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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8화 (8/250)

8화. 하늘반(2)

“자~ 친구들. 다들 재밌게 몸으로 표현하기 해 봤나요?”

“네~!”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다들 들떠 있는 표정.

친구들 앞에서 선보일 생각에 신나 보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

“덕후야, 이거 꼭 해야 해? 그냥 너랑 서윤이 둘이 하면 안 돼?”

박정훈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 돼, 정훈아. 네가 없으면 삼각형이 안 되잖아.”

“…….”

“뒤에서 추면 사람들 눈에 잘 안 띄거든? 그러니까 괜차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박정훈이 원치 않는다면 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세 명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야, 그럼 내가 앞에 설래.”

신서윤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나 뒤에 서는 거 싫단 말이야.”

“지금은 안 돼. 다음에 그렇게 해.”

“시러.”

“서윤아, 너 발 자꾸 틀리던데. 앞에서 발 틀리면 다 망하는 거야.”

내가 팩트로 들이대자, 고집을 부리던 신서윤도 좀 잠잠해졌다.

“자~ 그럼 동훈이 먼저 해 볼래?”

“네~ 선생님.”

하늘반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

삭발 머리를 한 미끄럼틀 파의 아이가 일어났다.

“친구들이랑 같이해도 돼요?”

“물론이지.”

한동훈이 앞에 서고, 그 뒤에 남자아이들 4명이 섰다.

“어흥! 난 사자다!”

“크아~!”

“크아~!”

헛. 사자 다섯 마리가 앞에서 발광하고 있었다.

손을 갈고리 모양으로 하고, 입을 크게 벌리고 어흥 소리를 내는데.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하하!

―와~ 동훈이 진짜 잘한다!

―진짜 사자 같아.

보고 있던 아이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난 유치하고 어이가 없어서 손발 다 오그라들 것 같은데.

아이들은 좋아했다.

반응에 흥분한 삭발 머리는 옆에 아이의 팔뚝을 깨물었고.

“으아앙―!”

자지러지는 울음과 동시에 미끄럼틀 파의 몸으로 표현하기는 끝이 났다.

“와~ 정말~ 정글에서! 사자 다섯 마리가 뛰어나온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된 놀란 모습을 보였다.

“차암~ 잘했어요!”

짝짝짝.

지켜보던 친구들은 박수를 보냈다.

저 정도면 잘하는 거구나.

난 마지못해 따라서 박수를 보냈다.

“자~ 그다음 해 볼 사람?”

“저요!”

“그래~ 지우야. 해 보자.”

자동차 파의 리더가 손들었다.

‘싫어’와 ‘안 돼’를 주로 외치던 그 아이.

역시나 나서길 좋아하는 아이들이 무리의 리더가 되는 것 같다.

“저도 친구들이랑 같이할래요.”

“그러렴!”

지우가 앞으로 나오고, 그 뒤에 세 명의 아이들이 따라 나왔다.

“엄마 코끼리! 여기 서고, 첫째 코끼리! 넌 그쪽에 서고, 새끼 코끼리는 여기 서.”

“…….”

그냥 일렬로 서는 건데, 지우는 아주 꼼꼼하게 말을 아주 많이 하면서 아이들을 세웠다.

“끼루룩―!”

코끼리 코를 하고 일렬로 행진하는데.

도대체 줄을 왜 세운 건지 모르겠다.

몇 걸음 걸은 뒤부터, 완전 엉망진창이었다.

지우는 코끼리 걸음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고는.

“야! 줄이 흐트러졌자나!”

참…… 얘는 나이도 어린 게 참 피곤한 성격인 것 같다.

“소리 좀 똑바로 내라고!”

반복되는 짜증에.

“안 해!”

결국 한 아이가 대형을 이탈했고, 그렇게 흐지부지 끝이 났다.

“너 주거써~!”

지우는 코끼리 코를 풀고, 그 아이를 향해 뛰어갔다.

“자자~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죠~ 싸우면 안 돼요~!”

싸움 구경 좀 하나 했는데.

그냥 손으로 밀고 당기는 수준이었다.

확실히 5살이 맞는구나.

싸움 구경 또한 하나도 재미없었다.

“커어~ 다란 코끼리들의 행진이었어요! 다 같이 박수~!”

“와아―!”

계속 하이 텐션을 유지하고 있는 신원경 선생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맘속으로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짠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유아교육과 후배들이 유독 술, 담배를 잘했었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된다.

“다음~ 또 보여 줄 사람?”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었다.

“…….”

휴우―

드디어 때가 된 건가.

지금은 2002년.

앞으로 4년 뒤 전국을 뒤흔들.

김수X 아저씨가 잇몸 만개하며 추던 그 춤을.

보일 때가 된 건가.

“선생님.”

난 낮은 목소리와 함께 손을 살짝 들었다.

“응? 덕후? 덕후가 한번 해 볼래?”

“제가 보여 주겠습니다. 춤이란 무엇인지.”

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양말을 먼저 벗었다.

* * *

“선생님. 혹시 YMCA 노래 있어요?”

