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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14화 (14/250)

14화. 기회를 개척한다(1)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후.

시간이 꽤 늦었는데도, 김 부장은 밖에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삼촌 둘이서 맞고를 치고 있었고, 난 옆에서 구경하다가 물었다.

“아빠 어디 간 걸까?”

“글쎄다. 밖에서 술 한잔하고 있지 않을까?”

큰삼촌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찰싹!

“앗싸! 가오리!”

막냇삼촌이 힘차게 소리쳤다.

“하하, 형! 쓰리고 간다~ 조심해!”

명절과 상관없이 두 삼촌은 이렇게 종종 맞고를 친다.

요즘 맞고가 유행이라던데.

“아까 나 많이 찾았어?”

“그럼~ 많이 찾았지. 야, 7살 꼬맹이가 밤이 다되도록 안 들어오고 있는데, 걱정되지 않겠냐?”

“…….”

“네 아빠가 형수한테 화내는 거 처음 봤다. 눈 뒤집히니까 먹이사슬도 상관없더구먼.”

찰싹!

막냇삼촌은 힘차게 화투짝을 내던지며 덧붙였다.

“맞아, 꽃사슴이 호랑이한테 덤비는 격이었어.”

난 못내 궁금했다.

“왜? 왜 아빠가 어머니한테?”

큰삼촌은 막냇삼촌에게 백 원짜리를 무더기로 내어 주며 말했다.

“왜긴? 어린 너를 혼자 버스 태워 보냈다고 그런 거지.”

“…….”

“네가 핸드폰이 있길 하냐…… 아무리 어른스럽게 행동해도 어쨌든 어린애인데.”

큰삼촌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형수도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긴 하지만.”

막냇삼촌은 백 원짜리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그건 약과야. 아까 경찰서에서 네 아빠가 어땠던 줄 아냐?”

“어땠는데?”

“당장 안 움직인다고 얼마나 개지랄을…… 아, 아니, 난리를 치던지. 경찰들도 두손 두발 다 들었다니까?”

큰삼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난 너 찾기 전에 형이 감방 가는 줄 알고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막냇삼촌은 피식 웃었다.

“그러게, 안 그래도 전적이 있는…….”

“진우야!”

큰삼촌은 황급히 말을 막았고, 막냇삼촌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전적? 무슨 전적? 왜 말을 하다 말아?”

분명히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아, 아니야, 덕후야. 그것보다 너, 어서 들어가 자야 하지 않겠냐?”

“…….”

“벌써 10시가 다 되어가네? 너, 이 정도면 야근이야. 빨리 들어가자.”

아이는 일찍 자야 잘 큰다고, 김 부장의 강력한 지침으로 9시면 무조건 자야 했다.

전생에는 12시 전에는 절대 잠들지 않았었는데.

“아직 아빠 안 들어왔잖아.”

“어허, 내가 보고 있잖아~ 어서 자!”

큰삼촌이 눈을 부릅떴고.

난 더 어쩔 수 없었다.

막냇삼촌이 이상한 말만 안 했으면 더 놀 수 있었는데.

“치.”

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다음 날.

유치원을 갔다 온 후.

거실에는 나와 어머니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김 부장 와이셔츠를 다림질하고 있었고, 삼촌들은 어디 갔는지 집에 없었다.

난 어젯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교훈문고 핫트랙에서 받은 충격.

내 심장을 두들기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건 누구나 좋아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근데 이건 단순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난 음악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한가지 염려되는 것은 만약 김 부장이 음악의 길을 가는 걸 지지한다면…….

그러면 하기 싫어질 것 같은데.

“어머니.”

“응?”

“…….”

말이 쉽게 안 꺼내졌다.

집 상황을 뻔히 아는데, 지원을 요청한다는 게.

“저 피아노 학원 보내주세요.”

“피아노?”

어머니는 날 멀뚱히 바라보셨다.

뭐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일단 내 나이 때에 가장 진행하기 쉬운 것부터 해 보려는 것이다.

“갑자기 웬 피아노?”

근데, 내가 ‘피아노’라는 말을 했을 때 어머니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유치원 친구 중에 피아노 하는 애들이 있는데, 부럽더라고요. 저도 ‘나비야’ 연주하고 싶어요.”

