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복수의 시작(2)
우웨엑―!
김 부장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웨엑―
얼마나 헛구역질을 심하게 하는지, 눈까지 붉게 충혈되어 피가 떨어질 것 같았다.
처음으로 김 부장에게 제대로 복수한 순간이었다.
아주 일차원적이긴 하지만.
네 살로서 해 볼 수 있는, 아니, 네 살이기에 용인될 수 있는 복수.
“냉탕! 냉탕을! 젠장.”
김 부장은 연거푸 배 속에 있는 걸 게워 냈고.
한쪽에서 TV를 보며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와 큰삼촌이 뒤늦게 발견하고 뛰어왔다.
“어이쿠, 아비야! 무슨 일이냐?”
“형! 왜 이래?”
우웨엑―!
김 부장은 말조차 하지 못했다.
근데…… 어째 반응이 좀 심한데?
연거푸 구토하던 김 부장은 얼굴에 두드러기가 일어나고 있었다.
헐…… 뭐야.
“덕후야! 무슨 일이니?”
난 그들이 다가올 때쯤.
슬픈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어여, 갑자기 이상해여.”
큰삼촌은 바닥에 놓여 있는 컵을 집어 들며 말했다.
“도대체 뭘 마셨길래…….”
큰 삼촌이 받아 든 컵 안에는 때 쪼가리 잔챙이들이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우엑―!
큰삼촌은 종이컵을 던졌다.
“씨바, 뭐야? 저건 분명히…… 덕후야! 어디서 떠 온 거니?”
“냉탕이여.”
“헐!”
“냉탕이 시원하길래…….”
난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대꾸했고, 할아버지와 큰삼촌은 그저 황당한 얼굴로 날 바라볼 뿐이었다.
“이 녀석아! 씻는 물과 마실 물도 구분 못 하냐!”
할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졌고, 난 울먹거렸다.
“미안해여, 난 그냥…… 빨리 주고 싶어서…….”
그 말에 큰삼촌은 냉탕과 정수기의 위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연히 정수기가 훨씬 가까웠다.
“할버지, 빨리 병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에여?! 큰삼촌! 정신 차려! 뭘 자꾸 두리번거려!”
우웨엑―!
김 부장은 여전히 구토하고 있었다.
결벽증이 아니라 때 알레르기가 있는 건가?
후우―!
김 부장은 구토를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솔직히.
난 생각보다 반향이 너무 커서 좀 놀라기는 했지만.
내가 이 인간에게 당한 게 얼만큼인데.
토악질 몇 번 했다고? 미안한 감정?
그딴 거 없다.
이 정도면 내 마음을 확실히 알게 되지 않았을까?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당신을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
“…….”
싱긋.
근데 김 부장은 날 향해 웃었다.
웃어?
지금 웃어?
“덕후야, 아빠 괜찮아.”
김 부장은 애써 환하게 웃었다.
“덕후가 준 물 시원하고 맛있더라. 너 때문이 아니야.”
억지로 날 향해 미소 짓는 김 부장.
이빨이 보였다.
그사이에 껴 있는 때 쪼가리도 보였다.
“놀라지 마. 아빠 괜찮아.”
“…….”
지금 뭐지?
어이가…… 없네?!
우웩―!
나도 모르게 구역질이 나왔다.
방금 본 김 부장 이빨 사이에 낀 때 쪼가리의 잔상이 남았다.
그 상태로 웃고 있는 김 부장의 얼굴.
우에엑―!
자꾸 생각난다.
젠장, 속이 뒤집혔다.
“진만아, 아무래도 앰뷸런스 불러야겠다.”
“네…… 아버지.”
* * *
“덕후야!”
응급실에서 링거 맞고 있는데, 입구에서 어머니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니?”
“어머이.”
난 반복된 구토로 탈진 증세를 보이었고, 어머니를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맞이했다.
“어머!”
어머니는 옆 침대에 누워 있는 김 부장의 몰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당신은 또 왜 이래?!”
김 부장은 얼굴 전체가 붓고 두드러기가 나서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여보! 무슨 일이냐고!”
