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죽든지 살든지(2)
채케채케채케 챙챙~~!
걷거나 움직일 때
내 등 뒤에 항상 6개의 줄
난 나아가기 위해 연주하지
왜냐면 난 안 돌아갈 거기 때문이야!
김 부장의 연주와 노래는 점입가경이었고.
이젠 교실이 아니라 학교 전체가 울리고 있었다.
울부짖음.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기타를 멘 중년 가장의 울부짖음이었다.
난 카우보이!
죽든지 살든지
난 여전히 운전해
죽든지…… 살든지…….
끝없이 울부짖을 것만 같았던 그의 노래는 끝에 다다르고 있었고.
띠리디링 띠리디링 띠리디링.
스트로크에서 핑거링 주법으로 바뀌며.
천천히 기타를 진정시켰다.
천천히……김 부장은 기타의 울부짖음을 달래 주었다.
띠리디링 디딩~~ 툭.
기타 연주가 끝이 났다.
“…….”
후우―
김 부장의 깊은 한숨 소리.
정적에 휩싸인 학예회장.
짝짝짝.
김덕후는 힘차게 박수를 쳤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본 대로, 들은 대로 환호할 뿐이었다.
짝짝짝.
김덕후의 박수 소리를 시작으로 학예회장에는 박수갈채와 환호가 쏟아졌다.
휘이익―!
와아―!
김 부장은 기타를 안고, 고개를 살짝 숙여 답례를 했는데.
그 모습도 멋있었다.
학예회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아주머니들이 많았는데…….
―어머, 어머, 어쩔 거야~ 어쩔 거야!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누구 아빠야? 누구 아빠야!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그저 흥분한 말들이 쏟아졌다.
심지어 옆에 아이 있는 것도 잊고, 주책을 떠는 아주머니도 계셨다.
―심장 벌렁거려~!
―애 아빠가 저렇게 섹시할 수 있는 거야?
―어머~ 미쳐!
김 부장은 이런 환호에 무심했다.
그저 묵묵히 앰프와 기타를 챙길 뿐이었다.
“저 이제 들어가도 됩니까?”
김 부장은 옆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 담임 선생님께 물었고.
선생님은 김 부장을 마주하자, 얼굴이 홍당무가 됐다.
“덕후 아버님 맞으시죠?”
“네.”
“어쩜 부자가…… 대단하세요.”
말을 하다가 마는 선생님을 보며 김 부장을 고개를 갸우뚱했다.
“부자가? 덕후가 학교에서 뭐 했습니까?”
“호호! 네, 노래를 한번 시킨 적이 있는데…….”
“아~!”
김 부장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저보다 제 아들이 더 대단하죠.”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수고 많으셨어요. 들어가시면 돼요.”
“네.”
“아, 그리고. 덕후 관련해서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
“……?”
“학예회 끝나고 잠깐 뵐 수 있을까요?”
* * *
저벅, 저벅.
날 향해 걸어오는 김 부장을 보았다.
그를 볼 때면 항상 위압감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평소에 느끼던 위압감과는 약간 결이 달랐다.
커 보인다고 해야 할까?
커다란 산이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
“휴우~!”
김 부장은 내 옆의 의자에 한숨을 쉬며 앉았다.
“진짜 애들 앞에서 뭐 하는 건지.”
“…….”
“아들아, 아빠는 할 만큼 했다.”
“응, 수고했어.”
원래 의도는 골탕 먹일 생각이었는데.
도리어 내가 충격을 먹었다.
이번 김 부장의 연주 덕분에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응?”
흠칫! 난 놀라서 고개를 뒤로 빼었다.
김 부장의 얼굴이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뭐야, 갑자기.”
그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왜? 뭐 묻었어?”
“너, 얼굴이 왜 이래?”
“뭐가?”
“울었냐?”
“…….”
나도 내가 왜 운 건지 모르겠다.
김 부장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었다.
난 전생에 대기업의 해외영업부에 있었고.
해외 바이어와 미팅하고 영문 메일을 일상적으로 썼으니, 영어는 익숙하다.
