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호암회관(1)
“쌍방울형제.”
씨바…….
흡!
욕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정진도 어이가 없었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생님, 혹시 속옷 광고 노리려는 큰 그림이 있으셔서……?”
“아닌데?”
“그냥 농담하신 거죠?”
“…….”
신바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희들 듀엣으로 활동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잖아.”
“…….”
“쌍방울형제, 이게 팀 이름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정진과 팀을 이뤄서 활동하고.
팀명은 뭐? 쌍방울형제?
많고 많은 이름 놔두고 올드하고 오해 살 만한…… 이런 이름으로 간다고?
내 이름도 그렇고, 이번 생의 작명운은 왜 이러지?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라.”
“왜 쌍방울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논리로라도 설득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신바람에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왜, 맘에 안 드냐?”
“일단 이유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신바람은 빙그레 웃으며 대꾸했다.
“너희 둘이 방울처럼 조그맣고 귀엽잖냐, 방울 소리가 청아하기도 하고. 거기다가 남자 둘이니 더 결속력 있게 보이려고 형제라는 단어를 넣은 거고.”
“…….”
“그래서 ‘쌍방울형제’라고 지은 건데? 왜, 맘에 안 드냐?”
좋아,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건 너무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다.
정진은 그냥 유치하고 멋없어서 싫어하는 눈치인데.
난 성인의 머리를 갖고 있다.
이름에서 느껴지는 은유적인 표현을 모를 리 없다.
또한 팀명을 이렇게 지어 놓으면 여러 문제 될 만한 것들도 있어 보였다.
“선생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어때, 괜찮지? 자꾸 듣다 보면 괜찮다니까?”
신바람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웃었다.
“근데…… 금방울, 은방울도 아니고 쌍방울입니까?”
“어?”
신바람은 눈을 끔뻑거렸다.
살짝 당황스러운 눈빛이다.
“그야 당연히 방울이 둘이라서 쌍방울이라고 지은 건데? 너희, 둘이잖아.”
“정말 그 뜻만 생각하신 겁니까?”
신바람은 웃음을 흘리며 얼버무리듯 말했다.
“뭐…… 남자답고 좋잖아? 으하하!”
정진은 우리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덕후, 너 이 녀석! 너무 조숙한 거 아니냐?! 선생님의 깊은 뜻을 이렇게 빨리 알아차리다니!”
“이름 갖고 장난치시면 안 됩니다.”
안 그래도 내 이름 때문에 짜증 나 죽겠는데! 팀명까지 이렇게 지을 순 없다.
“약간은 저속한 것이 인간다운 것이니라.”
“…….”
“허례허식을 벗어난 본연의 것.”
“그것을 꼭 쌍방울로 표현해야만 합니까?”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신바람은 포기할 뜻이 없어 보였다.
규칙과 법제로 접근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가 만약 유명해져서 TV에 나갈 기회가 생긴다면?”
“…….”
“과연 공중파에서 8살, 10살 아이 둘의 팀 이름을 ‘쌍방울형제’로 소개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런 이름을 가진 아이들에게 방송 출연을 요청할까요?”
“아니, 왜? 그럴 수도 있잖아? 이름이야 사람마다 받아들이기 나름인데?”
난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저희가 엄청난 유명세를 이미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방송사에서 신인 가수를 위해 모험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
“이름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닌데 왜 그런 무리수를 두시려 하시나요? 저희 앞길도 생각해 주셔야죠.”
정진은 도통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있다가 언성이 높아지자 날 쿡쿡 찔렀다.
“덕후야, 도대체 뭔 얘기를 하는 거야? 나도 알아듣게 설명 좀 해 줘.”
“이따가 얘기 다 끝나고 설명해 줄게.”
신바람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실실 웃으면서 말했는데 방송국을 들먹이니 조금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게…… 좀 그럴까?”
“그렇다니까요?”
아…… 제발!
“쩝.”
신바람은 고민하다가 머리에 쥐 난 것처럼 뒷머리를 긁으며 대충 뱉었다.
“알았다! 그럼 ‘쌍’만 빼. 방울형제로 해.”
“…….”
방울형제.
그나마 다행이다.
* * *
주변은 어느덧 깜깜해져 있었고.
