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호암회관(2)
“형, 주변 좀 봐.”
“뭐?”
“지금 형 보고 있는 사람들 보여?”
돌잔치에 모인 사람들.
모두 남자애만 보고 있다.
팔짱을 끼고 화난 듯 지켜보는 사람, 혹은 자기 일 아닌 듯 모른 척하면서 흘겨보는 사람.
어쨌든 남자애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받고 있었다.
“근데! 뭐 어쩌라고!”
남자애는 주변을 살피고는 살짝 당황했지만 다시 목울대를 세웠다.
신바람이 다가오려고 해서 난 손을 들어 제지했다.
“오늘 하나뿐인 동생 생일이잖아.”
“…….”
“이 좋은 날 이렇게 해야겠어? 사람들 불편해하는 표정 보이지?”
남자애는 동생이라는 말에 약간 잠잠해졌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한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부모님과는 안 좋아 보이지만 동생은 아끼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 그래, 너 말 잘했다! 빨리 꺼지라니까? 내 동생 축하를 왜 삼류들이 와서 하냐고!”
그는 새삼 내 옷차림과 머리 모양을 찡그리며 바라봤다.
“우리는 자선 공연을 하러 온 거 아니야. 공연비를 받는다고. 이거 형이 줄 수 있어?”
“뭐?”
“주면 그냥 돌아갈게.”
“…….”
공연비라는 말에 남자애는 입을 다물었다.
중학생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다.
“얼만데?”
“인당 20만 원, 총 60만 원이네.”
“뭐어?”
물론 나는 얼마에 섭외되었는지 모른다.
이 나이 때에는 부모님한테 용돈을 받기에 어느 정도 돈 개념이 잡힐 나이다.
돈 얘기가 나오자 남자애는 좀 수그러들고 있었다.
“미쳤네, 미쳤어! 이따위 허접한 놈들 부르는 데에 60만 원이나 들이고.”
이 말은 분명 부모한테 하는 말일 텐데.
막장도 보통 막장이 아니다.
“뭐 해? 형, 어서 결정해.”
난 그를 채근했고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신바람과 정진은 멀리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덕후, 괜찮을까요?”
“그러게 말이다. 뭘 저렇게 속닥거리는 거지.”
생각보다 얘기가 꽤 길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한번 가 볼까요?”
“네가 가서 뭐 하냐? 내가 가도 자신 없는데.”
신바람은 가만히 지켜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자애 표정이 좀 차분해졌는데?”
“…….”
“두고 보자, 설마 저 조그만 녀석을 때리기라도 하겠냐?”
남자애는 고개를 확 돌리며 날 험악하게 바라봤다.
“에이씨! 좋아, 너 만약 제대로 못 하면 내 손에 죽는다!”
“…….”
중학생이 8살짜리한테 하는 소리 하고는…….
난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좋아, 하지만 형도 하나 약속해줘.”
“…….”
“우리 공연 보고도 정말 삼류라고 생각한다면 형 손에 죽는 건 둘째 치고, 공연비 안 받고 갈게. 대신에 그 반대면…….”
난 남자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사과해야 해, 특히 우리 선생님에게.”
“칫!”
남자애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에잇! 짜증나.”
그리고 자리를 뜨려 했다.
“아, 형 잠깐만.”
훽!
남자애는 걸음을 멈추었다.
“또 뭐!”
“혹시 끔찍하게 아끼는 동생 앞에서도 우리에게 하는 것처럼 험한 말 하는 거 아니지?”
“…….”
“돌 된 아기라고 해서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 돼, 다 알아듣는다? 심지어 따라 할지도 몰라.”
“……!”
이 말에 남자애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난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내 모습을 관찰을 해 왔기 때문에 알고 있다.
“난 불과 7년 전 일이라, 기억하고 있거든. 진짜야, 믿어도 돼.”
흥―!
난 콧방귀를 뀌고 돌아서 가버렸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김덕후의 뒷모습을 보며 남자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 7년 전 일이라 기억한다고?”
* * *
“하하~ 이야~ 우리 공주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네요! 이쁜 아이돌이 되려고 하는 걸까요?”
돌잡이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나와 정진은 단상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훗, 마이크를 잡다니.
나의 돌잔치 때가 떠올라서 웃음이 나왔다.
