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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 아들은 트롯천재-5화 (5/250)

5화. 복수의 시작(1)

“허허, 그래?”

“네~ 할부지.”

“아이고~ 좋지, 삼대가 함께 가겠구나. 하하.”

그게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인가?

할아버지 표정이 너무 즐거워 보였다.

옆에 있던 큰삼촌도 활짝 웃었다.

“덕후야~ 목욕탕 가면 뜨거운 물 있는데 괜찮겠니?”

“괜차나, 삼촌. 온탕에는 안 들어가면 되지.”

“아…….”

“난 냉탕만 드러가께.”

큰삼촌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온탕? 냉탕? 덕후 너, 목욕탕 가 본 적 있어? 냉탕을 어떻게 알아? 형, 덕후랑 목욕탕 갔었어?”

“아니.”

아차…….

나도 모르게 전문용어가 나왔다.

“저번에~ 큰 삼촌이 목욕탕 갔다 온 얘기해 줬자나.”

“내가?”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며 짜릿함을 느꼈다고.”

“헉!”

“내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까, 큰삼촌이 그때 대답은 하지 않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었는데.”

난 눈을 하늘로 치켜뜨고, 부르르 떠는 모습을 보였다.

큰삼촌은 당황하여 소리쳤다.

“덕후야! 어디서 그런 이상한 표정을! 내가 언제!”

어머니는 큰삼촌을 노려보았고,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눈을 깔았다.

이런 임기응변.

확실히…… 전생과는 다르다.

내가 말을 뱉고 나서도 스스로 놀라는 경우가 간혹 있다.

큰삼촌은 그런 말 한 적 없다.

방금은 무의식중에 나온 말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뱉은 말이다.

난 원래 우직하고 말수가 적은 편이었는데…….

“덕후 다 먹었니? 다 먹었으면 일어나거라.”

“네, 어머이.”

“어서 씻고. 아, 목욕탕 가서 씻으면 되겠구나. 엄마가 얼른 준비해 줄게.”

“괜찮아요. 큰삼촌한테 도와 달라고 할게요. 어머이는 좀 쉬세요.”

매 끼니 식사 차리는 어머니가 안쓰러웠다.

어머니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이구~ 엄마 생각해 주는 사람은 아들밖에 없구나?”

“저도 어머이밖에 없어요.”

그때 날 보는 어머니의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

“왜 그런 말을 하니? 우리 덕후한테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

“든든한 아빠도 계시고…….”

어머니가 어떤 심정으로 말하는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라도, 김 부장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더 말씀하시지 못하도록 난 다른 말을 했다.

“어머이 전 이제 나갈 준비 할게요.”

그때 김 부장이 살며시 다가왔다.

“아들~ 무슨 옷 입고 싶어?”

“그건 알아서 뭐 하게?”

김 부장은 기회만 있으면 다가온다. 이쯤 됐으면 이제 포기하지. 내가 싫어하는 거 잘 알 텐데.

“아들~ 아빠가 옷 입는 거 도와줄까?”

“됐어.”

“왜? 아빠가 도와줘도 되는데.”

“싫어. 큰삼촌이 해 줄 거야.”

“그럼 뭐 다른 거라도.”

“신경 꺼.”

김 부장은 눈을 끔뻑거렸고.

난 옷을 들고 삼촌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여간…… 덕후 보면 엄마랑 아빠한테 대하는 게 완전 다르다니까. 형! 덕후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래?”

큰삼촌의 말에 김 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많이 소홀했었나?”

막냇삼촌이 한숨을 쉬었다.

“엄마한테는 완전 효자인데, 아빠는 남 대하듯 한단 말이야. 아니지, 엄마랑만 비교할 게 아니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잘하는데, 아빠한테만 저러니까.”

“…….”

“이건 형한테 잘못이 있다는 거야. 뭔지는 모르겠지만. 애가 원래 싸가지 없는 게 아니잖아.”

김 부장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김덕후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김 부장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오직 김 부장에게만.

