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만남(1)
난 잠시 앉아서 아줌마가 음식 차리는 걸 기다렸다.
큰 고모는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큰 고모는요?”
아줌마는 벽에 있는 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아직 시간이 안 됐어. 5분 뒤에 오실 거야.”
“아,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요?”
“응. 사모님은 시간 관리에 철저하시거든. 먹는 것도 그렇고…… 하여튼 모든 관리에 철저하시지.”
“아…… 네.”
아줌마는 뭔가 정감이 갔다.
이 집의 분위기와는 아주 달랐다.
“배고프지?”
아줌마는 이제 음식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새우조림, 불고기, 호박전…… 점심치고는 차림이 많았다.
우리 집으로 치면 명절 음식 수준.
“잠깐만 기다리렴. 이제 사모님 2분 뒤면 오실 거니까.”
“네.”
음식을 놓다 말고, 아줌마는 날 물끄러미 보았다.
“고놈 참 잘생겼네.”
“네? 저요?”
7년을 살아오면서, 잘 생겼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보는데.
어머니한테도 그런 말은 못 들어 봤다.
“아닐걸요?”
난 더 얘기를 들어 보고 싶어서, ‘고맙습니다’ 대신 부정적인 대답을 해 봤다.
“지금은 아니지.”
“…….”
뭐야, 장난하나.
아줌마는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아직 덜 영글어서 그런데, 잘생긴 얼굴이야. 네가 살아온 시간만큼만 더 지나면…… 여자 꽤 울릴 것 같은데? 호호.”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그렇다면 중학생 정도를 말하는 건가?
좀 묘하긴 하지만…… 어쨌든 고마운 말이네.
“……그렇다면.”
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미리 감사하다고 말씀드릴게요.”
“호호. 말을 참 재밌게 하는구나.”
난 그 말에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아줌마를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아줌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지금처럼 아줌마라고 부르면 되잖아.”
그렇게 부르기가 좀 불편했다.
집에서 음식을 해 주고 계시는데, 아줌마라고 하는 건 뭔가 수직 관계처럼 느껴졌다.
“어디 사세요?”
“난 묵동에 살지.”
“그럼 묵동 이모 어때요?”
“묵동 이모?”
“네.”
묵동 이모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깔깔대며 웃었다.
“호호 좋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넵. 묵동 이모~ 하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식사 준비가 됐나요?”
큰 고모였다.
묵동 이모는 내게 윙크를 하고는 벽시계를 가리켰다.
정확하게 12시.
1분도 늦거나 빠르지도 않았다.
“네~ 사모님. 다 됐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고마워요. 덕후는 먼저 와 있었구나?”
“네~ 큰 고모.”
“그럼 어서 먹자.”
큰 고모가 자리에 앉자, 아줌마는 자리를 피하려 했다.
“묵동 이모? 어디 가요? 같이 식사하시죠.”
내 말에 묵동 이모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야. 난 따로 식사하는 거야. 어서 맛있게 먹으렴.”
묵동 이모는 큰 고모에게 살짝 묵례하고 사라졌다.
“아니……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큰 고모는 가만히 있다가 내게 말했다.
“덕후야. 이 집에는 룰이 있단다.”
“…….”
“여기 있는 동안은 룰을 지켜야 해. 잘 모를 때는 그냥 가만히 있어라.”
분명 정색한 말투인데, 얼굴은 아주 평온하고 우아했다.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줌마는 우리와 식사를 따로 하는 거야. 그것도 룰 중에 하나란다.”
“…….”
“네가 이렇게 쓸데없이 몇 마디 하면 어색해지는 거야. 잘 몰라서 그런 거니까. 앞으로 주의하면 돼.”
“알겠어요. 큰 고모.”
“그래. 어서 먹자.”
묵동 이모가 해 준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미안하지만…… 솔직히 어머니가 해 준 것보다 더.
난 정신 놓고 먹고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우걱. 우걱.
허억. 허억.
난 평소처럼 오른손에는 숟가락, 왼손엔 포크.
