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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5화 (25/250)

25화. 준비는 끝났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우렁찬 인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초등학생이 된 나는 처음엔 기대했었다.

김 부장과는 여름방학부터 음악 교육을 하기로 했지만, 학교에서 하는 음악 수업은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론 기초부터 다져 놔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없다고요?”

“그래~ 1학년은 음악 수업이 없어.”

“왜요?”

선생님은 내 질문에 황당해하며 웃었다.

“호호, 왜라니? 초등 교육과정 1학년에는 포함이 안 되어 있으니까 없는 거지.”

“아니, 누구 맘대로…….”

“뭐라고?”

“아닙니다.”

아오…….

꼼짝없이 여름방학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난 계속 음악을 듣고,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여어~ 덕후왔냐?”

“안녕하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수유역 교훈문고 핫트랙.

이젠 직원이 날 알아본다.

“오늘도 ‘가요’ 코너냐?”

“네, 근데 왜 트롯은 헤드폰 CD에 안 꽂아 놔요?”

“그거야 사람들이 잘 안 들으니까 그렇지.”

“무슨 소리예요? 작년에 장윤X 이모가 부른 ‘어머!’ 엄청 인기 많았잖아요? 그거 트롯이에요.”

“그것뿐이잖냐.”

“왜요? 박상X의 ‘조건부’도…….”

“응? 그게 무슨 노래야?”

아…… 그러고 보니, 이 노래는 아직 유명해지기 전인 것 같다. 발매는 2005년 3월에 됐지만.

“아, 아니에요. 어쨌든 트롯 CD도 좀 꽂아 주세요. 부탁합니다.”

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하하, 요 녀석아, 그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흠…… 일단 알았다. 너, 다음에 언제 올 거냐?”

“다음 주 월요일이요!”

“알았다, 그날은 트롯CD 꽂아 넣으마. 단 오후 1~3시까지만. 시간 지켜야 해.”

“하하, 감사합니다!”

핫트랙에는 매주 시간 날 때마다 갔는데, 직원은 이렇게 가끔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트롯 음악을 준비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참……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다.

7월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전생에 직장생활 할 때는 하는 것도 없이 시간 참 잘 갔는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천천히 간다.

하지만 내겐 확실한 목표가 있고, 꿈이 있다.

그래서인지 항상 가슴 속엔 행복이 충만했다.

* * *

“김덕후!”

짠짜라라 짠짠짠.

두구두구두구 빵~ 빵~!

“김덕후!”

음?

선생님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엇! 네! 선생님!”

―하하하.

반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는다.

“너 지금 선생님이 몇 번 불렀는지 아니?”

“아…….”

“수업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제 들은 노래 전주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무 집중했나 보다.

“죄송합니다. 근데 왜 부르셨어요?”

난 말똥말똥 쳐다봤다.

“왜 부르긴! 수업에 집중 안 하니까 불렀지.”

―하하하.

이게 웃긴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참 잘도 웃어 댄다.

“김덕후, 칠판에 쓰여 있는 문제 읽어 봐.”

[연못에 청개구리 44마리, 황소개구리 11마리가 있습니다.]

“앞으로 나와서 개구리가 모두 몇 마리인지 나타내는 덧셈식 쓰고 풀어 봐.”

―오…….

좀 어려운 문제인가?

반 아이들은 긴장한 채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국적 상관없이요?”

“뭐?”

“황소개구리는 외래종이잖아요. 미국, 캐나다산.”

“무, 무슨 소리야? 문제에 충실해~ 문제가 요구하는 대로 답하면 돼.”

난 나가지 않고 선 채로 대답했다.

“44 더하기 11. 개구리는 55마리입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선생님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그럼 청개구리가 황소개구리보다 몇 마리 더 많지? 뺄셈식으로…….”

“33마리 더 많습니다. 44 빼기 11이요.”

―우와~!

―덕후 진짜 똑똑하다.

―쓰지도 않고 답하네.

이런 반응…….

여기서 난 우주 초월급 존재인가?

시시해서 견딜 수가 없다.

