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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61화 (61/250)

61화. 생애 첫 리허설(1)

“작가님, 안녕하세요.”

“어, 그. 그래.”

정진은 굳은 얼굴로 인사했고, 김 작가는 어색하게 인사를 받았다.

두 사람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초면이 아닌 건 확실하다.

“이름 보고 혹시나 했는데…….”

“…….”

김 작가는 당혹스러움이 좀 가셨는지, 이제 정진에게 좀 다가갔다.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니?”

“…….”

“소식 궁금했었어.”

“소식은 모르셔도 어떻게 지내는지 짐작은 하셨을 거 같은데.”

“…….”

정진은 익숙한 듯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기실 위치, 그때랑 같죠?”

“응? 으응.”

정진은 나와 신바람을 향해 말했다.

“저 먼저 대기실 가 있을게요.”

“…….”

그리고 정진은 우리 대답도 듣지 않고 가버렸다.

정진이 사라진 뒤.

정동희는 김 작가에게 물었다.

“뭐예요? 둘이 아는 사이에요?”

“아…… 그게. 정진을 ‘아침마당놀이’ 출연자로 내가 섭외했었거든요.”

“아, 덕후에게 한 것처럼……?”

정동희의 말에 김 작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상황은 달랐으나 목적은 비슷했으니까.”

김 작가는 말을 이어 갔다.

“서울숲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거기서 작년 봄인가? 지역 노래자랑 대회가 있었어요.”

“…….”

“조그만 아이가 어른들 틈 속에서 정말 신나게 무대를 즐기더라고요. 노래도 꽤 수준급이었고. 눈에 확 띄더군요.”

김천 자두 포도 축제 무대에서 날아다니던 정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텐션 하나는 기가 막힌 형이니까 어떤 모습이었을지 대략 상상이 된다.

“그래서 바로 달려갔고, ‘아침마당놀이’에 섭외했죠.”

잠자코 듣던 신바람이 이어서 말했다.

“무대는 성공적이었고, 꽤 이슈를 만들어 냈지. 정진은 관심에 목마른 아이였고, 사람들 관심에 헛바람이 들기 시작했지.”

“…….”

“주변에서 케어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워낙 바쁘셨고. 하지만 이슈라는 건 오래 갈 수가 없지. 한 3개월 갔나?”

이 말에 김 작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자라면서 받지 못했던 관심을 갑자기 넘치게 받았다가, 순식간에 꺼지기 시작하니 초조했을 거야.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 어려웠겠지. 그나마 기댈만한 사람이…… 당시에 김 작가님이었으려나.”

그러면서 신바람은 김 작가를 살짝 노려봤다.

김 작가는 난감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근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 제가 매니저도 아니고, 기획사 직원도 아니고. 그저 힘내라고 하는 수밖에는…….”

“방송 출연 기회라도 한 번 더 주지 그랬어요.”

김 작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제 맘대로 되나요? 그리고 무명인 경우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재출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요. 뭔가 더 확 뜨거나, 신곡을 발표했다면 모르겠지만.”

난 곰곰이 들으며 김 작가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정진은 힘들었고 그에게 기대었지만.

김 작가는 지금 위치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쳇, 그래도 너무 무심했어. 정진은 애잖아. 발을 들이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럴 거면 섭외를 말든가.”

신바람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지만, 이건 분명히 김 작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김 작가는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정동희가 말했다.

“자, 자, 이제 그만하고, 이만 대기실로 이동하죠.”

그는 내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섭외 방식은 같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이제 정진과 덕후 옆에는 신바람 선생님과 제가 있잖아요?”

난 빙그레 웃으며 정동희를 바라봤다. 그는 한참 큰 어른의 눈높이에서 날 마주 보고 웃었다.

그 눈빛이 참 따뜻하다고 느껴졌다.

“덕후는 아무 걱정 말고, 무대만 잘하면 돼. 형이 있잖아. 우리가 보통 사이냐? 피를 나눈 형제잖니?”

