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원하는 것과 잘하는 것
내 나이 7살.
유치원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어린이집보다 잘 맞았다.
어린이집은 보육 과정에 가깝다. 교육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돌봄 위주라는 것이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노는 게 주 업무다.
말 그대로 온종일 다치지 말고, 잘 놀아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꼬맹이들과 놀아 주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현타가 수시로 찾아왔고, 꼬맹이들과 함께 ‘미니 공룡 파워, 슈퍼 특공대’를 부를 때는 가끔 소름이 돋기도 했다.
물론 유치원이라고 해서 그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때와 지금은 겨우 1살 차이.
하지만 어린이집과 취지가 다르기 때문에 유치원은 좀 낫다는 것이다.
유치원은 ‘교육’에 좀 더 중점을 둔다. 낮잠을 자지 않아도 되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좀 많아졌다.
어린이집에 있을 때처럼 입을 쉴 새 없이 떠들지 않아도 되며, 격하게 놀지 않아도 된다.
“덕후야~ 뭐 해? 빨리 와!”
“어~ 정훈아.”
박정훈도 나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다.
5살 때 어린이집에서 만나,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어서 가자.”
“그래…….”
난 박정훈에게 물었다.
“어쨌든 내일, 우리 노는 거지?”
“응~ 우리 집 찾아올 수 있겠어?”
“네가 주소 알려 줬잖아. 까짓거 찾아가면 되지.”
박정훈은 주말에 아버지와 야구를 한다고 했다.
조르고 졸라서, 내일 나도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 똘똘이 김덕후니까. 하하. 잘 찾아오겠지.”
친구들 사이에서도 난 좀 특출한 아이로 통한다.
“그럼 내일 봐~!”
* * *
마을버스 안.
차창 밖 풍경을 바라봤다.
의자가 좀 높기는 하지만 앞에 손잡이를 꼭 붙잡으면 된다.
6살 때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간혹 마을버스를 타고서 동네 구경을 다녔다.
환생 후 어느덧 7년…….
그리고 몇 개월 뒤면, 초등교육 과정에 들어가게 된다.
이제 학생이 되는 것이다.
지난 7년간 내가 한 일을 돌이켜 봤다.
크게 세 가지로 점철될 수 있다.
1) 김 부장 괴롭히기
2) 누나랑 싸우기
3) 놀기
이 중 ‘김 부장 괴롭히기’ 말고는 참 의미 없는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7살 전부터 공부를 해야 했다는 건 아니다.
이번 생에는 공부로 승부를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김 부장’에게만 집중해서 한평생 삶을 살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다.
이번엔 전생에 가지 못했던 길을 가고 싶다.
재능을 찾아서 주도적으로 날 발전시켜 보고 싶다.
[이번 정류장은 월계수 주민센터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어머니는 이 대가족을 살피셔야 한다.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인 나의 진로까지 알아봐 줄 여력은 없어 보인다.
내가 정말 어린애였다면 환경과 부모를 탓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을지 모르겠지만.
35세까지 살았던 심민수. 난 대기업 대리였다.
그래서 난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한다. 내 대학 동기 중에 빨리 결혼한 놈은 지금의 나만 한 애도 있었다.
철컹!
마을버스 뒷문이 열렸다. 이제 내려야 한다.
내 길을 찾는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그러려면 여러 자극에 날 맡겨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는 것.
난 그걸 찾아낼 것이며, 그래서 오늘 박정훈과 그의 아버지인 전설의 야구 선수를 만난다.
번개의 왕자, 박준호를.
야구 선수. 내게 재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원하는 길인 것은 확실하니까.
‘박준호’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저택 앞.
“안녕하세요. 정훈이 친구 덕후입니다.”
띠익― 찰칵!
현관문이 열리며, 박정훈과 똑 닮은 아줌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렴~ 네가 덕후구나?”
“안녕하세요~ 김덕후입니다.”
“그래~ 난 정훈이 엄마야. 어서 들어오렴.”
“네!”
현관문으로 들어가자, 바로 박정훈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덕후~!”
“박정훈~!”
우리는 반가움에 손을 마주 잡았다.
맨날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만 보다가 다른 장소에서 보니 반가웠다.
같은 동네에 살긴 하지만 박정훈의 집은 우리 집과는 거리가 좀 있어서, 어린이집 외에는 만나기 어려웠다.
“들어와~!”
“응~!”
거실은 매우 넓었고, 2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있었다.
“여기 몇 명 사는 거야?”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이 전부야.”
“아…… 그래?”
머리에 물기가 젖은 박준호가 내게로 걸어왔다.
“어~ 왔구나.”
“아, 안녕하십니까!”
난 큰 소리로 인사했다.
박정훈을 어린이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난 온몸이 흥분으로 가득했다.
