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66화 (66/250)

66화. 보여 주다(1)

“와…….”

내 마지막 말이 끝나자, 남자 MC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감탄했다.

“오늘 처음이네요, 사연 듣고 훈훈한 미소가 지어진 건. 오늘 정말 사연들이 너무 강렬했거든요. 꼬여 버린 연애사, 살인의 추억, 족보 꼬인 형제 사이, 야릇한 사제…….”

“어머, 호호. 마지막은 좀…….”

“어이쿠!”

남자 MC는 카메라를 향해 가위질을 하고는 말했다.

“방울형제가 앞선 사연들이 너무 강하니까, 사연 처음 소개할 때 좀 무리수를 둔 것 같은데. 하하.”

“…….”

우리는 긍정도 부정도 못 하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마지막에 진실된 얘기를 해 줘서 너무 고마워요. 지금 방청객들 보세요. 행복해 보이죠?”

확실히 방청객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 우리 사연에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진실 게임을 하는 듯한 의구심이 섞여 있었는데.

이제 우리를 응원하는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어떠한 노래를 불러도 성심껏 다 들어 줄 것만 같았다.

마음이 활짝 열린 것이다.

“네, 보입니다.”

정진은 약간 기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의 전략적 실수가 있었지만, 이건 정진도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아주 인간적이었던 것뿐이다.

앞선 출연자들의 저세상 사연을 듣고 있다 보니 부풀리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지 않겠는가.

“하하. 네. 자~ 그럼 준비한 노래를 들을 차례인데!”

두근!

두근! 두근!

갑자기 심장이 방망치질을 친다.

그래, 노래 불러야 하지.

이게 본 게임이지.

“휴우―!”

난 크게 심호흡을 했고.

정진 또한 눈을 감고,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남자 MC는 그런 우리를 보고 살며시 웃으며 물었다.

“오늘 부를 곡은 뭔가요?”

방울형제의 리더이신 정진 형님께서 대답하셨다.

“흙장난이라는 곡입니다.”

“오~ 흙장난이요? 제목이 재밌네요. 어느 가수 곡입니까?”

정진은 긴장감 때문인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 곡입니다.”

“네. 네?!”

“아, 아니, 그게!”

정진은 고개를 돌리고 중얼거렸다.

“아 씨, 나 왜 이러지? 무대 앞두고 긴장 안 하는데.”

“형, 아침마당놀이라서 그런가 봐.”

아침마당놀이에서의 공연. 정진에게는 리벤지 매치와 다름없다.

그에게 단순히 공연으로서만의 의미가 아니다.

“…….”

“좀 진정하고 있어. 얘기는 내가 할게.”

난 마이크를 들고, 남자 MC질문에 대답했다.

“정진 형이 말한 대로입니다. 저희 곡입니다. 자작곡이거든요.”

“자작곡이요?!”

남자 MC는 놀라서 되물었다.

“아니, 둘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정말?!”

좀 전의 뻥튀기 사연 영향 덕분일까. 남자 MC는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이니까.

“저희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께서 곡을 써 주셨고, 작사는 제가 했습니다.”

“덕후 군이…… 작사를요?”

의구심 가득한 눈길.

날 위아래로 흝었다.

그래, 나 8살이다. 어쩌라고?

가사 쓰면 안 돼?

난 도리어 가슴을 내밀고 당당하게 섰다.

“믿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겠죠?”

남자 MC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고, 여자 MC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에요, 덕후가 가사 썼어요.”

멘붕에 빠져 있던 정진이 입을 열었다.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 선생님, 함께 준비한 정동희 형도 다 봤어요. 저희가 있는 자리에서 썼으니까요. 덕후가 원래 좀 특별해요.”

정진은 아주 정색하고 말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말투에 남자 MC의 눈빛이 좀 누그러졌다.

“그래요? 그럼 곡 설명 좀 해 줄래요? 아무래도 자작곡이라고 하니 궁금하네요.”

정진이 덜덜 떠는 손으로 마이크를 들고 입 앞으로 가져가려던 걸 말리고 내가 말했다.

“네오 트롯의 후크송이고요, 박자는 4분의 4박자 전통 트롯을 따랐습니다. 이 곡의 필살기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인데요, 아마 들어 보시면 절로 어깨가 들썩여지실 겁니다.”

