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어쩌다 만나다(2)
“어이쿠 진동으로 해 놓는다는 걸…….”
묵동 이모는 황급히 핸드폰을 집어서 끄려 했다.
[바보오 처어어럼~! 우울기는~~ 왜에에 우우울~ 어으어으어으~!]
뚝!
노래가 꺾이고 있는데, 갑자기 끊겼다.
아쉬웠다. 더 듣고 싶다.
묵동 이모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호호, 많이 놀랐지?”
그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더니 바로 가려 했다.
덥석.
난 묵동 이모의 손목을 잡았다.
“응?”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뭐?”
“내 마음 흔들어 놓고 이대로 가면 어떡하냐구요.”
“……?”
묵동 이모는 날 이상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그녀를 잡아끌어서 식탁에 앉혔다.
“일단 잠깐 좀 앉아 봐요.”
“안 돼~ 손님들 많을 때 거실에 나와 있으면 사모님이 싫어하셔.”
“괜찮아요, 짧게 할게요.”
긴 시간을 두고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급한 것부터 물어봤다.
“방금 그 벨 소리 뭐에요?”
“아~!”
묵동 이모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모가 진동으로 해 놓는다는 걸 깜빡…….”
“아니요, 그걸 묻는 게 아니에요.”
두근. 두근.
계속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방금 요란하게 꺾어 대던 그 노래는 대체 뭐였을까.
“방금 나온 노래요.”
“그거? 트롯이잖아.”
트롯인 건 나도 안다.
전생에 35세까지 살면서 트롯 한번 안 들어 봤을까.
근데 왜…… 지금 그 노래가 이렇게 꽂히는 거냐고.
“울기는 왜 울어. 남훈남 오빠 노래인데, 몰라?”
남훈남?
아…… 이름은 들어 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멜로디도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기도 하고.
“노래…… 진짜 좋네요!”
난 감탄해서 엄지를 치켜들었고.
묵동 이모는 황당한 얼굴로 보다가 깔깔대며 웃었다.
“어머~ 트롯 보고 좋다는 애는 또 첨 보네.”
“이모 정말이에요, 진짜 최고예요.”
내 입에서 지금 뭔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충격 그 자체였다.
교훈문고 핫트랙에서 들었던 그 어떤 노래보다도 좋았다.
음악을 만난 게 첫 번째였다면.
지금 두 번째 운명을 만난 것 같다는 기분이랄까.
심장 박동 소리에 가까운 박자.
직설적인 가사.
묘한 슬픔이 느껴지는 정서.
절로 어깨춤이 들어가는 흥까지.
단 몇 구절이었지만, 내가 들어 본 것 중에 가장 매력적인 장르였다.
“이모~ 방금 벨 소리 다시 한번 들려줄 수 있어요?”
“호호, 그렇게 좋아?”
묵동 이모는 핸드폰 볼륨을 조금 낮춘 후에 다시 한번 벨 소리를 들려주었다.
[바보오 처어어럼~! 우울기는~~ 왜에에 우우울~ 어으어으어으~!]
벨 소리가 끝난 후에도 난 한동안 넋 놓고 있었다.
계속 듣고 싶다.
나도 저렇게 부르고 싶다.
저런 노래를 하고 싶다.
미치겠다. 이걸…… 어쩌면 좋지?
“덕후야~ 물 마시러 약수터 갔니?”
거실에서 큰삼촌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아…… 이걸 왜 집 가는 날에 알게 되었을까?
“삼촌이 기다리시는 거 같네. 어서 가 보렴.”
“묵동 이모.”
난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호호. 뭘 고마워. 월급 받고 일한 건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묵동 이모.
묵동 이모는 내가 밥 차려 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인사하는 걸로 생각하는 듯싶었다.
“곧 또 올게요.”
“그래~ 또 보자.”
“벨 소리 바꾸시면 안 돼요~!”
내 말에 묵동 이모는 박장대소를 하며 대꾸했다.
“난 남훈남 오빠밖에 없어~ 절대 안 바꿔~ 호호.”