양손으로 온 영혼을 담아, 집중해서 먹었다.
“휴우―!”
어느새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고.
큰 고모는 이제 반 정도 먹었다.
“훗. 잘 먹었니?”
“네. 큰 고모.”
큰 고모는 밥이 반이나 남아 있는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더 안 드세요?”
“내가 애 키워 본 지가 오래돼서 그런지, 적응이 안 되는구나.”
큰 고모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내가 먹은 자리를 보았다.
“…….”
딱 7살짜리가 밥 처먹은 상태.
말 그대로 내 자리는 개판이었다.
“덕후랑 식사하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되겠어.”
“하하…….”
와…… 돌려 까기 장난 아닌데?
“일단은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가만히 있었는데, 조금 신경 써서 먹을 수 있겠니?”
“네. 큰 고모. 여긴 남의 집이니까 주의할게요.”
“…….”
나도 살짝 돌려 깠다.
“아줌마!”
큰 고모의 부름에 묵동 이모는 바로 왔다.
“네, 사모님.”
“밥 다 먹었으니까. 치워 주시고요. 차 좀 내주세요.”
“벌써 다 드셨어요?”
“…….”
이 말에 큰 고모는 대꾸하지 않았다.
묵동 이모는 눈치를 살피고는 곧바로 차와 과일을 내왔다.
“들어라.”
“네. 고모.”
이번엔 아까와는 달리 좀 조심해서 먹었다.
원래는 나는 과일을 먹을 때는 양손으로 먹는다. 한 손은 입으로 넣고, 한 손은 다른 과일을 짚고.
대가족 속에 살면서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는 마음에 이런 습관이 생기기도 했고.
몸이 어리다 보니 욕구에서는 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있다.
이번엔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했다.
난 내심 궁금했던 걸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요? 언제 집에 와요?”
“고모부는 지금 해외 출장 중이시고~ 형들은…… 글쎄다. 들어오는 시간이 매번 다르긴 한데. 보통은 저녁때쯤에 온단다.”
“네…….”
이제 점심시간이니, 그 둘을 만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큰 고모는 차를 몇 모금 마시고는 내게 천천히 물었다.
“일주일간 어떻게 보낼 생각이니?”
내게 질문한 큰 고모의 시선은 찻잔을 향해 있었다.
흠…… 질문의 의도가 뭘까?
속내는 모르지만, 아주 일반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7살 아이가 일주일간 큰 고모네 온다면 뭘 하겠는가.
“그냥 놀 건데요.”
“…….”
“놀러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놀러 왔는데요.”
피식.
큰 고모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웃었다.
“그렇니?”
“물론이죠.”
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물었다.
“밖에 나가도 돼요?”
“그건, 안 돼.”
뭘 하지?
여긴 장난감 총도 없고, 로보트도 없는데.
“밖에 나가서 노는 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잖아.”
“…….”
“고모네 집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하며 놀아야지.”
“그게 뭔데요?”
난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글쎄다, 너희 집에는 없고, 고모 집에는 있는 거?”
“…….”
그래도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고모는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말했다.
“아까 방 소개한 곳 중에 ‘연습실’이라고 있었지?”
“네.”
“형들이 연습하는 곳인데, 아마 너희 집에 그런 곳은 없을 거야.”
“…….”
당연히 없다. 악기는커녕 음악 프로도 보기 힘드니까.
“원한다면, 연습실에서 마음껏 놀아도 좋다.”
* * *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나이 7살.
제약이 너무 많다.
혼자서 뭔가를 배우러 다니기는커녕, 밖에 돌아다니기조차 쉽지 않다.
일전에 집에 늦게 들어온 일이 있고 난 이후로는, 이제 마을버스도 혼자 못 탄다.
정말 아주 최소한의 교육을 받으며, 그저 건강하게 자라는 데만 집중해야 하는 나이 7살.
그래서 큰 고모네 집에 온 지금이 내게 다시 올 수 없는 기회다.
