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하늘반(2)
“자~ 친구들. 다들 재밌게 몸으로 표현하기 해 봤나요?”
“네~!”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들떠 있는 표정.
친구들 앞에서 선보일 생각에 신나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덕후야, 이거 꼭 해야 해? 그냥 너랑 서윤이 둘이 하면 안 돼?”
박정훈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정훈아. 네가 없으면 삼각형이 안 되잖아.”
“…….”
“뒤에서 추면 사람들 눈에 잘 안 띄거든? 그러니까 괜차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정훈이 원치 않는다면 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세 명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야, 그럼 내가 앞에 설래.”
신서윤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 뒤에 서는 거 싫단 말이야.”
“지금은 안 돼. 다음에 그렇게 해.”
“시러.”
“서윤아, 너 발 자꾸 틀리던데. 앞에서 발 틀리면 다 망하는 거야.”
내가 팩트로 들이대자, 고집을 부리던 신서윤도 좀 잠잠해졌다.
“자~ 그럼 동훈이 먼저 해 볼래?”
“네~ 선생님.”
하늘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
삭발 머리를 한 미끄럼틀 파의 아이가 일어났다.
“친구들이랑 같이해도 돼요?”
“물론이지.”
한동훈이 앞에 서고, 그 뒤에 남자아이들 4명이 섰다.
“어흥! 난 사자다!”
“크아~!”
“크아~!”
헛. 사자 다섯 마리가 앞에서 발광하고 있었다.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어흥 소리를 내는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하하!
―와~ 동훈이 진짜 잘한다!
―진짜 사자 같아.
보고 있던 아이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난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서 손발 다 오그라들 것 같은데.
아이들은 좋아했다.
반응에 흥분한 삭발 머리는 옆에 아이의 팔뚝을 깨물었고.
“으아앙―!”
자지러지는 울음과 동시에 미끄럼틀 파의 몸으로 표현하기는 끝이 났다.
“와~ 정말~ 정글에서! 사자 다섯 마리가 뛰어나온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된 놀란 모습을 보였다.
“차암~ 잘했어요!”
짝짝짝.
지켜보던 친구들은 박수를 보냈다.
저 정도면 잘하는 거구나.
난 마지못해 따라서 박수를 보냈다.
“자~ 그다음 해 볼 사람?”
“저요!”
“그래~ 지우야. 해 보자.”
자동차 파의 리더가 손들었다.
‘싫어’와 ‘안 돼’를 주로 외치던 그 아이.
역시나 나서길 좋아하는 아이들이 무리의 리더가 되는 것 같다.
“저도 친구들이랑 같이할래요.”
“그러렴!”
지우가 앞으로 나오고, 그 뒤에 세 명의 아이들이 따라 나왔다.
“엄마 코끼리! 여기 서고, 첫째 코끼리! 넌 그쪽에 서고, 새끼 코끼리는 여기 서.”
“…….”
그냥 일렬로 서는 건데, 지우는 아주 꼼꼼하게 말을 아주 많이 하면서 아이들을 세웠다.
“끼루룩―!”
코끼리 코를 하고 일렬로 행진하는데.
도대체 줄을 왜 세운 건지 모르겠다.
몇 걸음 걸은 뒤부터,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지우는 코끼리 걸음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야! 줄이 흐트러졌자나!”
참…… 얘는 나이도 어린 게 참 피곤한 성격인 것 같다.
“소리 좀 똑바로 내라고!”
반복되는 짜증에.
“안 해!”
결국 한 아이가 대형을 이탈했고,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너 주거써~!”
지우는 코끼리 코를 풀고, 그 아이를 향해 뛰어갔다.
“자자~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죠~ 싸우면 안 돼요~!”
싸움 구경 좀 하나 했는데.
그냥 손으로 밀고 당기는 수준이었다.
확실히 5살이 맞는구나.
싸움 구경 또한 하나도 재미없었다.
“커어~ 다란 코끼리들의 행진이었어요! 다 같이 박수~!”
“와아―!”
계속 하이 텐션을 유지하고 있는 신원경 선생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맘속으로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짠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유아교육과 후배들이 유독 술, 담배를 잘했었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된다.
“다음~ 또 보여 줄 사람?”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
휴우―
드디어 때가 된 건가.
지금은 2002년.
앞으로 4년 뒤 전국을 뒤흔들.
김수X 아저씨가 잇몸 만개하며 추던 그 춤을.
보일 때가 된 건가.
“선생님.”
난 낮은 목소리와 함께 손을 살짝 들었다.
“응? 덕후? 덕후가 한번 해 볼래?”
“제가 보여 주겠습니다. 춤이란 무엇인지.”
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양말을 먼저 벗었다.
* * *
“선생님. 혹시 YMCA 노래 있어요?”
