분 더럽게 나쁘네.”
정진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음악 평론가의 말투가 기분이 나빴는지, 옆에서 연신 투덜댔다.
남자 MC는 정진의 투덜거림이 들렸는지, 재빨리 마지막 심사 위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자, 마지막으로 가수이신 전광석 님께 평 들어 보겠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전광석. 90년대 최고의 댄스 가수. 지금은 거의 활동을 안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알 만한 레전드 댄스 가수다.
그는 거침없이 말을 시작했다.
“참 묘하다~ 생각하면서 봤어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가사는 그럭저럭 들을 만했는데, 곡은 좀 엉성했고요. 평론가님 말씀대로 가수로서 평가를 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광석은 방청객을 향해 양손을 뻗으며 말했다.
“모두 즐기시지 않았어요?”
―네~!
방청객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우렁찬 대답에 깜짝 놀랐다.
“음악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음악의 원천이 사람의 흥에서 비롯된 게 아니겠습니까?”
두 MC는 전광석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방울형제 팀이 충분히 뭔가를 보여 줬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는 관객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여러분이 보여 주신 반응이 방울형제에 대한 제 평가의 기준이 될 겁니다.”
짝짝짝!
전광석의 말에 방청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나와 정진은 그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렇게 어설프고 짜임새 없는 우리 공연을 그렇게 평해 줘서 너무 고마웠다.
“자~ 그럼 심사평은 이걸로 마치고요.”
남자 MC는 방청객을 향해 누르는 포즈를 취하며 물었다.
“모두 투표는 하셨나요? 곧 마감됩니다!”
경연 결과는 심사 위원의 평가와 방청객 투표로 결정된다.
“자~ 이제 마감합니다.”
잠시 후, 스태프가 결과지를 MC에게 전달했다.
“아~ 오늘 아침마당놀이 역사상 기록에 남을 회차가 될 것 같은데요.”
“호호! 네, 오늘 출연자들 개성이 다 하나같이 독특하고, 무대도 너무 좋았습니다.”
“네, 제가 방금 수상자 명단을 받았는데요!”
난 정진의 손을 꼭 잡았다.
최선을 다했고, 재밌었다.
후회는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결과가 좋으면 더 좋겠다.
남자 MC는 봉투에서 수상 명단을 꺼내었고.
“제456회 아침마당놀이! 우승 후보 두 팀!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호명되는 두 팀은 앞으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두구. 두구. 두구. 두구.
사람 긴장시키는 북소리.
이런 건 왜 하는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떨려 죽겠는데.
“먼저 호명된 팀은~!”
두구. 두구. 두구.
“참가 번호! 4번! 핫한 형제 팀! 축하드립니다!”
이얏호!
‘보고 싶다’를 불렀던 성악 사제. 두 사람은 기뻐서 와락 끌어안았다.
박수를 치며 그 두 사람을 보다가, 난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체까지 밀착해서…… 그렇게 꼭 끌어안을 필요는 없잖아.
“흠! 축하드립니다! 이걸로 핫한 형제 팀은 준우승 확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두구. 두구. 두구.
다시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남은 출연자들은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다렸다.
“다음 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