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가야 할 시간
신바람은 걸음을 빨리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그를 빠르게 쫓아갔다.
돌잔치 장소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걸음을 천천히 하며 물었다.
“……안 쫓아오지?”
“네?”
“아까 그 남자애 말이야.”
“…….”
그러면서 연신 목을 빼고 뒤를 확인하는데, 뭔가 신경 쓰여 하는 것 같았다.
“요즘 애들은 반전이 있거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면 일단 경계해야 해.”
“훗.”
속사정을 모르는 신바람으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다.
“김덕후, 왜 웃냐? 선생님이 웃겨?”
좀 전까지 겁먹어 하더니 내가 웃는 모습에는 발끈해서 물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좀 전에 공연했던 생각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온 거예요.”
“흠!”
난 숨죽이고 웃었다.
그 남자애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봐도 8살짜리가 한 행동으로는 보기에 좀 과했던 거 같다.
우리는 걸어왔던 어두운 숲길을 다시 걸어갔다.
여전히 조용하고 을씨년스러웠지만 한번 왔던 길이기 때문에 겁이 나진 않았다.
오늘 밤은 안동 시내에서 자겠지?
앞으로는 어떻게 지내려나.
이제 방학이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다.
“선생님~ 오늘은 일정 끝이죠?”
앞서가던 정진이 물었다.
“오냐, 끝이지. 이제 잘 시간 아니냐? 아니네, 벌써 넘었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오늘은 안동에서 잡니까?”
“그렇지.”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평소에 계획을 미리 얘기 안 해 주는 신바람의 스타일을 알기에 정진은 돌려서 물었다.
“아직도 그렇게 많이 남았냐?”
신바람은 짐짓 모르는 척 대꾸했다.
“…….”
“요 꼬맹이들이랑 헤어지고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은데~ 아직도 한참 남았구나.”
헤어지고 싶다고? 과연 진심일까?
찌르륵, 찌르륵.
어둡고 고요한 산속에 벌레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선생님, 아직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계속 공연하는 건가요?”
내 물음에 신바람은 웃으며 대꾸했다.
“당연하지! 계속 실전 훈련이야.”
안동 모텔에 도착.
우리가 씻고 잠자리에 들 때쯤, 신바람은 샤워 후 다시 옷을 챙겨 입었다.
“아무래도 바람 좀 쐬고 와야겠다. 너희를 가르칠 양분이 다 소진됐어.”
“양분이요?”
“그래, 감성 충전을 좀 해야겠다.”
단순히 술만 마시러 나가려는 건 아닌 것 같다, 머리에 기름칠까지 한 걸 보니.
“공연 가십니까?”
정진의 물음에 신바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글쎄다,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이 생길지도 모르지.”
“잉?”
정진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오늘 안 들어오실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난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난 애가 아니니까.
내 물음에 신바람은 흠칫 놀랐다.
“흠! 들어올 거다. 문단속 잘해라, 선생님 나가자마자 위아래 다 잠가.”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들 자거라!”
* * *
그날 밤, 신바람은 새벽 4시쯤 들어왔다. 한 사람을 위한 공연을 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감성 충전은 되었는지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왔었다.
하여간 놀러 나갔는데도 우리 기상 시간 전에 들어온 거 보면 책임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들을 모텔에 놔두고 놀러 나간 거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신바람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고, 내가 생각하기에 선은 항상 지켰다.
여름방학 종료까지 일주일 남은 시점.
우리는 다음 날 아침,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고 도시를 옮겨 다니며 계속 노래를 불렀다.
하루에 두 차례 혹은 세 차례.
나와 정진은 가장 익숙하고 자신 있는 노래로 시작하여 꼭 안 해 봤던 곡을 시도했다.
공연에서 가장 자신 있는 것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똑같은 것만 하면 안 된다는 신바람의 지침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관객에 대한 예의다. 반드시 변화를 줘야 하고, 새로운 것을 고민해야 해.”
“…….”
“설령 망할지라도.”
무대 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지만 나와 정진은 틈틈이 머리를 맞대고 어떤 변화를 줄지 항상 궁리했다.
