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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34화 (34/250)

34화. 역사의 시작(2)

앞 좌석의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있다.

이 순간 정진은 슈퍼스타였고, 관객들은 단순한 노래자랑 이상으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동터 올 때까지만~ 니 꺼 할래!

어느덧 꽉 찬 3분이 지났고.

마지막 가사가 끝남과 동시에 정진은 무대 중앙에서 숨을 헐떡였다.

“헉! 헉!”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

뭔가 개운한 듯 아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우와아!

관객들은 난리가 났다.

흡사 유명 인기 가수의 공연을 본 것처럼.

정진! 정진!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엄살 부리던 그 정진이 맞나?

그전의 진조아의 무대도 좋았지만, 관객 호응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신나는 노래를 부른 이유도 있겠지만, 정진은 정말 노래와 무대를 즐겼다.

그 감정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졌고, 관객들도 덩달아 즐긴 것이다.

―아~ 속이 후련하다.

―진짜 시원하게 부르네.

정진은 트롯 가수답게 정중하게 관객들에게 인사하며 내려왔다.

“즐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진이었습니다!”

―우와아~!

정진은 무대 밖으로 걸어 나오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네~ 트롯 신동 정진의 무대였습니다! 역시~ 실력은 어디 가지 않네요!”

사회자는 웃으며 말했다.

“근데~ 시작 전에도 말씀드렸었지만~ 무대를 보고 나니 더 반칙처럼 느껴지는데요? 하하!”

사회자는 시간 공백을 주기 위해 재미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형~!”

무대 뒤로 나온 정진을 난 반갑게 맞이했다.

형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 좋다!”

그는 말 그대로 개운해 보였다.

“진짜 멋있었어!”

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를 꼭 안아 주었다.

2주를 동고동락한 사이다.

내 무대가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동료가 무대를 잘 해냈다는 게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형이라 부르긴 하지만…….

어쨌든 10살짜리 꼬마다.

어른의 시각인 내 눈으로 봤을 때 대견하기도 했다.

“하하, 고마워.”

정진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처럼만 하면 돼, 알겠지?”

“응…….”

“에이구, 우리 덕후, 너무 긴장하지 말아야 할 텐데!”

“…….”

“마지막 참가자죠? 이번 노래자랑 최연소 참가자입니다!”

헉!

왔구나, 드디어 올 게 왔구나…….

갑자기 손발이 뻣뻣하게 굳는 것 같다.

“마지막 참가자라는 것에서 느낌이 오십니까? 보통 실력자가 아닙니다! 최연소 참가자지만, 예심 최고점을 받은 참가자기도 합니다!”

엇, 내가 예심 최고점이었어?

그건 몰랐는데.

난 정진을 돌아보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피식 웃었다.

“뭘 놀라냐? 주최 측에서 순서 배정해 주는 거 보고 못 느꼈어?”

“몰랐지, 내가 이런 거 경험이 있나?”

아, 속이 안 좋다. 이상하다.

“나이답지 않게 이름이 아주 후덕하네요~ 하하!”

갑자기 속이 걷잡을 수 없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너, 실력 좋아, 인마. 쫄지 말고 가서…… 엇?!”

“욱…….”

갑자기 머리가 띵.

구역질이 올라온다. 참을 수가 없다.

“우웨엑―!”

“더, 덕후야!”

결국 난 그 자리에서 바닥에 토해 버렸다.

* * *

“소개합니다! 6번 참가자~ 김덕후 어린이입니다!”

―우와아~!

“…….”

소개가 끝났지만, 무대 뒤는 조용했다.

사회자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최연소 참가자라고 말씀드렸죠? 올해 8살입니다. 아무래도 긴장한 듯한데요?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우와아!

짝짝짝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어머, 8살이라고?

―노래나 제대로 부를까?

―뭐, 어때~? 노래자랑인데. 아가들 재롱잔치 보면 귀엽던데 뭐.

“…….”

그래도 무대 뒤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사회자는 스태프를 찾았다.

“뭐예요? 왜 안 나와요?”

“속이 좀 안 좋은지, 방금 구역질을 했어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노래는 부를 수 있대요.”

“아…… 그 친구, 혹시 무대가 처음인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울렁증이네, 그거 쉽게 안 가라앉는데. 하필 오늘 관객도 많기도 하고…….”