집에서는 날 음악을 시킬 돈도, 여유도 없을뿐더러, 무슨 이유에서인지 음악 얘기는 말도 못 꺼내게 한다.
‘원한다면, 연습실에서 마음껏 놀아도 좋다.’
큰 고모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 금 같은 시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벌떡.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형 방을 지나쳐서. ‘연습실’이라고 알려 줬던 곳을 찾아갔다.
끼이익―
난 살며시 문을 열었다.
분명히 마음껏 놀아도 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내가 뭐 도둑놈도 아니고. 당당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발뒤꿈치는 들려 있었다.
살금살금.
덜컹.
들어가자마자, 난 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오…… 대박인데?”
방안은 두꺼운 계란판 같은 게 온 벽면에 둘려 있고, 각종 악기가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심지어 마이크도 있고, 전자 키보드도 있었다.
“하하, 오길 잘했네. 잘했어.”
확실히 음대생들이라 다르구나.
이제 친척 형을 어떻게 구워삶느냐만 남아 있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도대체가 왜 이런 건지.
빨리 다 배우고 싶다.
“아~ 미치겠다.”
난 결국. 피아노 건반을 건드렸다.
띵―
헉!
소리가 난다!
띵띵띠리리~!
키보드는 내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소리를 내었고.
난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키보드 건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눌러 보며 머릿속에 기억했다.
그리고 듣기 좋은 멜로디를 떠올리며, 한 손으로 건반을 눌러 보았다.
“오호~!”
내 손이 춤을 추니, 더 듣기가 좋았다.
“하하하.”
난 신나서 이리저리 누르며 놀았고. 정말 방음이 잘 되는 건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띠리리 딩동~ 딩동~!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계속 새로운 음이 나오고.
하나의 음으로 여러 멜로디를 만들고 다시 음들을 조합하는 재미.
온종일 이러고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이번엔 YMCA를 떠올리며, 건반을 누르고 있는데.
빰~ 빠밤. 빠빠라 빠바바밤
“너 누구냐?”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덕훈데요.”
난 무심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무아지경에 빠져 있어서 지금 상황이 인지가 잘 안 되었다.
“덕후?”
그제야 난 뒤를 돌아봤고.
문 앞에 단발머리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 *
“어이쿠, 이런!”
난 재빨리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김덕후입니다. 누구세요?”
“너야말로 누구야? 왜 여기 있는 거야?”
“…….”
내가 누구냐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일단 이곳은 큰 고모의 집이니까.
“김옥녀 여사님 조카 되는 사람입니다.”
“뭐? 김옥녀 여사님은 우리 엄만데?”
“…….”
우리는 말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아아~!”
그제야 남자는 아는 척을 했다.
“큰삼촌 아들이 놀러 온다더니, 네가 걔구나?”
“걔요?”
“아, 아니. 미안. 내가 이름을 몰라서.”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김덕후라고.”
“아, 그래.”
남자는 머쓱한지 웃었다.
“그럼 그쪽은…… 동희 형?”
“하하, 그래. 내 이름 아는구나? 정동희야, 네 친척 형이지.”
“네, 처음 뵙겠습니다.”
“…….”
사촌 간에 이런 어색한 인사가 있을까.
전혀 왕래 없이 지내니까,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근데 좀 일찍 오셨네요?”
“일찍 와? 나 오는 시간을 알고 있었어?”
“큰 고모가 보통 저녁때쯤 온다고 하길래요.”
“아~!”
정동희는 웃으며 말했다.
“이 방이 창 없이 밀폐되어 있으니까 잘 몰랐구나?”
“네?”
“지금 저녁 7시야.”
뭐야, 점심때쯤에 이 방에 들어왔었는데.
벌써 그렇게 됐다고?
저번에 교훈문고 핫트랙에서도 그랬었는데…… 음악만 접하면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지?
정동희는 황당해하는 내 표정을 보다가 물었다.
“근데 너, 피아노 잘 치더라?”
“제가요?”
“한 손으로만 기가 막히게 치던데?”
“…….”
그는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디서 좀 배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