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58화 (58/250)

58화. 점검(2)

“덕후가 노래를 이렇게 부르는구나?”

김 부장이 입을 열고 한 첫마디였다.

노래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그러나?

꿀꺽.

난 긴장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김 부장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좋은 점은 따로 얘기하지 않을게. 그건 그대로 하면 되는 거니까.”

“…….”

“내가 말한 부분만 한번 검토해 봐. 알다시피, 난 전문가가 아니고, 일반인이야. 현장이나 방송을 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 거니까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해.”

신바람과 정진은 김 부장을 어려워하고, 난 김 부장과 불편한 사이다.

그나마 관계가 무난한 정동희가 열심히 대답했다.

“네, 삼촌.”

“내가 봤을 때 거슬리는 건 두 가지다. 그 중 첫 번째가 곡인데…….”

곡에 대한 지적이 시작되려 하자, 신바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후크송인거 같은데. 네오 트롯 리듬인가? 곡의 리듬이 무조건 빠르다고 해서 흥겨운 건 아니거든. 리듬의 속도를 낮춰 봐.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으면서 튕기는 느낌으로.”

“…….”

“‘차차차’ 리듬이라는 게 있어. 쿠바의 리듬인데, 찾아서 들어 봐 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chan chan’과 유사한 리듬.”

정동희는 김 부장의 말을 받아 적었다.

김 부장은 정동희를 향해 물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모르려나?”

“저 알아요, 삼촌. 영화도 나왔었잖아요. chan chan도 들어 본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이해가 빠르겠네.”

김 부장은 갑자기 몸을 살짝 흔들면서 이어서 설명했다.

“막 미친 듯이 흔드는 고갯짓이 아니라, 이렇게 몸이 살랑이는 느낌. 그 정도의 리듬이 알맞아. 리박사 멍키 매직이 아니잖아.”

정동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삼촌. 참고할게요. 신바람 선생님?”

정동희의 부름에 신바람은 화들짝 놀랬다.

“네, 네?!”

“하하, 뭘 그렇게 놀라세요. 큰삼촌 얘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진하 씨는 조예가 깊으시네요.”

이 말에 김 부장은 인상을 찡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

신바람이 머쓱해하자, 정동희는 재빨리 정리했다.

“어차피 지금 편곡 중이니까, 리듬은 두 가지로 나눠서 만들어 보죠. 들어 보고 결정하면 될 거 같아요. 선생님, 그렇게 해도 괜찮겠죠?”

“물론 괜찮습니다.”

정동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 부장을 봤다.

“삼촌, 다른 하나는 뭐예요?”

“음…….”

김 부장은 얕은 신음 소리를 내고는 이번엔 정진과 나를 바라봤다.

“너희들 말이야.”

“…….”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어.”

김 부장에게서 느껴지는 싸한 기운.

시선을 딱 고정하고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면 옛 생각이 떠올라서 괜히 오금이 저린다.

“너희들 서는 무대가…… 지금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 * *

김 부장은 신바람을 바라봤다.

“혹시 선생님은 방송 출연해 보신 적이 없었나요?”

“지역 방송에만 몇 번 출연해 봤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었고, 지방 행사 다니는데 카메라가 들어오더라고요.”

“흠…… 동희도 당연히 없겠지?”

정동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연주회 할 때 간혹 음악 전문 방송에 중계된 적 있었는데…… 뭐, 방송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었죠.”

김 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래서 그렇군. 얘들아, 노래할 때 그렇게 앞만 봐서는 안 돼.”

“…….”

“땅을 보지 않는 건 좋아. 그건 확실히 몸에 숙지한 듯한데.”

지방 공연을 다니던 초기에 관객을 보기 힘들어 땅 보고 노래 불렀다가, 신바람에게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정진은 무대 경험이 있어서 그런 버릇은 없었는데, 나처럼 처음 무대에 서는 사람은 관중 눈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앞만 뚫어져라 보면 안 돼. 너희들이 서는 무대는 방송이라고. 현장에 관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

“진짜 관객은 카메라 뒤에 있는 거야. 카메라를 봐야 해.”

정진이 살짝 손을 들고 말했다.

“카메라를 어떻게 봐야 하는데요?”

김 부장은 뭔가 말하려다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물었다.

“정진, 너는 방송 경험 있다고 하지 않았냐?”

“겨우 한 번 출연해 봤어요. 그게 뭐 얼마나 영향이 있겠어요?”