그의 등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레전드. 번개의 왕자. 박준호.
“하하, 그래. 반갑구나.”
발을 동동 구르며, 호들갑을 떠는 날 보며 박준호는 웃었다.
이렇게까지 하기는 싫은데, 내 몸은 어린아이라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어느새 난 또 개다리춤을 추고 있었다.
“하하, 재밌는 녀석이네. 그럼~ 아저씨랑 바로 운동하러 가 볼까?”
“네! 감독님!”
“…….”
* * *
나와 박정훈은 박준호의 자가용을 타고 20여 분 정도를 달렸다.
어느 고등학교 정문으로 들어갔고, 주말이지만 야구부 학생들이 있었다.
차를 본 학생들은 꾸벅 고개를 숙였고.
박준호는 창문을 살짝 내려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등학교 건물 뒤편에 차를 세운 뒤.
“자, 내려라.”
우리는 박준호를 따라서 한 건물로 들어갔다.
훈련장이었는데, 꽤 널찍한 공간에 각종 야구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박정훈은 익숙한 듯 가방을 내려놓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이 끝나갈 때쯤. 박준호는 날 나직이 불렀다.
“덕후야.”
“네, 감독님.”
“뭔 감독이냐?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박준호는 야구공을 내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야구를 하고 싶다고?”
“네! 꼭 하고 싶습니다!”
차근히 시작하는 것이다.
재능이 입증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많이 어려~ 근데 뭐, 꿈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
박준호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난 옆에 서 있는 박정훈에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정훈아, 고맙다.’
“야구공 잡을 줄 아니?”
“네 압니다!”
“호오…….”
난 실밥을 검지와 중지에 걸치게 잡은 후, 박준호에게 보여 주었다.
“직구 그립입니다!”
“용어도 알고, 진짜 제대로 잡네?”
“네, 독학했습니다.”
박준호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럼…… 공 던질 줄도 알아?”
“네, 한번 보여 드릴까요?”
“그래.”
휴우―
직구 그립을 잡고, 숨을 크게 한번 뱉었다.
사회인 야구에서 2년을 굴렀다.
내가 던지는 걸 보고 박준호 선수가 얼마나 놀랄까?
“던질게요!”
“그래!”
난 왼발을 높게 들고, 몸의 회전을 이용하여 힘차게 뿌렸다.
피융― 폭!
“흠…….”
다행히 공은 박준호가 서 있는 곳까지 날아갔다.
“다시 던져 볼래?”
“네!”
자못 심각한 표정.
내 공을 받은 뒤로 박준호 선수의 태도가 뭔가 달라졌다.
피융― 폭!
난 박준호의 요청에 따라 10여 개 정도 공을 던졌다.
“자, 이제 됐다. 덕후야, 이리 와 봐”
“네!”
박준호 선수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내게 물었다.
“너…… 야구 좀 배웠니?”
“아니요! 지금 처음 해요!”
흐흐흐.
2년 배웠다.
타고난 야구 신동 소리 듣겠군.
“이상하네.”
“뭐가요?”
난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완전히 잘못된 폼이 잡혀 있는데? 이거 엉터리로 배운 게 분명한데.”
“네?”
“뭐랄까…….”
박준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충격적인 말을 뱉었다.
“아저씨가 똥폼 잡고 공 던지는 것 같아.”
“…….”
“큰일 났네, 쉽게 고쳐질 폼이 아닌데. 7살짜리가 어째 이러냐?”
내 마음은 이미 메이저리그까지 가 있는데.
아니다. 이럴 리가 없다. 이제 공 몇 개 던졌을 뿐이야.
난 당황하여 소리쳤다.
“이건 아, 아니에요. 아저씨!”
“뭐가, 아니냐?”
모르겠다. 뭐가 아닌지.
어쨌든 이렇게 끝낼순 없다.
“고, 공 다시 던져 볼게요.”
“그럴 필요 없어. 얀마, 아저씨가 야구 경력이 몇 년인데, 보면 알지.”
“…….”
“그리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어차피 야구 선수 할 것도 아닌데.”
아…… 박준호 선수의 마지막 말이 비수를 꽂는다.
난 야구 선수 되고 싶어서, 이곳에 온 것이다.
부디 재능이 있기를 바랬다.
“동네 야구 할 때는 그 정도면 먹어 줄 거야. 괜찮아.”
아…… 제발. 가슴 속이 미어진다.
“아니면 아저씨가 변화구 하나 가르쳐 줘? 낙차 큰 커브인데, 일명 ‘아리랑 볼’이라고…….”
“그, 그만…….”
박준호는 웃으며 얘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농담이라고 하는 거겠지만, 난 정말 심각하다.
