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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33화 (33/250)

33화. 역사의 시작(1)

“기름칠…… 꼭 해야 하는 겁니까?”

난 신바람과 정진을 바라봤다.

신바람은 올백 머리, 정진은 쪽진머리.

자세히 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홀딱 젖은 제비 같아 보이는 건 같았다.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신바람은 뚜껑이 넓은 동그란 용기를 꺼내었다.

거기서 손가락 두 개로 한 움큼 담아 손바닥에 놓고 열심히 비볐다.

“이건 취향이랑 상관없어,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라.”

머리에 기름칠하는 게 왜 예의라는 거지?

“단정해 보이잖냐. 트롯 가수가 바람에 머리가 이리저리 날리면 보기 좋겠냐? 더군다나 야외 공연이잖아.”

“공연 아니고 노래자랑이잖아요.”

“너, 자꾸 말대꾸할래?”

“…….”

결국 난 입을 다물었고.

그는 내 머리에 기름을 사정없이 덕지덕지 발랐다.

“군인이 군복 입는 거랑 비슷한 거라고 보면 돼.”

“트롯 가수들이 꼭 이렇게 하지는 않던데…….”

신바람은 이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 모두가 이렇게 하지는 않지, 꼭 그러라는 법도 없고.”

“…….”

“하지만 내 제자라면 내 방식을 따라야지. 안 그러냐?”

참…… 확고하다.

누가 뭐라든 자기 길 가겠다는 확고함.

원미당에서부터 뭐 하나 가르칠 때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도 그는 확고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믿음이 간다.

“자~ 다됐다.”

난 차마 거울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내 두피에 모두 붙은 느낌.

정진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이야~ 사람이 달라졌네. 아주 미끌미끌하구먼.”

“…….”

신바람도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조그만 녀석을 이렇게 해 놓으니까 아주 볼만하네.”

신바람은 김덕후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 * *

거울에 비친 김덕후.

핑크색 정장을 입은 8살 남자아이.

눈 색깔은 갈색.

짙은 눈썹에 두꺼운 입술.

아이치고 콧대도 높은 편이다.

강인한 턱선을 가지고 있지만, 얼굴은 작은 편.

작은 얼굴 때문인지, 머리에 잔뜩 기름을 발라 8 대 2 가르마를 탔지만 담백해 보였다.

그리고…… 빛나는 눈빛.

눈 속에 총명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연한 갈색의 눈 색깔과 어우러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 같았다.

마치 블랙홀처럼.

“어우~ 그만 봐야지.”

신바람은 한참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흔들며 시선을 피했다.

김덕후는 활짝 웃으며 신바람을 바라봤다.

“왜요? 저 많이 웃겨요? 어색해 죽겠네, 헤헤.”

김덕후는 평소에 잘 웃지 않고, 표정이 굳어 있는 편이다.

아이답게 볼에 젖살이 올라와 있다. 턱선 때문에 강인해 보이면서도 귀여운 얼굴.

그런 김덕후가 활짝 웃을 때면…… 녹아들 것 같다.

“나 보고 웃지 마. 흠!”

신바람은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 * *

[김천 자두 포도 축제 노래자랑 예선 심사]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행사장을 찾았다.

심사 마감 시간 10분 전.

아무래도 우리가 마지막 지원자가 될 것 같다.

“흡―! 휴우―!”

난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아무래도 긴장이 좀 된다.

이 관문을 잘 통과해 내야 할 텐데.

긴장하는 나와는 달리, 정진은 너무 평온해 보였다.

자신 있다는 건가?

“그럼 다녀들 와라. 오래 안 걸릴 거야.”

“알겠습니다.”

난 들어가기에 앞서서 스트레칭을 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뺨도 여러 번 때렸다.

“김덕후!”

“네?”

신바람이 날 불렀다.

“오바하지 말고, 어서 갔다 와.”

“…….”

오바하는 거 아닌데.

“덕후야, 가자.”

난 정진을 따라갔다.

‘본선 참가자 10명.’

분명 광고 전단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10명 안에 들어야 할 텐데.

트롯 지망생이 일반인들과 겨뤄서 본선 진출도 못 한다면…….

데뷔 무대도 못 치른다면…….

“야~ 오바 좀 하지 마, 지금 뭐 전국 대회 왔냐?”

사색이 되어 있는 내 얼굴을 보며 정진도 한마디 했다.