젠장, 하필 난 왜 영어를 잘해서.
팝송 가사까지 다 알아들은 것이다.
김 부장의 과거. 그의 울부짖는 연주에 팝송 가사까지 어우러지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긴 뭘 울어? 안 울었어.”
“아닌데? 이거 분명 눈물 자국인데.”
난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려 했다.
꽉.
하지만 김 부장은 내 턱을 잡고, 얼굴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어떤 새끼가 건드린 거 아니지?”
오싹.
눈빛이 무시무시했다.
사람 한 명 잡을 듯한.
“아, 아니라고!”
난 내 턱을 잡은 김 부장의 손을 거칠게 쳐 내었다.
“흠!”
김 부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더 묻지 않았고.
우리는 그 자리에 앉아서 학예회를 감상했다.
2번, 3번, 4번…….
학예회가 진행될수록.
김 부장은 점점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를 살짝 째려보았다.
학예회가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쯤.
확신을 한 듯 날 불렀다.
“야이씨, 김덕후! 좀 이상한데?”
“…….”
“아빠를 속여?”
학예회 장기자랑은 학생 혼자 하거나 학부모와 어우러져서 했다.
학예회에 학부모 혼자 나와서 장기자랑을 하는 경우는…….
당연히 없었다.
김 부장이 유일했다.
“아, 나 화장실 좀.”
난 재빨리 자리를 피했고.
“아오~ 또 낚였네. 야! 김덕후!”
김 부장이 일어서서 찾을 때, 난 이미 사라져 있었다.
* * *
화장실에서 좀 오래 있다가 왔다.
아무래도 김 부장이 감정 식힐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서.
우리 집 같으면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지원군이 많은데.
여기서는 나 혼자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약 20분 정도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학예회장에 들어갔는데.
“뭐야? 아빠 어딨어?”
학예회 장기자랑은 거의 끝나가는데.
김 부장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 화장실 가기 전과 달라진 게 있었는데.
사람들이 한곳에 운집해 있었다.
“저긴 내 자리인데?”
가까이 가 보니.
김 부장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머~ 어쩌면 그렇게 노래를 잘하세요?
―소싯적에 좀 노셨어요? 호호.
―기타도 너~무 멋지게 잘 치시던데.
김 부장은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이 당혹스럽고 낯설어하는 듯 보였다.
하긴, 회사에서는 이런 일이 절대로 없을 테니까.
직원들이 김 부장을 피하면 피했지, 다가올 일은 없을 것이다.
김 부장이 어떤 사람인데.
―저희랑 같이 식사하고 가실래요?
―전화번호 좀 알려 줘요.
약간 위험해 보이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설마…… 아니야, 순수한 의도겠지.
역시 엄마도 함께 왔어야 했나?
“아…… 전화번호는 좀.”
김 부장답지 않게 어색해하며 소심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재밌었다.
좀 더 두고 볼까 하다가.
엄마 생각이 나서 다가갔다.
“아빠.”
“어~ 덕후야, 어서 와라.”
상황이 상황인지라, 김 부장은 날 보고는 매우 반가워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엄마 오실 때가 돼서, 마중 나가느라.”
“응?”
김 부장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난 주변 아줌마들을 본 후 김 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김 부장은 내 의도를 눈치채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아~ 그래? 아직 안 오셨니?”
“응, 조금 늦으시나 봐.”
―아…… 엄마가 와?
―다 끝나가는데 뭘 오고 그래?
아줌마들은 ‘엄마’라는 단어에 한마디씩 중얼거리면서 썰물 빠지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휴우~ 진땀 났네, 난감해서 혼났다.”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김 부장은 그런 날 멍하니 바라보다가.
“재밌냐? 덕후가 웃으니 보기 좋네.”
“흠!”
난 바로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그러게 사람들이랑 좀 어울리라니까? 맨날 혼자 있고, 일만 하니까 이 정도 가지고도 어색해하지.”
김 부장은 잠시 생각하고는 말했다.