그의 말이 뭔가 든든했다. 부모는 다르지만 할아버지가 같은 형제 사이. 어쨌든 한 핏줄이다.

“응, 형!”

* * *

우리는 대기실 향해 걸어갔고.

정동희와 김 작가는 걸으면서 계속 대화 중이었다.

드라이리허설 건으로 대화하는 것 같은데.

정동희는 어떻게든 허락을 받으려 하지만, 김 작가는 난감한 부분이 있나 보다.

“아니, 그게 어쨌건 경연이라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니까요?”

“이건 노력의 차이잖아요. 시험 날 다른 학생보다 먼저 와서 공부하는 게 형평성 문제인가요?”

“하아~ 진짜, 젊은 친구 말 안 통하네.”

김 작가는 30대. 정동희보다 약 10살 정도 많다.

김 작가가 보기에는 정동희가 새파랗게 어려 보일 것이다.

정동희는 순한 범생이처럼 생겼어도,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괜히 서울대생이 아니었다.

“다른 출연자들 오기 전에 끝낼 테니까요. 네?”

“아~ 정말. 우겨서 될 일이 아니라니까? 무대에 스태프들도 있고, 피디님이 보시면 또…….”

“지금 점심시간 아니에요?”

지금 시각은 12시 20분.

마침 점심시간이긴 하다.

“…….”

“12시 50분까지 끝낼게요.”

“하아~ 정말 끈질기네.”

김 작가는 머리를 긁적였다.

“정진한테 미안한 마음 있으시죠?”

정진이라는 단어에 김 작가는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이렇게라도 배려를 해 주시는 게 어떠십니까? 그동안 절치부심했던 아이에게 좀 더 연습할 기회를 준다는 생각으로…….”

호오…… 제법인데?

“하아, 하필 그 얘기를? 이 친구 잔인하네.”

하지만 김 작가는 정동희가 말한 정진 이야기에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좋아요. 대신 시간 꼭 지켜야 해요.”

“염려 마세요. 김 작가님 난감하게 해 드릴 일 없게 할 테니까.”

어느덧 대기실 앞에 도착했다.

“자, 공연 순서지예요.”

총 참가팀은 5팀.

우리는 두 번째 순서였다.

신바람은 공연순서를 보고는 탐탁지 않아 했다.

“우리를 낮게 보는구먼? 차라리 첫 번째 순서로 해 주든가. 애매하게 두 번째는.”

“흠!”

김 작가는 신바람의 말은 못 들은 척하고 정동희에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녹화는 7시. 두 번째 팀 카메라리허설은 3시 20분이에요.”

“…….”

“6시 30분까지는 스탠바이해야 하는 거 잊지 말고요. 이따가 카메라리허설 끝나고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릴게요.”

“이 정도 알려 주셨으면 됐습니다. 작가님도 바쁘실 텐데,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주셔도 됩니다.”

김 작가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따 카메라리허설 때 봐요~ 드라이리허설은 최대한 빨리 끝내고요!”

김 작가는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가는 와중에도 드라이리허설 12시 50분까지 끝내라는 말을 다시 한번 했다.

확실히 꽤 민감할 수 있는 사항인가 보다.

덜컹.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진은 굳은 표정으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형~!”

난 그의 옆에 가서 몸을 찰싹 붙이고 앉았다.

그리고 정진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개며 말했다.

“형, 우리 지금 드라이리허설 할 거거든? 원래 안 되는 건데, 김 작가님이 특별히 편의 봐주셨어.”

“응…… 그래.”

신바람은 정진을 힐끗 보고,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채찍질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다.

정진의 표정이 여전히 어둡다.

텐션 올라가야 하는데.

그래야 정진의 매력이 제대로 살아나는데.

“형…….”

난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는데, 어느 순간 정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됐어, 가자!”

그리고 벌떡 일어나서, 문을 향해 걸었다.

저벅, 저벅.

걸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지만 굳은 다짐이, 그의 뒷모습에서는 결기가 느껴졌다.

