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8화 (28/250)

28화. 원미당(1)

터벅. 터벅.

버스에서 내려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자꾸 정진이 신경 쓰였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데.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망한 거잖아. 대중이 널 찾지 않은 거라고.’

신바람의 신랄한 비판.

아무리 그래도 어린아이인데.

훌쩍. 훌쩍.

정진이 훌쩍이는 소리를 들으니 괜히 나까지도 가슴 시리다.

42년째 사는 내 가슴에도 꽂히는 말인데, 당사자인 10살 꼬마애는 어떨까.

그리고 위로라고 한다는 말도.

‘집에 가면 돼…….’

하아~

김 부장 추천 인사라 그런가. 어째 스타일이 비슷해 보이는데.

“형, 이거…….”

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건네었다.

아무래도 영 마음이 불편했다.

정진은 쭈뼛거리다가, 결국 내가 건넨 손수건을 받았다.

“다 왔다.”

신바람은 어느 집 대문 앞에 서서 말했다.

“…….”

오래된 기와집이었는데, 지붕은 일부 깨진 기와로 되어 있고, 대문은 덜렁거렸다.

색이 바랜 기둥과 툇마루.

여기저기 널려진 잡동사니를 봤을 때, 오랫동안 빈집 상태로 있었던 것 같아 보였다.

“이곳은 정복 마을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 우리가 살 동네지.”

“…….”

“뭐 해? 어서 들어가라.”

이 집에서…… 지내는 건가?

딱 귀신 나오게 생겼는데.

선뜻 발이 대문 안으로 들어가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정진의 얼굴도 새파래져 있었다.

난 전생부터 서울에서만 살아 봐서 이런 생활이 익숙지 않다.

“들어오기 싫으면 말고.”

아오―!

어두운 숲속에서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설마…… 늑대울음 소리는 아닐 거고.

아오―!

또 한 번의 소리에 정진은 놀라서 들썩였다.

그때 대문 안에 먼저 들어가 있던 신바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쫄지 마. 개소리야.”

“…….”

“근데 야생 개는 문다?”

정진의 얼굴은 다시 새파랗게 질렸고.

내 발은 어느새 대문 안을 향하고 있었다.

* * *

우리는 저녁으로 컵라면을 먹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기본적인 건 갖추어져 있었다.

전자레인지, 버너, 세탁기 등 사람이 살아야 하는데 아주 기본적인 것들.

“이 집, 빌리신 거예요?”

“내 집인데?”

“…….”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서울에 사시는데…….”

“집이 꼭 하나여야 하냐?”

그러네. 재테크라는 건가? 굳이 이런 집을?

“짜식들아, 너희들도 나중에 커서 성공하면 선생님처럼 이렇게 지방에 별장도 하나 가질 수 있는 거야.”

“…….”

“열심히 하라고.”

이걸 동기부여라고 하는 건가?

하나도 안 부럽다.

후루룩―!

신바람은 라면 국물을 마시고는 말했다.

“너희들, 라면 좋아하냐?”

정진은 가만히 있었고, 내가 대신 대답했다.

“네, 좋아합니다.”

난 라면을 좋아하는데, 건강에 안 좋다며 어머니는 평소에 잘 주시지 않는다.

내 대답에 신바람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 마음 변치 않길 바란다.”

“라면만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정진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치고 들어왔다.

신바람은 피식 웃고는 가볍게 대꾸했다.

“철도 씹어 먹을 나이에 건강은 얼어 죽을, 가끔 순댓국 사 줄 거니까. 염려 마라.”

8살, 10살이 철 씹어 먹을 나이인가?

신바람은 노란 정장을 벗고,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어서 세수하고 자라. 내일 5시부터 움직일 거니까.”

지금 시각은 저녁 8시.

내가 보통 9시에 자긴 했지만……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드르렁―!

곧바로 신바람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난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완전 무대뽀인데, 이상하게 끌려가게 된다.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규칙이 있고.

사람 사는 집 같지 않아 보이는데도, 살 거리는 구비되어 있다.

이 말은 즉…… 속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오늘 온종일 같이 있었는데.

신바람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이라도 파악이 잘 안 된다.

“뭘 그렇게 멍하니 생각하냐?”

정진은 어느새 자리에 누워 있었다.

“어서 자는 게 좋을 거야. 내일 개고생 안 하려면.”

“…….”

