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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24화 (24/250)

24화. 입학식

김 부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졌잖아.”

“…….”

“성 부장님 표정 봤어?”

자세히 보니, 방금 족구를 같이한 팀원들이었는데.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족구 한번 진 걸 가지고…….

“죄송합니다. 제가 족구를 처음 해 봐서.”

김 부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기 족구 선수 있냐?”

“…….”

“족구로 전국체전 나간 사람 있냐고. 내가 실력 가지고 뭐라 하는 게 아니야. 근성이 없잖아, 근성이!”

“…….”

“몸을 던져서라도 공을 받아야지. 조금만 멀리 떨어지면 그냥 가만히 서서 보고만 있고. 세게 공 날아오면 피하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고?!”

김 부장은 씩씩거리면서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영업 1팀 웃는 꼴 보고 싶어? 어?!”

“…….”

“야유회라니까 마냥 좋아? 웃음이 나와?”

“…….”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세 남자는 김 부장의 눈도 쳐다보지 못했다.

“자네 3명, 오늘 내가 두고 보겠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이야. 열정이…… 에휴, 어서 가 봐!”

“네!”

세 남자는 뛰어갔고, 김 부장은 그 뒤를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무슨 군대도 아니고, 족구에서 열정 타령을 하고 있냐.

* * *

점심 식사 시간.

김 부장은 직원들과 술을 마시면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가 구워다 주는 고기를 먹고 있었는데.

오늘 김 부장이 웃는 모습을 많이 본다. 날씨도 좋고……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올해 회사 실적이 좋다고 들었다.

“눈치 좀 챙겨~!”

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분명 짜증 섞인 목소리였는데, 김 부장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뭐지? 농담하는 건가?

“하하, 무슨 눈치요?”

김 부장보다 후배로 보이는 남자였다.

“테이블에 술 비어 있는 거 안 보여? 이럴 때마다 얘기해 줘야 하나?”

옆에 있는 성 부장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있어서 김 부장이 웃으면서 말하는 것 같았다.

“성 부장님 잔 비었잖아. 왜 자꾸 흐름 끊기게 하냐고. 내가 왔다 갔다 하리?”

“하하, 알겠어용~!”

젊은 직원은 좀 눈치가 없어 보이긴 했다.

김 부장이 웃으면서 말은 하지만 지금 짜증이 올라온 상태라는 건 뻔히 보이는데.

“알겠어용?! 내가 지금 장난하는 줄 알지?”

하지만 야유회니까 적당히 넘어갈 만도 한데…… 김 부장은 한 번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김 부장의 정색하는 말투에 젊은 남직원은 벌떡 일어났다.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흠…….

그냥 이때도 똑같았던 건가? 집에서만 달랐던 건가?

* * *

늦은 오후, 야유회가 끝나갈 무렵.

이번엔 뒷정리를 하다 말고, 김 부장은 직원 한 명을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난 김 부장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고, 먼발치에서 지켜봤다.

“반 대리.”

“…….”

“반기철 대리!”

“네! 과장님!”

‘반기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진미상사 송금 건 어떻게 된 거야?”

“…….”

“그게 계속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 왜 송금이 미뤄졌냐고.”

“그게, 경리부에서…….”

김 부장은 삿대질을 시작했다.

“자네 손 떠났으면 끝이야?”

“…….”

“알바생이야? 당신, 관리직 아니야?”

와, 단어 선택이…… 김 부장답다.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일 얘기 하는 것도 그렇고.

까똑이 없어도 이게 가능하구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지만 조금만 더 참고 들었다.

“담당이 말이야, 업무 마무리까지 꼼꼼하게 확인을 해야지 왜 경리부 탓을 하나?”

“…….”

“반 대리, 나랑 연차 얼마 차이도 안 나잖아. 짬밥이 얼마인데…… 사원도 아니고 말이야.”

반기철 대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

이제 기억났다.

우리 회사에 그런 성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반기철 전무.

분명 그 사람이 맞는 것 같다.

“…….”

