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남행열차
아오―!
깊숙한 산속에서 늑대, 아니, 개소리가 들린다.
아오―!
어수룩한 저녁.
돌아올 때쯤이면 깜깜한 밤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시골길.
서울에서만 자란 아이 둘이서 걸어가기에 조금은 무서웠다.
“아오, 미치겠네. 이웃집은 또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정진은 투덜대면서 앞장섰고, 난 그의 뒤를 따라서 갔다.
그의 다리가 살짝 떨리고 있는 게 보였다.
“형, 내가 앞장설까?”
“됐어, 나만 따라와.”
‘원미당’은 정복 마을 외곽에 있었다. 20여 분 정도 걸으니,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는 집들이 여럿 보였다.
“휴우―!”
그렇게 오래 걸은 것도 아닌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등에 식은땀이 배여 있었다.
우리는 집 앞에 서서, 빈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첫 마디를 뭐로 해야 할까?”
이 시간에 남의 집 문 두드리기도 쉽지 않은데.
거기다 밥을 얻어가야 한다니…….
“글쎄…… 일단 인사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너, 그걸 의견이라고.”
“…….”
미안하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
43년째 살고 있지만, 생판 모르는 집 문 두들겨서 밥 달라고 해 본 적은 없다.
우리는 대문 앞에 서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10여 분을 보냈다.
아오―!
그때 멀리서 또 개소리 들렸고.
“에이씨~ 몰라!”
쾅쾅쾅!
정진은 갑자기 문을 세게 두들겼다.
“안녕하세요~ 정진이라고 합니다~!”
마치 무대 인사를 하듯 소리치며, 거침없이 두들겼다.
쾅쾅쾅!
막상 실행에 옮기니 거침이 없었다.
확실히 무대에도 서 보고 TV에도 나와 봐서일까? 꽤 숫기가 있었다.
“계세요~!”
조금 있다가 한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누구다냐?”
“…….”
우리 할머니와는 너무 달랐다.
할머니 위의 할머니 같은…… 말은 제대로 알아들으실까 염려될 정도의 노할머니였다.
“얼라? 이 밤중에 아가들이 웬일이여?”
이런 노할머니한테 밥을 얻어먹는다고?
아, 도저히 염치가…….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정진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나 또한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어, 누구 집 아들이여?”
“저기 원미당에서 왔습니다.”
“원미당?”
겉모습과는 달리, 할머니는 아주 정정하셨다. 말소리도 또렷하시고, 얘기도 한 번에 잘 알아들으셨다.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아따~ 그 미끈한 양반네구먼. 새로 온 제자들이여?”
“…….”
“언제 왔디야? 왔으면 말을 허야재. 밥 한 끼 줘? 으잉?”
할머니의 말에, 정진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네~ 할머니. 찬밥이라도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다행이다. 어려워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했는데, 먼저 말씀을 해 주시니.
할머니는 피식 웃었다.
“맨입으로는 안 돼재~!”
“네?”
헛…… 이렇게 조건을 다실 줄은.
“죄송하지만, 저희가 드릴 게 없는데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해하는 정진 대신에 내가 말했다.
“왜 줄 게 없어?”
“…….”
“노래 좀 혀 봐.”
노래? 여기서? 갑자기?
오래된 집 대문 앞에서 나와 정진은 눈만 말똥말똥해졌다.
“워째 요즘 통~ 얼라들이 안 온다고 심심했는디 잘됐구먼. 한번 들어 보자고. 어헛.”
노래 시작 전부터 할머니는 박자를 타며 들을 준비를 하셨다.
난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형, 어떡해?”
“…….”
정진은 고민하다가, 결심이 든 듯 주먹을 꼭 쥐었다.
“먹고살려면 불러야지, 뭐.”
그리고 이빨 8개를 보이며 만개했다. 표정이 확 바뀌었다.
“오늘 밤 이렇게 정겨운 할머니를 만나니, 딱~ 떠오르는 노래가 있소~~!”
“그것이 뭔디?!”
“이렇게~ 만나고~ 또 만나고~ 앞으로 계속 만나서 밥 주실 우리 할머니~!”
그는 음을 넣어서 흘리듯 말했다.
“얼씨구!”
밤밤밤밤.
그는 입으로 박자를 맞추더니, 활짝 웃으며 소리를 터트렸다.