어머니는 말은 김 부장에게 하면서 눈은 할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 지금 마, 말 못 해.”
어머니는 대답을 구하는 게 아닌 듯 보였다.
여전히 할아버지를 쏘아보고 있었다.
“왜 쓸데없이 오전부터 목욕탕을 간다고 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냐고! 애들도 아니고 진짜!”
“…….”
“담부턴 가려면 혼자 가욧!”
육식동물로 변했을 때의 어머니는 이 집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였다.
그 누구도 어머니를 어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숙이셨고, 김 부장은 대답했다.
“아, 알았어. 근데, 나한테 하는 말 맞지?”
* * *
응급실 앞 벤치.
“자, 받아라.”
“고마워, 삼촌.”
큰삼촌이 건넨 음료수를 받고 난 한껏 미소를 지었다.
“근데 마셔도 되냐? 좀 전까지 속 뒤집어져서 고생하던 녀석이.”
“괜차나, 배탈 났던 건 아니자나.”
딸깍.
큰삼촌이 뚜껑을 따 주었고, 난 시원하게 한 모금 마셨다.
‘깜찍이 소다’
‘쿠우’로 마실까 살짝 고민했었는데.
오늘은 깜찍이 소다가 더 당겼다.
좀 전까지 있는 힘껏 토를 하다가 음료수를 마시니.
더 큰 시원함이 느껴졌다.
살랑살랑 부는 시원한 바람.
“크아~ 좋다.”
“뭐냐? 아저씨처럼.”
홀짝. 홀짝.
순간 긴장이 풀렸었다.
“덕후야.”
“응.”
“너, 아까 왜 그랬냐?”
“아까 뭐?”
목욕탕에서 냉탕과 정수기 위치를 번갈아 보던, 큰삼촌의 눈빛이 떠올랐다.
“일부러 한 거니?”
“아니야, 아까 얘기 했자나. 그냥 빨리 주려다가 그런 거라니까.”
“왜 그랬어?”
큰삼촌은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그랬다는 걸.
“…….”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했다.
잠시 기다리던 큰삼촌은.
“그렇게 아빠가 싫으냐?”
“…….”
“너희 아빠처럼 좋은 사람이 어딨다고.”
욱!
난 순간 큰삼촌을 째려보았다.
“큰삼촌이 알어?”
“뭐?”
“그렇게 잘 아냐고.”
“누구를? 네 아빠를? 당연히 잘 알지. 너보단 많이 알지 않겠냐?”
아니, 당신은 모른다.
김 부장이 얼마나 악질인지.
나에게 어떤 상처와 수모를 주었는지.
난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속알머리부터 확인하다.
수건으로 세게 비벼서 말리지도 않고.
살짝 물기만 걷어 낸 다음에 자연풍으로 말린다.
네 살짜리가 머리 감을 때마다 이러고 있다.
머리 한 가닥이 소중하다.
이 엄청난 트라우마를 당신이 알까?
“아니, 삼촌은 몰라.”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옛 생각이 떠오르려고 했다.
기분이 더러워져서 더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에잇!”
“덕후야…….”
큰삼촌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삼촌이 아는 모습이 다가 아니야.”
난 그대로 병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큰삼촌은 김덕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네 살 아이가 어떤 처절한 아픔을 겪었길래.
저런 삶에 찌든 표정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형……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 * *
그 이후 난 좀 자숙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 큰 것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 부장의 무언가에 상처받은 불쌍한 김덕후 어린이.
이 신비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2002년, 난 5살이 되었다.
“덕후야~ 좀 나가 놀아라.”
“전 이게 노는 거예요.”
“온종일 집에서 뭐 하니? 네가 뭘 안다고 두꺼운 책을 들고 공부를 한다고 그래?”
난 진짜 이게 노는 거다.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 게.
이상하게 뭔가를 배우고 익히는 게 즐겁다.
이건 분명히 전생과 다른 점이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회사원은 안 될 테니까요.”
“뭐라고?”
절대로 회사원은 되기 싫다.
공부를 잘하면 회사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래서 관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이상하게 자꾸 손이 책으로 간다.
“다른 거로 훌륭한 사람이 될게요.”
