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신바람(2)
“안녕?”
노란 정장의 남자가 내 앞에 섰다.
그의 선글라스가 날 향하고 있는데, 눈이 보이질 않으니 왠지 좀 긴장됐다.
“한눈에 알아보겠구먼. 김진하 씨랑 똑 닮았네?”
“…….”
초면부터 기분이 안 좋아지려 하는데…….
“밥 먹었냐?”
“…….”
“아오~ 출근 시간에 전철 탔더니 힘들어 죽겠네.”
이 아저씨…… 나랑 알고 지내던 사이였던가?
분명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아무리 내가 어리지만, 너무 편하게 대하는데?
“무주행 승차장이 어느 쪽이지?”
“…….”
적어도 신원 확인은 해야 하지 않나?
그는 두리번거렸고, 난 그가 행동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오, 배고프다. 어디 보자, 버스 시간 좀 남았으니까. 밥부터 먹자.”
“…….”
여전히 멍하니 보고 있자.
노란 정장은 가만히 날 보다가 눈을 찡그리며 물었다.
“야, 너 벙어리냐?”
“…….”
그는 내 눈앞에 손을 휘저었다.
“훠이― 훠이― 말 못 하는 애를 음악 가르쳐 달라고 할 리가 없는데.”
내가 너무 넋 놓고 있으니 좀 이상해 보였나 보다.
“흠, 신바람 선생님 맞으세요?”
우선 사람을 처음 봤으면 순서를 지켜야지.
“딱 보면 모르냐? 당연한 건 묻지 말자.”
“……그러니까 맞냐고요.”
노란 정장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김진하 씨 아들답지 않게… 좀 물렁해 보이네?”
“……!”
김 부장 이름을 대는 걸 보니, 신바람 선생이 맞나 보다.
신바람은 앞장서서 걸어갔다.
“국밥 한 그릇 하자~ 아오, 배고프다.”
“…….”
식당 안.
난 아침을 먹고 왔다. 맞은편에 앉아서 신바람이 먹는 걸 바라만 보았다.
그는 얼굴 한번 안 들고 집중해서 먹고 있었다.
우걱. 우걱.
“꺼억~!”
노란색 정장에 잔뜩 기름 바른 머리.
그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게, 먹는 모양새는 꼭 막노동 끝낸 잡부 같았다.
힐끔. 힐끔.
사람들이 계속 쳐다본다.
신바람과 함께 있는 게 좀 부끄러웠다.
“근데 이 녀석은 왜 안 오는 거야?”
“저 왔는데요?”
볼수록 이상하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아니, 너 말고. 하나 더 있어.”
“네?”
신바람은 시계를 보았다.
이제 출발 시간까지 10분 정도 남았다.
“그냥 가자, 못 오면 마는 거지, 뭐.”
“저, 근데…….”
난 고개를 갸우뚱하고 물었다.
“만날 사람 있으면 밖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식점에서 밥 먹고 있으면 찾기 어려울 것 같은데.”
피식.
내 말에 신바람은 웃었다.
“나, 찾기 어렵든?”
아니다. 굉장히 쉬웠다.
“다 제 복이여. 계산하고 따라와.”
신바람은 내게 카드를 건네고 먼저 일어났다.
* * *
무주행 버스. 출발 5분 전.
“신바람 선생님…….”
멀리서 미세한 소리가 들렸다.
신바람도 들었는지, 고개를 살짝 들어봤다.
“신바람 선생님!”
점점 소리는 가까이서 들려왔고.
한 꼬마 아이가 승강장을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색 정장을 입고, 8 대 2 가르마를 정성스럽게 한 아이였는데.
신바람 못지않게 한눈에 알아볼 만한…… 그런 차림새였다.
“선생님!”
아이는 신바람의 노란 정장을 알아보고는 단숨에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
신바람은 대꾸하지 않고 힐끔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늦었냐?”
“죄송합니다. 차가 좀 막혔습니다.”
“너, 구의동 살잖아.”
