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은소 마을(2)
어르스름한 커다란 방 안.
커다란 창이 하나 있고.
그 창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노란 방바닥 위에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할머니 넷.
김덕후와 정진이 노래 부를 때 계속 일어서서 즐기고 싶지만.
허리와 다리에 한계가 오기 때문에 벽에 기대어 앉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너무 좋아서~ 환장하겠네~!
평범한 농촌의 오후가 오늘 두 아이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
핑크 정장과 하얀 정장을 입고 방 안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노래 부르는 두 아이.
그 뒤에서 노란 정장을 입은 남자는 스텝을 맞추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후르르르흐! 요후르흐~!”
때로는 할머니 앞에 가서 박수를 유도하며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싸~ 싸~ 와싸~ 유후~!”
아무런 반주도 기계음도 마이크도 없었지만.
공간을 가득 채우는 박자 소리가 있었고.
툭 다라다닥! 툭 다라다닥!
두 아이는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고, 두 손과 발은 악기가 되어 박자를 탔다.
온몸으로 공연을 했다.
스피커 하나 없는 자그마한 방이었지만 아주 풍성한 공연장처럼 느껴졌다.
절대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성하고 정겨운 공연.
툭 다라다닥~ 따닥~!
헉헉!
김덕후와 정진은 연이어 3곡을 불렀고, 그 이후에 앵콜로 2곡을 더 불렀다.
손바닥이 시뻘개질 정도로 있는 힘껏 박자를 치며 노래 부른 두 아이.
마지막 곡을 끝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할머니~ 즐거우셨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정진이 말했다.
―오냐~ 아주 잘했어~!
―좋구나~!
옆에서 김덕후도 웃으며 말했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정진도 어리지만, 그 옆에 더 어리고 조그만 김덕후가 웃으면서 얘기하자 할머니들은 녹아 버렸다.
―허이구~ 이걸 어째야 할까?
―어쩜 옷도 그렇게 곱게 입었어~?
김덕후는 할머니들의 말에 애교 섞인 미소로 화답했다.
신바람은 옆에서 그런 김덕후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봤다.
‘짜식, 이제 잘 웃네? 그래, 그렇게 웃어야지!’
어떠한 가식도 노력도 없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웃음.
행복함에서 번져 나오는 웃음.
김덕후는 지금 그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째~? 할머니들, 노래 한 곡 더 할까요?”
정진이 웃으며 소리쳤다.
완전히 땀에 절은 얼굴인데도, 할머니들이 좋아하시니 더 달려 보려 했다.
“어이쿠 좋…….”
할머니 한 분이 일어나면서 달릴 준비 하시는데, 그 옆에 있던 할머니 못 일어나게 잡아끌었다.
“아, 왜?”
“아가들 힘든 거 안 보이나?”
“…….”
“이 정도 봤으면 됐다. 이제 고마 쉬게 하자.”
그 옆에 있던 다른 할머니도 말했다.
“그래~ 그만하고, 맛난 거나 멕이자고. 아가들 힘들어서 안 돼.”
흥이 가득 차올랐던 할머니는 두 할머니의 만류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생각이 짧았구먼.”
그리고 정진을 향해 손사래 쳤다.
“아가~ 됐다. 이제 일로 온나. 앉아서 좀 쉬라.”
세 남자는 할머니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힘들까 봐 배려해 주려는 마음을.
한 곡을 더 하려고 폼 잡았던 정진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신바람을 바라봤다.
“…….”
신바람은 별다른 말 없이 정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정진은 손가락 박수를 치려고 올렸던 손을 내렸다.
“뭐 하노? 어서 온나!”
할머니들은 정진과 김덕후를 향해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정진과 김덕후는 서로 마주 보다가 활짝 웃으며 할머니들에게 뛰어갔다.
이제 진짜 아이가 되어 버렸다.
이제 가수가 아니라 그냥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아이였다.
“할머니~ 우리 윷놀이해요!”
* * *
우리는 방 안에서 할머니들과 신나게 윷놀이를 했다.
‘놀이’라는 걸 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여름방학 시작과 동시에 신바람을 만나서 3주가 넘는 시간을 계속 훈련만 했다.