신바람은 옆에서 피식 웃고는 중얼거렸다.

“짜식, 당당하네. 내 제자답다.”

김 부장은 신바람을 슬쩍 바라봤고.

신바람은 바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물었다.

“흠…….”

김 부장은 신음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나도 잘은 모른다. 전문가가 아니니까. 단지 아주 오래전에 몇 번 경험이 있었고…….”

김 부장은 기억을 더듬은 후 말했다.

“카메라는 사방에 있고, 여기저기서 불이 들어온다. 언제 나의 어떤 모습이 잡힐지 몰라. 무엇보다도 내 얼굴만 한가득 화면에 잡힐 수도 있지.”

“…….”

“그래서 카메라 앞에서는 표정 관리에 신경 쓰면서 긴장해야 돼.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노래 부를 줄 알아야 하고.”

“우리 항상 웃으면서 노래하는데.”

내 말에 김 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웃기만 하면 진심이 느껴지겠냐? 마네킹이 아니잖냐. 웃을 때도 있고, 토라질 때도 있고, 살짝 찡그릴 때도 있는 거지.”

“…….”

“진심을 담아서 연기하는 거야. 방송 출연을 하는 가수는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3분의 시간 내에서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거라고.”

김 부장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도대체 음악을 관두기 전에 어디까지 배웠던 걸까 싶다.

약간 전문적으로 관리 받은 느낌이 나는데.

혹시 그 시절에도 연습생이 있었나?

“저…… 큰삼촌.”

정동희가 조심스럽게 김 부장을 불렀다.

“저희 그냥 아마추어 경연 나가는 거예요. 정식 데뷔하는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까지…….”

이 말에 김 부장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동희야,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다?”

“네?”

“이 일이 가벼워? 넌 취미지만, 얘네 둘은 직업의식으로 덤비는 거야.”

“아…… 그게 아니라.”

“너, 놀이로 하는 거였냐? 대충하면서 즐길 생각이었어?”

“아, 삼촌. 무슨 말씀을 그렇게…….”

“말 끊지 마, 이 녀석아!”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빛에 정동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어제 몇 시에 잤어? 오늘 뭘 준비했어?”

“…….”

“애들이 무대에 서는 목표가 뭐야? 넌 얘네들의 어디까지 생각하는 거냐? 얼마나 고민해?”

젠장, 김 부장 꼴 받았다.

익숙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고 하는 건가.

정동희가 지금 얼마나 애쓰고 있는데.

“…….”

그는 김 부장의 기세에 눌려서,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숙인 채로 손톱을 뜯고 있었다.

정동희에게서 갈굼을 받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만해!”

김 부장은 정동희에게 질문 세례를 퍼붓고 있었지만, 난 그의 말을 잘랐다.

“아빠 말하고 있잖아.”

날 무섭게 쳐다보며 말하는데.

김 부장…… 내가 기억하는 진짜 그 김 부장의 눈빛이다.

“연습 방해할 거면 나가!”

“…….”

“그냥 어땠는지 봐 달라고 했지, 누가 가르쳐 달라고 했어?”

당장에라도 눈을 깔아야 할 거 같지만.

아무리 무섭게 쳐다봐도. 난 아들이다. 예전의 부하 직원이 아니다.

절대 쫄 필요가 없다.

“김덕후, 너…….”

내가 바락바락 대들자, 김 부장은 약간 당황한 눈치로 주변을 살폈다.

“동희 형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알아? 잘 몰라서 그런 거야. 그런데 그저 몇 마디 말에 기분 나쁘다고 말이야. 뭘 얼마나 안다고 그러는 거야?! 같이 연습했어?”

“…….”

김 부장을 문밖으로 밀며 난 소리쳤다.

“뭐 해? 어서 안 나가고!”

옛 생각이 떠올라서일까.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고.

생각 이상으로 격하게 반응해 버렸다.

“야, 야, 덕후야.”

급기야 신바람이 옆에서 말렸지만, 난 김 부장을 계속 밀었다.

“어서 가아~!”

그때 태산보다 강한 힘이 밀고 있는 내 팔을 꽉 잡았다.

김 부장의 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알았다, 가마. 울지 마라.”

젠장, 나 또 울었어?

그제야 내 볼에 있는 물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김 부장은 바로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덕후야…….”

정동희가 가만히 내게 다가와 날 안아 주었다.

“미안하다, 형이 괜한 말을 해서. 그냥 너희들이 너무 부담 갖지 않기를 바라서 한 말인데…… 형 생각이 짧았네.”

