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운명의 손길
마을버스 안에서 난 박정훈과 마지막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김덕후. 정말이야, 너 진짜 잘해.’
환하게 웃으며 뭔가 신난 듯 내게 말했었다.
평소의 과묵한 박정훈답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처럼 오두방정만 떠는 그런 녀석이 아니다.
그러기에 박정훈의 말이 더 신경 쓰였다.
내가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약간 묘한 일들이 몇 번 있기는 했다.
어린이집에서 YMCA를, 가족들 앞에서 예스터데이를 불렀었다. 사실 ‘나나나’만 했기 때문에 그건 불렀다고 하기도 뭐 했지만.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어쭙잖더라도 팝송을 부르니까, 주변에서 놀라워하는 거로 생각했었다.
근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불렀을 때.
내 가슴이 뛰었다는 것이다.
그건 확실했다.
몸이 날아가는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었다.
그 좋은 기분을…… 그때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는데.
생각해 보니 좀 전에 그 좋아하는 야구를 하는데도, 잘하고 싶다는 욕심만 가득했었다.
기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얘야? 어디까지 가니?”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에 빠져서 정류장을 지나친 것 같다.
“엄마는? 너, 혼자 버스 탄 거니?”
걱정 가득한 얼굴.
꼬마애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창밖만 보고 있었으니, 오해할 만하다.
“아 네. 친구네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이에요.”
“아, 그래…… 혼자서?”
[다음 정류장은 수유역. 수유역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줌마일까?
내게 관심이 많았다.
“아줌마가 뭐 도와줄 일 없니? 진짜 괜찮아?”
내 나이 겨우 7살.
특히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있거나 행동을 한다면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줌마, 혹시 제가 영어 노래 부르면 이상할 거 같으세요?”
“응? 알파벳 노래 같은 거? ABCD?”
“아니요, 진짜 팝송이요.”
“팝송?!”
아주머니는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다가 웃었다.
“호호호, 네가 팝송을 부른다고? 말도 안 돼.”
“하하. 그렇죠? 막 박수 보내고 그러겠죠?”
“뭘 박수까지? 그냥 신기하니까 좀 보고 말겠지.”
“…….”
단순히 팝송을 불러서가 아니었던 걸까?
그 당시 내가 노래 불렀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떠올려 봤다.
[이번 정류장은 수유역. 수유역입니다.]
그래, 좀 더 확인해 보자.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난 인사 후 자리에서 일어났고, 뒤에서 아주머니가 말했다.
“조심하고~ 길 잃어버리면 무조건 가까운 경찰서로 가렴~ 절대로 모르는 사람 쫓아가지 말고~!”
* * *
수유역. 교훈문고.
현재 2004년. 내 나이 7살.
최근 몇 년 전부터 MP3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CD플레이어도 많이 듣고 있다.
마을버스에서 ‘수유역’이라는 방송을 들었을 때, 난 바로 ‘핫트랙’이 떠올랐다.
교훈문고에는 ‘핫트랙’이라는 뮤직 코너가 있고, 여기엔 CD가 모여 있다.
전생에 2004년엔 난 고등학생이었고, 책 읽으러 교훈문고에 종종 왔었다.
그때 ‘핫트랙’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음악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보고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핫트랙에 있는 사람들 보면 왜 책방에 와서 책은 안 보고 귓구멍에 헤드폰 끼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었다.
그러던 내가…… 유행곡도 잘 모를 정도로 음악에 전혀 관심 없던 내가…… 정말 재능이 있을까?
난 대뜸 핫트랙 코너에 들어갔다.
두근!
여러 종류의 CD를 보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기분이지.
아직 뭘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업되는 걸까.
신천지에 들어온 것 같았다.
마냥 좋고, 몸이 떠다니는 기분.
핫트랙 안에는 사람이 참 많았다.
사람 벽에 이리저리 치여, 제대로 구경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팝송, 뉴에이지, 가요, 클래식…….’
