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59화 (59/250)

59화. 준비는 끝났다

송사무엘이 담배 피우러 나간 뒤.

정진은 흥분해서 말했다.

“대박이다, 진짜! 덕후야~ 너네 뭐 하는 집안이니? 형들이 다들 왜 이래?”

“하하, 송사무엘 형은 친척 아니야. 그냥 친척 형의 친구지.”

“와~ 어쨌거나 너랑 친한 사이 같던데?”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신바람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서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 있는 거야. 덕후가 음악 할 수 있도록 세상 만물이 돕는 거지.”

나와 정진은 송사무엘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리가 아무리 트롯을 지망하는 가수여도 어린아이이며, 아이돌…… 당연히 좋아한다.

내 근처에 아이돌인 사람이 있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잠시 후.

송사무엘과 정동희가 들어왔고.

“연습들 했어?”

“혀엉~!”

난 콧소리를 내며 송사무엘 옆에 붙었다.

“형이 진짜 아이돌이었어?”

“뭐? 아~ 아니, 아이돌이 아니라 아이돌 연습생이었다고.”

“그게 아이돌이지 뭐야?”

“아이돌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지. 엄밀히 말하면 아이돌은 아니지.”

어느새 정진이 다가와서 물었다.

“왜 데뷔 안 했어요?”

“하하……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거야. 운 좋게 기회가 닿아서 시도는 해 봤지만 다행히 형은 너무 늦지 않게 깨달은 거야. 이쪽 길이 아니라는 걸.”

“얼마나 했는데요?”

“음…… 한 2년 했나?”

2년?!

그 정도면 꽤 한 거 아닌가?

“덕후야, 너희 아버지 말씀이 맞어. 학업 병행하라고 했었잖아?”

“…….”

“형이 힘들어도 학업을 병행했었기에 나중에라도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던거야.”

정진이 물었다.

“형 지금은 뭐 하시는데요?”

“학생이야, 동희랑 같은 학교 다녀.”

“아~ 같은 학교구나……? 헉! 그렇다면 서울대?!”

정진은 다시 날 한 번 바라보고는 중얼거렸다.

“뭐야…… 이상해, 주변 사람들이 다 왜 이래?”

훗, 정진의 반응에 난 한번 웃고 난 후. 송사무엘을 보았다.

여성스러운 외모에 호리호리한 몸매.

단발머리의 스타일리시한 헤어스타일.

얼굴에 살짝 분칠도 하고 다니는 것 같다.

아주 보통 사람인 정동희와 함께 다녀서 더 튀어 보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자태가 남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뭔가 있었구나.

정진은 송사무엘에게 물었다.

“형! 그럼 혹시 민지민 누나 봤어요?”

민지민, 2000년대의 최고의 솔로 여가수.

화려한 외모에 멋진 무대 매너로 남성 팬들을 휘어잡는다.

그녀의 곡은 나왔다 하면 히트곡이 되며, 그녀가 추는 춤은 모든 아이들이 따라 한다.

또한 정력적으로 방송가를 종횡무진하는데.

TV를 틀면, 광고를 통해 언제든 그녀를 만날 수 있다.

“난 그 누나 눈웃음이 너무 좋아. 그 섹시한 누나가 웃을 때면 눈이 사라지잖아요? 원래 아이돌 아니었고, 90년대까지는 그룹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향했다고 들었는데.”

정진이 꽤 정확히 아는구나.

정확하다. 민지민은 97년에 여성 그룹 펑크로 데뷔했었다.

나도 어릴 적에는 그냥 이쁜 여가수라고 생각했었는데, 2020년대까지도 활동하는 걸 보면 자기 관리도 잘하는 거 같고…….

전생에 민지민 나온 예능을 보다가 궁금해서 나뭇위키를 검색해 봤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다.

송사무엘은 웃으며 말했다.

“같은 소속사에 있었어. 연습생일 때 잘 챙겨 주는 착한 누나였지.”

“우왓!”

송사무엘이 아는 사이라고 하자, 정진은 눈을 번쩍 뜨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요?”

“응~ 아주 가끔.”

정진은 꼬랑지 흔드는 강아지마냥 송사무엘에게 붙어서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결국, 보다 못한 신바람이 나섰다.

“얘들아, 녹화 날 이틀 남았다. 그만 놀고 연습하지 그러냐?”

이 말에 송사무엘은 뜨끔했다.

“너희들 연습 다 하고 논 거였지? 지금부터 테스트할 거야.”

* * *

송사무엘이 말했다.

“각자 가장 자신 있는 포즈 취해 봐. 특히 표정 위주로.”

평소 이런 거 하면 정진이 먼저 했기에, 난 가만히 기다렸다.