“아니야, 형…….”

신바람은 한숨을 쉬었고.

정진은 옆에서 머리를 긁적였다.

“어쨌든.”

정동희는 날 안은 채로 토닥이며 말했다.

“큰삼촌 말씀이 일리가 있으니까 말씀 주신 거 염두에 두면서 연습해 보자.”

* * *

이틀 뒤, 토요일.

아침마당놀이 출연 2일 전.

오늘은 주말이고, 막판 스퍼트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모였다.

오전 내내 노래 연습과 안무 연습, 그리고 김 부장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이리저리 시선을 움직이는 연습도 했다.

점심으로 자장면을 시켜 먹은 후, 그릇 정리를 하고 있는데.

“헬로우~!”

덜컹.

문소리와 함께 밝은 표정의 남성이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들어왔다.

“엇?!”

난 얼굴을 확인 후 놀랐고.

정동희는 반갑게 맞았다.

“사무엘아~ 어서 와라.”

“형~!”

난 달려가서 사무엘의 한쪽 다리를 꽉 끌어안았다.

“하하, 김 가수~ 고생이 많어~ 동희 통해서 얘기 들었어.”

“왜 이제 온 거야?”

“형은 일하잖아~ 시간 내기가 쉽지 않네. 나도 얼마나 와 보고 싶었는데. 그래서 주말 되자마자 바로 왔잖아!”

난 고마워서 그의 다리를 더 꼭 끌어안았다.

“안녕하세요~!”

송사무엘은 신바람을 향해 생긋 웃으며 인사했고, 정진에게는 살짝 눈인사만 했다.

처음 만난 사이지만, 얘기를 들었는지 아는 눈치였다.

“동희야, 지금 바로 연습할까?”

“응, 그래.”

송사무엘은 연습실 중앙으로 나와서 나와 정진을 불렀다.

“둘이 이리로 와 볼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정진은 초면이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대했다.

“곧 있으면 무대에 서잖아.”

“…….”

“형이 카메라 보는 법이랑 표정에 대해서 알려 줄게.”

그리고 송사무엘은 날 빤히 보았다.

그러더니 턱을 붙잡고서는 얼굴을 왼쪽으로 돌렸다가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살짝 턱을 내려보기도 했다.

“음…… 덕후는 왼쪽 얼굴이 잘생겼네.”

“뭐?”

왼쪽 얼굴이 잘생겨? 무슨 말이야? 오른쪽 얼굴은 못생겼다는 건가?

“정면에서 카메라를 볼 때는 항상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꺾으면서 봐. 왼쪽 얼굴이 나오도록.”

송사무엘은 설명을 이어 갔다.

“사람의 얼굴은 비대칭이야. 그리고 입체적이라고. 평면이 아니거든.”

“…….”

“시선을 어디로 두느냐, 빛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얼굴에서 풍기는 느낌이 완전 달라져.”

송사무엘은 본인의 얼굴 각도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느끼하고,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에 대해 잘 알아야 해. 즉, 자기 얼굴을 연구해서 어떻게 해야 잘생겨 보이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

“카메라가 줌인(zoom in)을 하면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TV에 나타나거든. 화면이 실물보다 크니까, 시청자들에게 정말 자세하게 얼굴이 보여. 요즘 TV 화질도 좋잖아? 모공까지 다 나오더라.”

계속 얼굴 얘기를 하고 있는데.

송사무엘은 아주 진지했다.

“타고난 외모도 중요하지만, 본인 매력을 찾을 줄 알아야 해. 얼굴을 연구하고, 표정을 연습하고.”

그리고 나와 정진의 어깨를 두들기고 말했다.

“자, 앞으로 30분간 얼굴 연구 좀 해 볼까? 각자 거울 앞으로 가서, 가장 멋진 각도와 표정을 찾아보도록 해. 30분 뒤에 검사받는 거야.”

일단 송사무엘의 말이 설득력이 있어서 말한 대로 따르기는 하는데.

문득 궁금했다.

이런 걸 어떻게 알지? 예전에 뭘 했었나?

난 송사무엘에 대해 피아노 전공 중인 학생이며, 영재학원에 일하고 있는 것밖에 모른다.

“사무엘 형.”

“응?”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 배웠던 거야?”

“아~!”

송사무엘은 정동희와 담배 태우러 나가려다가.

고개를 슬쩍 돌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아이돌 연습생이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