“아버님~ 가수 어떠십니까?!”
“아이고~ 좋죠! 우리 이쁜 딸 가수 되면 너무 좋겠다아~! 하하!”
내 돌잔치 때의 반응과는 천지 차이다.
나 때는 마이크를 잡았다는 이유로 돌잔치가 파행될 분위기였는데.
쿵짝, 쿵짝.
그저 아버님과 어머님은 신나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마이크가 아닌 어떤 걸 잡아도 좋아할 것처럼 보였다.
아기가 건강하게 첫 돌을 맞이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모습.
내 어머니와…… 김 부장도 아마 그랬었겠지?
“네에~ 그럼 돌잡이는 이것으로 마치고요!”
약속된 멘트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콩닥, 콩닥.
가슴이 두근거린다.
못 해도 하객이 100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데.
김천 자두 포도 축제의 관객 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밀폐된 공간이라 그런지 더 꽉 차게 느껴졌다.
꼬옥.
정진이 내 손을 잡았다.
“덕후야, 괜찮아, 형이 옆에 있잖아.”
젠장, 10살짜리 어린애한테 의지를 하다니.
그런데도 묘하게 안심이 되고 진정이 되었다.
“심호흡 크게 하고, 떨지 말고. 그냥…… 음…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가 될까?”
정진은 날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회전목마 탄다고 생각해. 목마에 몸을 맡기고 논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아주 주옥같은 비유였다.
팔에 닭살이 돋으려고 할 때쯤.
“현재 지방 순회공연 중이라고 하네요! 공주님 첫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늘 아침에 김천에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멘트가…….
“당신들의 마음을 모두 휘젓겠다고 세상 여인들에게 선전포고를 던진~ 백색의 사나이, 정진!”
신바람이 준비한 것을 읽는 것 같다.
“나를 보는 순간 모두 내 노예가 될걸? 흠! 흠! 아, 죄송합니다. 당신 머릿속에 영원히 각인될 핑크핑크~ 핑크 요정! 김덕후!”
사회자는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한번 쉬었다. 마이크를 떼고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분명 입모양은 ‘도저히 못 해 먹겠다.’였다.
“불세출의 두 남자가 듀엣을 결성했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방울~ 형제!”
―소개 듣다가 시간 다 가겠네.
―적당히 좀 하지.
―방울인지, 딸랑인지 알 게 뭐야?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자를 비난하고 있었다.
이제 사회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고, 반면에 신바람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개가 길었죠? 하하, 방울형제가 부릅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뭐지? 처음 들어 보는데.
―제목이 좀…….
빰 바바밤~ 빰바바바밤~ 빠라빠라~
전주와 동시에 우리 둘은 단상 위로 올라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안녕하세요~!”
우리는 준비해 둔 멘트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방울형제~ 인사 올립니다~ 유후!”
툭 다라다닷 툭 다라다닷!
반주에 맞춰서 우리 둘은 흥겹게 손가락 박수를 쳤고.
신나는 리듬에 앞자리에 계신 몇 분은 벌떡 일어나셨다.
두구두구두구 빵! 빵! 바라바라 밤~!
반주가 끝나고.
첫 소절은 정진이 시작했다.
이리 오너으라~ 행복은 이리 오너라~!
마이크를 쭉 빼면서 화려하게 부르는 정진의 창법.
마이크를 무릎까지 내렸다가 올리며 음량을 조절한다.
딴 사람 말고~ 공주님께~ 오너라~!
정진은 돌을 맞이한 아기를 향해 손을 뻗치며 불렀다.
‘이리 오너라’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에 비견되는 트롯계의 축가다.
이젠 내가 부를 차례.
사랑도~ 음음~
왼쪽 어깨 땡기고.
돈도~ 음음~
오른쪽 어깨 땡기고.
명예도~ 음음~
양쪽 어깨로 어깨춤을 추면서.
빠바밤―!
모두 다 공주님께~ 오너라으라으라으~!
노래가 맘에 드는 것일까?
내 마지막 손짓에 공주님은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심지어 박수도 마구 쳤다.
이제 후렴 부분.
이제부터는 정진과 합창으로 불렀다.
사랑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그것은 공주님이야~
좋은 것들은 모두! 공주님께 오너라으라으~
어서 어서 이리 오너라~~
빠바밤~!