덕분에 20곡이 넘는 곡을 숙지하게 되었으며 손가락 박수는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우리는 계속 듀엣으로 활동했다.
소개할 때도 그냥 ‘김덕후’가 아니라, ‘방울형제’의 ‘김덕후’로 소개했다.
처음엔 듀엣이 어색했었지만 나와 정진도 점점 익숙해졌고, 친형제처럼 더욱 가까워졌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느껴지는 건.
신바람과 정진이 가족 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고.
결국 그날이 찾아왔다.
목요일 아침.
신바람이 화장실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네!”
벌컥.
신바람은 나오자마자 말했다.
“김덕후!”
“네.”
“다음 주 월요일이 개학이라며?”
“네? 아, 네.”
“왜 말을 안 해 주냐?”
“아시는 줄 알았어요.”
“어이쿠~!”
신바람은 한숨을 쉬고는 정진에게 물었다.
“너도 다음 주 월요일이냐?”
“네.”
“잘들 한다.”
신바람은 못마땅 눈빛으로 우릴 보고는 한 소리 했다.
“너희 방학 숙제는 다 했냐?”
“…….”
“학생들이 본문을 잊어서야 쓰나? 다음 주 월요일이 개학이면 조금 빨리 집에 가서 숙제도 하고, 정리를 해야 할 거 아니냐?”
아…… 이상하다.
이건 우리가 까먹은 게 아니라 신바람이 까먹은 거 같은데?
아무래도 김 부장이랑 통화하다가 한 소리 듣고서 책임 무마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 같은데.
“어서 짐들 싸! 아침 먹고 바로 올라가게.”
“이렇게 갑자기요?”
내 물음에 신바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럼 갑자기 가지, 뭘 어쩌라고? 축하연이라도 벌여 주랴?”
“…….”
거의 한 달을 같이 보냈는데, 이렇게 그냥 헤어진다는 건가?
거창한 건 하지 않더라도 맛있는 데 가서 밥 한 끼 하고, 좋은 얘기도 하면 좋을 텐데.
“오늘 아침은 순댓국이다. 마지막 만찬인데 라면은 좀 그렇잖아.”
“…….”
한 여름밤의 꿈 같았던 여름 훈련.
이별은 벼락같이 찾아왔다.
“왜 이렇게 멍하니 있냐? 밥 먹고 올라가려면 서둘러야 해, 늦으면 그냥 라면 먹고 간다?”
이 말에 나와 정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두 아이가 짐을 싸는 사이.
신바람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핸드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조필승입니다.]
“네, 저 신바람입니다.”
[네~ 신 선생님~ 오랜만에 연락 주셨네요.]
필승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조필승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소식은 전해 듣고 있습니다. 저야 요청하시는 대로 소규모 공연만 어렌지해 드리긴 하는데…… 고객 반응이 엄청나요.]
“…….”
[입소문이 나서 큰 공연에서도 불러 달라고 난리입니다. 방울형제? 맞나요?]
“네.”
[하하, 처음엔 좀 황당했어요. 왜 김덕후에 따른 애까지 끼워 파시려고 하시나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지금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진은 끼워 파는 애가 아닙니다. 말씀 좀 가려 하시죠? 거북합니다.”
신바람이 정색하는 말투에 조필승은 당황했다.
[아, 네. 제가 업계 말투에 익숙해져서…… 죄송합니다.]
“무슨 업계 핑계를 대고 있어? 업계에서 누가 그딴 식으로 말합니까? 거북하니까 물건 대하듯 말하지 마세요! 감히 내 제자를…… 확 엎어 버릴라니까.”
[아, 알겠어요. 이게 뭐 그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죄송해요~]
흠! 조필승을 헛기침을 하고는 물었다.
[근데 왜 전화 주셨어요?]
“오늘 공연 취소해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지금요?]
조필승은 당황하여 되물었다.
[내일은요?]
“내일도죠. 오늘부로 잡힌 공연 일정은 모두 취소해 주세요. 사정은 잘 둘러대 주시고, 가수 이미지 타격 가지 않게요.”
[아니? 이유가…….]
“학교 가야 돼서요.”
[아…….]
황당하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 없는 대답이었다.
학생이 학교 가야 한다는데…….