“던질 때 노래를 부르면 돼. 아리아리 쓰리 쓰리 아라리요. 아, 이건 강원도 아리랑이지.”
“그만하시라고요!”
“엇…….”
박준호는 날 바라봤고.
난 그의 눈빛을 쏘아봤다.
“어라? 눈이 불타고 있네?”
이글이글.
난 진심으로 원했다. 지금의 내 친구 박정훈 같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
이십 대 초반에 출중한 재능으로 프로야구를 휘젓는 선수.
“아저씨! 저 이제 공 하나 던져 봤을 뿐이잖아요. 타격하는 것도 보셔야죠!”
“허허, 그래. 보는 거야 뭐.”
박준호는 엿 먹으라는 듯 배트를 내밀었다.
“옜다.”
“…….”
1도 기대 없는 눈빛.
“공 던져 주랴?”
박정훈은 옆에서 눈치를 보다가 앞으로 나섰다.
“아빠, 제가 던져 줄게요.”
그는 공이 든 바께스를 들고 내 옆에 섰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후야, 힘 좀 빼.”
“…….”
“야구는 어깨에 힘 들어가면 안 되는 거야.”
휴우―
난 박정훈의 말을 듣고, 심호흡을 몇 차례 크게 했다.
그래, 내 주특기는 타자였어.
4부 리그에서 1번 타자를 도맡아 했었고.
파워히터는 아니지만, 정교한 타격 능력으로 엄청난 출루율을 기록했었지.
평균 타율은 4할을 넘었다.
항상 팀에서 타율 1, 2위를 타툴 정도로 에이스였다.
“덕후야! 준비됐니?”
휴우―
난 배트 손잡이를 꽉 말아쥐었다.
“오케이!”
* * *
“호오~!”
박준호는 내 타격 자세를 보고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너, 진짜 야구 안 배운 거 맞니?”
“안 배웠다니까요?”
“폼이 잡혔는데?”
“…….”
이번엔 섣불리 좋아하지 않았다.
또 똥폼이라고 할까 봐.
내가 기억하는 가장 교과서적인 타격 자세를 떠올렸다.
헛스윙을 몇 번 더 해 보았다.
“오~ 하하.”
내가 스윙을 할 때마다 박준호는 감탄사와 함께 연신 웃었다.
“공 던지는 것보단 훨씬 낫네.”
박준호는 물끄러미 날 보다가.
“언제까지 스윙 연습할 거니?”
“이제 다 됐어요.”
이번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어서 충분히 시간을 가졌다.
앞에서 박정훈이 말했다.
“덕후야, 이제 진짜 던져도 되니?”
“응!”
휙―!
박정후는 정말 살살…… 딱 치기 좋게 던졌다.
난 왼 다리를 높게 들고, 엉덩이부터 회전시키면서 돌렸다!
부웅―!
“…….”
부웅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이럴 땐 아무렇지도 않게. 침착하게.
“좋아, 영점 맞췄어. 이제 진짜로 해 보자.”
박준호가 옆에서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하, 하여튼, 조그만 게 말하는 게 웃겨. 영점이라는 단어는 또 어떻게 아는 거야?”
박정훈은 다시 한번 던졌고.
부웅―!
이번에도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났다.
부웅―!
부웅―!
부웅!
……젠장! 어떻게 하나도 안 맞을 수가 있지?!
내가 이 정도로 몸치였나?
운동을 이렇게 못 하진 않았었는데.
“덕후야…… 인제 그만하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이번엔 좀 빠르게 던져 줘!”
“휴우……!”
박정훈은 한숨을 쉬고는 이번엔 좀 세 개 던졌다.
엇?!
진짜 빠른데?
난 좀 전처럼 휘둘렀고.
부웅―!
깡!
“헛!”
드디어…… 드디어 맞았다.
박정훈과 박준호는 놀라서 날 쳐다봤고.
나 역시 공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먼 곳을 바라봤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내가 이런 경우는 또 첨 보네.”
박준호가 내게 다가와 배트를 받아들었다.
“공 어디로 갔어요?”
“어디로 가긴? 그물망 안에 있지.”
“네? 방금 맞는 소리가 크게 낫는데?!”
“그러니까 말이다. 난 파울팁을 이렇게 요란하게 내는 건 첨 본다. 누가 보면 홈런이라도 친 줄 알겠어.”
“…….”
부들부들.
수치심에 몸이 떨렸다.
“너, 타격 폼이…….”
“왜요! 또 똥폼이라고 놀리시려고요?”
“아니~ 폼이 아주 외국물을 잔뜩 먹었는데?”
“네?”
“어퍼 스윙을 하는 게, 메이저리그 폼이야. 그리고 레그킥은 어디까지 올리는 거냐?”
50살 먹은 사회인 야구 감독한테 배웠다. 왜?!
