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무기 장착(2)
치키 챙― 치키 챙― 치키치키.
촹 차라― 차라차라― 촹 차라―
“와…… 얘는 진짜.”
송사무엘은 입을 벌리고 김덕후가 하는 연주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애한테 해서는 안 될 말이 나왔다.
“그냥 미친놈 아니야?”
“…….”
정동희는 자기 친척 동생을 욕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도저히 부인할 수 없었다.
정동희 또한 속으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비트 주법 하나 알려 줬는데, 감각으로 저걸 한다고? 진짜 타고났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치키 챙! 치키치키치키!
그저 넋을 잃고 바라봤다.
김덕후의 리듬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웨스트사이드 흑인들 저리가라였다.
하지만, 리듬감만 그럴뿐.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뽕필.
띵― 띵동― 띠리리띵―!
김덕후는 스트로크를 멈추고, 가르치지 않은 코드를 잡고 몇 차례 줄을 고르더니.
“형, 이렇게 해도 듣기가 괜찮은데. 약간 슬픈 느낌으로 어때?”
“……!”
정동희와 송사무엘은 서울대 음대생이었다.
첫 코드를 듣는 것만으로도 김덕후가 뭘 하려고 하는지 느낌이 왔고.
“설마…….”
갑자기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치키― 챙챙! 치키― 챙챙!
김덕후는…….
가르치지도 않은 마이너 코드를 치기 시작했다.
Cm.
Dm.
Em.
Fm.
손가락 길이 때문에 하이코드를 잡는 걸 어려워했는데.
한 프렛 전체를 잡아야 하는 Cm과 Fm 코드는 자기 멋대로 약식코드를 찾아서 잡았다.
그것도 스트로크 중에.
메이저 코드에서는 가르쳐 줬기 때문에 손가락이 안 닿아도 하이코드에서 억지로 프렛을 잡았지만.
배우지 않은 마이너 코드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냥 자기 멋대로 듣기 좋게 코드를 잡을 뿐.
치키칙 챙― 챙― 치키칙 챙― 챙―!
정동희와 송사무엘.
처음엔 김덕후의 기타 연주를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봤는데.
한번 경험해서인지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희야.”
송사무엘의 부름에 정동희는 신음 소리로 대꾸했다.
“……흐음.”
“덕후가 천재였지?”
“……맞아, 분명 천재야.”
“그래, 일반인의 시각으로 보면 안 돼. 오랜만에 봐서 깜빡했다.
송사무엘의 말에 정동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다, 신기해. 정말.”
이젠 놀라워하지 않고.
천재의 연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 * *
“휴~ 힘들다.”
코드를 짚었던 왼 손가락 끝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서 더 할 수가 없었다.
좀 더 하고 싶은데, 아쉬운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음?”
기타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살피니, 정동희와 송사무엘이 석상처럼 굳어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굳은 표정. 경직된 모습.
혹시 내가 빠져서 너무 오래 했나?
“형들, 나 좀 쉬었다 할게.”
내 말에 가만히 있던 정동희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쉬었다가 또 한다고?”
“왜? 더 하면 안 돼? 이제 메이저 코드 하나 배웠잖아.”
“너 지금 기타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아니?”
“…….”
“한 시간째야. 한 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그 자리에서 기타만 쳤다고.”
그게 오래 한 건가?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도 앉으면 2~3시간은 기본 아닌가?
음악 하는 사람이 악기 연습하는데 1시간이 뭐가 길다고.
“덕후야, 그리고 너 지금 기타 처음이잖아. 손가락이 꽤 아플 텐데?”
정동희에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형. 아프다.”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생기면서 단련이 되어야 하거든. 아파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게 맞긴 하지만 넌 오늘 처음이니까. 이러다가 손끝에 상처 난다.”
“괜찮아, 형. 이 정도는.”
“내가 안 돼. 나, 외삼촌이랑 숙모 무서워.”
“…….”
하긴, 김 부장이랑 어머니가 좀 빡세긴 하지.
“사무엘아, 정신 차려.”
“응? 어어.”
정동희는 멍하니 날 보고 있는 송사무엘을 툭툭 건드리고는 내게 다가왔다.
“덕후야, 기타 오늘 처음 해 보는 거 맞지?”