“또오~ 만났네! 또오~ 만났어! 야속한 그으 사라라아아암~!”
“지화자!”
오…… 대박.
정진은 흙바닥 위에서 발 앞꿈치로 왔다 갔다 스텝을 찍으며 신나게 불러 재꼈다.
“어~ 쩌다! 눈길을! 쳐다볼 때며은~!”
강약 조절 좋고.
“때가 되며는~~ 사랑을 전해 줄 거야으야으야으~!”
무대 매너도 좋다.
정진은 노래 마지막 부분 ‘사랑을 전해 준다는’ 부분에서는 팔로 하트를 그리며 윙크를 했다.
한 곡만으로 후끈해진 분위기.
할머니는 헤드뱅잉을 하고 계셨다.
이거 어째 한 곡으로 안 끝날 분위기인데.
“뭐 혀?! 흥 올랐는디!”
정진은 땀 흘린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야, 이번엔 니가 뛰어.”
“형…… 오늘은 형이 가자, 지금 가수 바뀌면 할머니가 싫어할 거 같아.”
앵콜 요청하는데, 가수 바뀌면 짜증 난다.
“에이, 젠장. 내일은 너다?!”
“알았어, 내가 코러스 넣어 볼게.”
정진은 또 이빨 8개를 보이며 씩 웃었다.
“할머니~ 할머니, 나의 할머니~ 이번엔 무주로 떠나는 열차 한 번 타 볼까요? 갑니다, 열차 타고 남쪽으로! 남! 행! 열! 촤아~!”
“에이구, 좋아~!”
뿍~! 뿍~!
내 기적 소리에, 정진은 OK 사인을 보내며 노래를 시작했다.
“비 내리는 영남선~!”
정진. 난 그냥 연예인 병 걸린 아이로만 생각했는데.
완전 다시 봤다.
확실히 프로는 프로였다.
그리고 왜 신동이라고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꾸었고, 그에 맞는 곡들을 바로 꺼내어 보여 줄 줄 안다.
앵콜 핑계를 대긴 했지만, 사실 난 정통과 엘레지 장르 노래만 들었었다.
이렇게 할머니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뽕필 나는 노래를 제대로 숙지하고 있는 게 없었다.
“당쉰을~ 사랑~ 했어요우요우~!”
정진…… 형은 형이구나.
* * *
“꺼억― 잘 먹었다~!”
우리가 가져온 밥을 함께 먹고서, 신바람은 만족스러운 미소로 배를 두들겼다.
“짜식들, 제법인데?”
“정진 형이 다 했습니다. 전 한 거 없습니다.”
난 공치사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신바람은 미소 지으며 날 바라봤다.
“굳이 그런 말은 왜 하냐? 내가 물어봤냐? 좋은 사람 되고 싶어?”
“…….”
“나중에 오디션 나가서도 그렇게 얘기할래?”
오디션?!
갑자기 그 단어는 왜 꺼내지.
“너희는 지금 같이 배우고 있지만 경쟁자이기도 해. 선의의 경쟁은 당연히 해야 하지만,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공치사를 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신바람은 자세를 고쳐잡고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도 똑바로 앉았다.
“저녁은 자율 학습 시간이다. 지금부터 2시간 정도만. 개인 연습 하면 돼.”
뭐야…… 이제 뭔가 좀 알려 줄 줄 알았는데, 자율 학습이라고?
“밤이긴 하지만 어차피 주변에 아무것도 없으니까 마음껏 소리 지르고 노래해도 상관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연습해.”
정진도 약간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듯 말을 덧붙였다.
“아, 너희들, 노래 부를 때 꺾는 거 말이야.”
“…….”
“그 주목적은 감정의 파동을 증폭시키는 거다. 즉 무조건 많이 꺾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노래의 스타일과 자신의 감정에 맞게 파동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해.”
그리고 신바람은 가슴을 두들겼다.
“그건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 습관 들이면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미리 얘기해 주는 거야. 이건 연습할 때 염두에 두고 해라.”
“알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연습에 매진했고, 난 할머니 집 앞에서 부족했다고 느꼈던 부분. 댄스 트롯과 뽕짝 노래를 숙지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정말 길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2주가 지났다.
첫날의 패턴을 2주간 내내 유지했다.
신바람은 단 한 번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그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꾸준함’
그 교육방침에 따라, 힘들어도, 비가 와도, 허리가 쑤셔도 그 패턴을 계속 유지했다.