“…….”

예선 심사 장소.

텅 빈 공간에 앉아 있던 한 중년 남성이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순서라 그런가? 다른 지원자는 보이지 않았다.

“어이쿠~ 꼬마 신사들 오셨구나? 어서 오세요.”

그 공간에는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 자~ 거기 이름 적고, 간단하게 한 소절씩 불러봐요.”

정진은 심드렁한 표정이었고, 난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형, 나 먼저 해?”

“좋을 대로 해라.”

흡― 휴우―!

난 중년 남성을 향해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 * *

20분 후.

정진과 함께 나왔다.

허무하다…… 이런 거였어?

신바람은 정진을 향해 물었다.

“참가자 채웠더냐?”

“아니요, 4명 미달이에요.”

“흠…… 그래? 잘됐네, 일찍 끝나겠네.”

본선 진출자가 10명인데, 6명이 예선 심사를 보러왔다.

이럴 거면 심사를 왜 보는 거지?

‘합격통지서’

심지어 통지서까지 준다.

“이거,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난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냥 현장에서 거수로 지원자 받고 노래를 시키지.

왜 이런 시간 낭비, 예산 낭비를…….

“하하!”

신바람은 김빠진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심사 본다고 긴장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얀마, 공무라는 게 그렇지 뭐. 이 축제, 시청에서 하는 거잖아? 절차와 형식을 갖춰야지.”

“…….”

신바람은 시계를 보았다.

“정진아, 노래자랑이 몇 시부터라고 했지?”

“6시인데요, 앞 행사 상황에 따라서 좀 달라질 수 있다고 했어요.”

지금 시각은 4시.

2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오늘 신바람은 제자들 데뷔 무대에 대한 예의라며 노란 정장을 입고 나왔다.

대낮부터 노랑색, 하얀색, 핑크색 정장을 입은 세 남자…….

시선이 집중되었고. 그 시선이 그리 곱게 느껴지진 않았다.

부끄러웠었는데, 그나마 행사 시간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 그럼 우리 먼저 가 있자. 빨리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 무대 동선도 볼 겸.”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 * *

―어머~ 사진 같이 한번 찍어도 되니?

―귀엽다~

저녁 7시.

행사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많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중을 받았다.

“하아~ 젠장, 빨리빨리 좀 하지.”

정진도 이제 좀 신경이 쓰이는지 투덜거렸다.

이건 뭐……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하지만 신바람만은 태평함 그 자체였다.

“얘들아~ 평화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니라. 그리고 가수 하겠다는 것들이 이 정도 관심도 불편해하면 곤란하지!”

“…….”

“아, 아, 다음 행사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벌떡.

난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었다.

“시민 여러분과 함께하는 행사죠? ‘김천 자두 포도 축제’ 노래자랑을 시작하겠습니다~!”

휴우―!

드디어 시작이구나.

콩닥. 콩닥.

참가자는 미달이지만, 관객은 꽉 찼다.

노래자랑은 짧게 하는 식전 이벤트로, 노래자랑이 끝난 후 유명 가수가 공연을 한다.

그 가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이다.

“본선 참가는 총 6명으로, 치열한 예심을 뚫고 올라온 참가자들이거든요~!”

“…….”

“그래서 어마어마한 상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진은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맨손으로 올 생각 하지 마라.”

“물론이죠.”

정진은 피식 웃으며 돌아섰고, 나도 그를 따라가려는데.

덥석.

신바람이 내 팔목을 잡았다.

“엇?”

“김덕후.”

“네?”

“너, 오늘 데뷔잖아. 뭐 가수로서 정식 데뷔는 아니지만.”

“네.”

“공기, 풍경, 사람들, 잘 기억해라.”

“…….”

“네,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거야.”

역사, 역사라…….

“그렇다고 쫄지는 말고. 그냥 무대 위에선 네 자신을 음악에 놓는 거야. 즐기다 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냐, 어서 가 봐라.”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 *

신바람은 행사장을 향하는 김덕후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감춰도 튀어나올 것은 그냥 보여 주는 게 낫지.”

그는 피식 웃었다.

“멋지게 보여 줘라.”

* * *

당쉰을 사랑~ 했어요오~!

무대 뒤.

정진과 나는 다른 참가자의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에휴…… 수준 참.”

정진은 뭐가 그렇게 맘에 안 드는지 투덜대고 있었다.