“YMCA?”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목을 말하면 잘 모른다.
이럴 때 앞부분을 잠깐 불러 주면, 대부분 안다.
“이런 노래요. 영맨― 데얼스노 닏 투 필 다운 아이 세읻. 영맨―!”
“어머~!”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당연히 알지~ 근데, 덕후 대단하다. 어떻게 팝송을 알아?”
“아, 이거요? 그냥 들리던 대로 따라 부른 건데요.”
2년간 매일 아침 듣던 노래인데, 당연히 외우고 있다.
물론 정확한 가사인지는 모르지만.
“잠깐만~ 어디 보자.”
선생님은 한동안 CD를 뒤적거리더니.
“이런~ 그 노래는 없네.”
“아…….”
이걸 어쩐다…….
“그냥 노래 없이 박수에 맞춰서 출래?”
“아니요. 이 춤은 노래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엇! 한쪽 구석에 있는 피아노가 보였다.
“선생님, 피아노 치실 줄 알아요?”
“응~ 알지.”
“그럼 YMCA 피아노로 쳐 주실래요?”
“선생님은 그 노래를 모르는걸? 악보가 없는데 어떡해?”
어라?
이상하다.
왜…….
계명이 떠오르지?
“라파~ 파미레미파라파라~ 시파~!”
“…….”
선생님은 멍하니 날 보고 있었고, 나도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봤다.
“너…… 악보를 외우고 있니?”
난 악보를 본 적이 없다.
“또 계이름은 어떻게 알어?”
꿀꺽.
대학까지 다녔으니까 당연히 계이름 정도야 알지만…… 곡을 듣고 음계를 알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해 본 적도 없고.
“서, 선생님. 맞는지 쳐 보실래요?”
“그, 그래.”
띵동~ 띠리리리리리 띵동~!
“어머. 어머.”
헛! 완전히 정확하다.
선생님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나 또한 너무 놀라웠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멀뚱히 나와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미레미파라파라~ 라파~!”
띠리리리리리 띵동~!
음계를 부를 때마다, 선생님은 따라쳤고. 모두 정확했다.
난 유심히 듣다가.
“선생님, 박자를 반 박자 정도만 당겨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흥이 나게요.”
“그래…….”
짝~ 짝짝. 짝~ 짝짝.
난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이렇게 미는 느낌으로요. 앞부분에 힘을 주면서.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그래…….”
곧 춤을 출 수 있는 수준의 연주가 되었고, 난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영맨― 데얼스노 닏 투 필 다운 아이 세읻.”
“어머. 어머.”
“영맨― 핔 유얼셆 옾 더 그라운드 아이 세이드.”
내가 이렇게 목소리가 컸었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소리가 앞으로 쭉쭉 뻗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끝 음이 자꾸 꺾였다. 트롯처럼.
“덕후야.”
선생님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아버님 무슨 일 하시니?”
“네?”
갑자기 왜 김 부장을 궁금해하시지?
“그냥 회사 다니는데요?”
“아, 그래…….”
선생님은 날 경이롭다는 듯 보고 있었다.
아마 음악 신동을 봤다고 생각하시겠지.
근데…… 내가 생각해도 뭔가 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경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분명 다른 게 있었다.
나는 음악을 즐기지도, 잘하는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
여전히 멀뚱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일단, 하려던 걸 하자.
난 서윤과 정훈에게 손짓했다.
“뭐 해? 어서 나와?”
* * *
“자 대형 유지하고. 시선은 45도 아래.”
“45도가 뭐야?”
아 또 전문용어가.
“그냥 바닥 보라고.”
난 선생님에게 말했다.
“저희는 꼭짓점을 몸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꼭짓점을? 호호. 너희가 꼭짓점을 아니?”
난 더 말하지 않고 외쳤다.
“선생님. 연주 부탁해요.”
피아노 연주와 동시에, 난 전주부터 큰 소리로 불렀다.
빰바바밤― 빰빠밤 빰바밤 빰―!
빰바바밤― 빰빠밤 빰바밤 빰―!
“다리로 박자 맞춰! 건들거리면서!”
빰바바밤― 빰빠밤 빰바밤 빰―!
빰― 빠라밤― 빠라밤―!
“하나! 둘! 셋! 넷! 커몬! 영맨!”
난 어깨를 건들거리면서 다리를 쭉쭉 내밀었고.
서윤과 정훈은 연습했던 대로 곧잘 따라 했다.
“왼쪽으로 돌고! 영맨!”
‘영맨― 데얼스노 닏 투 필 다운 아이 세읻.’
“신나게! 또 왼쪽으로!”
‘영맨― 핔 유얼셆 옾 더 그라운드 아이 세이드.’
우리 세 사람은 혼연일체가 되어, 삼각대형을 유지한 채 하늘반을 휘젓고 있었다.