“아마 정신없을 거야. 어서 자.”

어라? 뭔가 아는 건가?

“이 원미당에 온 것만으로도 넌 선택받은 거라고. 너 같은 문외한이 어떻게 오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빽이 있나?”

이 폐가가 ‘원미당’? 이름도 있어?

난 다가가서 물었다.

“형, 여기가 뭐 유명한 곳이야?”

정진은 황당한 듯 날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짓고는 등을 돌리고 누웠다.

“TV에 나와 온 국민의 관심을 받던 트롯 신동, 나 정진이 배우러 온 곳이라고. 더 설명이 필요하냐?”

“…….”

“더 말 시키지 마, 나 잘 거야.”

뭔가 더 물으려 했는데, 정진이 바로 차단했다.

“난 모든 걸 걸고 왔어. 방해하면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10살짜리 꼬마애가…… 마지막은 뭔가 좀 사무친 말이었다.

* * *

다음 날 새벽.

“기상!”

불같은 호령에 번뜩 눈을 떴고.

신바람이 내 옆에 서 있었다.

파란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는데, 언제 일어난 건지 얼굴도 머리도 말끔했다.

“이 녀석들, 5시부터 움직일 거라고 했는데 여태까지 누워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아직 밤인 것 같은데.

정진도 비몽사몽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4시 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지, 어?”

“선생님이 깨워 주실 줄 알았죠.”

알람시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 9시 일어나던 내가 어떻게 4시 반에 일어난단 말인가.

“알람시계는 네 머릿속에 있다.”

신바람은 본인 머리를 두들기며 말했다.

“긴장을 안 하고 있단 거야. 일어나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자라고. 그러면 깬다.”

“…….”

“혹 깨지 못하더라도, 내가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겠지. 그걸 알람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냥 선생님이 깨워 주시면 안 돼요?”

“안 된다. 내 역할이 아니다.”

새벽에 신바람의 기척을 들을 생각하면서 잠을 자라는 건가?

그게 과연 제대로 자는 건가?

“그것도 다 훈련이다, 훈련.”

그나마 나는 대화하면서 눈이 말똥말똥 해지고 있었지만.

정진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야, 넌 나가서 한 바퀴 뛰고 와. 그 눈깔로 수업받을 거야?”

“…….”

“어서!”

정진은 반바지 바람에 쫓겨나듯 밖으로 나갔다.

20분 뒤.

새벽 5시 20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우리는 신바람 선생을 마주 보고 정자세로 앉았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신바람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바람과 함께하는 트롯 여행!”

“풉!”

난 얼른 입을 막았지만, 신바람이 날 노려보았다.

“웃기냐?”

“아닙니다, 좋아서 그렇습니다.”

“그런 거지?”

“네, 트롯 여행 빨리하고 싶습니다.”

“흠.”

휴, 임기응변으로 넘어갔다.

새벽 5시에 애들 앉혀 놓고 수업 첫마디가…… 너무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너희들은 신바람과 함께 트롯 열차를 타고, 사람들의 마음속을 여행하게 될 것이다.”

부들부들.

진지하게 말하니까 더 웃기다.

난 허벅지를 꼬집으며 간신히 참았다.

“너희들은 어려, 지금 배우는 것들이 성인까지 그대로 전수되지는 못 할 거야. 왜냐면.”

“…….”

“변성기를 거쳐야 하거든.”

하긴, 전생에 나도 변성기를 거치면서 목소리가 완전히 바뀌었었다.

난 한번 경험이 있기에 이 말은 쉽게 수긍이 갔다.

“그래서 너희는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어떤 환경과 조건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기본에 말이다.”

“…….”

“좋은 토양에서는 어떤 식물이든 잘 자란다. 아무리 좋고 진귀한 식물이라도 토양이 좋지 못하면 성장하지 못하고 죽어 버리지.”

신바람은 확신에 가득 찬 눈길로 말하는데, 어제 허술해 보이던 모습과는 또 딴판이었다.

정말 속을 모르겠다.

“즉 기본은 토양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나와 앞으로 30일간 토양을 다지는 일에 집중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정진은 갑자기 옆에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기본 중에 가장 기본은…….”

꿀꺽.

기대된다. 드디어 뭔가 나오는구나.

트롯의 첫 가르침.

“꾸준함이다.”

“…….”

잠시 우리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가득 찼던 기대가 푸시시 꺼지는 기분.

