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원미당(2)
“어으어으어으…….”
김덕후의 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힘들어하는 기색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좀 전에 시범을 보인 신바람의 소리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신바람은 어른의 소리고, 김덕후는 아이의 소리.
어떻게 보면 아이의 소리로 이런 공명성과 변주를 넣고, 긴 숨으로 음을 이어가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와…… 이 녀석, 뭐지?’
정진은 넋을 잃고 바라볼 뿐이었다. 목소리도 청아하고, 천장을 뚫을 것 같은 단단한 소리.
‘트롯이 분명 처음이라 했는데…… 판소리를 배웠나?’
아무리 봐도 김덕후의 소리는 평범한 게 아니었다.
‘짜식, 듣던 대로군.’
신바람 또한 처음엔 놀라서 보다가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좀 더 잘 관리해 줘야겠네. 아주 타이트하게.’
“어으…….”
어느새 김덕후의 소리는 멈춰지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의 시간 동안 소리를 낸 건지…….
어린아이의 폐활량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흐읍~ 휴우―!
김덕후는 소리를 멈추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꿀꺽.
그리고는 해맑은 표정으로 신바람을 바라봤다.
“선생님, 지금 한 거 맞습니까?”
두 사람의 반응을 봤을 때, 칭찬받을 거로 예상하는 듯했다.
“아니, 그건 복식호흡이 아니다.”
“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진이 얼떨결에 대신 반문했다.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하냐?”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정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복식호흡이 아니면 뭐야? 소리가 완전히 울려서 나왔는데?’
신바람은 정색하는 얼굴로 김덕후에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소리 내면 노래 오래 못 불러.”
“…….”
“너, 방금 얼굴 빨개졌는데, 왜 그런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배에 너무 힘을 줘서 그래.”
“…….”
“넌 아직 복식호흡을 배우지 못했지. 그래서 교보재로 쓴다고 세웠고.”
김덕후는 잠자코 신바람의 얘기를 들었다.
“아랫배를 밀어 올리는 것과 힘을 주는 것은 다르다. 소리를 크고, 길게 뽑아내기 위해서 배에 힘을 주면 목이 상할 수 있어.”
“…….”
“배에 힘을 빼고, 호흡만으로도 소리를 울릴 줄 알아야 한다.”
김덕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복식호흡이며, 발성의 기본이다.”
정진은 말똥말똥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정진, 네가 한번 복식호흡 보여 줘 볼래?”
신바람은 정진을 바라보았고, 정진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덕후가 한 거로 충분합니다. 바로 수업 진행하시죠.”
‘이게 복식호흡 안 한 거라고? 어쨌든 이런 소리를 냈는데 괜한 비교 당하기 싫다.’
신바람은 피식 웃고는 자세를 잡고 연습을 시작했다.
“자, 둘 다 따라 해 봐.”
* * *
새벽 내내 숨 쉬는 연습만 했다.
2시간 내내 앉아서 숨만 쉬는데, 조금이라도 신바람이 알려준 대로 호흡을 하지 못하면 귀신같이 알아챘다.
“배 더 안 올릴래! 흉식호흡 아니라고! 복식! 배로 숨 쉬라고!”
숨만 쉬는데, 배에 알 배길 것 같다.
그렇게 배로만 숨 쉬는 깊은 호흡에만 집중했더니, 정신까지 혼미해지는 듯했다.
아침 7시가 되었을 무렵.
“자, 다들 옷 입어라. 밖으로 나갈 거야.”
주섬주섬 옷을 입고 신바람을 따라나섰다.
밖은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은 하나도 없어서인지 풍경은 환하고 밝았다.
신바람은 아무 말 없이 산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우리는 그저 묵묵히 뒤를 따랐다.
40분 경과.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어디를 가나 싶었는데, 신바람은 그냥…… 산을 타고 있었다.
다행히 난 운동화를 신고 나왔는데, 슬리퍼를 신고 나온 정진은 죽으려고 했다.
“헉, 헉, 선생님! 어디까지 가십니까?”
정진은 숨 넘어가는 목소리 물었고.
“어디긴, 정상까지 가지.”
“아니, 등산하실 거면 미리 말씀해 주시지…….”
헉. 헉.
나도 동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가볍게 옷을 입고 나왔을 텐데.
“요 녀석들아, 주변을 살피는 힘을 길러라. 꼭 알려 줘야 길을 아는 것이냐?”
“…….”