“이 정도면 특이한 상황 아니냐?”
“아, 몰라~ 그냥 좀 잘 좀 지내 봐. 그동안 회사 동료 몇몇 사귀었어? 내가 야유회 갔을 때 얘기했었지?”
“허, 참 나, 이게 좀 컸다고 아빠한테 잔소리를 다 하네…….”
김 부장과는 부자 사이지만.
집에서 항상 서로 사무적으로만 대했다.
어쨌든 오늘은 우리 부자가 처음으로 함께 외출을 하게 된 것이었고.
김 부장과 사무적인 대화 외에 티격태격하며 대화를 나누는 건.
내 기억엔 처음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어색하지 않았다.
설마, 미운 정이 생긴 건가?
안 되는데.
―이상으로 학예회 마치겠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어요~!
학예회는 어느덧 끝이 났고.
아이들은 어머니 손을 잡고, 하나둘씩 학예회장을 나갔다.
나 또한 집에 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김 부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안 가?”
“어, 아빠 선생님 잠깐 뵙고 가야 해서.”
“왜?”
난 의심스러운 눈길로 김 부장을 바라봤다.
아까 김 부장이 노래할 때, 그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덕후야, 그 이상한 눈빛 뭐냐? 너 관련해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시더라고.”
“나?”
김 부장은 선생님을 향해 물었다.
“선생님! 지금 갈까요?”
학예회장에 이제 남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쪽으로 모실게요. 덕후야, 잠시 혼자 있을 수 있지?”
나 빼고 대화를 한다고?
난 선생님의 물음에 대답했다.
“네, 알겠어요.”
* * *
“기다리고 있었는데. 많이 바쁘셨나 봐요?”
“기다려요?”
선생님의 말에 김 부장은 반문했다.
“덕후가 얘기 안 하던가요?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했었는데.”
“아…….”
김 부장은 선생님의 말을 잠시 생각하다가 대뜸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말에 김 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호호, 아니에요.”
선생님은 잠시 허공을 보며 생각하다가 말했다.
“덕후가 음악 재능이 뛰어난 것 같던데…….”
며칠 전에 학교에서 김덕후가 손가락 박수를 치며 노래 불렀던 일을 얘기해 주었고.
김 부장은 묵묵히 그 얘기를 들었다.
“제가 음악 전공이거든요. 적어도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볼 줄 압니다.”
김 부장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는 거, 좀 주제넘은 줄은 알지만.”
“…….”
“부모님께서 알고 계시나 싶어서요. 이렇게 재능 있는 아이들은 미리 알고 지도를 해 줘야 하거든요.”
김 부장은 선생님의 말을 생각하다가 빙그레 미소 짓고는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호호. 혹시 모르고 계실까 봐. 그럼 액션을 취하고 계신가요?”
선생님은 김덕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그만큼 며칠 전 보여 준 김덕후의 실력은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네, 덕후는 지금 가수를 준비 중입니다. 아니, 이미 가수나 다름없죠.”
“어머, 진짜요?!”
선생님은 깜짝 놀랐고.
김 부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지난 여름방학 트롯 여행 그리고 앞으로의 방송 출연 등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 주었다.
“와~ 아버님이 대단하시네요.”
“…….”
“이 정도로 적극적으로 신경 써 주는 거 쉽지 않은데.”
김덕후의 스케줄링부터 향후 10년간의 플랜까지.
김 부장에게는 큰 그림이 있었고, 그 중심을 확고히 하는 교육철학까지 있었다.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선생님의 물음에 김 부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냥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대해 주는 거, 그게 도와주시는 겁니다.”
“…….”
“절대로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마시고, 특별 대우도 해 주지도 마세요.”
선생님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제 아들이 선택한 일입니다.”
“…….”
“어려운 일이 있으면 스스로 극복해야 합니다. 못 일어날 정도로 쓰러지면, 그때 일으켜 주변 됩니다.”
김 부장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전 제 아들이 강한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덕후가 정말 훌륭한 아버님을 두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