음악 종류가 참 많구나.
코너 중간에 헤드폰이 보였다. 한번 머리에 써 보고 싶었다.
하지만…… 키가 안 닿았다.
난 열심히 손을 뻗어 보다가.
“아저씨.”
직원복을 입고 있는 남자를 불렀다.
“응?”
“헤드폰 좀 내려 주세요.”
“…….”
그는 대답은 않고, 가만히 날 내려다보았다.
“엄마는 어디 계시니?”
아…… 미성년자가 되어 보니, 새삼 많은 제약이 느껴진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왜 엄마부터 찾는 걸까.
엄마는 내가 찾아야 하는 거 아닌가?
“헤드폰 좀 내려 달라는데, 엄마가 필요해요?”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서, 말이 좀 날카롭게 나갔다.
“하하, 말을 아주 또렷하게 하는구나.”
그러면서도 그는 헤드폰 내려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뭔지는 아니? 이거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그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아주 재수 없게 말했다.
“제가 좀 전에 헤드폰이라고 말했잖아요. 명칭을 아는데, 뭔지 모를까요?”
“…….”
난 결국 몸으로 설명해야 했다.
“이렇게 머리에 써서 노래 듣는 거잖아요. 집에서 많이 써 봤어요. 우리 집에 있거든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우리 집에는 헤드폰은커녕 오디오도 없다.
“하하. 그래그래. 근데 어머니는 어디 계셔? 혹시 잃어버린 건 아니니?”
아오, 헤드폰 한번 쓰기 더럽게 어렵네.
“어머니는 집에 계시고요, 전 여기에 혼자 왔습니다. 이제 좀 들어도 될까요?!”
혼자 왔다는 말에 직원은 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 몇 살이니?”
“10살이요.”
내가 지금 술, 담배 사는 것도 아니고 왜 나이까지 숨겨야 하는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래? 키가 좀 작네?”
“저도 알거든요!”
그리고 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10살이라는 말에 그는 의심하던 표정을 좀 풀었다.
“흠, 그래. 그럼, 조심히 다뤄라.”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겨우 헤드폰을 받았다.
두근두근.
손에 든 헤드폰.
이 찌릿한 느낌은 뭘까.
난 몸을 부르르 떨며 헤드폰을 머리에 썼다.
둥둥둥.
둠치 둠둠치 둠치 둠둠치.
묵직한 파열음과 함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둠치둠치.
내 심장을 두들기는 것 같았다.
온몸에 피가 두 배는 빠르게 돌아가는 기분.
내 몸의 온 세포가 박자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와…… 장난 아니야.”
팝송이었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심장을 때리는 박자는 그렇다 치고.
‘원래 노래라는 게 이렇게 많은 소리가 어우러지는 거였나?’
7개의 악기가 각자 역할을 하며 화합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각자의 역할이 모두 들렸다.
전생에도 가요를 들어 본 적은 당연히 있었지만.
멜로디만 들렸었다. 가사 따라 불러야 하니까.
곡 전체를 받아들이는 기분은 처음이었다.
받아들인 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렸다.
춤을 추던지 소리라도 내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 미치겠다.”
눈을 감았다.
리듬 속에 몸을 맡겼다.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무엇이든지 간에 이 길로 가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느껴졌다.
“둠치 둠둠치.”
“얘야.”
누군가 날 건드리고 있었다.
“네?”
“적당히 좀 할래?”
직원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앞에 있었다.
이상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웃으며 날 보고 있었고.
난 박자를 맞추고 있던 발과 흔들던 고개를 살며시 멈추었다.
“흠! 알았어요. 이제 얌전히 들을게요.”
“다른 사람도 들을 기회를 줘야지. 너 지금 1시간 넘게 이러고 있는 거 아니?”
“네에?”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어머니가 걱정하실 텐데.
“잘 썼습니다!”
난 헤드폰을 직원에게 건네고,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 * *
초저녁.