“응, 맞아.”
“막냇삼촌이 기타 좀 치잖아. 혹시 옆에서 좀 봤었니?”
“치긴 뭘 쳐? 그거 장식이야. 한 번도 치는 걸 본 적이 없어.”
“아…… 요즘엔 안 치시는구나.”
예전엔 쳤었나 보지? 막냇삼촌 장롱 위에 하늘색 기타가 하나 있긴 한데.
생각해 보니 장식도 아니구나. 그냥 구석에 처박아 놓은 거니까.
“음…….”
정동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덕후야, 너 참 잘한다.”
“…….”
“뭘 잘하는지는 딱히 얘기하진 않을게. 음악에 대해 타고난 걸 너 스스로도 잘 알 거 같아서.”
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근데 말이야.”
“…….”
“F, Fm. Cm 코드에서 음이 확실하게 잡히는 느낌이 아니었거든?”
송사무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이코드(한 프렛 전체를 잡는)니까. 덕후 손 크기가 작잖아. 아이한테 어른 기타 쥐여 주고 코드 잡으라고 하는 거 자체가 어불성설이지.”
“아~ 그럼…….”
정동희는 뭔가 생각하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기타를 바꿔 주면 되겠구나?”
송사무엘이 황당한 얼굴로 정동희를 바라봤다.
“어떻게 바꿔 줘? 연습실에 애들 기타는 없는데.”
“사 주면 되지.”
“커스텀은 비쌀 텐데?”
정동희는 바로 가방을 챙겼다.
“덕후야, 사무엘이랑 잠깐 기다려. 형이 기타 사 올게.”
지금 당장 사 온다는 거야?
“형…… 이건 좀 미안한데.”
“괜찮아~ 형한테는 부담되는 거 아니니까.”
“…….”
부자 친척 형이 있으니까 이런 면에서는 참 좋다.
잠시 후.
정동희는 조그마한 기타를 들고 나타났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송사무엘이 웃으며 물었다.
“와~ 빠르네, 어디서 산 거야?”
“큰길 건너 음악사 있잖아. 그냥 가까운 데서 샀어.”
“그런 곳은 비쌀 텐데.”
송사무엘은 기타를 꺼내어 만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좋은 거 샀네. 한 백만 원 줬냐?”
“야, 애 앞에서 뭔 가격을 물어? 그냥 적당히 주고 샀어.”
“적당한 게 아니구먼.”
가르쳐 주는 것도 모자라, 기타까지 사 주다니.
정동희는 송사무엘에게 기타를 받아서 내게 건네며 말했다.
“어디 잡아 봐라, 손에 맞는지.”
당장이라도 개다리춤을 추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꾹꾹 억누르고 기타를 받아들었다.
붉은색 나뭇결로 이루어진 바디.
측면 판 또한 붉은색에 가까웠으며 기타 넥에서 이어진 헤드는 고급스럽게 윤이 났다.
줄감개는 찬란한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와…… 형, 기타 진짜 멋지다!”
“하하, 맘에 드냐?”
“완전 맘에 들어, 손에도 꼭 맞어!”
코드를 잡아 봤는데, 남는 줄 없이 손안에 딱 들어온다.
송사무엘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장비빨은 무시 못 한다니까.”
난 오늘 여러모로 너무 감격스러워서 말했다.
“동희 형, 사무엘 형, 정말 고마워. 내가…….”
빈말이 아니다.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중에 몇십 배로 갚을게, 다 기억하고 있을 거야.”
이 말에 정동희는 씩 웃으며 말했다.
“형 꼭 기억한다. 이 말 지켜야 해?”
“나도 기억했어!”
난 활짝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형!”
* * *
정동희는 처음 알려줬던 메이저 코드 4개 외에는 더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외에 내 멋대로 다른 코드로 쳐 보기도 했지만.
바로 잡아 준다든지 하지 않았다.
오늘 배울 건 끝났다며 그냥 내버려 두었다.
급기야 난 반주를 하며 노래를 흥얼거렸고.
반주에 노랫소리가 어우러지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짜릿하고 몸이 떠오르는 기분?
이 좋은 걸 전생에는 왜 안 했을까?
왜 회사만 주야장천 다니며 김 부장에게 갈굼만 당했을까?