“YMCA?”

선생님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목을 말하면 잘 모른다.

이럴 때 앞부분을 잠깐 불러 주면, 대부분 안다.

“이런 노래요. 영맨― 데얼스노 닏 투 필 다운 아이 세읻. 영맨―!”

“어머~!”

선생님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당연히 알지~ 근데, 덕후 대단하다. 어떻게 팝송을 알아?”

“아, 이거요? 그냥 들리던 대로 따라 부른 건데요.”

2년간 매일 아침 듣던 노래인데, 당연히 외우고 있다.

물론 정확한 가사인지는 모르지만.

“잠깐만~ 어디 보자.”

선생님은 한동안 CD를 뒤적거리더니.

“이런~ 그 노래는 없네.”

“아…….”

이걸 어쩐다…….

“그냥 노래 없이 박수에 맞춰서 출래?”

“아니요. 이 춤은 노래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엇! 한쪽 구석에 있는 피아노가 보였다.

“선생님, 피아노 치실 줄 알아요?”

“응~ 알지.”

“그럼 YMCA 피아노로 쳐 주실래요?”

“선생님은 그 노래를 모르는걸? 악보가 없는데 어떡해?”

어라?

이상하다.

왜…….

계명이 떠오르지?

“라파~ 파미레미파라파라~ 시파~!”

“…….”

선생님은 멍하니 날 보고 있었고, 나도 멍하니 선생님을 바라봤다.

“너…… 악보를 외우고 있니?”

난 악보를 본 적이 없다.

“또 계이름은 어떻게 알어?”

꿀꺽.

대학까지 다녔으니까 당연히 계이름 정도야 알지만…… 곡을 듣고 음계를 알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해 본 적도 없고.

“서, 선생님. 맞는지 쳐 보실래요?”

“그, 그래.”

띵동~ 띠리리리리리 띵동~!

“어머. 어머.”

헛! 완전히 정확하다.

선생님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나 또한 너무 놀라웠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저 멀뚱히 나와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미레미파라파라~ 라파~!”

띠리리리리리 띵동~!

음계를 부를 때마다, 선생님은 따라쳤고. 모두 정확했다.

난 유심히 듣다가.

“선생님, 박자를 반 박자 정도만 당겨 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흥이 나게요.”

“그래…….”

짝~ 짝짝. 짝~ 짝짝.

난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이렇게 미는 느낌으로요. 앞부분에 힘을 주면서.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그래…….”

곧 춤을 출 수 있는 수준의 연주가 되었고, 난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영맨― 데얼스노 닏 투 필 다운 아이 세읻.”

“어머. 어머.”

“영맨― 핔 유얼셆 옾 더 그라운드 아이 세이드.”

내가 이렇게 목소리가 컸었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소리가 앞으로 쭉쭉 뻗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끝 음이 자꾸 꺾였다. 트롯처럼.

“덕후야.”

선생님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아버님 무슨 일 하시니?”

“네?”

갑자기 왜 김 부장을 궁금해하시지?

“그냥 회사 다니는데요?”

“아, 그래…….”

선생님은 날 경이롭다는 듯 보고 있었다.

아마 음악 신동을 봤다고 생각하시겠지.

근데…… 내가 생각해도 뭔가 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과거의 경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분명 다른 게 있었다.

나는 음악을 즐기지도, 잘하는 사람도 분명 아니었다.

“…….”

여전히 멀뚱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

일단, 하려던 걸 하자.

난 서윤과 정훈에게 손짓했다.

“뭐 해? 어서 나와?”

* * *

“자 대형 유지하고. 시선은 45도 아래.”

“45도가 뭐야?”

아 또 전문용어가.

“그냥 바닥 보라고.”

난 선생님에게 말했다.

“저희는 꼭짓점을 몸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꼭짓점을? 호호. 너희가 꼭짓점을 아니?”

난 더 말하지 않고 외쳤다.

“선생님. 연주 부탁해요.”

피아노 연주와 동시에, 난 전주부터 큰 소리로 불렀다.

빰바바밤― 빰빠밤 빰바밤 빰―!

빰바바밤― 빰빠밤 빰바밤 빰―!

“다리로 박자 맞춰! 건들거리면서!”

빰바바밤― 빰빠밤 빰바밤 빰―!

빰― 빠라밤― 빠라밤―!

“하나! 둘! 셋! 넷! 커몬! 영맨!”

난 어깨를 건들거리면서 다리를 쭉쭉 내밀었고.

서윤과 정훈은 연습했던 대로 곧잘 따라 했다.

“왼쪽으로 돌고! 영맨!”

‘영맨― 데얼스노 닏 투 필 다운 아이 세읻.’

“신나게! 또 왼쪽으로!”

‘영맨― 핔 유얼셆 옾 더 그라운드 아이 세이드.’

우리 세 사람은 혼연일체가 되어, 삼각대형을 유지한 채 하늘반을 휘젓고 있었다.

“유후―! 다 같이! 와엠씨에이!”

빠빠라 빠라빠!