* * *
일주일 동안의 유치원 방학.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짦은 기간이었지만.
난 그 기간 동안 삶의 목표를 찾았다.
전생에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제대로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난 겨우 7살.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그것도 아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더욱이 찜찜하게 마무리 지을 뻔했었는데, 마지막 날 묵동 이모 덕분에 방점을 찍었다.
빠라라 빠라 빠라바밤~
아직도 자꾸 그 노래의 전주 소리가 머리에 맴돈다.
정겨우면서도 흥겨운 노래의 시작.
“빠바라 빠라 빠라바밤~!”
“야~ 너 아까부터 뭘 그렇게 흥얼거리냐?”
“…….”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노래 같기도 하고.”
내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난 계속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끼이익―
“다 왔다. 집에 가자.”
“응…….”
오래된 빌라촌. 내 집에 왔다.
오랜만에 오니 반가웠다.
약간은 답답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띵동!
큰삼촌이 벨을 누르자마자.
덜컹!
문이 활짝 열리며,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오셨다.
“아이고~ 우리 아들!”
와락!
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꼭 껴안고 볼로 내 볼을 비비셨다.
“우리 아들~ 보고 싶었어!”
헉…… 숨 막혀.
얼마나 세게 안으시는지 숨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저도요,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못 지냈다! 우리 아들 보고 싶어서!”
그리고는 내 입과 볼에 여러 차례 뽀뽀를 하셨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어머니는 나를 열렬히 맞아 주셨다.
“우리 손주 왔느냐~!”
할아버지가 자애롭게 웃으며 맞아 주셨고.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 왔구나.”
할머니는 어머니 다음 차례로 날 안으려고 대기 중이셨다.
“네! 할아버지, 할머니. 강녕하셨습니까! 손주 잘 다녀왔습니다. 문안 인사 올립니다.”
내가 큰절을 하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하하, 내 손주 김덕후 맞구나~ 역시 우리 덕후야. 하하.”
그때 막냇삼촌이 내 머리를 살짝 밀면서 틱틱거리듯 말했다.
“야, 왔냐?”
“응, 삼촌.”
날 보며 씩 웃었고, 나 또한 마주 보며 웃어 주었다.
삼촌과는 이렇게 인사하면 끝이었다.
“치…….”
누나는 엄마 뒤에서 새침한 표정으로 날 한번 힐끗 보고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 마음 안다. 인사는 하고 싶은데, 마땅한 인사말도 없고 반갑기는 하지만 쑥스럽겠지.
나도 그렇다. 왠지 누나랑 인사하는 건 부끄럽다.
아직은 좀 그럴 나이다.
“아들~ 어서 들어와라. 배고프지?”
어머니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김 부장이 서 있었다.
“…….”
오랜만에 봐도…….
그냥 싫구나.
하지만 기본적인 건 해야겠지.
“다녀왔어요.”
“그래, 어서 밥 먹자.”
김 부장도 더 말하지 않고 상 앞에 가서 앉았다.
달그락. 달그락.
오랜만에 대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근데 희한한 건…….
분명히 궁금해할 법도 한데.
큰 고모네서 어떻게 지냈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하지 않으니, 일주일 만에 봤어도 딱히 얘기할 주제가 없었다.
다들 그냥 묵묵히…… 밥만 먹었다.
“아들~ 그래도 엄마 밥이 맛있지?”
“그럼요~ 근데 큰 고모네 밥도 맛있었어요.”
“…….”
‘큰 고모’라는 단어가 나오자, 분위기는 갑자기 또 싸해졌다.
보통 이렇게 말하면…… 큰 고모가 어떤 반찬 해 주디?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아버지. 저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김 부장은 밥을 빠르게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보통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는 다 먹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라~ 피곤할 텐데 먼저 들어가 쉬렴.”
“네, 아버지.”
김 부장은 쌩~ 하고는 중간 방으로 들어갔고.
가족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주일만의 복귀 후 첫 저녁 식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 *
음악과의 만남은…….
한여름 밤의 꿈 같았다.
그리고 트롯을 만난 것은 꿈속에서 돼지를 만난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달이 더 지났지만.