반 대리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듣고 있는데, 손이 패일 듯 꽉 말아진 주먹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주인 의식 좀 가져, 이 사람아. 우리 입장에서야 어차피 나갈 돈이고 그냥 좀 늦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

“업체 입장에서는 우리 회사 이미지가 뭐가 되겠나?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결제 약속도 못 지키는 회사를 뭘 보고 신뢰하겠냐고. 안 그래?!”

“……네, 맞습니다.”

반 전무가 김 부장의 후배였구나.

어쩌다가 김 부장을 넘고서 전무까지 되었을까.

김 부장은 가만히 반 대리를 보다가 어깨를 툭 치고는 말했다.

“일 잘한다는 소리 들을 때, 더 조심해야 하는 거야. 주인 의식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래, 가 봐.”

“…….”

“고개 들어! 그래도 자네니까 이런 소리 하는 거야. 좀 더 잘하자고. 힘내고.”

반 대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야유회장으로 돌아갔다.

김 부장은 중얼거리며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일머리는 있는데 가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단 말이야…….”

‘잘하자’, ‘힘내자’.

김 부장이 이런 소리도 하면서 격려하기도 하는구나.

이때까지만 해도 완전 막장은 아니었네. 이제 슬슬 나타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윽―

“어이쿠! 깜짝이야!”

난 살며시 모습을 드러냈고, 김 부장은 깜짝 놀랐다.

“더, 덕후야, 여기서 뭐 하냐?”

* * *

“김 부장님.”

“뭐?”

아차. 회사 상황에 심취해 있다 보니, 잠시 헷갈렸다.

“아, 아니야. 아빠.”

“왜?”

싫어도 적과의 동침을 해야 한다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짓은 안 했으면 좋겠다.

김 부장이 과연 지킬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건으로 걸고 싶었다.

“아빠는 이 회사의 주인이 아니야.”

“뭐?”

“주인 아니라고.”

“…….”

“그냥 직원이라고.”

김 부장은 황당한지 멀뚱히 날 바라보았다.

“착각 좀 하지 마. 토사구팽이라고, 아무리 잘해 봐야 20년 뒤에 버려질 사냥개라니까?”

“…….”

“55세에 이 세상 하직할 거야? 요즘 100세 인생이라고 하잖아.”

김 부장은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사람들에게 잘하는 게 진짜 자산이야. 특히 후배들, 선배들은 아빠보다 빨리 가잖아. 후배들한테 잘하라고.”

“…….”

“별것도 아닌 거로…… 아니, 큰일이라 할지라도 그깟 회사일 때문에 동료들에게 상처 주는 말 하지 말고 잘 좀 지내 봐.”

김 부장은 처음엔 내 말을 무시하는 표정을 보였었다.

내 말을 몇 마디 더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대꾸했다.

“회사가 어떤 곳인지 아니? 전쟁터야, 전쟁터.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게 회사라고.”

“…….”

“글쎄다…… 55세 이후는 아직 난 모르겠고, 일단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냐?”

김 부장의 눈빛에 묵직한 뭔가가 담겨 있었다.

“내 어깨 위에 7명이 있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감당한다.”

김 부장의 마음을 내가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도 그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만은 정말 아니라고 본다.

방금 반 대리에게 일 얘기 하는 거 보면서 확신했다.

“내 마지막 조건, 야유회 가서 얘기한다고 했지?”

“…….”

<업무 외의 시간에는 가족에게만 집중할 것.>

“이게 내 마지막 조건이야.”

“뭐? 이게 음악 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상관있어. 내가 거슬리니까.”

그리고 난 덧붙여 말했다.

“가족과 내 음악 교육에만 집중해 줘. 회사 일은 회사에서만 해.”

“…….”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마찬가지야. 주말에 연락하거나 일 시키지 마.”

난 김 부장이 쉬는 날 연락하는 행태가 가장 꼴 보기 싫었다.

김 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나…… 알았다, 그렇게 해 보마.”

그리고 쪼그려 앉아서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들이 집중해 달라는 말을 하니까, 기분이 괜찮네.”

그는 내 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려 했고, 난 바로 그 손을 뿌리쳤다.

“저리 가.”

김 부장은 씩 웃으며 일어났고, 난 그의 뒤를 따라서 야유회 장소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서 말했다.