정진도 표정을 관리하느라 노력 중이었다.

하지만 신바람은 흔들림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특히 우리처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꾸준함이 정말 중요해. 왜냐면 즉흥적이기 쉽기 때문이지.”

“…….”

“즉흥성에 꾸준함을 가미한다. 아…… 이건 좀 어려운 얘기니까 나중에 하고, 일단 지금의 꾸준함은 좋은 습관을 일정한 시간과 패턴으로 놓치지 않고 하는 것이다.”

뭔가 철학은 있어 보이는데, 받아들이기 어렵다.

방학은 겨우 30일인데.

“지금부터 배우는 것들을 꾸준하게 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는 거야. 앞으로 10년, 20년. 음악의 길을 걷는 동안은 계속 쉬지 않고 해야 한다.”

“…….”

“명심해라, 꾸준함을 놓치는 만큼 음악 생명은 짧아지는 거야.”

순간 신바람의 눈에 회한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걸 어릴 적에는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나이 들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 되어 버릴 거다. 꾸준하지 못하고 나태했던 것에 대해서.”

“…….”

“느끼지 못하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 내 길이 옳은 길이니까.”

“알겠습니다.”

이번엔 내가 대답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지난날을 생각했다.

난 35 + 8년을 산 사람이다.

전생에 내가 성인이었을 때 학창 시절 동창들을 생각해 보면.

꾸준하게 노력했던 친구들은 뭐라도 됐다.

하지만 재능? 혹은 타고난 능력을 믿고 게을렀던 친구들은…….

난 신바람의 설명을 들으며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진심으로 이해했다.

신바람은 내 눈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 꾸준함 위에 세울 첫 번째 기본.”

신바람은 자세를 고쳐잡고 말했다.

“복식호흡이다.”

* * *

난 눈빛을 반짝이며 신바람의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정진은 뭔가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에이…… 이건 기본이 아니라 기초인데. 뻔한 걸…….”

신바람은 우리 얼굴을 살피더니,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시범 간다.”

“하아아아아~~!”

공간을 울리는 소리.

5채널 서라운드처럼 집 안 전체에 신바람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단순히 목소리가 큰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아으아으아으~~!”

곧이어 그 소리는 쉴 새 없이 꺾이기 시작하는데.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엄청나게 변주되고 있었다.

‘아~’ 소리가 단순히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악기 같았다.

“어으어으어으~~!”

언제까지 할 셈인가.

소리는 끊어짐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못해도 1분은 훌쩍 넘은 듯했다.

꿀꺽.

이것이 고수의 실력인가……?

놀랍고 경이로웠다.

“어으어으…….”

어느덧 소리는 작아졌고.

낮은 숨소리와 함께 소리는 옅어졌다.

흐읍~ 휴우~

신바람은 호흡을 다시 크게 내쉰 후, 씩 웃었다.

“어떠냐?”

“…….”

나도 그렇고. 정진 또한 넋을 잃고 있었다.

“배로 숨을 쉬는 거야. 편안하게 내쉬면서 배로 압력을 가한다고 생각하면 돼. 단순히 배에 힘을 주는 게 아니야.”

“…….”

신바람은 날 바라봤다.

“김덕후?”

“네.”

“한번 해 봐.”

“네? 뭘요?”

“방금 내가 한 거.”

“…….”

헛, 못 할 거 같은데…….

“정진은 좀 배운 녀석이라. 교보재로 쓰기엔 네가 적절해서 그래. 못 해도 상관없으니까. 일단 해 봐.”

“아…… 네.”

교보재라고?

그럼 뭐 못했다고 혼나진 않겠구나.

좀 전에 신바람이 하던 걸 머릿속에 떠올려봤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아랫배를 살짝 위쪽으로 밀어 올리며 소리를 냈던 것 같다.

시선은 천장 쪽을 보고…….

“해 보겠습니다.”

“오냐.”

“하아아아아아~~!”

“…….”

한참 소리를 내고 있는데, 아무런 말이 없다.

교보재면 멈추고 뭘 가르쳐야 하는 거 아닌가?

“어으어으어으~~!”

이번엔 신바람이 하던 대로 변주를 넣어봤다.

“…….”

그래도 아무런 말이 없다.

천장에서 둔 시선을 거두고 살짝 눈치를 봤는데.

두 사람은 입을 벌리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