“유후―! 다 같이! 와엠씨에이!”
빠빠라 빠라빠!
“와엠씨에이!”
한 바퀴 돌고 나니 서윤은 완전 신이 났고, 정훈도 한껏 미소 짓고 있었다.
“어머, 대박!”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상해…… 나도 같이 추고 싶어져.”
그러면서 선생님 또한 그 자리에서 스텝을 밟았다.
“자~ 한 번 더! 이번엔 하늘을 찌르면서! 영맨!”
하늘반 친구들은 이제 껑충껑충 뛰고 난리가 났다.
“돌면서~ 영맨!”
난 선생님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뒤로 붙으세요!”
“호호! 그래~!”
선생님은 정훈의 뒤에 서서 꼭짓점 댄스를 따라 췄다.
“와엠씨에이!”
빠빠라 빠라빠!
나와 하늘반 친구들 모두 다 같이 소리쳤다.
“와엠씨에이!”
점점 삼각형은 더 커졌고.
삼각형 최상위 꼭짓점에는 내가 있었다.
* * *
커다란 노랫소리에 선생님들은 문 밖에 모여서 하늘반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저게 도대체 뭐야?”
“신원경 선생님이 가르친 건가?”
―와엠씨에이!
김덕후를 중심으로, 신원경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반 아이들이 삼각형 대형을 이뤄서 춤을 추고 있는데.
춤이 간단하면서도 참 신나 보였다.
“우리 반도 해 봐야겠네. 신원경 선생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호호. 그러게요. 저런 건 어디서 배우셨대?”
* * *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갔다.
집단 댄스가 끝나고.
이 일은 하늘반 권력 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가리지 말고 먹어. 안 그러면 안 받아 줄 거야!”
“알았떠.”
노래가 끝나자마자, 요리기구 파는 어느새 10명으로 늘어났다.
5살의 아이들 세계에는 ‘의리’ 따위는 없었다.
꼭짓점 댄스가 끝나자마자 모두 뒤도 안 돌아보고 우리에게 왔다.
미끄럼틀 파에 세 명. 자동차 파는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같이 와서 놀 만도 한데, 동훈과 지우는 그러지 않았다.
외로울지언정 누구 아래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태도.
리더는 리더인 것인가.
“동훈아~ 미끄럼틀 가지고 구석으로 좀 가 줄래?”
요리기구 파에 들어온 한 아이가 미끄럼틀을 밀며 말했다.
이 아이는 하늘반에서 동훈이 다음으로 키가 크다.
“싫은데? 여기서 내가 놀 건대?”
“너희 세 명밖에 안 되자나.”
“싫다고―!”
동훈은 그 아이를 밀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치…….”
아이는 움찔해서 뒤로 피했고.
내가 대신 동훈에게 다가갔다.
“동훈아,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노는 게 어때? 우리 쪽이 좀 좁기는 해. 사람은 이렇게나 많은데.”
“그래서? 자랑하는 거야?”
동훈은 내게 위협적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녀석.
“아니, 자랑은 아니고…….”
심지어 동훈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날 밀쳤다.
“그럼 뭐냐고오―!”
어라?
이거 지금…….
“너, 지금 밀었어?”
“밀었다! 어쩔래?”
욱!
순간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정말 5살 아이라면, 바로 응대를 했겠지만…….
난 35 +5년을 산 사람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난 동훈에게 말했다.
“너…… 화가 많이 났구나?”
난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흥분하지 않는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전생에 어릴 적의 나는 겁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나로서는…… 동훈의 이런 위협적인 모습, 그냥 우습다.
같이 흥분하면 나도 똑같은 애일 뿐.
“우리 잠깐 시간 좀 갖고, 조금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
“생각 좀 해 봐. 그래도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자리 얘기는 더 안 할게.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좁은 자리에서 논다고 생각해 봐. 그게 정말 너에게 기쁜 일인지.”
“…….”
동훈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내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럼 재밌게 놀아~!”
―와~ 덕후 멋지다.
―방금 완전 형 같았어.
―형은 무슨? 우리 아빠 같았는데.
요리기구 파는 비좁은 자리에 낑겨서 열심히 후라이팬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놀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쯤.
동훈이 삐죽거리며 다가왔다.
“어, 동훈아. 왜?”
“여기 너희가 써. 자리 바꿔.”
동훈은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뭔가 민망하면서도 분한 듯한 표정이었다.
난 씨익 웃으며 동훈의 어깨를 잡았다.
“동훈아, 내가 계란후라이 하나 해 줄까?”
“응?”
“어서. 이리로 앉아 봐.”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훈은 요리기구 파의 식탁 앞에 앉았고.
이를 시작으로 파벌 구분 없이 모두 한데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난 싸움 대신 대화를 택했고.
그 선택은 하늘반의 통일로 연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