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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5화 (15/250)

15화. 기회를 개척한다(2)

“크, 큰 고모한테 전화한다고?”

어머니는 뭐가 그렇게 당혹스러우신지 말까지 더듬었다.

“조카가 고모한테 전화하는 게 뭐 어때서요?”

“…….”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다가 말했다.

“꼭 가야겠니?”

“큰 고모가 오라고 했잖아요. 저 또한 가 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럼 엄마가 전화할게. 네가 어른한테 전화한다는 건 좀…….”

‘어머니, 죄송하지만 지금은 어머니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직접 전화할게요. 인사 겸 전화하는 건데 뭐 어때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난 아직 너무 어려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한번 온 기회.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머뭇거렸다.

“알려 주기 싫으시면 마세요. 삼촌들한테 물어보죠, 뭐.”

“싫긴!”

이 말이 어머니의 자존심을 건드렸나 보다.

어머니는 종이에 연락처를 적어서 내게 건네셨다.

“자! 여기 있다. 통화할 때는 예의 바르게 하고. 큰 고모는 우리 집의 큰 어른이시니까.”

“어머니, 걱정 마세요.”

평소 내가 말을 똑 부러지게 하는 걸 알기에, 어머니는 더는 별말씀 안 하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난 바로 큰 고모에게 전화했다.

“여보세요?”

[네, 전화 받았습니다. 누구세요?]

“큰 고모!”

[…….]

그녀를 이렇게 반갑게 부르는 사람이 없어서일까?

큰 고모는 잠시 대꾸가 없다가.

[누구지?]

“저…… 김옥녀 사모님 맞으십니까?”

난 혹시나 해서 이름을 확인했다.

[맞는데, 누구야? 혹시 장난 전화?]

“하하. 큰 고모~ 저 덕후에요.”

[덕후?]

그러고 또 가만히 있는다.

아무래도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것 같은데…… 조금 짜증 나지만, 난 참고 설명했다.

“김진하 부장. 아, 아니지, 김진하 씨 아들이요~ 김덕후요~!”

[아아~!]

큰 고모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톤이 올라갔다.

[호호, 네가 전화를 걸 줄이야. 전혀 생각도 못 했네. 호호. 웬일이니?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어요. 큰 고모도 강녕하셨죠?”

[강녕? 호호. 하여간 조그만 게 단어 쓰는 거 하며…… 더 확실히 기억나는구나. 물론 잘 지냈지~]

차가운 인상의 큰 고모였는데, 예상외로 전화를 따뜻하게 받아 주었다.

[근데 어쩐 일이니? 네가 직접 전화를 다 하고? 호호]

평소 잘 왕래도 없는 친척 조카가…… 그것도 7살짜리가 전화를 했으니. 황당할 만하지.

“방학 때 놀러 오라고 하셨잖아요. 날짜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어요.”

난 바로 훅 들어갔다.

[아~ 그래? 내가 그랬었니?]

“네, 그러셨어요. 큰 고모가 오라고 했는데, 당연히 가야겠지요. 지금 와서 딴소리하실 분도 아니실 거구요.”

[호호.]

큰 고모는 한참을 깔깔대고 웃었다.

[큰 고모네 와 보고 싶은가 보구나?]

“네.”

[방학이 언젠데?]

난 방학 기간을 얘기하면서, 큰 고모네 있는 동안의 일정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와~ 철저하네. 넌 쪼그만 게 어째 그러니?]

“다시 없을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다시 없을 기회?]

“뭐 그냥 그렇다고요.”

[호호. 그래.]

큰 고모는 잠시 있다가.

[그래~ 그럼 방학 기간에 큰 고모네 있다가 가렴. 올 때는 어떻게 오게?]

나이스!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건 염려 마세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알았다~ 찾아오기 어렵진 않을 거야.]

“네, 고모.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전화 끊자.]

“잠깐만요.”

난 끊으려는 큰 고모를 막았다.

[응? 왜?]

“큰 고모, 저 부탁 하나만 할게요.”

[무슨 부탁?]

“…….”

괜한 에너지 소모하고 싶지 않다. 말 섞기 싫은 것도 있고.