사회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시간 벌이용 멘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천의 도시 유래를 아시나요? 김천은 예로부터…….”

뜬금없는 역사 이야기에 관객들 표정이 썩어 들어가려 할 때쯤.

무대 뒤에서 핑크빛이 번지고 있었다.

―어머, 어머!

―뭐야?!

무지갯빛이 나는 핑크색 정장.

8 대 2 가르마로 단정하게 한 매끈한 머리.

몸 전체에서 빛이 나는 듯한 꼬마 아이가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관객들이 술렁이자 사회자는 재빨리 뭔가 싶어서 무대를 보았고, 김덕후를 발견했다.

“아~ 드디어 나왔네요! 하하, 참가번호 6번! 김덕후 어린입니다~!”

―우와아!

김덕후의 등장부터 앞자리의 사람들은 일어서 있었다.

그냥 뭔가…… 범상치 않았다.

말 그대로 빛이 났다.

―어머~ 이상해, 8살 아이 보고 왜 가슴이 두근거리지?

―꺅~ 귀여워!

―어머, 어머, 쟤 입술 깨무는 거 봐, 남훈남 오빠 같애!

―짜식…… 크면 힘 잘 쓰게 생겼네, 콧대 긴 거 봐라.

남녀노소 할 거 없었다.

김덕후의 등장만으로 관객석은 후끈 달아올랐다.

“관객 여러분…… 안녕하세요?”

어린아이의 청아한 목소리.

하지만 여리지 않고, 단단했다.

여기저기서 ‘어머’ 소리가 들렸다.

“신인 가수 김덕후, 인사 올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짧고 담백했다.

그리고 자신을 가수라고 소개했다.

어린아이지만 진지했고, 자기 확신이 있어 보였다.

짝짝짝.

술렁이던 관객들도 이젠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김덕후의 노래를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좋은 밤이네요, 제 노래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감동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내 사람’ 보내 드립니다.”

김덕후의 정중한 소개 멘트와 함께 잔잔한 전주가 시작됐다.

잔자자 잔잔! 잔자자 잔잔!

흠― 휴우―!

김덕후는 눈을 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자자자잔 밤! 밤! 빠라빠라밤~♬

흐~~!

* * *

흩어 버린~! 내 청춘아~~!

―우와아!

김덕후의 첫 소절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흐’를 길게 쭉 내뻗더니, 갑자기 채어 버리는데.

노련한 노래 실력에 단번에 관객들 반 이상이 낚였다.

왜~~ 그녀를 보내~~ 었던가아가아~!

잡지를 못 하겠으면~ 다리라도! 걸었어야지이지이~!

왜으왜으~~!!

김덕후가 노래를 길게 뽑아낼 때는 관객들의 모가지도 함께 길어졌다.

완전 심취하고 있었다.

못! 걸었느냐으냐으~!!

한 맺힌 남자의 노래.

떠나가는 여인을 적극적으로 막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가사였다.

뚝뚝.

몇몇 중년 남성 중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보였다.

“자기, 왜 울어?”

옆에 있던 아내가 물었다.

“이상하네? 이 대목에서 왜 울지?”

중년 남성은 눈시울을 닦으며 눈알을 굴렸다.

“왜 울긴! 감사해서 울지! 당신을 붙잡아서, 떠나지 않아서!”

“……흥!”

아내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 주었다.

김덕후의 노래는 이제 끝부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후회해요!

내 옆에 딴 사람이라는 게으게으~!

이상한 광경이었다.

보통 감성적인 여자 관객들이 더 빠져들게 마련인데.

중년 남성 중 눈가를 훔치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 단위로 와서, 대놓고 감정이입을 하지는 못했다.

당신을~~!!

* * *

노래의 마지막 부분.

끝도 없이 꺾어지고 있었다.

하늘 끝까지 닿을 듯.

관객들은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김덕후는 끝을 놓아주지 않았다.

을~~!!

켁켁

여기저기서 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때쯤.

원~ 해요~~!

짜자잔 짜자잔 짠! 짠!

“후우―!”

노래가 끝난 뒤.

김덕후는 깊은 한숨을 쉬었고.

“…….”

김천 자두 포도 축제 메인 공연장은 정적에 휩싸였다.

관객들은 혼이 쏙 빠져서.