내가 원했던 것이긴 하지만.
“우하하! 모다! 모!”
정신이 어쨌든 난 8살 아이였다.
막살 놀기 시작하니, 난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너무 즐거워서 윷놀이에 푹 빠져 버렸다.
“크하하, 덕후야! 잘했어~ 이번에 걸 이상만 나오면 끝나!”
정진 또한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난 윷을 높이 던졌고.
털썩.
“윷이다!”
“우와~!”
덩실덩실.
나와 정진은 서로 얼싸안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하이고~ 마, 아가들이 노래만 잘 부르는 게 아니구만?”
“그러게 말이야. 허허.”
할머니들은 기뻐하는 우리를 보며 그저 웃으셨다.
어느덧 오후 2시.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다.
“할머니~ 배고파요~!”
어느새 우린 할머니들과 너무 편해졌다. 이런 말도 그냥 쉽게 나왔다.
“오냐~ 우리 집 가자. 할매가 맛난 거 해 주께.”
“아니다, 우리 집으로 온나. 집에 해 놓은 반찬 있다. 차리기만 하면 된다.”
할머니들은 서로 자기 집으로 가자며 안달이었다.
그때 이장님이 나섰다.
“은소 마을을 방문해 주신 손님이기 때문에, 음식은 마을 차원에서 준비를 해 놨습니더.”
“…….”
“요 앞마당에 불 피워 놨으니까, 다들 그쪽으로 모이소~!”
지글지글.
이장님은 바비큐에 목살을 구워 주셨고.
할머니들은 집에서 각종 먹거리를 가져오셨다.
한집에서 차린 게 아닌, 십시일반으로 모인 밥상.
완전히 진수성찬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는 크게 소리쳤고.
옆에서 신바람도 웃으며 외쳤다.
“저두요! 하하.”
우리 셋은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은 흐뭇하게 지켜보셨다.
“아가들 셋이 많이 시장했나 보구먼.”
흡!
이 말에 신바람이 살짝 반응을 보였다.
“할매~ 저 아가 아입니더~!”
신바람은 경상도 사투리로 말했고, 할머니는 웃으며 대꾸하셨다.
“당신 정도면 새파란 아가지~ 60전까지는 아가다 마!”
“에헤이~ 할매~!”
신바람은 할머니와 투덕거리며 말을 주고받는데.
사투리를 너무 잘했다.
할머니도 궁금하여 물어볼 정도였다.
“근데, 노란 아가는 집이 이쪽인가베?”
“아입니더, 저 서울 사람입니더.”
“맞나? 근데 뭔 말을 이 동내 사람처럼 하나?”
“하하, 이리저리 싸돌아가 저 못 하는 사투리 없습니더~!”
흉내 정도가 아니라 정말 경상도가 고향인 사람처럼 너무 익숙하게 말을 잘했다.
근데 무주나 김천에서는 사투리 쓰는 걸 못 봤는데?
먹는 중에 궁금하여 물어봤더니.
“얀마, 무주나 김천에서는 어르신들과 대화할 일이 없었잖냐.”
“네?”
“어르신들은 사투리를 써야 더 듣기 편하시거든. 젊은 사람들이야 뭐 상관없지만.”
“아, 그래서 일부러…….”
지금 어르신 배려한 거였어? 장난친 게 아니라?
신바람…… 볼수록 양파 같은 사람이네.
내가 멍하니 그를 지켜보고 있자, 멀뚱히 날 바라봤다.
“뭐 하냐? 어서 안 먹고?”
“아, 네.”
그렇게 밥을 다 먹었을 때쯤 정진은 옆에 계신 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근데~ 왜 오늘은 할머니들만 모이신 거예요?”
“응?”
“할아버지들은 아무도 안 계셔서요.”
“아~!”
할머니는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먼저 갔지~!”
“어디를요? 먼저 갔으면 할머니도…….”
정진이 말하려는데, 신바람이 황급히 정진의 손을 꽉 잡았다.
“네?”
그는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저었다.
정진은 어리다 보니, 할머니들이 말한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듯싶었다.
하지만 난…… 뭔지 알아차렸다.
일단 신바람이 말을 못 하게 하니, 입은 다물었지만 여전히 이해 못 해서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 정진.