“와엠씨에이!”

한 바퀴 돌고 나니 서윤은 완전 신이 났고, 정훈도 한껏 미소 짓고 있었다.

“어머, 대박!”

선생님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상해…… 나도 같이 추고 싶어져.”

그러면서 선생님 또한 그 자리에서 스텝을 밟았다.

“자~ 한 번 더! 이번엔 하늘을 찌르면서! 영맨!”

하늘반 친구들은 이제 껑충껑충 뛰고 난리가 났다.

“돌면서~ 영맨!”

난 선생님을 향해 소리쳤다.

“선생님! 뒤로 붙으세요!”

“호호! 그래~!”

선생님은 정훈의 뒤에 서서 꼭짓점 댄스를 따라 췄다.

“와엠씨에이!”

빠빠라 빠라빠!

나와 하늘반 친구들 모두 다 같이 소리쳤다.

“와엠씨에이!”

점점 삼각형은 더 커졌고.

삼각형 최상위 꼭짓점에는 내가 있었다.

* * *

커다란 노랫소리에 선생님들은 문 밖에 모여서 하늘반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저게 도대체 뭐야?”

“신원경 선생님이 가르친 건가?”

―와엠씨에이!

김덕후를 중심으로, 신원경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반 아이들이 삼각형 대형을 이뤄서 춤을 추고 있는데.

춤이 간단하면서도 참 신나 보였다.

“우리 반도 해 봐야겠네. 신원경 선생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호호. 그러게요. 저런 건 어디서 배우셨대?”

* * *

한차례의 폭풍이 지나갔다.

집단 댄스가 끝나고.

이 일은 하늘반 권력 구조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가리지 말고 먹어. 안 그러면 안 받아 줄 거야!”

“알았떠.”

노래가 끝나자마자, 요리기구 파는 어느새 10명으로 늘어났다.

5살의 아이들 세계에는 ‘의리’ 따위는 없었다.

꼭짓점 댄스가 끝나자마자 모두 뒤도 안 돌아보고 우리에게 왔다.

미끄럼틀 파에 세 명. 자동차 파는 이제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그냥 같이 와서 놀 만도 한데, 동훈과 지우는 그러지 않았다.

외로울지언정 누구 아래로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태도.

리더는 리더인 것인가.

“동훈아~ 미끄럼틀 가지고 구석으로 좀 가 줄래?”

요리기구 파에 들어온 한 아이가 미끄럼틀을 밀며 말했다.

이 아이는 하늘반에서 동훈이 다음으로 키가 크다.

“싫은데? 여기서 내가 놀 건대?”

“너희 세 명밖에 안 되자나.”

“싫다고―!”

동훈은 그 아이를 밀며, 위협적으로 말했다.

“치…….”

아이는 움찔해서 뒤로 피했고.

내가 대신 동훈에게 다가갔다.

“동훈아,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노는 게 어때? 우리 쪽이 좀 좁기는 해. 사람은 이렇게나 많은데.”

“그래서? 자랑하는 거야?”

동훈은 내게 위협적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녀석.

“아니, 자랑은 아니고…….”

심지어 동훈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날 밀쳤다.

“그럼 뭐냐고오―!”

어라?

이거 지금…….

“너, 지금 밀었어?”

“밀었다! 어쩔래?”

욱!

순간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정말 5살 아이라면, 바로 응대를 했겠지만…….

난 35 +5년을 산 사람이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난 동훈에게 말했다.

“너…… 화가 많이 났구나?”

난 침착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흥분하지 않는 내 모습에 적잖이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뭐, 뭐야?”

전생에 어릴 적의 나는 겁 많은 아이였다.

하지만 지금 나로서는…… 동훈의 이런 위협적인 모습, 그냥 우습다.

같이 흥분하면 나도 똑같은 애일 뿐.

“우리 잠깐 시간 좀 갖고, 조금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

“생각 좀 해 봐. 그래도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자리 얘기는 더 안 할게.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좁은 자리에서 논다고 생각해 봐. 그게 정말 너에게 기쁜 일인지.”

“…….”

동훈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내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럼 재밌게 놀아~!”

―와~ 덕후 멋지다.

―방금 완전 형 같았어.

―형은 무슨? 우리 아빠 같았는데.

요리기구 파는 비좁은 자리에 낑겨서 열심히 후라이팬을 돌렸다.

그렇게 한참을 놀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쯤.

동훈이 삐죽거리며 다가왔다.

“어, 동훈아. 왜?”

“여기 너희가 써. 자리 바꿔.”

동훈은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뭔가 민망하면서도 분한 듯한 표정이었다.

난 씨익 웃으며 동훈의 어깨를 잡았다.

“동훈아, 내가 계란후라이 하나 해 줄까?”

“응?”

“어서. 이리로 앉아 봐.”

그렇게 자연스럽게 동훈은 요리기구 파의 식탁 앞에 앉았고.

이를 시작으로 파벌 구분 없이 모두 한데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난 싸움 대신 대화를 택했고.

그 선택은 하늘반의 통일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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