박수 칠 생각도 못 했다.

짝짝!

그때 관객석 뒤쪽에서 자그마한 박수 소리가 들렸는데.

신바람이었다. 그는 힘껏 박수를 보냈고.

이를 시작으로 메인 공연장은 난리가 났다.

―우와아아!

짝짝짝!

―김덕후! 김덕후!

일부 흥분한 어르신들은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고.

보안요원들은 이들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덕후! 김덕후!

“자자. 관객 여러분 진정 좀 해 주시고요. 우와~ 꼬마 가수가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네요. 하하.”

사회자도 눈시울을 닦고 있었다.

“없어진 줄 알았던 어릴 적 연애 세포가 아직 살아 있었네요. 맞아요, 우리에게도 청년 시절이 있었고, 사랑으로 아파할 때가 있었죠.”

―김덕후! 김덕후!

―덕후야~ 아저씨네 가서 밥 먹자!

―일로 와! 용돈 받아 가라!

남성들의 환호성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김덕후 어린이! 고맙습니다.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우와아아!

김덕후는 마이크를 잡고 정중히 인사한 후, 입을 막고 무대 뒤로 뛰어갔다.

* * *

“우웨엑―!”

난 무대 뒤로 오자마자 쓰레기통부터 찾았다.

“우웨엑―!”

토닥. 토닥.

누군가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아주 첫 무대라고 홍역을 치르는구나. 괜찮아, 처음이라 그래.”

정진의 목소리였다.

나는 계속 게워 냈고, 내 주변에 참가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진짜 뭐야?

―정말 첫 무대 맞는 거야?

―CD 틀어놓고서 입만 벙긋댄 거 아니야?

약간의 시기심과 함께 모두 경악해 마지않는 분위기였지만, 정진만큼은 태연했다.

“평소보다 못한 건데요?”

“뭐?”

“얘는 그냥 천재예요,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요.”

정진은 활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냥 보고 즐기면 돼요. 덕후한테는 그렇게 해야 돼요. 비교하면 본인 마음만 아프니까.”

휴우―!

구토가 끝났을 때쯤 정진은 날 부축해서 일으켰다.

“난 너 첫날부터 알아봤다니까? 내가 어리긴 하지만 가수를 좀 많이 봤냐.”

“…….”

“수고했어, 덕후야.”

참가자들은 우리 두 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었고.

난 정진과 함께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노란 정장이 보였다.

신바람이 무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난 그를 보자마자, 욱 하고 터져 나왔다.

“선생님!”

“오냐~ 하하.”

난 그에게 달려가 와락 안았다.

내 몸이 떨리고 있었고, 신바람은 그런 날 꼭 안아 주었다.

“속 괜찮냐?”

그는 내 눈가를 손으로 닦아 주었다.

“죄송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정신이 좀 돌아오고 나니 분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노래 직전에 구토했다.

목이 잠겨서일까? 음정이 자꾸 떨어지려 해서 그거 신경 쓰느라 노래에 100% 몰입을 못 했다.

“아니야, 잘했어.”

신바람은 지금만큼은 훈계하지 않았다.

그냥 날 다독여 주었다.

“아주 잘한 거야. 정진이, 너도 일로 와라. 둘 다 아주 잘했어!”

신바람은 한쪽 팔로 날 안고, 다른 손으로는 정진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왔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신바람 선생님 몸에 얼굴을 묻고 더 꼭 끌어안았다.

* * *

무대 뒤편.

김덕후의 노래가 끝난 후.

한참을 멍하니 있던 한 남자는 영상 정지 버튼을 눌렀다.

“아니, 이건 뭐…… 말이 안 되는데?”

그는 영상을 곧바로 다시 돌려 보았다.

“맞아, 이런 건 본 적이 없어. 정말…… 어떻게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 있지?”

그는 흥분한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 무대 뒤편에서 나오는 핑크 정장이 보였고.

그는 더 생각할 새도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대박이다, 진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헉. 헉.

핑크 정장이 눈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열심히 달렸고.

결국 핑크 정장, 하얀 정장, 노란 정장 세 남자 앞에 섰다.

“헉헉!”

갑자기 어둠 속에서 다가온 남자.

신바람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뭡니까?”

이 남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의 눈은 김덕후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얘야! 헉헉!”

“…….”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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