난 그에게 귓속말을 해 주었다.
“형, 할아버지들은 돌아가셨다는 거 같아.”
“아…….”
그제야 정진은 이해하고 표정이 샐쭉해졌다.
“먼저 가신 양반도 오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아쉽고마~!”
“괜찮아~ 좋은 거 많이 하고 있을 거야.”
“그러려나? 나 두고 먼저 간 양반이 더 잘살고 있으려나?”
할머니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만,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았다.
급기야 정진은 조심히 말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해서…….”
“괜찮다, 혼자 산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것도 다 삶이다.”
“…….”
“그리움도 외로움도 다 삶이다.”
할머니는 쓸쓸히 웃으셨다.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어느덧 늦은 오후가 되어가고 있었다.
신바람은 시계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어이쿠, 시간 가는 줄 몰랐네? 얘들아, 어서 갈 준비해라.”
신바람은 옷을 털면서 말했다.
“다음 행사 뛰러 가야지! 여기 하루에 버스 두 대밖에 안 와. 5시 차 놓치면 행사 펑크 난다.”
“알겠어요!”
우리도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갈 준비를 했다.
할머니들은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이장님이 나서서 말했다.
“온 김에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 방도 많은데…….”
“아, 네. 저희도 그러고 싶은데 저녁에 일정이 있습니다.”
신바람은 굉장히 미안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원래는 어르신들 뵙는 행사 오면 하루 정도는 있다가 가는데…… 어째 이번엔 이렇게 됐네요. 죄송합니다.”
신바람이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이장은 당황하여 손사래 쳤다.
“아입니더, 뭐 죄송할 것까지야…….”
그들은 마을 입구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김천의 무대에서 아쉬워하는 관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들은 진심으로 아쉬워했고, 할머니들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어쩔 수 없다는 소리 없는 눈물.
이별에 대한 익숙함이 느껴지는 눈물이었다.
한과 정이 담긴.
그 모습을 보며.
가슴에 무언가 각인이 되는 것 같았다.
단순한 노랫말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감정.
“안녕히 계세요!”
부웅―!
우리는 큰 소리로 인사하고 버스에 탔다.
* * *
어둑해지고 있는 시골길.
도로 양옆으로 커다란 나무들이 드리워져 있고, 시골버스는 그 나무터널을 지나갔다.
나뭇잎 사이로 뚫고 나온 석양이 버스 안을 비추고 있었다.
버스 안에는 우리 세 사람밖에 없었다.
“얘들아. 너희 아까 좀 하더라?”
신바람은 시니컬하게 말했고.
우리는 묵묵히 들었다.
“확실히 자질들이 좀 있는 것 같긴 해. 손가락 박수도 반나절 만에 익힐 수 있는 게 아닌데.”
신바람답지 않게 칭찬을 다 해 주네.
“근데 말이야…….”
신바람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게 깔렸다.
“오늘 너희들 무대 보면서 선생님이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아, 어째 불안한데…….
“너희 둘, 죽이 잘 맞더라?”
“…….”
“정진의 걸걸한 음성. 덕후의 청아한 소리.”
“…….”
“정진은 곱상하게 생겼다면, 덕후는 남자다운 느낌이 강하지.”
“…….”
“정진은 빠른 박자에 강하고, 덕후는 당기는 박자를 잘 타고.”
왜 자꾸 나와 정진을 엮듯이 말하지?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면서 시너지 효과를 낸단 말이야?”
정진의 표정도 조금씩 불안해지고 있었다.
신바람의 입에서 뭔가 나올 것 같았고.
막상 그가 하자고 하면 해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너희 둘이 듀엣으로 활동하는 게 좋겠다.”
신바람은 답을 찾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듀엣?”
“듀엣이요?”
나와 정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황당하여 되물었다.
갑자기 웬 듀엣을.
“너희가 아까 노인정에서 첫 곡 시작할 때부터 느낌이 빡! 오더군. 내내 궁리했어, 팀 이름도 생각해 놨다.”
“…….”
갑자기 너무 일사천리인데?
“팀 이름은…….”
해가 져 가는 안동의 시골길.
이제 풍경은 눈에 안 들어오고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