44 더하기 11을 잘했다고 감탄하는 분위기라니.

“흠. 자리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구나.”

“…….”

잘 풀면…… 그렇게 되는 건가?

아이들은 모두 날 바라봤다.

난 의도치 않게 또 조금씩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즐생(즐거운 생활)시간.

초등학교 1학년 과정에는 체육 수업은 따로 없고, 즐생(즐거운 생활)이라는 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오늘 수업에서는 달려가서 낱말 받침을 적어 넣는 경기를 했는데, 정확하게 단어를 알아야 하고 빠른 발도 필요하다.

“야~ 빨리 좀 달려!”

덩치가 큰 아이가 날 밀치며 말했다.

“너 때문에 졌잖아.”

“…….”

내가 발은 좀 느린 편이긴 하다.

하지만 낱말 맞추는 것은 나로 인해 모두 손쉽게 해결하기도 했고, 경기에 진 건 나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밀지 좀 말아 줄래?”

“뭐어?”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큰 녀석.

날 험악하게 바라봤다.

“그래, 내가 발은 좀 느리긴 해.”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동훈과 싸운 이후로, 웬만해선 이제 꼬맹이들 안 건드리려고 한다.

그때도 걔네 엄마 때문에 좀 곤혹스러웠었다.

“근데 주먹은 빠르거든?”

쉭―쉭―

난 주먹을 휘두르며, 입으로 바람 소리를 냈다.

“너, 빠른 거 좋아하니, 묵직한 거 좋아하니?”

“…….”

독하게 노려보며 위협적인 행동을 좀 취했더니.

녀석은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애초부터 질이 나쁜 아이가 아니라면, 아직은 쉽게 겁을 먹는 나이다.

그 아이가 간 뒤에 내 옆에 있던 아이가 말했다.

“와…… 덕후가 이겼어!”

“뭐?”

“네가 이제 우리 반 1짱이야.”

난 저만치 가고 있는 녀석의 축 처진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렇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게 내게는 좋은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수업 시간에 딴청을 하든, ‘즐생’ 시간에 설렁설렁 뛰든 날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선생님의 시선만 잘 신경 쓰면 됐다.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온 천지 만물이 날 돕고 있다.

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그렇게 안 가더니, 어쨌든 가기는 갔다.

어느덧 7월이 다가왔다.

* * *

“앉아라.”

토요일 오후. 중국집.

잠시 후, 김 부장 앞에는 짬뽕.

내 앞에는 자장면이 놓였다.

꿀꺽.

자장면……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인다.

성인일 때는 질리게 사 먹었었는데, 어리니까 자장면을 자주 먹기 힘들다.

“일단 먹고 시작하자.”

김 부장의 신호에 난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안 되어, 그릇은 말끔하게 비워졌다.

“잘 먹었냐?”

“응, 갑자기 중국집에서 왜 보자고 한 거야? 그것도 단둘이?”

김 부장은 날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너, 지금도 결심은 그대로지?”

“무슨 결심?”

“음악을 하겠다는 거 말이야. 장르는 트롯. 맞지?”

김 부장은 내 속 안까지 꿰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난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물론이지. 조금도 흔들림 없어.”

“그래.”

김 부장은 물을 한잔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방학이 3주 정도 남았지?”

“맞아.”

“그래서 보자고 한 거야.”

“…….”

김 부장은 안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펼쳤다.

“이제 준비가 다 됐거든.”

“……!”

“모든 걸 설명해 주지는 않을 거야. 대략적인 계획과 내 교육의 취지를 알려 주려 한다.”

금세 내 눈은 반짝였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알겠으니까 빨리 얘기해!”

“짜식…… 하하.”

김 부장은 애달파 하는 내 모습을 즐기는 듯했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려 할 때쯤.

“난 모든 일은 근본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

“내가 말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근본이야.”

갑자기 웬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거야? 교육 계획을 얘기한다더니, 무슨 근본을…….

“난 네가 입학식 날 ‘트롯’을 한다고 해서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해 봤다.”

“…….”