“방금 얘기했던 분 있잖아.”

“반 대리?”

김 부장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날 바라봤다.

“그분하고는 특히 더 잘 지내는 게 좋을 거야.”

* * *

시간은 어느덧 흘러.

나의 미취학 시절은 끝이 나고 있었다.

어린이집부터 가까이 지내던 박정훈.

같은 초등학교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었지만, 그는 야구부가 있는 초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처럼 박정훈도 자신의 길을 가야 하니까.

“우리 아들, 드디어 초등학생 형님 되네? 호호!”

입학식 날 어머니를 포함해 온 가족이 다 따라나섰다.

고맙긴 한데, 약간 부끄러웠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냥 집에 계시지…….”

“인석아~ 우리 성동 김씨 28대손 김덕후가 드디어 학생이 되는데 직접 봐야 하지 않겠냐?”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씀하셨고, 삼촌들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마디씩 했다.

“덕후야~ 축하한다.”

큰삼촌의 말에 막냇삼촌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축하는 무슨. 이제 좋은 시절 다 간 거지 뭐.”

우리는 정문 앞에 있었고, 큰삼촌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근데 네 아버지는 왜 안 오시냐? 회사에 얘기하고 잠깐 온다고 했는데.”

“안 오면 어때. 어서 사진 찍고 끝내자.”

김 부장 오기 전에 끝내고 싶다.

“덕후야!”

그때 멀리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김 부장은 아니었다.

“혀엉~!”

단발머리.

화려한 파스텔톤의 옷을 입은 두 남자.

초등학교 입학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명의 남자가 나타나자, 주위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동희와 송사무엘이었다.

“하핫, 우리 애늙은이가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네.”

정동희는 날 보자마자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형~ 온다더니, 진짜로 왔네?”

“그럼 가짜로 오냐? 하하.”

송사무엘도 날 보고 찡긋 웃었다.

“천재 김덕후, 입학 축하한다.”

“천재는 무슨~ 하하, 와 줘서 고마워 형.”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오거나, 엄마만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와~ 덕후 인기 좋네? 누가 보면 대학교 졸업하는 줄 알겠어.”

“…….”

지금 김 부장까지 오면, 10명이다.

“헉헉!”

멀리서 김 부장이 손을 흔들며 오고 있었다.

“아, 형! 빨리 와!”

큰삼촌이 빨리 오라고 소리쳤다.

양손에는 커다란 꽃다발.

말끔한 정장 차림에.

머리에는 뭘 발랐는지 단정하고 깔끔했다.

한눈에 봐도 신경 많이 쓴 티가 났다.

“…….”

지금 잠깐, 김 부장이 조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 생각을 없애 버리려고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휴, 미안하다. 차도 막히고…… 꽃 살 곳이 마땅치 않더라.”

김 부장은 내게 커다란 꽃다발을 건네었다.

“덕후야, 입학 축하한다.”

흠…….

일단 주는 거니까.

“하하. 우리 형 오늘 진짜 멋지네. 자~ 이제 다 왔으니까. 사진 한번 찍자.”

큰삼촌의 지시에 맞춰서 정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큰삼촌은 카메라를 다른 학부모에게 건네며 부탁했다.

“자~ 여기 보세요!”

학부모는 사진을 찍으려다가 프레임 안에 사람이 다 안 들어가는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하하, 대가족이시네. 보기 좋습니다. 자! 하나~ 둘~ 셋~!”

찰칵!

그렇게 사진을 찍은 후 입학식을 위해 난 학교로 들어갔다.

약 1시간 뒤.

입학식이 끝난 후 정문 밖으로 나오니, 어머니와 김 부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 날도 추운데, 기다리신 거예요?”

“우리 아들 첫 등, 하교는 같이하고 싶어서.”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고, 김 부장도 옆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아빠.”

“응?”

“이제 약 4개월 남았어. 알지?”

오늘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

본격적으로 음악 교육을 시작하기로 한 여름방학은 이제 4개월 남았다.

“그럼, 알지. 장르는 정했냐?”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다.

“응, 장르는…….”

어머니도 우리 얘기를 유심히 듣고 있었다.

“트롯이야.”

김 부장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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