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63화 (63/250)

63화. 생애 첫 리허설(3)

미칠 듯 사랑했던~~

워~~우 워어~~

엄청난 성량이었다.

카메라리허설에는 당연히 마이크를 대고 부르는데.

마이크가 없더라도 웬만한 참가자들 목소리보다 클 것 같다.

스피커가 이 소리를 버틸 수 있을지 염려스러울 정도…….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우~ 우~ 우우~~

두 남자가 거의 전 부분을 화음 맞춰서 부르는데.

한 사람은 멜로디 위주로 가고, 한 사람은 ‘워~’ 혹은 ‘우~’로 화음을 넣었다.

목소리 자체가 악기가 되어, 아주 풍성하게 들렸다.

무대가 꽉 찬 느낌.

춤추며 무대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하트 날리는 그런 잔기술이 필요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서 노래 부르는 것만으로도 모든 걸 압살해 버렸다.

“대단하다 진짜…….”

정진은 멍하니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형. 준프로들 나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분들은 좀 반칙이잖아.”

우우~~ 보~~ 고~ 싶다아~~!

원곡의 마지막 부분은 ‘고~’에서 고음을 치고, ‘다아~’ 부분에서 내려가는 건데.

이분들은 달랐다. 오페라 마지막 부분 클라이맥스 끝내는 것처럼.

‘다아~’를 길게 뽑아내면서 하늘 끝까지 소리를 뽑아내었다.

굵직한 고음에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 같다.

―휘이익―!

―잘했다~ 부라보~!

엄청난 실력에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보냈고.

무대 뒤에서 보고 있던, 리허설이 끝난 다른 가수들도 박수갈채를 보냈다.

―와~ 진짜 잘하네.

―이분들이 우승하겠는데?

모두 한마디씩 하면서 중얼거렸는데, 그중에 가장 신경 쓰이는 말은 아무래도…….

―저분들보다 무대 먼저 서서 다행이다.

꿀꺽.

젠장, 이런 무대 다음에 하라고?

“참가번호 5번. 마지막 순서. 방울형제! 스탠바이~!”

“하아~ 미치겠네.”

평소 긴장을 잘 안 하는 정진도 지금은 좀 달랐다.

아무래도 방금 끝낸 성악 아저씨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덕후야! 괜찮아! 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마! 유후!”

“…….”

본인한테 하는 말 같은데, 왜 내 이름을 부르는지 모르겠다.

성악 아저씨들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내려갔고.

“방울형제! 무대로 올라오세요!”

두근. 두근.

본무대도 아닌데…….

긴장된다.

* * *

후우―

무대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나마 아까 두 번의 드라이리허설을 해 봐서일까. 무대 자체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은 앞에 카메라가 수십 대와 수많은 스태프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으며.

화려한 조명도 감싸고 있었다.

“준비됐니?”

앞에 한 스태프가 우리를 향해 물었고, 정진은 날 한번 체크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스태프는 허공을 향해, 크게 손짓을 했다. 곧바로

두구 두. 두구 두. 두구 두.

‘흙장난’ 특유의 전주. 말발굽 소리가 시작됐다.

우리는 반주에 맞춰 다리를 털면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덕후야, 이거 연습이야. 알지?”

“응, 알지. 카메라 시선 잘 외워 둬야 해.”

막상 반주가 들리니, 긴장이 점점 사라진다. 심장은 여전히 크게 뛰었다. 불안해서가 아니다, 흥분으로 점점 더 크게 뛰었다.

빠바바밤~ 빠빠바바~ 빰! 빰!

경쾌한 색소폰 소리.

점점 흥이 차오른다.

반주가 쌓여 갈 때쯤, 정진은 날카롭게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세균 조심하라고

약속된 동작에 맞춰서, 무대를 휘저어 가는 우리.

계획했던 대로 불이 들어오는 카메라를 익히는 데 치중하며 리허설을 했다.

또한 정동희가 알려준 대로, 카메라 정면 말고 그 바로 옆에 시선을 두려고 신경 썼다.