게다가 내가 말 꺼내면 분명히 반대할 것 같았다.

“아빠한테 전화 좀 해 주세요.”

[아빠?]

“네, 방학 동안 큰 고모네 가 있는 다고요.”

[아…….]

큰 고모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본인에게 이 부탁을 하는지. 그리고 과연 자신이 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

[꽤 영리하구나.]

다행히 큰 고모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더 묻지도 않았으며, 까탈스럽게 조건을 달지도 않았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하자꾸나. 내가 아빠한테는 얘기할게.]

“감사합니다, 큰 고모!”

[그래, 그럼 방학 때 보자.]

“네!”

* * *

2주 뒤. 큰 고모 집에 가는 날.

우리 집에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덕후야, 너 진짜 꼭 가야겠니?”

어머니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7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큰 고모와 평소 왕래를 자주 했던 것도 아니고.

“네, 어머니. 염려 마세요.”

“왜 굳이 거기에 간다고…….”

어머니는 한숨을 쉬셨고, 옆에서 보다 못한 큰삼촌이 말했다.

“형수~ 걱정 마요. 제가 중간에 한번 갔다 올 테니까.”

“그래 줄래요?”

“네, 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왜 굳이 가려고 하는지.”

큰삼촌은 날 살짝 째려보았고, 난 그 눈빛을 피했다.

김 부장은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덕후야, 가자.”

“…….”

김 부장은 내가 가는 걸 말리지 않았다.

아마도 큰 고모가 전화를 해서 그럴 것이다.

내막을 모르는 가족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말릴 것 같은 사람이 가만히 있으니까.

“나 혼자 간다니까.”

“그건 안 돼. 싫으면 큰 고모네 안 가도 된다.”

“알았어, 가자.”

김 부장은 회사에 반차를 내었고, 굳이 날 바래다준다고 했다.

김 부장과 1시간 정도를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지만.

어쩔 수 없다.

더 큰 것을 위해, 하나는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오냐~ 조심히 갔다 와라.”

난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

“아이고, 우리 아들.”

어머니는 날 꼭 껴안으셨다.

“가서 힘들면 바로 와. 알겠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삼촌들까지 가족 모두는 현관 앞에서 날 배웅했다.

무슨 과거 시험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차 안.

출발한 지 40분째.

이제 막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이번 생에 이제야 다리를 건너는구나.

창밖으로 푸르고 넓은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덕후야.”

“…….”

난 못 들은 척했다.

제발…… 말 걸지 말아 줬으면.

“덕후야.”

“쿠우…….”

난 자는 척을 해 봤다.

“안 자는 거 알아.”

“……왜 불렀어?”

김 부장은 전방에 시선을 둔 채로 말했다.

“큰 고모가 아빠한테 전화했더라.”

“그래?”

난 모른 척했다. 설마 큰 고모가 내가 전화해 달랬다는 말을 하진 않았겠지.

“큰 고모에게 가고 싶다고 했다며?”

“맞아, 근데 큰 고모가 설날 때 먼저 오라고 말씀을 하셨었어.”

숨은 의도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난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역시 김 부장.

이 상황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

독사 같은 집요함에 눈치 100단.

김 부장은 항상 조심해야 하는 사람이다.

“…….”

“어쨌든.”

차는 신호대기에 섰고, 김 부장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봤다.

“넌 내 아들이야.”

“…….”

“넌 보통 녀석이 아니야. 난 널 어리게만 보지 않는다. 난 그냥 네가…….”

쎄한 눈빛. 내 가슴속까지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설마 내가 인생 2회차인 것까지 짐작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야. 말도 안 된다.

내가 2회차인 걸 알면, 이렇게 잘 대해 줄 리가 없지.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말해 주지 않는 한 알 리가 없어.

난 화제를 전환해야겠다는 생각에 말을 잘랐다.

“저기.”

“응?”

“빨리 가, 파란불이야.”

“아, 그래.”

김 부장은 바로 앞을 보며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우리는 다시 말이 없어졌고, 잠시 후 고급 빌라 단지 앞에 차를 세웠다.

[청당빌라]

우리 집도 빌라촌이긴 하지만 분위기가 아주 달랐다.