정진은 소매를 걷으며 외쳤다.
“덕후야, 가자!”
“달려엇~!”
우리 둘은 단상 아래로 뛰어 내려갔고.
빰 바바밤~ 빰바바바밤~ 빠라빠라~
하객들과 함께 미친 듯이 즐겼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따라 부르기 쉬운 곡이기 때문에 마이크를 갖다 대면 대충 알아서 불렀다.
“어머! 어머! 걷는다!”
그때 공주님이 일어나서 조금씩 발걸음을 떼었고.
노래에 맞춰서 함께 즐기고 있던 아빠 엄마는 놀라서 카메라를 찾았다.
우리의 노래는…….
공주님을 일어나 걷게 했다.
* * *
헉, 헉.
찰싹!
나와 정진은 무대 뒤에서 하이파이브를 했다.
“아~ 개운하다! 그치, 덕후야?”
“응! 하하.”
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
오랜만에 심장을 울리는 빵빵한 사운드가 들리니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공연이고 뭐고 정신 놓고 즐겼고, 돌잔치 장소는 하나의 무도회장이 되어 버렸다.
하객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았다.
계획한 곳은 두 곡이었는데, 호응에 흥이 올라 결국 다섯 곡까지 부르고 내려왔으니.
“얘들아~!”
사회자는 우리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와~ 너희 대단하다. 정말 놀랐어, 난 그냥 재롱 잔치 수준일 줄 알았는데.”
“하하, 감사합니다.”
“너희 혹시…… 소속된 곳이 있니?”
그러면서 우리를 바라보는데.
눈빛이 뱀처럼 변하는 것 같았다.
정진은 신나서 뭐라 대꾸하려 했는데.
“그건 저희 선생님한테 물어보세요.”
내가 정진의 말을 막았다.
저런 눈을 가진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흠! 그래, 갑자기 왜 정색을 하고 그러냐? 아무튼 수고했다!”
사회자는 입맛을 마시며 돌아갔고.
정진은 내게 물었다.
“너, 왜 그래?”
“형, 일 관련해서는 함부로 얘기하면 안 돼.”
“…….”
“우린 미성년자잖아, 조심해야 한다고.”
“흠, 그래?”
신기하게도 사회자가 사라지자마자 신바람이 들어왔다.
신바람이 없는 타이밍에 맞춰서 접근한 건 아니었겠지?
“얘들아~ 수고했다.”
“하하, 넵!”
“어땠냐?”
“재밌었어요~!”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오냐~ 재밌었으면 됐다. 지켜보는 나도 재밌더라. 공주님한테 좋은 추억이 됐을 거야.”
그리고 신바람은 짓궂은 표정으로 우릴 바라봤다.
“근데 너희들, 무대가 고팠냐? 아주 제대로 뛰던데?”
“하하, 티 많이 났어요?”
정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그리고 덕후야.”
신바람은 날 바라봤다.
“속 괜찮지?”
“엇?”
아, 맞다!
그렇네? 인지 자체를 못 하고 있었다.
“네! 안 울렁거려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노인정 방바닥에서 공연할 때도 살짝 울렁거렸었는데.
이번엔 전혀 그런 느낌 없었다.
“얀마, 그게 듀엣의 힘이다.”
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혼자일 때와 함께일 때는 이래서 다른 거야.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그게 관계의 힘이지.”
관계의 힘…….
“무대에 선다고 해서 무조건 울렁거리는 건 아닌 걸 보면 뭐 심각하진 않네.”
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자, 가자.”
우리는 신바람의 뒤를 따라서 출입구로 향했다.
출입구에 가까이 가니, 한 소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2병 걸린 남자애였다.
흡!
신바람은 그 아이를 보자 화들짝 놀라더니 눈을 깔고 못 본 척 지나가려 했다.
“저…… 아저씨.”
남자애는 신바람을 불렀다.
“아까…… 죄송했어요.”
할 말이 끝나자, 그는 몸을 홱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가며 한마디 했다.
“나, 약속 지켰다.”
“…….”
훗.
그냥 병 걸린 게 맞구나?
언젠가는 나을 병.
싹수가 노란 녀석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사과를 받은 신바람은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