“호호. 참 나. 조그만 게 말하는 거 하고는.”
어머니는 날 안고 뽀뽀해 주셨다.
어른스럽게 말하는 게 더 귀엽게 느껴졌나 보다.
“그래도 덕후야,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것도 중요해.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단다.”
“전 가족이 많자나요. 그것도 사람이죠.”
“자꾸 말대꾸할래?”
어머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알겠어요, 나갔다 올게요.”
“그러거라. 그리고 내일부터 어린이집 다닐 거니까.”
“네에?!”
어린이집?
내가?
아, 나 어린이였지.
“시러요, 저 어머니랑 함께 있고 시퍼요.”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도 우리 아들이랑 같이 있는 게 좋아. 하지만 어린이집 다니면 좋은 게 더 많을 거야.”
“…….”
“친구들도 사귀고, 좋은 선생님과 시간도 보내고.”
내가 집 밖을 안 나가는 이유.
꼬맹이들이랑 놀기 싫다.
어쩔 수 없이 나가도, 혼자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고 말지.
당연히 어머니는 나를 어린이로 생각하고 있다.
난 단순히 공부가 더 재밌어서 집 밖을 안 나가는 게 아니다.
“어머니, 앞으로 매일 규칙적으로 두 시간씩 밖에서 놀다 올게요. 어린이집 가기 시러요.”
어머니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머니…….”
“두 번 얘기하게 하지 마라.”
“…….”
하아…….
무조건 가야 하는 거구나.
‘신바람 어린이집.’
난 아직 또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두근. 두근.
어린이집 앞에 서니,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머니…….”
“덕후야, 괜찮아.”
띵동!
철컥!
벨 소리가 울리자마자, 활짝 문이 열렸다.
“어머~ 네가 덕후구나?”
덩치가 어머니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내 앞에 웃고 있었다.
“어머~ 귀엽게 생겼네~!”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완전 하이톤.
눈은 계속 웃고 있는데, 반달 모양이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가 덕후 엄마 되는 사람입니다. 덕후야, 선생님께 인사드려.”
“안냐세요.”
“어머~ 안녕~ 덕후야앙~!”
아~ 거부감 든다.
이 과한 액션.
내 스타일 아니다.
“아들이 어린이집 처음이고, 또래와 어울린 적도 거의 없거든요.”
“어머~ 괜차나요~어머니임~!”
“그래서 아무래도 제가 좀 있다가 가는 게…… 아들 적응하는 데 도움 될 거예요.”
“호호~ 막 돌 지난 아기도 다니는데요~ 5살인데~ 괜차나요~!”
어머니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좀 앉았다 간다고요.”
“네.”
선생님도 어머니의 포스를 단번에 알아보는 것 같았다.
좁은 복도를 가운데로 하여, 양옆에 유리로 된 방들이 있었다.
방마다 십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데.
나이대별로 구분해 놓는 것 같았다.
“우리~ 덕후는 5살이니까~ 하늘반이겠네에?”
“아, 네.”
드르륵―!
하늘반에는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고, 각자 앉아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단발머리를 한 선생님이 그 가운데에 있었는데, 날씬하고 인상이 좋았다.
“하늘반 담임선생님이에요~ 신원경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안냐세요.”
“그래~ 네가 덕후구나. 반가워~!”
그녀는 날 향해 기분 좋게 웃었다.
어머니와 나는 구석에 앉아서 잠시 지켜보았다.
30여 분 정도 지나자.
“어머니. 이제 가 보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저랑 잠깐 사무실에 들렀다가 가시죠. 서류 작성 때문에.”
“아 네. 알겠습니다.”
어머니는 날 보고 약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덕후야, 잘 있을 수 있지? 4시에 엄마가 데리러 올게.”
지켜보니까 뭐.
별거 아닌 거 같다.
그냥 애들인데 뭐, 좀 놀아 주면 되지.
“알았어요, 이따 봐요.”
“그래.”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 15분 정도만 자리 비울 테니까 잠깐 놀고 있어요~!”
“네~!”
드르륵―!
선생님이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이곳을 쉽게 봤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는.
약육강식의 생태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