“방송 출연까지 했던 내가 이런 사람들하고 한 무대에 서야 하냐?”

“형,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뭐? 크흠!”

정진은 헛기침하고는 일부러 소리 내어 말했다.

“너 말고 인마! 넌 제외야.”

정진은 참가번호 5번, 난 6번이다.

“자~ 이번 참가자는 정성 씨가 가르치고 있는 제자라고 하는데요~!”

어? 정성?

어제 그 싸가지 없던 가수 말인가?

“참가번호 4번, 진조아 양입니다~ 올해 10살이라고 하네요. 격려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진조아, 어제 짐 끌고 다니던 아이, 정진이랑 동갑이구나.

“안녕하세요~ 진조아예요~!”

“진조아 양이 부를 노래는 ‘사랑만 주고 떠난 당신’입니다~!”

오…… 정통 트롯인가?

잔자자잔잔~! 잔자자잔잔~!

은은한 아코디언 소리로 전주가 시작됐다.

이럴 거며은~~ 주지를! 말지이~~ 왜에~ 준 거야! 사라앙을…….

헉…… 잘한다.

지금까지 시큰둥했던 정진도 눈을 번쩍 떴고,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대를 바라봤다.

이깟 사랑이 무엇이이냐아~!

간드러지면서도 단단하다.

앞서 나온 노래들을 모두 잊게 하는 실력이었다.

하긴 앞선 참가자들은 노래방 기계 틀어놓고 노는 수준이라, 비교하기도 좀 그랬다.

김천의 밤하늘이 진조아의 구슬픈 노랫소리에 숙연해지고 있었다.

그래에~~ 도! 당신으을~ 기다립니다으다으…….

흐느끼는 듯한 꺾기와 함께 노래는 끝이 났고.

“…….”

여운을 기다리다가, 한꺼번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와아~!

―최고다!

―아니, 웬 가수가 나온 거야?

진조아는 관객들 반응에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그 아이는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신기했다. 세상에 재능 많은 아이가 참 많구나.

“형, 저 누나, 좀 하는 거지?”

“좀 하는 정도가 아니야.”

노래 좀 아는 정진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미치겠네, 이러다가 2등도 못 하겠는데?”

“어?”

“에이, 짜증 나! 무슨 저런 실력 갖추고 특산물 대회를 나오고 난리야?”

TV에까지 나왔던 신동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자~ 오늘 노래자랑의 메인 이벤트죠?”

사회자의 목소리는 한껏 격양되어 소리쳤다.

“전 이 친구가 노래자랑에 나온다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덕후야, 갔다 올게.”

“응, 형. 파이팅.”

“2년 전 TV에 나와서 전 국민을 놀라게 했던 트롯 신동입니다!”

―우오오~!

―어머, 나 누군지 알 것 같아!

소개만으로 관객석은 술렁였다.

“참가번호 5번~ 정! 진! 입니다. 그가 부를 곡은 ‘니 꺼 할래’~!”

―어머, 어머!

―연예인 나왔네~ 호호!

―이거 반칙 아니야?

정진은 자신감 넘치는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무대로 걸어 나갔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귀염둥이 정진입니다~!”

짠자자자 짠짜자 짜가짜가짜가!

경쾌한 리듬이 시작되자.

정진은 엉덩이를 튕기며 추임새를 넣기 시작했다.

“싸~ 싸~ 와싸~!”

앞에 앉아 계신 어르신들은 이미 일어나셨다.

빠바바~ 밤! 밤! 따르따르다아~!

전주가 끝나고.

정진은 뒤로 돌았다가, 기름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만 관중석으로 돌렸다.

그대여으여으~~!

아 시작부터 미끈거린다.

오늘 밤 니 꺼 할래에래에~~!

그러면서 윙크를 날렸고.

할머니, 아줌마들이 좋아 죽는다.

첫 소절에 끝나 버렸다.

“싸~ 싸~!”

정진은 무아지경이었다.

전주 부분도 쉬지를 않는다. 계속 추임새를 넣고, 몸을 계속 흔들었다.

물 만난 고기 같았다.

정말 무대를 그리워했던 무대쟁이.

어색함이 하나도 없었다.

“와…… 진짜 잘하긴 하네.”

정진의 무대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 나왔다.

몇 소절 만에 분위기 아주 난리가 났다.

정진이 잘해서 좋긴 한데…… 어떡하지?

다음이 내 차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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