음악을 접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한여름 밤의 꿈 같았다.
가끔 혼자 마을버스 타고 수유역 핫트랙에 가는 것 말고는…… 그것도 정말 가끔이었다.
일전에 집에 늦게 들어온 사건 이후로,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어느덧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나의 7살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훈아, 우리 초등학교 같은 곳에 가겠지?”
“뭐~ 그렇겠지.”
우리는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에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성인이 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겠지.
앞으로 13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큰 고모에게 들은 가족 비화를 생각하면 내가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야~ 왜 한숨을 쉬고 그래.”
“아니야, 근데 넌 참 좋겠다.”
난 그런 측면에서 박정훈이 참 부러웠다. 아버지가 야구 선수고, 박정훈은 야구를 좋아하며 재능도 있으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네 아빠가 야구 선수라서.”
“뭐야~ 아직 포기 안 한 거였어?”
박정훈은 큰 소리로 웃었다.
“아니거든? 나 이제 야구에 관심 없거든?! 그리고 포기가 아니라, 진로를 바꾼 거라고 얘기했었지! 말 똑바로 해라~!”
“아 몰라~ 하하. 어쨌든 야구는 접었다니 다행이네.”
“왜?”
“내가 봐도 좀 아닌 거 같긴 했거든.”
“뭐? 이 녀석이!”
“하하.”
박정훈과 장난치는 사이 유치원 버스는 도착했다.
끼이익―
유치원 버스는 우리 빌라촌 앞에 멈췄고, 난 박정훈에게 손을 흔들며 버스에서 내렸다.
“내일 봐~!”
“그래~ 안뇽~!”
유치원 버스가 떠난 뒤.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하핫~ 뭐야, 완전 병아리네?”
누군가 날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
노란색 옷과 가방.
이 주변에 병아리와 어울릴 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
“뭐야?!”
난 거칠게 대꾸하며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엇?!”
단발머리의 두 남자.
송사무엘과 정동희였다.
“하핫.”
“혀어엉!”
난 한달음에 형들을 향해 달려갔다.
정동희는 웃으며 날 안아 주었다.
“덕후야, 잘 지냈어?”
“잘 지냈지! 왜 이제 왔어! 계속 기다렸잖아~!”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반가웠다.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랄까.
“어쭈. 어쭈. 이거 자칫하면 울겠는데?”
송사무엘도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투는 여전히 여성스럽지만 서울대에서 날 아기 대하던 태도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타이밍 기가 막히네. 이 동네는 처음이라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막막했는데.”
정동희의 말에 송사무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근데 여기 서울 맞냐? 왜 이렇게 공기가 좋아? 바로 옆에 산도 있어.”
월계수동…… 공기 하나는 괜찮지.
“근데 형들 어쩐 일이야? 왜 연락도 없이 왔어?”
“네가 핸드폰이 있냐?”
아…… 하긴 그렇지.
정동희는 그렇다 치고, 송사무엘까지 올 줄은 몰랐다.
내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송사무엘은 눈을 찡긋하고는 말했다.
“니 노래가 자꾸 맴돌더라.”
“…….”
“동희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어. 집에서 음악 하기 어렵다며?”
난 잠자코 송사무엘의 말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게 있는데.”
송사무엘은 내게 종이를 하나 건네었고.
[SF 엔터테인먼트 오디션]
“형…… 나보고 오디션을 보라고?”
겨우 7살인데?
그게 가능한가?
“응, 요즘은 어릴 적부터 육성을 하거든. 어떠냐? 넌 노래 잘하잖아. 음악적 재능도 있고.”
두근. 두근.
또 심장이 방망이질 친다.
일단은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자유롭게 음악을 접하고, 할 수만 있다면.
“근데, 필수조건이 있어.”
정동희는 종이 한 장을 더 건넸고, 그 종이의 제목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부모님 동의서]
하아~ 젠장.
김 부장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가능하겠냐? 뭐 우리가 도울 게 있으면 돕겠지만…….”
난 정동희가 건넨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 들었다.
“일단 부딪혀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