어느덧 복식호흡이 익숙해져 가고 있었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부터는 밥 달라고 남의 집 문 두드리는 것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나는 노래를 부르는 게 가장 어색했었는데.
점점 빠른 비트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대낮에 하는 무반주 댄스도 이젠 어색하지 않고 즐기고 있었다.
내가 음악을…… 트롯을 하고 있다. 온종일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이 다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함이다.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기쁨.
전생에 35년을 살면서도 전혀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다.
힘들고 괴로워도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견뎌 낼 수 있었다.
2주가 지난 어느 날 저녁. 평소처럼 자율 학습을 하고 있는데.
“정진, 비음(콧소리) 좀 줄여라. 그것도 노래에 따라서 조절할 줄 알아야지. 정통 트롯에 그렇게 비음을 섞으면 어떡하냐? 듣기 좋겠냐?”
“알겠습니다.”
“덕후! 넌 좀 더 웃어.”
씨익!
“이빨 6개 보였어. 두 개 더!”
씨익―!
“그래, 그렇게! 입만 웃지 말고, 눈도 웃어!”
“……알겠습니다.”
가장 많이 듣는 지적. 여유를 갖고 웃으라는 얘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힘 빼고 즐기라고.”
“알겠습니다.”
이렇게 신바람은 자율 학습 중에 우리를 지켜보며 원 포인트 레슨을 해 주었다.
하지만 기술적인 가르침은 크게 없었다. 대부분 나쁜 습관을 없애려는 데 치중했다.
어느덧 8시. 잠잘 시간.
“오늘 자기 전에 짐 싸 놔라.”
“네?”
아직 2주밖에 안 됐는데.
“집에 가는 겁니까?”
정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와 정진은 상황은 다르지만, 어쨌든 뭔가 제대로 배워 가야 한다는 절박함의 공통점이 있다.
“왜? 가고 싶냐?”
“아닙니다!”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다.
신바람은 씩 웃으며 말했다.
“내일 훈련 장소를 옮긴다.”
“…….”
“계속 같은 곳에서만 ‘꾸준함’을 유지하는 거야 쉽지. 어디서든 그게 가능해야 진정한 습관이 되는 거지.”
아…… 또 ‘꾸준함’이야.
“그리고 가요는 실전이다. 무대에 서야 가수지.”
신바람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대충 너희들 연습하는 거 들어 보니 둘 다 못 들어 줄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그리고 종이 하나를 꺼내어 던졌다.
[김천 자두 포도 축제]
“무주에서 1시간이면 가거든. 축제 마지막 날. 그러니까, 이틀 뒤에 노래자랑 한다고 하니까.”
내가…… 무대에 선다고?
벌써?
자두 포도 축제?
난 정진을 돌아보았다.
“……!”
그는 얼굴이 화색이 돌았다.
희열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두근. 두근.
어우, 난 생각만 해도 울렁거리는데.
무대에 서다니.
그것도 축제에서…… 관객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정진, 좋냐?”
“네! 좋습니다! 하하.”
정진은 신바람의 물음에 웃으며 큰 소리로 화답했다.
“그래, 기본은 되어 있구먼. 가수가 무대를 사랑해야지.”
히죽. 히죽.
정진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신바람은 굳어 있는 날 가만히 보더니.
“김덕후.”
“네.”
“똥 마렵냐?”
“아, 아닙니다.”
“마려운 표정인데?”
“…….”
그는 날 보고 피식 웃었다.
“너, 무대에 서 본 적 없지?”
“네, 없습니다.”
“그럼 이번이 데뷔 무대가 되겠네?”
“…….”
“훗. 재밌겠네.”
순간 내가 무대에 서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저, 선생님.”
“왜?”
“옷은 어떻게 할까요? 추리닝 입고 무대에 올라가도 됩니까?”
“아, 맞다.”
신바람은 노란 정장, 정진은 하얀 정장을 입고 왔다.
“하나 사야겠네. 너, 무슨 색 입고 싶냐?”
잘은 모르겠지만, 두 사람한테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노란색과 흰색에 견줄 수 있을 만한 튀는 색깔…… 뭐가 있을까.
“생각나는 거 없으면 내가 골라줘?”
“아닙니다. 결정했습니다.”
난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핑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