아메리칸 스타일로 알려 준다고 했었는데, 그 말이 진짜일 줄은…….
“푸하하! 아니, 뭔 7살짜리가…… 야구 처음 한다는 애가 메이저리그 타격 폼을 따라 하고 있냐고!”
“…….”
박준호는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계속 웃어댔고.
박정훈은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
난 잠자코 있다가.
“다 웃었어요?”
“아이고~!”
박준호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어~ 그래, 미안.”
그는 내 심각한 표정을 가만히 바라봤다.
“뭘 그렇게 심각해? 우리 웃으면서 하자.”
“…….”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웃으면서 한단 말인가.
야구 선수……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건데.
난 재능이 없는 것인가?
아니야, 혹시 7살은 다 이런 게 아닐까?
박정훈을 보면 알겠지.
“박정훈! 너도 타격 한번 해 봐.”
“나?”
“응. 내가 공 던져 줄게.”
박정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뭐, 그래. 알았어.”
박정훈은 곧바로 타석에 섰다.
약 10년 뒤에 대한민국 최고 타자 중 한 명이 될 박정훈.
만약 그마저 삽질한다면…… 이건 재능이 아니라 나이 탓인 게 분명하다.
난 공을 던졌다.
휙―!
박정훈은 몸에 전혀 힘을 넣지 않았다.
그저 건들거리며 가볍게 몸을 돌리는데.
부웅― 깡!
부웅― 깡!
힘 빼고 치는데, 공은 천장 뚫은 듯 날아가고 있었다.
나와 같은 7살이 맞나 싶은, 정말 어마어마한 실력이었다.
괜히 시켰다. 기운만 쭉 빠진다.
“젠장, 그만하자.”
“왜? 재밌는데.”
철퍼덕.
난 필드 밖에 주저앉았다.
7살…… 이런 걸 물어보긴 어린 나이긴 하지만.
“아저씨, 저 열심히 노력하면 훌륭한 야구 선수가 될 수 있을까요?”
“노오력 하면?”
“네.”
박준호는 판에 박힌 대답을 했다.
“그럼~ 이제 겨우 7살인데, 노력하면 다 할 수 있…….”
“아니요, 저 지금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예요.”
그는 내 눈빛을 보고 말을 멈추었다.
“지금 아저씨 대답에 따라서, 전 인생을 걸 수도 있다고요. 정말로…… 신중하게 대답해 주세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난 있는 힘껏…….
“아니야, 하지 마. 넌 이쪽 아니야.”
박준호의 대답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
난 할 말을 잃었고, 박정훈은 옆에서 눈치를 보았다.
더 말이 필요 없었다.
박준호의 냉정한 한마디로 모든 게 분명해졌다.
“정훈아…… 나, 집에 가고 싶어.”
* * *
박정훈의 집 앞.
박정훈은 김덕후를 마중한다고 따라 나왔다.
“정훈아. 미안해. 내가 졸라서……어렵게 불렀는데.”
“미안하긴 뭘. 근데 말이야.”
박정훈은 유심히 김덕후를 바라봤다.
“넌 뭐가 그렇게 급한 거야? 네가 아까 인생을 건다고 했는데, 난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
김덕후는 물끄러미 박정훈을 바라봤다.
‘정훈아. 넌 잘될 거야. 잘될 수밖에 없는 요건을 다 갖추고 있으니까.’
그리고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난 아니거든.’
박정훈은 고개 숙인 김덕후에게 말했다.
“네가 뭘 잘하는지 찾는 거라면. 난 바로 떠오르는 게 있는데.”
“뭔데?”
박정훈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춤 잘 추고, 노래도 잘 부르잖아.”
“내가?”
“그래! 우리 어린이집에서 기억 안 나? 와이엠씨에이 노래 부르고 춤췄던 거.”
“에이~ 그거야…….”
김덕후는 그다음 말은 속으로만 했다.
‘군대에서 졸라게 했으니까 그렇지.’
“그거야 뭐?”
“그건 그냥 그랬던 거라고~ 그거 말고 없잖아.”
“왜에?”
박정훈은 뭔 소리냐는 듯 눈을 멀뚱거렸다.
“네가 동요 부를 때마다 얼마나 듣기 좋은 줄 알아?”
“그랬어?”
“그럼~ 특히 ‘미니 공룡 파워, 슈퍼 특공대’ 주제곡 부를 때는 애들 춤추고 난리 나잖아.”
“…….”
김덕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정말 잘한다고? 내가 음악과 어울릴 리가 없는데.’
김덕후. 아니, 전생에 심민수는 노래를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박정훈의 말을 못 미더워하는 김덕후.
하지만 박정훈은 그의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었다.
“김덕후. 정말이야, 너 진짜 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