“내가 어떤 차림새로 옷과 신발을 신는지 살폈어야지. 그리고 밖을 나설 때는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해.”
“…….”
“선생이 나가자는데, 슬리퍼 끌고 나온 거부터가 문제라고. 가수 하겠다는 것들이 기본이 안 되어 있어.”
정진은 얼굴이 핼쑥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몸으로 느껴야 확실히 각인되거든. 앞으론 이런 일 없겠지. 정진! 지금부턴 네가 앞장서라.”
“네…….”
칙― 칙―!
정진은 슬리퍼를 끌면서 앞장섰다.
뒤꿈치가 좀 까져 있었는데.
그래도 정진은 힘든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냈다.
약 50분 뒤. 정상 도착.
다행히 암벽이 있는 산은 아니었다.
헉헉―!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나와 정진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흡― 휴우―!
신바람은 정자세로 가만히 서서 호흡을 정돈하고 있었다.
“느껴라, 지금 너희들이 하는 게 복식호흡이다.”
헉―헉―!
“숨이 끝까지 차올라서, 배 전체를 움직여 깊은 호흡을 하고 있지. 그게 복식호흡이라고.”
흡― 휴우―!
난 눈을 감고 느껴보았다.
확실히 아까 가슴까지만 들어오던 공기가 지금은 몸 깊숙이 뻗어 가는 느낌이었다.
“항상 그 호흡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금 느낌을 잘 기억해놔.”
흡― 휴우―!
그의 말을 따라서 하긴 하는데.
지금 시각이 8시 30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침 내내 호흡 연습만 하고 있다.
무슨 무술 수련하는 것도 아니고…….
“함성 일발 발사!”
으아―!!
신바람은 하늘을 향해 함성을 질렀고, 우리도 얼떨결에 따라서 소리쳤다.
으아~!
세 사람의 목소리가 산 전체를 울렸다.
* * *
집으로 내려오니 9시 30분.
아직 아침인데, 하루를 다 보낸 것 같다.
너무 피곤하다.
“아침은 라면이다. 대신 점심이 특식이니까 기대해라.”
“오~ 특식이요?!”
어젯밤에 이어서 아침까지 라면을 먹었다.
정진은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고.
“짜파로티.”
신바람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
“아침 먹고 각자 휴식 취해라. 다음 수업은 점심 먹고 할 거니까.”
엇?!
새벽엔 그렇게 세게 굴리더니.
뭐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닐까.
“휴식은 제대로 취해야 해. 잠을 자도 좋다. 근데 제대로 못 쉬어서 오후에 피곤해하면 집에 보낼 줄 알아.”
그리고 커다란 주전자로 뭔가를 끓이더니, 그걸 크게 한 컵씩 따라 주었다.
“대추차다. 수시로 마셔라. 라면은 굶어도 되지만, 이거 마시는 건 절대로 걸러서는 안 된다.”
정진은 고개를 끄덕였고, 난 궁금하여 물었다.
“형, 왜 대추차야?”
“넌 노래 한다는 애가 이것도 모르냐? 목 관리 차원에서 마시라는 거잖아. 대추가 성대 보호에 좋거든.”
“아…….”
신바람은 라면 네 봉지를 던졌다.
“배 안 고프게 많이 먹어. 김치랑 반찬은 냉장고 안에 있으니 꺼내 먹고.”
그리고 그는 하품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오후에 보자.”
정진과 나는 잠만 잤다.
딴짓할 체력도 안 됐고, 오후에 뭘 시킬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 했다. 집에 돌아가기는 절대 싫고.
오후 2시경.
신바람이 방에서 나왔다.
“다들 잘 쉬었냐?”
뭔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왠지 불안하다.
“네, 선생님께서도 잘 쉬셨습니까?”
정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냐, 잘 쉬었다.”
대청마루에서 대기하고 있던 우리는 신바람 앞에 섰다.
“오호, 새벽에 우왕좌왕 하던 거랑 다르네.”
“…….”
신바람은 우릴 향해 피식 웃었다.
“오후엔 웃어라.”
“…….”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웃어라, 그게 훈련이다.”
정진과 나는 서로 멀뚱히 바라봤다.
“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정진이 그래도 형이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신바람은 계속 히죽히죽 웃으며 슬리퍼를 신고 마당으로 나왔다.
“잘할 생각만 하지 말고, 웃으며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관객들을 품겠냐?”
“…….”