* * *

“와…… 복잡해.”

대기실을 지나 이리저리 널려 있는 와이어 줄, 라이트, 별 희한하게 생긴 기구들을 지나갔다.

지방 공연 경험을 해 봐서, 무대 뒤가 복잡한 건 알고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확실히 공영 방송국이라 그런지 다르긴 하다.

이 길이 맞는지.

방향만 짐작하고 걸어갈 뿐, 모두가 헤매고 있는데.

“제가 앞장설게요.”

정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1년도 더 됐지만 첫 경험이라 그런지 기억이 나네요.”

“…….”

잠시 후 드디어 무대가 보였다.

무대는 완벽하게 설치되어 있었고, 무대 위는 아주 깔끔했다.

연습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우와…….”

난 무대를 보고 탄성이 나왔다.

너무 대단해서 타온 탄성이 아니었다.

“너무 작은 거 아니에요?”

세트 정중앙에 동그라미로 된 무대가 있었고, 그 안에 ‘아침마당놀이’라고 궁서체로 적혀 있다.

한 2평 정도 되려나? 크게 봐야 3평 정도?

동그란 무대 주변으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무대 뒤쪽으로 크리스털로 된 높은 테이블의 의자가 있었다. 이 자리가 MC석 같다.

물론 이곳에 오기 전에 공부 삼아 TV로 봤었기에 무대 구조는 대략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작을 줄은 생각 못 했다. TV로 본 것보다 체감상 훨씬 작게 느껴졌다.

정동희가 중얼거렸다.

“이래서 연예인 하려면 얼굴이 작아야 한다는 건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어떤 현상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TV에서는 실제보다 좀 더 크게 보이나 보다.

관객석은 뭐…… 30석 정도 되려나?

대학로 소극장 수준.

“이 조그만 무대가 그토록 영향력이 크다니…….”

난 2회차더라도 방송 출연은 처음이다.

새삼 신기해서 중얼거렸다.

“자자, 감탄은 그만하고, 둘 다 대형 맞춰 봐.”

신바람의 목소리에 나와 정진은 재빨리 자리를 잡았다.

“자, 바로 한번 가 보자.”

“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신바람은 가만 보다가 물었다.

“뭐 해?”

“반주 기다리는데요.”

신바람은 정동희를 바라봤다.

당연히 스태프 몰래 하는 건데,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아, 맞다, 잠깐만.”

정동희는 재빨리 대기실로 갔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서 아코디언을 가지고 왔었다.

서울 음대생이라 그런가? 어지간한 악기는 전부 다 다루고, 특히 건반으로 된 거는 뭐든 할 수 있다고 했었다.

뿌우 뿌뿌~ 뿌뿌. 뿌뿌뿌~

정동희는 반주가 시작됐다.

MR처럼 풍성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흥겹고 리듬감도 맞았다.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세균 조심하라고

첫 파트는 정진이다.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정진이 시작을 여는 것이다.

세균을 무서워하는 표정과 함께.

그렇게 우리는 짜인 대로, 연습했던 대로 리허설을 했다.

딱 두 번 부를 수 있었다.

* * *

‘아침마당놀이’ 성진승 PD.

그는 오늘 속이 부대껴서, 점심 식사를 빵으로 대신했다.

신관 홀 앞을 지나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들어가 봤다.

두려움보단 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싸~

“쟤네들 뭐지? 스태프가 아들 데려왔나?”

스태프가 한 명도 없는 무대에서 젊은 청년이 아코디언을 두드리고, 그 옆에서 오십 대 남성이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서…….

두 아이가 청명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따 만나

놀이 시작은 흙장난!

호우~!

자세히 보니 연습을 하는 것 같은데.

흥이 오른 두 아이는 아코디언 연주에 신나게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하핫, 물건들일세. 오늘 참가자인가? 오늘 드라이리허설은 없을 텐데.”

무대를 멋대로 썼다는 생각보다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잠자코 지켜보다가, 성 피디는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순서 바꿔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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