“덕후야, 이번엔 네가 먼저 해라.”

“이번만큼은 형이 먼저 했으면 좋겠는데.”

“항상 형이 먼저 하잖아. 이번엔 네가 먼저 하자.”

“아…… 씨.”

민망한데.

네 사람은 앞에서 날 지켜보고 있었다.

잘생겨 보이게 폼을 잡아야 한다는 거지.

‘내 왼쪽 얼굴이 더 잘생겼다고 했으니까…….”

난 왼쪽 다리를 뒤로 쭉 뺀 후, 오른 팔꿈치를 오른 무릎 위에 올렸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로 V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턱을 괴었다. 이렇게 하면 턱이 브이라인으로 보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왼쪽 얼굴이 돋보이게 하며 씩 웃었다.

“형, 어때?”

“…….”

“V 꽃받침 포즈인데.”

“풉, 꽃? 네 얼굴이 꽃이야?”

“일단 기억에 남게 지어 본 거야. 뭘 그렇게 웃고 그래?”

송사무엘은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하하, 잘했다, 야. 음~ 괜찮네. 그 포즈는 딱 10살까지만 써먹어라.”

“…….”

“그리고 표정도 괜찮긴 한데, 얼굴이 굳어 있잖아. 너희 메시지를 얼굴에 담을 수 있어야 해.”

그의 말이 어려웠다.

메시지를 얼굴에 담는다? 뭘 어떻게?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생각을 해. 단순히 ‘행복한 표정 지어야지~’ 이런 마음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무대, 이 공기, 난 너무 행복해~’ 이렇게 좀 구체적으로.”

“…….”

“진심을 담은 상상을 떠올려서, 표정에 우러나게 하라는 말이야.”

그때, 옆에서 정동희가 말했다.

“사무엘아, 단어 선택 좀 가려서 해. 너무 어렵다. 어린 애들이야.”

송사무엘은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아, 미안.”

하지만 난 당연히 송사무엘의 말을 알아들었다.

정진은 뭔 소리를 하는지 몰라 멀뚱히 눈만 뜨고 있었지만.

정진을 위해 난 송사무엘의 설명을 도와주었다.

“그러니까, 강렬한 표정을 지을 때는 ‘내가 이 무대를 씹어 먹어 버리겠어! 모두 내게 빠질 거야!’ 이런 마음을 갖고 표정을 지으라는 거지?”

“오케이~ 그렇지! 역시 덕후가 말귀를 잘 알아듣네.”

예시를 든 내 설명에 정진이 좀 알아듣는 듯했다.

“그리고 포즈도. V 꽃받침? 그래, 뭐 지금 네 나이에 맞고 귀여우니까 그래도 되는데.”

“…….”

“손을 턱에 댈 때의 기본은 손 등에 받치는 모양이 좋아. 아니면 손가락으로 입술만 살짝 만지던지.”

“왜 그래야 하는데?”

“손이 전면에 드러나면, 얼굴보다 손이 더 집중될 수 있고, 손 지문 얼굴에 닿아서 화장이 지워질 수 있어. 무대 화장 말이야.”

“아…….”

“손가락만 보이게 해야 좀 더 섬세해 보이기도 하지.”

확실히 연습생 출신이라서일까.

뭔가 좀 디테일했다.

“자, 덕후는 거울 보고 진심을 담은 표정 연습을 더하고, 이제 정진 나와 봐.”

“네.”

정진은 앞으로 나와서 포즈를 잡았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빼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표정은 한쪽 눈썹만 위로 올리고 웃는데…….

“젠장…….”

포즈를 본 송사무엘의 첫마디는 ‘젠장’이었다.

“너, 무슨 생각 하면서 표정 짓는 거니?”

“’다 유혹해 버리겠다’요.”

60년대 포스터를 보는 것 같았다.

반응이 안 좋자, 정진은 재빨리 포즈를 바꿨다.

“별로예요? 그럼 이건 어때요?”

이번엔 팔짱을 끼고 몸을 비스듬히 섰다.

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그대로 한쪽 눈썹만 올라가 있었다.

“정진아, 그 눈썹 좀 어떻게 안 되겠니?”

정진은 눈썹을 내려 보려 했는데.

“엇? 안 되네요?!”

한쪽 눈썹을 올린 채 당황한 정진을 보며, 우리도 신기했다. 저렇게 표정이 굳은 건가?

“왜, 왜 이러지?!”

“야, 장난하지 말고.”

정진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외쳤다.

“지, 진짜예요! 이상하네?!”

몇 번 더 애써보다가.

송사무엘은 포기했다.

* * *

빠바바밤~ 빠빠바바~ 빰! 빰!