“괴로워도, 슬퍼도, 심심해도 웃어야 할 땐 웃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당에서 무반주로…… 히죽거리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흥 나는 일이 있어야만 흥이 있고, 장단 맞춰 줘야만 춤을 추는 게 아니란 말이야.”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한가득 마당을 내리쬐고 있었다.
어제 노란 정장을 입고서 처음 만난 신바람.
그는 지금 하얀색 러닝 차림에 왼쪽 머리가 눌린 채로.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면서 엉덩이도 실룩샐룩.
이리저리 다리를 휘저으며 춤을 추고 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라면 냄새가 나는 것 같다.
“4분의 4박자 트롯 리듬 타는 사람들이 흥이 있어야지! 흥은 만들 줄도 알아야 하는 거야!”
말은 그럴싸한데…….
그냥 미친놈 같았다.
“뭣들 하냐? 어서들 마당으로 안 나오고?”
“…….”
“이것도 훈련이라는 말 못 들었어?”
정진은 먼저 나가 휘적휘적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쭈뼛거리며 마당으로 나섰다.
무반주 댄스를 추는 한 명의 어른과 두 아이.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피식.
민망함은 없어지고, 점점 우리 사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상황도 그렇고,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웃겼지만.
그냥 웃자고 하니 웃음이 나왔다.
“하하! 쭈~ 쭈~!”
신바람은 입으로 박자를 맞추었고, 정진은 갑자기 어울리지 않게 문워크를 췄다.
“촤~ 촤~ 요르르르흐~ 정 선수, 좋아~ 요르르흐흐!”
어쩌면 추임새도 이렇게 싼 느낌일까.
“촤~ 촤~ 이제 덕후 차례~!”
개인기 타임인데, 할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꼭짓점 댄스를 춰 봤는데.
“야, 야, 박자가 다르잖아~ 막춤도 박자는 타야 하는 거야~ 요르르르흐~!”
뭘 춰야 할까.
환생하기 전 전철에서 너튜브로 봤던 요상한 춤이 떠올랐다.
엉덩이를 앞뒤로 리드미컬하게 흔들면서 고개를 움직이는 춤인데…….
“촤~ 촤~ 요호~ 후르르~! 와! 죽이네!”
근데…… 이게 막상 하니까 되네? 나, 춤 재능도 있는 건가?
두 사람 반응이 아주 좋았다.
특히 신바람이 신났다.
“오~ 김 선수! 괜찮은데? 이게 무슨 춤이냐?”
“아, 네. 이게…….”
그냥 즐기면 되지, 굳이 춤 이름을…….
“그러니까 뭐냐고.”
“오해는 하지 마시고요, 떡춤이라고 불립니다…….”
잉여춤과 함께 한때 유행했던 나이트 댄스.
전생 때 난 춤은 못 추지만, 관심은 많아서 너튜브로 즐겨 봤었다.
“…….”
춤 이름을 듣고서, 신바람은 인상을 썼다.
“쪼그만 게! 어째 동작이 좀 이상하다 했어. 당장 못 멈춰? 짜식이, 춤을 춰도…….”
“…….”
“오늘은 여기까지!”
휴우―!
온몸이 땀에 절었다.
하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정말 처음엔 전혀 그런 생각 없었는데, 흥을 내려고 하니 흥이 났고.
웃다 보니 웃음이 더 많아졌다.
“아, 덕후야.”
신바람은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날 불렀다.
“네, 선생님.”
“잘 웃네.”
“네?”
“그렇게 웃으면 되는 거야. 뭐가 그렇게 급하냐?”
“…….”
신바람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선 방으로 들어갔다.
“급한 거 없어, 인마.”
그의 무심한 몇 마디가 주위를 돌아보게 했다.
그래…… 나 이제 겨우 8살인데.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즐기자.
나, 지금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잖아.
꼬르륵.
해가 지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자, 배에서 소리가 들렸다.
저녁도 라면인가?
오늘은 밥 먹었으면 좋겠는데.
드르륵!
신바람 방문이 활짝 열렸다.
“둘 다 이리 와 봐.”
그는 우리에게 빈 그릇 몇 개를 건네었다.
“옆집 가서 밥이랑 반찬 좀 얻어와라.”
“…….”
우리가 황당해하자, 신바람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이것도 훈련이야! 밥 한 끼 얻어먹을 낯짝도 없으면서 무슨 관객 앞에 서겠다고.”
“…….”
“어서 안 움직여?!”
나와 정진은 재빨리 빈 그릇을 챙겨서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