노란색 벽으로 된 외관에 빌라 주변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아주 고급스러웠다.

“그럼 나갈게.”

덜컹.

난 차 문을 열었고, 굳이 같이 올라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김 부장 또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덕후야, 아빠가 아까 하려던 말은.”

난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멈췄다.

“그냥 잘 지내고 오라고.”

“…….”

김 부장…… 요즘 자꾸 짜증 나게 하네.

덜컹!

난 차 문을 세 개 닫고 빌라를 향해 걸어갔다.

* * *

띵동!

휴우―

큰 고모네 집 벨을 누르고 난 잠시 기다렸다.

막상 오긴 왔는데, 좀 긴장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큰 고모는 내게 호의를 보이는 걸까?

내내 그 생각을 좀 해 봤지만, 잘 모르겠다.

뭔가 꺼림칙한 부분도 전혀 없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중요한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덜컹.

“어~ 덕후 왔구나?”

무슨 의도이든 간에,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으면 된다.

“큰 고모~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들어와라.”

큰 고모가 문을 열고 날 맞이했다.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차가운 인상.

거진 반년 만에 봤는데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우와~!”

집에 한 발을 내딛고는 난 바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호호. 집이 좀 누추하지? 큰 고모는 이렇게 살아~!”

“누추하긴요…… 대박.”

밖에서 볼 때는 좀 고급스러워 보이는 평범한 빌라였는데.

안은 궁궐이었다.

대리석 바닥에 하얀색 벽면. 웬만한 장식은 금색으로 되어 있다.

화이트 앤 골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극치였다.

더군다나 실내는 얼마나 넓은지, 뛰어다녀도 될 정도였다.

내가 지금 작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넓고 쾌적했다.

“큰 고모…… 고맙습니다. 제가 이렇게 견문을 넓히네요.”

“호호~ 말하는 거하고는.”

이런 집은 전생에서도 와 본 적이 없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리 오렴. 집 구경시켜 줄게.”

“네.”

난 고모를 따라서 집 구석구석을 살폈다.

최소한의 인테리어만 있고, 집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방은 총 5개가 있었는데, 안방, 형 방 2개 그리고 서재가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연습실이라고 했다.

“네 방이야.”

서재 앞에서 고모가 말했다.

“네? 제, 제 방이요? 혼자 쓰는 거예요?”

“그래. 손님들 오면 쓰게 하는 방인데, 일주일간은 이 방을 쓰면 돼.”

허…… 내 방이 생긴다니.

7년간 부모님과 한방을 썼는데, 혼자 방을 써 본 게 언젠지…….

“왜? 혼자 방 쓰기가 무섭니?”

난 도리질을 쳤다.

“아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큰 고모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래. 짐 풀고 좀 쉬었다가 거실로 나오렴. 점심 먹자.”

“네, 고모님 감사합니다.”

“호호. 감사합니다가 뭐니. 그냥 고마워요~ 이렇게 말해도 돼. 편하게 하렴.”

덜컹.

큰 고모가 나간 후 방안을 살폈다.

침대와 책상이 있고, 책장에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마치 교수님 방 같은 분위기였다.

“흐아~!”

난 아저씨 소리를 내며 침대에 누웠다.

이곳에 일단 왔다.

앞으로 일주일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보아하니 형들은 집에 없는 것 같고…… 일단 그들과 접선을 해야 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도움을 요청하면 음악을 접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 둘은 음대생이고, 난 친척 동생이니까.

잠시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가,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밥 먼저 먹자~!”

부엌은 거실 안쪽에 연결되어 있었고, 뭔가 분주한 소리가 났다.

“큰 고모~ 응?!”

웬 모르는 아줌마가 부엌에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네가 덕후구나?”

날 보며 살며시 웃는데, 순수하고 편안한 미소였다.

좀 눈에 띄는 게 있다면, 앞니가 하나 없었다.

“절 아세요?”

“그럼~ 사모님한테 얘기 들었지.”

사모님? 큰 고모를 그렇게 부르는 건가? 그렇다면……혹시 부잣집에만 있다던…….

“일 봐주는 아줌마야~ 밥 거의 다 됐거든? 식탁에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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