“그거 배워서 뭐 하니.”

음?

어머니답지 않게 너무 염세적인 말씀을…….

“그거 소용없다.”

“그러면 기타 배우고 싶어요.”

“뭐?”

어머니는 다리미를 내려놓았다.

난 아무래도 논리적으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한글이나 수학은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잖아요. 저처럼 아주 어릴 때는 특기 위주로 배우는 게 좋아요. 지각력이나 손가락 단련에도 도움이 되고요.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되면 나중에…….”

나는 마치 음악 학원 강사처럼 말을 쏟아내었고, 어머니는 중간에 말을 잘랐다.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돼서 뭐 하게?”

“네?”

이렇게 질문을 던지실 줄이야.

“전반적인 이해가 되면 좋죠. 남자는 여러 가지를 할 줄 알아야…….”

“그거 필요 없다. 음악 할 것도 아닌데, 무슨 이해가 필요하니?”

음악 할 것도 아니라고?

왜 시작부터 단정 지어서 얘기하지. 뭔가 좀 이상하다.

단순히 학원비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너, 이제 7살이야. 벌써 그럴 필요 없다.”

“…….”

“지금은 그냥 건강하게 자라면 돼.”

물러설 수 없다.

몰랐다면 모르겠는데, 난 이미 음악을 알아 버렸다.

어떻게든 해 보고 싶다.

“어머니, 제가 이렇게 원하는데도요?”

“…….”

“저 배워 보고 싶어요. 피아노 학원 보내 주세요.”

“안 된다.”

“어머니…….”

“어허!”

결국 어머니의 언성이 올라갔고, 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니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지 말자.

기회가 있겠지.

그날 저녁.

거실에서 혼자 빈둥거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방에 계시고.

삼촌 둘은 거실에서 TV를, 김 부장은 신문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에.

누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신기하게도 누나에 대해서는 가족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형, 재희 얘기 들었어?”

막냇삼촌은 TV를 보면서 큰삼촌에게 말했다.

“아니? 재희는 왜?”

“이번에 서울대 음대 수석 합격했다는데?”

“아~ 맞다, 걔 올해 대학생 되지.”

큰삼촌은 씁쓸히 웃었다.

“하여간 잘나가는 집안은 뭘 해도 되네.”

“부의 대물림이지 뭐. 얼마나 돈을 쳐 발랐겠어. 아들 학벌 만들려고.”

막냇삼촌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근데 어째 큰누나네는 자식 둘을 다 음악을 시켜 버리네.”

“매형 재능 물려받았나 보지. 근데 과연 애들이 원한 걸까? 동희는 별로 관심 없어 보이던데.”

막냇삼촌은 큰삼촌의 말에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공부로는 어떻게 안 될 거 같으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학벌 만드는 거지 뭐. 하여간 누나 수는 뻔히 보인다니까.”

“그러게, 뭘 굳이 서울대를 보내겠다고…….”

잠자코 신문을 보고 있던 김 부장이 한마디 했다.

“서울 음대 입학이 쉬운 줄 아냐?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그게 일반전형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어.”

김 부장의 말에 큰삼촌은 목울대를 세웠다.

“형~ 맞잖아! 왜 이렇게 누나는 형을 신경 쓰는지 모르겠어. 분명 형 때문에 조카들 서울대 보내려고 애를 썼을걸?”

“…….”

“뭐만 하면 형이 기준이잖아. 동생도 한참 동생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니깐? 일반인이 수재를 따라가려면 당연히 한계가 있지. 안 봐도 뻔해, 누나가 애들을 얼마나 볶아 댔을지.”

유심히 듣다가 도저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기…… 큰삼촌?”

큰삼촌이 날 바라봤다.

“응?”

“지금 누구 얘기하는 거야?”

막냇삼촌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어른들 얘기하는데 조끄만 게~!”

“아 됐고, 큰삼촌?”

난 막냇삼촌 말은 무시하고, 큰삼촌을 바라봤다.

“아~ 덕후는 동희랑 재희 모르겠구나?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른다. 이름도 오늘 처음 들어 봤다.

큰삼촌은 웃으며 말했다.