하얀 정장 아이는 표정이 새초롬 해졌다.
“걸어서 10분 거리도 차 타고 오냐?”
“…….”
신바람은 아이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좀 전까지의 허술한 분위기와는 완전 달랐다.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다가…….”
신바람은 나까지 들릴만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로 내 앞에서 어설픈 거짓말은 하지 마라. 그거 아주 기분 더럽거든. 무엇이든지 간에 말이야.”
“…….”
“완전히 속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거짓말해도 좋다. 걸리면 죄. 안 걸리면 무죄. 오케이?”
[버스 곧 출발합니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체 가만히 있었다.
“너, 표는 있냐?”
“선생님 찾느라…… 언제 출발하실지 몰라서 아직 안 샀습니다.”
“그래, 그럼 먼저 가마. 무주에서 봐.”
신바람은 뒤도 안 돌아보고 올라탔고.
“어? 어?”
난 당황한 눈길로 신바람과 아이를 번갈아 보다가 얼떨결에 따라서 올라탔다.
위이잉―!
버스 문이 닫히고, 아이는 끔뻑끔뻑 움직이는 버스만 보고 있었다.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약간 많아 보이는데.
저렇게 혼자 두었다가 무슨 일 일어나면 어쩌려고?
“서, 선생님, 그렇다고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왜? 여기가 외국도 아니고, 한국말 할 줄 알고, 버스만 타면 되는데?”
“그래도…….”
신바람은 핸드폰을 열어 보더니.
“다음 차가 1시간 뒤에 있어. 무주터미널에 도착해서 딱 한 시간만 기다린다. 그리고 우린 갈 길 간다.”
“…….”
“버스 못 타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걸어서 10분 거리인데, 제 집도 못 찾아갈까?”
차라리 그러면 다행이지만, 버스를 잘못 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
신바람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이의 얼굴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 * *
무주터미널.
정확히 우리가 도착한 후 1시간 뒤에, 서울발 버스가 도착했다.
제대로 타고 왔을까.
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도착한 버스를 지켜보았다.
신바람도 버스를 주시하다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뱉었다.
“훗, 짜식. 있네.”
하얀 정장을 입은 아이가 버스에서 조심히 내리고 있었다.
본인 키만 한 캐리어를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얼굴이 완전히 절어 있었다.
“선생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아이는 신바람 앞에 서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정진이라고 합니다.”
정진이?
“앞으로 이 진이가 선생님을 극진히 모시고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극진히 모실 필요는 없고, 귀찮게만 하지 마. 둘이 인사 나눠라.”
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가워. 난 김덕후라고 해.”
“그래. 정진이다.”
날 위아래로 훑어보는데 눈빛이 호의적이진 않았다.
“이름이 진이라는 거지?”
“응. 진이.”
“황진이랑 이름이 똑같네.”
이 말에 정진이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져서는 날카롭게 말했다.
“내가 여자로 보여?”
“뭐?”
“남자 이름이 진이가 어딨어?!”
“이름이 진이라며. 네가 그랬잖아.”
그는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진!’이라고 ‘진!’ 그냥 ‘진!’”
“…….”
“정진. 알겠어?!”
별것도 아닌 거로 급발진하네.
“그럼 진이라고 부르지 마?”
“…….”
정진은 이 말에 잠깐 고민했다.
그때 신바람이 나섰다.
“호칭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정진이 형이니까.”
아…… 젠장, 형이야?
“정진, 너 10살 맞지?”
“네, 맞습니다. 선생님.”
“그래. 교통정리란 중요한 것이지. 너희들은 민증이 없으니까 내가 대신 정리해 주는 거야.”
신바람은 정진에게 내 나이를 알려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버스 시간 다 와 간다. 이거 놓치면 다음 날 타야 해.”
“…….”
“시골 들어가는 버스는 잘 안 다니거든. 서둘러라.”
* * *
시골 버스 안.
창밖으로 논두렁과 산 풍경만 펼쳐지고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민가도 잘 안 보였다.