내 전부를 놀이터에

다 던지고 싶어

참 신기하다.

무대에 함께 서면 그냥 신이 난다.

막상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좀 전에 봤던 성악 아저씨든 뭐시기든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즐길 뿐.

“호우~!”

“덕후야! 가자!”

그리고 후크송의 하이라이트.

후렴 필살기를 불렀다.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길 만들어 동굴 만들어

흙장난

1절에서 카메라 방향을 익힌 후, 2절부터는 카메라를 향해 연습했던 표정과 눈길을 보냈다.

3분의 시간을 정말 알차게 보냈다.

* * *

앞에서 방울형제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성 피디.

그는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게인(볼륨) 좀 더 올리고, 페이스 조금만 낮출게요.”

이런 날 멈추지 말아 줘요.

놀이터에서 오늘을 날려 버리게 싸아~

마지막 가사를 마친 방울형제는 반주에 맞춰서 열심히 맞춘 율동을 했다.

“하핫, 요것들 봐라?”

성 피디는 방울형제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는 지금 딱 정진과 덕후만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래서일까.

무대를 잘하기도 했지만 앞에서 노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왔다.

빠빠 빠라밤 빠밤~!

마지막 반주와 함께 무대는 끝이 났고.

스태프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성악 아저씨의 무대와는 달리, 환호성과 함께 웃음소리도 터져나왔다.

―하하, 귀엽다 귀여워~!

―아니, 조그만 녀석들이 어쩜 저렇게 노래를 잘 불러?

―준비 많이 했나 봐. 카메라 잡아먹을 듯 보는 거 봤어? 푸하하!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렸다.

―시청자들 감성에 맞을지 모르겠네. 너무 어려서.

―가사도 그렇고. 너무 장난 같잖아.

―게다가 트롯을 부른다는 게…….

하지만 어쨌든 ‘아침마당놀이’ 대장인 성 피디의 생각이 중요했다.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성 피디는 방울형제를 불렀다.

“얘들아, 잠깐만.”

무대 뒤로 들어가려다 말고, 방울형제는 성 피디의 부름에 앞으로 달려갔다.

“수고했다. 난 ‘아침마당놀이’ 피디야.”

“아, 네. 안녕하십니까!”

방울형제는 일제히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하하, 그래. 인사 잘하네. 노래 부르면서 불편한 거 없었니?”

“없었습니다!”

“그러지 말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거 있으면 얘기해. 아저씨가 조정해 줄 테니까.”

정진은 우물쭈물했지만 김덕후는 곧바로 손을 들었다.

“어, 얘기해.”

성 피디는 김덕후를 바라봤다.

정진보다 10센티는 더 작아 보이지만 눈매가 똘망똘망한 게 아주 야무져 보였다.

“무대 위에 스피커가 있던데. 여기서 저희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아~ 모니터 스피커(마이크 사용자를 위한 스피커) 말하는 거구나?”

“아, 네. 소리를 더 크게 올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반주 소리에 저희 소리가 약하게 들려서요.”

“그래, 그렇게 할게. 또 있니?”

“없습니다!”

성 피디는 웃으며 말했다.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 얘기하렴. 좋은 무대 만들어야지, 그치?”

“네!”

방울형제는 성 피디와 얘기를 끝낸 후.

바로 돌아가지 않고, 스태프 사이를 돌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방울형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저녁 6시 50분.

녹화 시작 20분 전.

―첫 번째 출연자! 스탠바이해 주세요~!

우리와 대화를 나눴던 할머니 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이팅!

―잘하세요!

우리는 경쟁을 해야 하는 사이지만, 같은 상황에 놓여 있었고.

서로 힘차게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출연자 대기실에서 모니터를 통해 MC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게 보였고.

패널석에 앉은 할머니 두 분은 미소 지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 슬레이트가 올라왔다.

꿀꺽.