우리는 어두운 골목길을 걸었다.
“헉!”
정진에게 아까 신바람과의 대화에 대해 설명해 주자 그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진짜? 쌍방울이 그런 뜻이었어?”
“생각해 봐, 어울리잖아.”
아연실색한 정진은 얼굴을 숙여 자신의 사타구니를 내려다본 후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와…… 선생님 너무하시네!”
신바람은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정 그게 그렇게 맘에 들면 가명을 신바람 말고 쌍방울로 짓든가.”
“장난이셨겠지.”
“아닐걸?”
“하하…….”
‘방울형제’도 촌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쌍방울형제’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왁자지껄 떠들며 밤길을 걸었다.
처음엔 주택가였는데, 걸어갈수록 주변에 나무와 풀밖에 보이질 않는다.
산속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
“오냐.”
난 앞서가는 신바람을 불렀다.
“이 길 맞아요? 인기척이 전혀 없는데요?”
“맞을걸? 일단 길이 찻길이잖아.”
하긴 주변이 너무 어둡고, 산속이긴 했지만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찻길이긴 했다.
“제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마라. 우리가 가야 할 곳이 ‘호암회관’이거든? 잘 살피면서 가 봐~ 먼저 찾는 녀석은 내가 칭찬해 주마.”
호암회관?
이번에도 어르신들 상대로 행사하는 건가?
“선생님~ 이번엔 무슨 행사예요?”
정진도 궁금했는지 물었다.
신바람은 피식 웃고는 대답했다.
“무슨 행사든 뭔 상관이야? 너희는 즐겁게 노래만 부르면 되는데.”
“…….”
“무대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 건 좋지 않아.”
“하지만 대상이 누군지를 알면 맞춰서 준비할 수가 있잖아요? 관객들이 더 좋아하실 수 있게.”
“호오…….”
신바람은 내 대답에 재밌다는 듯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틀린 말은 아니야. 하지만…….”
신바람은 내 이마를 검지로 쿡 누르며 말했다.
“아직은 거기까지 생각할 단계는 아니다.”
“…….”
“상대가 누구든, 장소가 어디든 간에 네 것을 할 수 있는 게 지금은 더 중요해.”
그때 정진이 외쳤다.
“엇! 호암회관이다!”
저 멀리 앞에 노란 등이 보였고, ‘호암회관’이라고 써져 있었다.
등 하나 없는 으슥한 산길을 걸어왔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자~ 어서 가 보자!”
신바람을 따라서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호암회관 정문에 도착.
현대식 외벽에 한옥 모양의 지붕.
건물은 생각보다 꽤 컸다.
“와~ 뭔 차가 이렇게 많어?”
주차장도 넓은 편이었는데 못 해도 차가 10대는 넘어 보였다.
꿀꺽.
호암회관, 이름만 듣고 은소 마을 행사를 떠올렸는데.
건물 외형과 많은 차를 보니 갑자기 긴장감이 훅 올라왔다.
반면에 정진은 더 생기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히히!”
여러 사람 앞에서 공연한다는 생각에 설레는 모양이다.
난 얼마나 더 경험해야 정진처럼 될 수 있을까?
“덕후야, 뭐 하니? 어서 따라 들어와라.”
“네, 선생님.”
건물 내부는 나무로 되어 있었고, 노란 조명과 어우려져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엄마, 아빠랑 짝짝꿍.”
“할머니, 할아버지랑 짝짝꿍.”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동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떳다, 떳다, 비행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질리도록 들었던 동요.
맨날 트롯만 듣다가, 오랜만에 들으니 신선했다.
“뭔데 자꾸 애들 노래가 들리지?”
정진은 짜증 난다는 듯 투덜거렸다.
복도 안쪽에 하늘색 한복을 입은 한 남성이 보였다.
“엇?”
그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본 듯했다.
노랑, 하얀, 핑크 정장.
“어서 오세요~ 다행히 늦지 않게 오셨네요. 노래하러 오신 분들 맞죠?”
신바람은 시계를 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좀 더 일찍 와야 하는데, 여기 찾아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괜찮습니다, 축하공연은 돌잡이 이후에 할 거니까요. 아직 시간 충분합니다.”
뭐? 돌잡이?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인사했다.