경쾌한 색소폰 소리가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지지지징~ 지지지징~ 찡!찡!찡~ 지지징~

일렉 기타의 포인트 독주가 이어졌고.

곧이어 기타 1, 2, 베이스, 드럼, 건반이 어우러진 밴드 사운드가 터져 나왔다.

쿵짜작. 쿵짝쿵짝. 빠바바밤~ 쿵쿵!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언제나 세균 조심하라고.”

반주에 맞춰서 정진은 본능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렸고.

나도 곧 따라 흥얼거렸다.

“놀이 시작은 흙장난!”

쿵짜작. 쿵짝쿵짝. 빠바바밤~ 쿵쿵!

약 3분간, 노래가 끝나고.

우리는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

“우와~ 동희 형!”

난 깜짝 놀라서, 정동희를 불렀다.

“형, 피아노만 치는 게 아니었어? 어떻게 이런 편곡을 다 했어?”

이전과는 완전 다른 노래가 되어 있었다. 더욱더 풍성해진 느낌.

신바람의 곡이 멜로디는 나쁘지 않지만 좀 앙상하고 비어 보였는데.

정동희가 편곡을 통해 빈 곳을 완벽하게 채워 줬다.

“동희 씨, 고마워요. 진짜 듣기 좋네.”

신바람도 엄지를 치켜세우고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주변에 친구들이 도와줘서 알음알음 겨우 한 거예요.”

“그럼 편곡 처음 해 본 거란 말인가?”

“하하, 네. 뭐, 악보는 볼 줄 알고, 화성학은 매일 하는 거니까요. 편곡이라는 명칭으로 해 보는 건 처음이지만 어쨌든 익숙한 거 하는 거예요. 보기에만 대단하지, 별거 없어요.”

신바람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게 그렇지가 않을 텐데. 각 악기별 특성을 알지 못하면…….”

“웬만한 건 알죠. 협주를 많이 해 봤으니까.”

“아…….”

신바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본바탕은 무시 못 하는 것이며, 괜히 서울 음대생이 아니다.

“형, 진짜 멋있어.”

난 달리 할 말이 없었고, 그저 멋있다는 말만 나왔다.

“하하, 그래. 고맙다.”

짝짝.

정동희는 손뼉을 치고 말했다.

“자, 이제 편곡까지 완성되었으니까, 남은 이틀 빡세게 연습해 보자!”

“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열심히라기보다는 즐겼다.

어우러진 악기 소리에.

이런저런 장난스런 표정과 몸짓을 섞어 가며.

신나게 안무하고, 아랫배에 힘 꽉주고 목소리를 뽑아내며.

정말 신나게 즐겼다.

연습하면 할수록 자신감은 더욱 올라가고.

우리에겐 미지의 세계인 방송국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최상의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반복 연습만이 답이야!”

아이돌 연습생 출신답게, 송사무엘이 이런 말을 반복했다.

그의 말처럼.

장소와 시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띡’ 누르면 바로 나올 수 있도록.

계속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래도 지겹지 않고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으니까.

* * *

다음 주 월요일, 결전의 날.

평소처럼 새벽 기상하여 평소 루틴대로 움직였다.

‘조 실장 헤어 살롱’

집 앞에 평소 다니던 미용실에 왔다.

“어머 덕후야~ 이 시간에 웬일이니?”

평일 9시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니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학교에는 결석한다. 나중에 출석 인정해 줄지 모르겠지만.

“아줌마~ 저 오늘 방송 출연하거든요~”

“뭐?! 뭘 한다고?”

미용사는 눈의 휘둥그레졌고.

난 잔뜩 연습한 대로 빙그레 웃었다.

“그래서 좀 일찍 머리 하러 온 거예요~ 잘 신경 써 주세요~”

“어이쿠~ 그렇구나! 너, 뭐 가수 한다고 배우러 다닌다는 말은 너희 엄마한테 듣기는 했는데.”

“…….”

“벌써 방송 출연까지 하는구나? 하여간 수재는 뭔가 달라도 달라? 으잉?”

3살 때부터 한글을 읽었던 일화는 동네에서 유명하다.

뭐…… 그 정도 임팩트면 유명해질 수밖에 없지.

우리 가족이 7명이나 되니, 말 퍼트릴 사람도 많았고.

“머리 어떻게 해 줄까? 샤기컷으로 해 줄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것만은 안 돼요.”

난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번 방송 출연을 준비하면서 거울을 참 많이 봤다.

선이 고운 듯하면서도 굳건한 턱선. 깊은 눈매.

계속 내 얼굴을 관찰하며, 떠올린 머리가 있다.

지금보다 머리가 좀 더 길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가운데에 가르마 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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