아직 내 차례도 아닌데도,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슬레이트 치겠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안녕하세요~ 아침마당놀이 MC 김정원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솔미입니다!”

두 남녀 MC는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와아아~ 짝짝.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는데, 대부분 아주머니 목소리였다.

“오늘은 노래 경연 대회의 날이죠?”

“네에~ 맞습니다! 우리 아침마당놀이 시청자분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이죠, 호호!”

여자 MC는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오늘도 엄청난 실력자들이 무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오늘 주제는 뭔가요?”

“오늘은 바로~!”

여자 MC는 대답 대신, 뒤의 화면을 가리켰다.

팟!

‘형제여 함께 하세~!’

“오~ 형제요? 와~ 뭔지 궁금한데요?”

“호호, 네,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친형제보다 더 깊은 관계를 가진 분들이 있죠! 그분들의 사연과 함께 준비한 노래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와~! 하하, 기대되네요. 그럼 첫 번째 출연자분 모셔 볼까요? 안녕하세요~”

MC의 인사와 함께 할머니 두 분이 화면에 잡혔다.

“네~ 안녕하세요.”

“어디 사는 누구신가요?”

“은평구 사는 김복자. 김용자입니다~”

“하하, 네. 두 분은 어떻게 자매 같은 사이가 되셨나요?”

김복자 할머니가 말하기 시작했다.

“네. 저희는 한집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전쟁 통에 겨우 살아남으셨지만 어머니를 잃으셨고. 어쩔 수 없이 새어머니를 맞이하셨죠.”

“아하…… 그런 사연이 있으셨군요.”

남자 MC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고, 김복자 할머니는 묵묵히 말을 이어 갔다.

“제 옆에 있는 용자 언니는 새어머니가 데리고 온 딸입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딸이 귀한 집이라 우리는 금세 친해졌죠. 친자매 이상으로요.”

“아~ 그게 그렇게 된 거였군요. 친자매지만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친자매. 하하.”

훈훈한 이야기에 대기실에 있던 사람들은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나 또한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 노래를 부르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근데, 진짜 사연은 이제 시작이었다.

“그런데 너무 가깝게 지내다 보니, 취향까지 비슷해져 버렸는지. 우리는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죠.”

“……?”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MC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필 그 남자는 결혼한 남자였는데, 이루기 어려운 사랑에 우리 두 자매는 함께 빠져 버렸던 거예요. 호호. 아 글쎄, 비 오던 날 그 남자의 아내에게 우리 둘 다 머리끄댕이 잡혀서 휘둘리던 걸 생각하면…….”

김복자 할머니는 웃으며 묵묵히 말을 이어 갔지만, 스튜디오에는 정적이 흐르기 시작했다.

MC들 또한 놀란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정말…… 용자 언니가 저한테 말을 안 걸더라고요. 그게 한 10년 갔지? 그 아이를 낳고…….”

이야기는 아침 드라마 뺨치는 막장 3중주로 흘러가고 있었고.

MC는 황급히 할머니의 말을 막았다.

“자자,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두 분 사이 돈독한 거 충분히 이해했고요.”

사연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정진은 넋을 잃고 말았다.

난 정동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형, 이 정도였어?”

“…….”

“나와 정진 형 사이는 사연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거 같은데?”

정동희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다, 이 정도로 빡세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혹시나 해서 다른 출연자들 표정을 살펴보니, 우리와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어떤 사연을 가진 출연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1번 타자가 좀 셌다. 아니, 많이 셌다.

‘아침마당놀이’의 노래 경연 코너는 노래 실력이 주이긴 하지만 사연 또한 매우 중요하다.

노래 부르기 전에 어떤 사연을 가진 사이인지, 그 임팩트에 따라서 시청자들 몰입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얘들아, 일로 와봐.”

잠자코 있던 신바람이 나와 정진을 불렀다.

“마지막 순서라 아직 시간 좀 있잖아.”

난 불안한 얼굴로 신바람을 바라봤다.

그는 매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만남에…… 조금만 살을 붙여보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