“저희 딸 첫 번째 생일잔치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먼 곳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아닙니다, 불러 주셔서 저희가 감사하죠. 오늘 주인공이 공주님이시군요?”
“하하, 네~ 돌잔치인 거 모르셨나요?”
“그건 알았습니다~ 왕자님인지 공주님인지만 몰랐어요, 허허.”
남자는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이구~ 참 잘도 생겼다~ 옷도 멋지고.”
“감사합니다.”
남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바람을 바라봤다.
“어서 식사 먼저 하시죠, 배고프실 것 같은데.”
유리문 너머에는 뷔페가 펼쳐져 있었다.
아까부터 나와 정진의 눈은 그곳에만 꽂혀 있었다.
남자의 이 말이 무엇보다도 반가웠다.
“하하, 그럴까요?”
신바람은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너무 많이 먹지 마라~ 목소리 안 나오니깐?”
* * *
네 접시째.
라면과 밥, 김치, 나물을 벗어나 이런 도시적인 음식, 얼마 만인지.
넘치는 식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옆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나와 정진은 정신 놓고 먹었다.
“덕후야, 선생님이 행사 진짜 잘 잡으신 거 같아.”
“그러게 형, 아주 마음에 드네.”
우리는 신나게 재잘거리며 먹고 있는데.
“니들 뭐냐?”
스포츠머리에 불량한 눈빛.
중학교 1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애가 눈살을 찌푸리고 우릴 바라봤다.
마침 신바람은 음식을 담으러 가고 없었다.
“삐에로야, 뭐야? 옷 꼬라지 하고는…… 누구 허락받고 들어온 거야?”
우리를 보는 눈빛이.
아주 기분 나빴다.
벌레? 혹은 불결한 무언가를 보는 듯한, 경멸에 가득 찬 눈빛.
“당장 꺼져, 처맞기 전에. 감히 내 동생 첫 번째 생일에 거지새끼들이…….”
벌써부터 질풍노도의 시기인가?
이 녀석은 단어 선택에 거침이 없었다.
눈빛도 정상적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뭐라도 기분에 안 맞으면, 당장 무슨 짓이라도 벌일 것 같았다.
급기야 남자애는 나와 정진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안 들려? 안 일어나?”
“얘야, 무슨 일이니?”
그때 신바람이 나타났다.
“아저씨는 뭐예요?”
노란 정장을 입은 올백 머리.
나와 정진은 아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신바람은 나이가 50에 가깝다.
남자애의 눈에는 우리보다 신바람이 훨씬 더 비정상적으로 보일 것이다.
“초대받은 가수인데?”
“씨바, 가수?!”
쳇, 남자애는 고개를 돌리고 콧방귀를 끼었다.
씩 웃는데 담배를 피우는지 이빨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애는 아니구나.
“웃기고 있네, 누구 허락받고 들어왔어요?”
“너희 아빠 허락.”
“…….”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아빠를 이렇게 욕해도 되는 거야?
원수 같은 인간의 아들로 태어난 나도 다른 사람에게 욕은 안 하는데.
너무 말이 심해서 듣지 않으려 했다.
“너…… 말이 좀 심하구나?”
하지만 신바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뭐?”
“아빠한테 그렇게 말하면 쓰니? 네 동생 축하해 주려고 부른 것뿐인데?”
“참나. 아저씨가 뭔데? 뭘 아는데?”
“이러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지.”
“이 아저씨. 이빨 봐라?”
“…….”
“말씀을 아주 잘 하시네?”
그리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신바람에게 점점 다가왔다.
남자애는 거침이 없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았다.
나도 중학생 되면 저럴까? 내가 전생에 중학생 때 어땠었더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적어도 저러지는 않았던 거 같다.
미친개라고 생각했는지 신바람은 남자애를 무시하고 가려 했다.
“거기 서!”
남자애는 포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신바람의 소매를 거칠게 잡아채었다.
“노랭아, 서라고 했지?”
신바람은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는데,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조금 무섭긴 하지만, 난 도저히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결국 난…… 참지 못하고 나섰다.
“형, 잠깐만.”
난 남자애를 불렀다.
“뭐? 나?”
“내가 해 줄 얘기가 있어.”
난 남자애에게 가까이 다가가 귓가에 소곤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