버스 안은 대부분 어르신이었는데, 60대도 없어 보였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이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탈 때 무거운 짐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날씨 얘기하고, 음식 얘기하고.
분명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걸 이웃사촌이라고 하는 건가?
서울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어떠냐?”
그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는 내게 신바람이 물었다.
“정겹지?”
“네.”
“이유가 뭐인 거 같냐?”
“…….”
글쎄…… 잘 모르겠다.
그냥 시골 사람들은 착한 건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
“…….”
“또 다른 하나는 그리움이다. 사람 자체가 그리운 것.”
사람이 그립다.
하긴…… 이곳에 오니 사람은커녕 지나다니는 차도 잘 안 보인다.
“넌 그걸 노래해야 한다. 사람과 정에 대해서.”
난 놀라서 신바람을 바라봤다.
노란 정장과는 좀 안 어울리는 멘트였다.
“…….”
그리고는 그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다시 창밖에 두었다.
시골 버스는 한참을 갔다.
무려 1시간 가까이 간 것 같다.
신바람은 코 골며 자고 있었고, 정진은 여전히 바짝 얼은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영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부르긴 싫지만…… 어쩔 수 없다.
“형.”
“왜?”
“형은 트롯 한 지 얼마나 됐어?”
이 물음에 정진은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너, 트롯 하는 애 아니냐?”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흠…… 너무 뻔한 질문이었나? 심심해서 한다는 질문이.
“나 몰라?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냐?”
“…….”
“어쩐지 아까 황진이 얘기할 때부터 좀 이상하다 싶었어.”
이때 정진의 표정은 심히 불쾌해 보였다.
트롯을 하는 아이라면 정진을 알아야 하는 건가?
“너 TV도 안 보냐?”
“어, 안 봐. 아니, 못 봐. 특히 음악프로는.”
“…….”
에휴―!
그는 한숨을 한번 쉰 후 입을 열었다.
“내가 네 나이 때 ‘아침마당놀이’에 나왔었어.”
“…….”
“그때 신동 났다고 대한민국이 들썩였는데, 트롯 신동 정진을 모른단 말이야?”
“그래?”
2년 전이면 내가 6살 때인데.
그땐 김 부장 골탕 먹이느라 정신없을 때다.
“그래서 지금은 뭐 하는데?”
“지, 지금?”
정진은 이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난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신동 소리 들으며 TV 출연까지 했던 아이가 뭐가 아쉬워서 저 이상한 노란 정장 아저씨를 따라나서는 걸까.
“흠!”
당황한 표정을 짓던 정진은 헛기침하고 말했다.
“폐관 수련 중이야.”
“뭐?”
“더 높은 수준의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 연습에 집중하는 시기라고.”
“아…….”
그럴듯하면서도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아무리 애라도 그건 좀 실례인 것 같아서.
“지럴허고 있네.”
그때 자는 줄 알았던 신바람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뱉었다.
“폐관 수련은 얼어 죽을.”
정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야, 넌 그냥 망한 거야. 망한 거.”
“…….”
“일찌감치 이미지 소진 다 돼서, 대중이 널 찾지 않는 거라고.”
신바람은 눈을 감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빨리 다 버려라, 현실을 직시해.”
“…….”
“신기함은 금방 질린다. 기본과 실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오래 갈 수가 없는 거야.”
말이 좀 심한 거 아닌가?
10살이면…… 그래도 많이 어린데.
얼굴이 벌게져 있던 정진은 이제 눈가에 물기도 차올라 있었다.
신바람이 눈을 떴다.
그리고 우리 둘을 보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프로가 되려고 하는 거잖아?”
“…….”
“난 너희들을 애들로 보지 않는다. 트롯 지망생으로 본다.”
그리고 인상을 쓰고 뱉듯이 말했다.
“나한테 많은 걸 기대하지 마.”
그리곤 다시 눈을 감았다.
“맘에 안 들면 집에 가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