“아~ 네, 덕후 군은 참 말을 잘하네요.”

“감사합니다.”

내 곡 소개가 흥미로웠는지, 남자 MC는 질문을 이어 갔다.

“가사는 덕후 군이 직접 썼다고 했죠? 가사 내용이 뭔가요?”

“제목이 흙장난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의 건강을 위해 세균 조심하라며 흙장난을 말리시지만. 아이는 놀이터만 보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

“전부를 놀이터에 던지고 싶은 겁니다. 아, 이 부분은 가사에도 나옵니다. 그래서 길도 만들고, 동굴도 만드는 흙장난이 시작됩니다.”

하하하!

내 말이 끝나자, 방척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아주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MC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요? 가사에 아주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리고 우리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마지막 순서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네요. 오래 기다리셨죠? 이제 들어 보죠!”

후우― 후우―

심호흡을 했다.

스튜디오 전체 조명이 점점 어두워졌다.

“방울형제가 부릅니다, 흙장난!”

암전.

정진과 나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우리는 손을 꼭 잡았고.

뒤에서 남자 MC가 작게 소리쳤다.

“얘들아! 화이팅이다!”

두구 두. 두구 두. 두구 두.

말발굽 전주와 함께.

팟!

동그란 무대 안에 조명이 켜졌다!

* * *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조명이 어지러이 무대를 비추고.

빠바바밤~ 빠빠바바~ 빰!빰!

경쾌한 색소폰 소리.

무대 위에 하얀색 정장과 핑크색 정장을 입은 두 아이가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변형된 토끼 춤이었다.

‘산토끼’ 동요에 어울릴 것 같은 사뿐한 스텝을 정장을 입은 두 아이가 신나게 밟고 있었다.

칼군무는 아니었지만, 보기에 흥겨웠다.

“차~! 차~!”

옆에서 정진은 큰 소리로 구령을 붙였다.

젊다 못해 새파랗게 어린 패기와 박력을 보이기 위해, 구령은 소리 높여 맞추기로 했다.

김덕후는 그 구령에 맞춰서 발끝을 쭉쭉 뻗으면서 고개를 반대 방향으로 젖혔다.

전주가 끝나갈 무렵.

“가자아~!”

두 아이는 다리를 X자로 교차했다가 뱅그르 돌며 정진이 스탠드 마이크를 모가지 비틀 듯 채었다.

일부러 스탠드 마이크 옆에 서서, 옆으로 비스듬하게 눕히고는 섹시한 눈빛과 함께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세균 조심하라고

빠바바 밤!

병균은 마치 흙장난 같아서

아프니까 싸~

이번엔 김덕후 차례.

김덕후는 재킷 단추를 푼 후, 박력 있게 펼치며 벨트 브랜드를 보여 주었다.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선 김덕후.

특유의 높고 청아한 목소리가 허공을 찔렀다.

엄마 말이 꼭 맞을지도 몰라

흙 보면 내 맘이 뜨겁게 달아올라!

두구 두구 빠바바 밤!

두려움보단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싸~

두 사람은 바에서 마이크를 분리한 후, 미끄러지듯 무대 앞쪽으로 갔다.

연체동물처럼 부드럽게 웨이브를 치며, 정진의 파트가 들어갔다.

멈출 수 없는 이 떨림은

오우 오우 야.

내 전부를 놀이터에

다 던지고 싶어!

정진 파트가 끝난 후.

김덕후는 마이크를 강하게 휘어잡았다.

클라이맥스를 예고하는 강렬한 전주.

빠바바박 빠박 빠바밤!

김덕후는 마이크를 들지 않은 반대쪽 손을 하늘로 쭉 뻗고는 목을 긁는 소리를 내었다.

기다려 기다려 NOW

이렇게 날 애태우고 있잖아

이따 만나

놀이 시작은 흙장난!

김덕후의 파트가 끝남과 동시에 두 아이는 기합을 빡 주었다.

“호우!”

두구 두. 두구 두. 두구 두.

후렴의 시작을 알리는 말발굽 전주.