한 7시쯤 됐으려나.
끼이익.
버스가 서자마자, 난 있는 힘껏 집으로 달려갔다.
헉헉!
시간이 너무 늦었다. 가족들이 분명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냥 그러려니 하고 기다리고 있으려나?
헉헉!
왜 이렇게 마음이 조급한지 모르겠다. 뭔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은 기분.
덜컹.
난 문을 열고 소리쳤다.
“다녀왔습니다!”
“…….”
집이 휑하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갔지?
덜컹!
그때 중간 방문이 열렸고, 어머니가 뛰어나오셨다.
“흑! 덕후야!”
“어, 어머니.”
어머니는 날 보자마자 부둥켜안으셨다.
“아이고~ 덕후야! 아이고~!”
날 안고 펑펑 우시는데, 당혹스러웠다.
“어, 어머니, 늦어서 죄송해요.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통곡하시기에, 난 놀라서 물었고.
그때부터 어머니는 내 등을 손으로 사정없이 때리며 울부짖었다.
“이 녀석아! 지금이 몇 시야! 아무 소식도 없이 이렇게 안 들어오면…….”
그러다가 다시 또 날 부둥켜안으셨고.
“아이고~ 아이고~ 무슨 일 난 줄 알고 걱정했잖니.”
어머니는 날 끌어안은 채 펑펑 우셨고, 난 당황한 나머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어디 다친 데는 없는 거지?”
“네…….”
“정말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고?”
“네, 아무 일 없었어요.”
“왜 늦은 거니?”
“그냥…… 다른 데 정신 팔려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죄송해요.”
어머니는 많이 놀라셨나 보다.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으셨다.
“밥은? 밥 먹어야지.”
울컥.
밥…… 밥이라는 말에 나도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아들 배고프겠다. 얼른 밥 차려줄게. 조금만 기다려라.”
“…….”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셨고.
‘내가 뭐라고……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휴우―
부엌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결국 나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잠시 후.
덜컹.
“어? 왔나 본데? 덕후야!”
큰삼촌의 목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막냇삼촌, 할아버지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아이고~ 인마! 어딜 갔다가 온 거야!”
큰삼촌은 날 보자마자 흥분하여 소리쳤고, 막냇삼촌도 한숨을 쉬었다.
“야야. 큰일 난 줄 알았잖아. 온 동네를 다 돌아다녔네. 도대체가…… 에휴.”
큰삼촌은 막냇삼촌에게 말했다.
“막내야, 어서 경찰서에 연락해라. 애 찾았다고.”
“알았어.”
지금의 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
“네, 할아버지.”
“그래…… 그럼 됐다. 근데 말이야…….”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빠 들어오면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
“…….”
“너희 아버지가 많이 놀랐다.”
덜컹!
헉헉!
현관문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김 부장이었다.
여기저기 흙이 묻어 있고, 옷도 젖어 있었다.
그는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고 있었다.
“더, 덕후야!”
김 부장은 날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아내었고.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덕후야. 덕후야.”
우우―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낮은 울음소리로 흐느끼는데.
우우―
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뭐, 뭐지…….
김 부장의 이런 모습도 그렇고.
나 또한 김 부장에 대해 이상한 감정…… 그동안 애써 거부해 왔던 감정이 머리를 들려 해서.
난 주먹을 꽉 쥐었다.
김 부장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고.
큰삼촌은 불안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김 부장이 돌발 행동을 할까 봐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나 또한 김 부장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점점 긴장되었다.
“덕후야…… 내 아들아.”
김 부장은 내 몸을 더듬었고, 날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다친 데 없으면 됐다. 그러면 됐어. 아빠가 미안하다.”
“…….”
“미안해.”
김 부장은 날 안았다.
젠장.
기분이 이상해진다.
절대로 김 부장에게 느끼기 싫은 감정.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해서, 김 부장을 밀어냈다.
“저리 가. 난 괜찮아.”
하지만 세게 밀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