“큰 고모 자녀들이야. 정동희. 정재희.”

“아~!”

“너한텐 사촌 형들이지.”

“근데 벌써 대학을 들어갔어?”

“벌써라니? 큰 고모 나이가 몇인데. 너도 대충 알지 않니?”

“…….”

잘은 모르지만, 할머니와 나이가 큰 차이 안 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근데…… 그 형들이 음대를 다닌다는 거야?”

“맞아, 둘 다 서울대 음대 다녀.”

대박인데?

거기 들어가기 쉽지 않을 텐데? 더군다나 음대면…….

“나도 음대 가고 싶은데.”

“흡!”

무심코 던진 말에 분위기는 싸해졌다.

큰삼촌과 막냇삼촌은 김 부장의 표정을 살폈고.

김 부장은 아무 말 없이 얼굴 옆 근육이 불끈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금니를 씹는 것 같다.

“덕후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큰삼촌은 김 부장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왜? 거기 가면 안 돼?”

“야, 야, 7살짜리가 무슨 대학 입학 얘기를 하냐? 과학자가 되고 싶다든지, 대통령이 되고 싶다든지…… 뭐 그런 꿈을 얘기해야지.”

“난 음악 하고 싶어.”

“…….”

벌떡.

김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에휴~ 하여간.”

큰삼촌은 한숨을 쉬며 내 머리를 살짝 쥐어박았다.

“그렇게 네 아빠를 괴롭히고 싶냐?”

옆에서 막냇삼촌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김덕후. 하하. 고단수라니까?”

“…….”

흠…… 괴롭히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 * *

며칠이 지났고.

내가 음악 얘기를 꺼낸 이후, 집안의 분위기가 약간 달라진 게 느껴졌다.

그래도 난 어머니에게 학원 보내 달라고 몇 번 더 졸라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보통 7살이 이런 얘기를 하면 저러다 말겠지 하고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아기 때부터 특출한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에 가족들은 내가 하는 말을 예사로 듣지 않았다.

“다녀왔습니다~!”

“오냐~ 어서 와라.”

여느 때처럼 어머니가 반겨 주셨다.

“자~ 엄마가 가방 내려줄게.”

“네~!”

어머니는 가방 문을 열었다.

유치원에서 전달할 내용이나 과제 등을 가방에 넣기 때문에, 집에 오면 어른이 항상 열어 봐야 한다.

“응?”

어머니는 가방 안에 있는 서류들을 살피다가 희미하게 미소 지으셨다.

“우리 덕후 좋겠네~!”

“네? 왜요?”

“2주 뒤에 방학이라는데?”

“엇? 정말요?”

<가정통신문>

7월 00일부터 5일간 여름방학을 진행하오니…….

난 어머니가 꺼내놓은 가정통신문을 읽어 보았다.

“우리 아들 데리고~ 어딜 놀러 가나~ 호호.”

꿀꺽.

가정통신문을 든 내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원하는 걸 찾았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요즘……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와~ 대박! 하하!”

난 큰 소리로 웃었고,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듯 잠시 날 보다가 따라 웃었다.

“그렇게 좋아?”

“그럼요! 좋죠! 하하!”

방학! 방학이라니!

처음엔 그분의 제안을 그냥 넘겨 버릴 생각이었는데.

“어디 놀러 가고 싶은데 있어?”

“있죠~ 이미 약속되어 있잖아요!”

“약속?”

난 어머니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큰 고모네 놀러 가기로요~!”

“응?”

“설날 때 기억 안 나세요? 큰 고모가 방학 때 놀러 오라고.”

“아…….”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 어렴풋이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거야~ 그냥 하는 소리지. 어떻게 큰 고모네를 방학 기간 동안 놀러 가니?”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어머니. 그냥 하는 소리 아니었어요. 그리고 만약 빈말이었다고 해도 제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거니까요.”

큰 고모의 자녀들이 음대를 다닌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내가 그곳에 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일단 음악 하는 형들 만나 보면 뭐라도 연결이 되지 않을까?

난 눈을 빛내고 있었고, 어머니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셨다.

“어머니.”

“…….”

“큰 고모 연락처 좀 알려 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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