빠바밤밤 빠바밤밤 빠앙~ 빠앙~

테크노 전주와 함께, 단순한 음계로 이루어진 후렴이 시작됐다.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마치 마트의 판매원이 스피커 확성기 잡고 말하는 것처럼.

후렴 부분에서 두 아이는 꼿꼿이 서서 아무런 움직임 없이 목소리만 냈다.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사람 소리인지 기계 소리인지.

미동도 없이 읆조리는 두 아이.

하지만 후렴은 두 번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정진은 마이크를 방청석으로 향하게 한 뒤 소리쳤다.

“다 함께요!”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이제 노래 끝날 때까지 후렴만 반복된다.

두 아이는 부동자세를 풀고, 헤드뱅잉을 하기 시작했다.

빠바밤밤 빠바밤밤 빠앙 빠앙

* * *

“미친 거 같아.”

―흙장난! 흙장난!

후렴 다섯 번째 들어갈 때쯤, 방청객은 이제 ‘흙장난’을 따라서 소리치고 있었다.

무대 앞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성 피디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쟤네, 진짜 방송 출연 처음이 맞어? 거기다 애들이잖아?”

옆에 두 아이를 섭외한 김 작가가 있었고, 잠자코 성 피디의 말을 들었다.

“어째 리허설 때보다 더 잘하는 거 같은데?”

“엄밀히 말하면 정진은 처음은 아니죠.”

“쟤 방송 겨우 한 번 나와 본 거잖아. 그것도 1년도 훨씬 더 전에.”

“…….”

성 피디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충격 그 자체였다.

“그리고 말이야, 저 꼬마 애.”

성 피디의 손가락이 김덕후를 가리켰다.

“김덕후 말씀이십니까?”

“어, 그래. 덕후라고 했었지?”

성 피디의 눈길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쟤, 뭐 하는 애야?”

“그냥 초등학교 1학년입니다.”

“아니…… 3살 때부터 글 읽었다는 것도 그렇고 지금 노래 가사도 저 애가 썼다며?”

“…….”

“혹시 집안이 좀 특출한가? 아무런 연고도 없이 저런 애가 나올 수가 없는데. 영재나 수재도 다 이유가 있더라고. 그냥 나오는 게 아니야.”

성 피디는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방송가에서 수백 명의 배우와 가수. 재능 넘치는 유망주들을 만나 봤다.

하지만 아무리 눈썰미가 좋은 성 피디라고 해도.

이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김덕후가 2회차라는 사실.

“글쎄요…… 저도 집안에 대해서는 잘…….”

김 작가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아~!”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급히 말했다.

“그러고 보니 덕후 친척 형이 서울대 음대생이더라고요. 피아노 전공이라고 하던데.”

“그래? 호오…….”

성 피디니는 잠시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녹화 끝나고 덕후랑 친척 형 좀 잠깐 보자고 해줘.”

“네? 방울형제가 아니라요?”

“다시 얘기해 줘야 해? 못 들었어?”

성 피디는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그는 같은 말 두 번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

그걸 잘 아는 김 작가는 식겁한 표정으로 바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 * *

출연자 대기실.

모든 출연자들은 무대에 나가 있고.

텅 빈 출연자 대기실 안에는 정동희와 신바람만 있었다.

이런 날 멈추지 말아 줘요.

놀이터에서 오늘을 날려 버리게 아싸~

‘흙장난’의 마지막 파트.

수도 없이 반복되는 후렴이 끝나고, 이 가사로 마무리했다.

빰바바바라 빰빠바라라 바바밤!

마지막 전주와 함께 토끼 춤으로 무대를 불살라 버리는 두 아이.

무대를 신나게 휘젓고 있었다.

신바람은 넋을 놓고 화면을 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팀 결성 잘한 거 같아.”

“그러게요, 둘이 정말 찰떡이네요.”

정동희는 활짝 웃으며 신바람의 말에 대꾸했다.

신바람은 어느덧 무대 전체보다 한 아이의 얼굴과 몸짓에 집중하고 있었다.

“흠…….”

가운데 가르마의 머리를 찰랑이며.

얼굴 전체에서 찬란한 빛을 쏟아 내고 있는 아이.

풋풋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원숙해 보이는 느낌.

보면 볼수록 신기한 아이였다.

“덕후야, 혼자 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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