[꼭 가야 합니까?]
“미안하지만 취소가 안 되면 다른 대체 가수 써요.”
[아유~ 선생님이 몰라서 그래요, 지금 경상도 쪽 행사장에서는 방울형제 난리예요. 가수를 원하는 게 아니라, 방울형제를 원한다고요.]
“…….”
[더군다나 바로 대체 가수가 섭외가 됩니까? 더욱이 오늘 공연은 몇 시간 남지도 않았는데.]
신바람은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바로 내일부터 출근입니까? 결석 안 돼요? 사유서 필요하면 제가 써 드릴 수 있는데.]
신바람은 전화기를 떼고 인상을 쓰고 중얼거렸다.
“이 새끼가 초등학교도 안 다녔나? 뭐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어쨌든 갑작스러운 통보한 신바람이기 때문에 대놓고 감정 표현은 하지 않았다.
휴우―
신바람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애들이고, 학교생활 중요하니까요. 사장님께서 이해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신, 신 선생님…….]
“잘 무마해주세요~ 사장님 능력을 믿습니다. 정 대체 가수 섭외 안 되면 제가 책임질게요.”
[자, 잠깐만요! 선생님!]
조필승의 외침을 뒤로하고 신바람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 *
“많이들 먹어라.”
마지막 만찬, 순대국.
신바람은 특별히 ‘특’ 사이즈로 시켜 줬다.
후루룩, 후루룩.
식사를 하는 내내 우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먹기만 했다.
“참…… 시작도 그랬었는데 끝도 갑작스럽네요.”
정진이 피식 웃으며 그릇을 비었다.
“시작과 끝이 어딨냐? 어차피 다 연결된 것이다.”
“…….”
“의미 부여할 필요 없어.”
신바람은 국그릇에 시선을 고정하고 먹기만 했다.
“또 뵐 수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신바람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날 바라보며 물었다.
“왜? 다신 나 안 보려고?”
“아니요.”
“하하, 인마! 당연히 보겠지. 이 바닥 좁아!”
“그 뜻으로 여쭤본 게 아니잖아요.”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신바람이 자꾸 정을 떼려는 모습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아니다, 의미 없다, 어차피 좁은 곳이라 다 만나게 된다.
그 말은 ‘너희와 나는 특별한 사이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오늘 헤어지고 나면.
“덕후야, 때가 되면 또 함께 시간을 보낼 날이 올 수도 있겠지.”
“…….”
“사람 정이란 게 무서운 것이란다. 거기에 이끌리면 안 돼, 특히 감정노동자인 우리 가수들은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으려고 노력해라.”
신바람은 이제 정진과 날 번갈아 보았다.
“지나간 건 지나간 것이고, 앞으로 너희 갈 길 가면 되는 거야.”
이런 말을 하는 그가 약간 서운했다.
“덕후야, 뭐하냐? 어서 먹지 않고?”
“네…….”
난 억지로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 * *
터미널.
서울행 버스 앞에서.
신바람은 정진과 김덕후에게 표를 하나씩 건네었다.
“자, 표 받아라.”
“네.”
출발 3분 전. 버스에 탑승하려는데 신바람은 가만히 있다.
김덕후가 물었다.
“선생님 뭐 하세요?”
“난 안 간다.”
“네?!”
그는 씁쓸히 웃었다.
“같이 가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
“요즘 핫한 가수가 공연 펑크를 내서 말이야, 그거 메꾸러 가야 해.”
신바람은 정진과 김덕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정차니까 그냥 쭉 가면 된다. 내가 기사님께도 말씀드려 놨으니까.”
“선생님…….”
김덕후와 정진은 신바람의 팔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터미널 도착하면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실 거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
신바람은 두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게 있는데…….”
“…….”
“절대로 안주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거라, 꼭 그래야만 해.”
“…….”
신바람은 단호하고 냉정한 말투로 말했지만 그의 눈에 애정이 가득했다.
나와 정진은 그저 아쉬운 듯 그를 바라만 보았다.
“뭐 해? 대답 안 하고.”
“……네.”
우리의 대답에 신바람은 활짝 웃었다.
“어서 타라, 기사님 기다리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