트롯 가요를 흥얼거리며 기타를 치고 있는데.
“동희야.”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응?”
“혼자 보기 아깝다. 우리 나가서 좀 놀아 보는 거 어때?”
송사무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동희는 대번에 알아들은 듯했다.
“아~ 오랜만에?”
“그래, 한번 놀아 보자. 날씨도 좋은데.”
뭘 논다는 거지?
정동희는 날 보고 대뜸 물었다.
“덕후야, 우리 나가서 놀자.”
“어?”
“기타 챙겨.”
그리고 정동희도 기타를 챙겼고, 송사무엘이 말했다.
“난 바이올린 가져갈게.”
“오케이!”
뭘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난 일단 형이 시키는 대로 기타를 챙기며 물었다.
“형! 근데 뭐 하고 노는데?”
정동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버스킹.(거리에서 자유롭게 공연하는 것을 뜻함.)”
* * *
오후 4시경.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지금은 2005년이다.
이때만 해도 마로니에 공원에 정말 사람이 많았다.
2021년에도 대학로에 인파가 많긴 하지만 2005년만큼은 아니었다.
2005년 늦은 오후의 대학로와 마로니에 공원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형, 여기서 버스킹을 한다는 거야?”
오면서 버스킹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물론 난 그게 무슨 뜻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해야 했다.
난 지금 기타를 처음 든 8살 소년이니까.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왜, 떨려?”
“응!”
송사무엘은 그런 날 보며 웃었다.
“동희야, 얘 표정 좀 봐. 이거 떨려 하는 거 맞냐? 웃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배어나왔다.
울렁증이 있어서 혼자 앞에 서는 건 어렵지 형들과 함께 연주하고 노래를 부른다면…….
울렁증으로 무대를 망칠까 걱정되긴 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되고 신났다. 내가 무대 체질인 것 같기는 하다.
정동희와 송사무엘은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 앞에 자리를 잡았다.
“형들은 여기서 버스킹 해 봤어?”
“해 봤냐고?”
내 물음에 송사무엘은 환하게 웃었다.
“입시 준비할 때 종종 왔었지. 실기 연습한다고.”
“아~!”
어쿠스틱 기타 두 대와 바이올린.
그리고 생목.
우리가 준비한 건 이게 다였다. 앰프는 없었다.
악기를 꺼내어 튜닝을 하고, 몇 번 가볍게 연주를 맞춰봤다.
“덕후야, 노래는 네가 해라?”
“알았어.”
음…… 선곡을 해야 한다.
난 잠시 생각해 본 후에 정동희에게 말했다.
“형, 트롯 불러도 되지?”
“물론이지, 너 하고 싶은 거 해.”
조금씩 우리 앞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단발머리의 미끈한 청년 송사무엘.
누가 봐도 서울대생처럼 생긴 정동희.
8살 꼬마 김덕후.
이 어울리지 않는 세 사람이 각기 악기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형, 나 이 노래 부를 건데.”
난 두 사람 앞에서 가볍게 기타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불렀고.
한 소절만 듣더니, 정동희가 제지했다.
“오케이, 그 정도면 됐어. 넌 그냥 부르면 돼. 뒤에 반주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형, 혹시 아는 노래야?”
“몰라, 근데 한 소절 들어 보면 노래 전개 어떻게 될지 뻔하지 뭐.”
송사무엘이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덕후야, 형들 대한민국 최고의 음대생들이란다.”
휴우―
난 숨을 고른 후, 기타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형, 인사하고 시작해야 해?”
정동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필요 없어. 그냥 시작하면 돼.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네 타이밍에 맞춰서 네 노래를 하면 돼.”
우리 앞에 모인 사람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간다.”
채에챙― 채에챙―
짜가자가 짠짠짠~~
네 박자 뽕짝 리듬의 기타 연주에, 곧이어 송사무엘의 바이올린이 따라붙었다.
이잉~ 이이잉~ 이잉~
2005년, 3월에 나온 최신곡.
나도 이 노래가 이때 나왔는지 몰랐다.
그냥 1박 2일 주제곡인 줄 알았는데.
흠―!
난 숨을 크게 들이쉬고 화끈하게 내뱉었다.
무조건! 무조건이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