“넌 박자 타고, 노래 부를 생각을 먼저 했겠지. 난 공부를 했어, 트롯은 무엇인가. 그 근본엔 무엇이 있는가.”

어쩐지 입학식 날 이후로 김 부장이 술도 안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어쨌든…… 지금 나한테 트롯학개론을 하겠다는 건가?

“걱정하지 마, 난 너 안 가르쳐.”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자세한 얘기는 필요 없고, 트롯의 근본은 한국인의 정서, 한, 흥이라고…… 난 그렇게 정리했다.”

“…….”

“트롯에도 여러 장르가 있어. 올드, 정통, 엘레지, 블루스 등…… 그건 선생님과 함께 다니면서 너에게 맞는 걸 찾아내야 한다.”

선생님?

선생님도 이미 결정이 난 건가? 그리고 함께 다닌다는 게 무슨 뜻일까.

“근본은 바닥에서 다져야 하는 거야. 책이나 글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래서 넌 방학 기간 그 부분을 집중해서 훈련할 것이다.”

“…….”

“겨우 만 7년 살았잖아. 한과 정서를 배운다는 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이제 8살이니까 43년 살았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난 뭐라고 대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데? 방학은 겨우 4주인 거 알지? 대학교랑 다르다고.”

난 김 부장의 말들이 못 미더워서 대꾸했다.

“그러니까. 극약 처방이 필요하지.”

김 부장이 살며시 미소 짓는데, 약간 섬뜩했다.

“넌 신바람 선생님과 합숙 훈련을 하게 될 것이다.”

신바람?

합숙훈련?!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신바람이 이름인가? 나다니던 어린이집이랑 이름이 똑같네.

“말 그대로야. 30일간 집 밖에서 특훈을 받게 될 거야.”

“나, 이제 8살인데?”

“왜 갑자기 어린 척이야.”

“어린 척이 아니라 실제로 어려.”

“…….”

이 말에는 김 부장도 뭐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하아…… 뭔가 좀 불안한데.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니야?

“뭐든지 한다는 마음 아니었냐? 난 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

“하고 싶은 노래 실컷 하고,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배우는데…… 너무 좋은 거 아니야?”

“훌륭한 선생님인 건 맞는 거지?”

“내 기준에서는.”

아…… 불안하다.

김 부장이 준비했다니까 너무 불안하다.

신바람…… 이름이 너무 쌈마인데.

“어머니는?”

“그건 염려 마라. 네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너가 간절히 원한다고 하니 바로 수락하더라.”

너무 일사천리인데?

이거 어째 말린 거 같다?

“무슨 다른 꿍꿍이 있는 거 아니지? 고생시켜서 음악을 스스로 관두게 한다든지…….”

김 부장은 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

“아빠를 그런 사람으로 보지 마라.”

휴우…….

김 부장은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기는 해.”

“뭔데?”

“부모 된 입장에서는…… 이게 과연 밥벌이가 될 수 있는 일이냐에 대한 고민도 해 봐야 하거든.”

아빠와 8살 아들의 대화치고는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

아들 앞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김 부장도 나 못지않게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다.

“트롯이 너무 성인 가요 느낌이고…… 대중들이 별로 선호하지를 않으니까 네가 아무리 잘 배워서 좋은 실력을 갖춘다고 해도 과연 괜찮을지,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

트롯…… 처음엔 내 심장을 울려서 선택했다.

나 또한 김 부장처럼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하지만 난 2021년까지 살다가 왔다. 미래를 생각할수록 더 확신이 든다.

현재는 ‘어머!’ 같은 일부 트롯 말고는 대중적 사랑을 못 받고 있지만.

2019년만 되어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트롯이 음원 차트를 장악하고, TV만 켜면 트롯 오디션 프로가 나온다.

그때가 되면 내 나이 22살.

완전 전성기다.

트롯이 찬란하게 꽃피울 미래를 알기에 이 정도 암흑기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리고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좋은 걸 어떡하나.

“그건 걱정하지 마.”

“…….”

“난 무조건 잘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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