김덕후의 전생 일을 알 리 없는 가족들은 그저 김 부장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비야, 심려치 마라. 아직 어려서 그래. 괜찮아질 거야.”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장남이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애들이랑 많은 시간을 못 보내서 그런 거겠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김지아는 김 부장 옆에 너무나 다정하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니까요. 덕후랑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겠어요. 의도적으로라도요.”

“그래, 그러렴.”

* * *

‘백두산 사우나’

베이지색 조그만 타일로 만들어진 아주 고풍스러운 목욕탕이 보였다.

찜질방만 다니다가 이런 목욕탕을 오랜만에 보니 신기하고 감회가 새로웠다.

“하하~ 자, 들어가자~!”

할아버지를 선두로 하여, 김 부장, 큰삼촌, 나. 이렇게 네 사람은 목욕탕 입구로 향했다.

근데…… 이상하게도 김 부장은 경직된 모습이었다.

“아비야, 뭐 하냐? 들어가자니까.”

“……네, 아버지.”

김 부장은 내 손을 잡아끌고 들어가려고 했고.

난 소스라치듯 그 손을 뿌리쳤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서니.

푹한 쾌남의 향기가 입구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미스 쾌남.]

2020년에도 동내 사우나에 가면 볼 수 있는 저 화장품.

왜 미스가 쾌남일까.

미스 쾌남은 전국 목욕탕과 자매결연을 한 걸까?

그리고 미스터 쾌남이 맞지 않을까?

어쨌든.

오래되어 결이 상한 조그만 나무 사물함 앞에 서서 옷을 벗었다.

근데 김 부장은 옷을 안 벗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왜 저러지?

나와 큰삼촌, 할아버지까지 다 벗어 가는데, 김 부장은 아주 천천히 바지를 벗고 있었다.

“아비야,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부끄러워? 뭐가?

할아버지의 말이 좀 이상했지만, 큰삼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나?

“아버지 먼저 들어가세요. 진만아, 덕후 좀 챙겨 줘. 난 곧 뒤따라 들어갈게.”

“형, 괜찮아. 요즘은 그런 사람 많으니까. 어서 들어와.”

“알았어, 먼저 들어가라.”

난 유심히 김 부장을 관찰했다.

왜 목욕탕 오는 걸 꺼리는 걸까.

그걸 알아야 김 부장을 괴롭힐 수 있을 텐데.

아직 확실히 포착되는 건 없었다.

일단 난 노란색 오리 인형을 들고, 먼저 들어갔다.

오리 인형은 물장난할 때 쓰이는 용도로, 이게 없으면 목욕할 때 흥이 안 난다.

찍―

오리 배 속에 물을 채우고, 배를 꾹 누르면 오리가 물을 뱉어낸다.

그리고 배 속이 비어 있으면 물 위를 떠 다녀서 갖고 노는 재미가 있다.

“할부지, 목욕탕 재밌어여.”

“하하 그래?”

“네~!”

탕이 크다 보니, 오리가 멀리까지 갈 수 있었다.

집에 있는 작은 욕실과는 천지 차이.

아직 물이 좀 무섭긴 하지만 내 옆에는 든든한 큰삼촌이 있다.

“덕후야, 혼자 탕 가운데로 가지 말아라. 위험해.”

“알았떠, 삼촌.”

덜컹.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터벅. 터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시끌벅적하던 목욕탕 안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창 오리 배를 누르며 물을 빼고 있다가.

이상한 아우라에 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김 부장.

그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데.

김 부장 등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져서 입을 다물고 숨죽였다.

뭔데 저러지?

어쨌든 난 김 부장 얼굴만 봐도 기분이 별로 안 좋아지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려 했다.

김 부장은 어느새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았고.

허걱!

이, 이게 뭐야?!

난 그의 뒷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쌍용.

용 두 마리가 그의 등 한복판에서 춤을 추고 있는데.

청룡과 흑룡이었다.

‘…….’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어서.

난 눈을 비비고 다시 한번 보았다.

분명히 용이 맞았다.

아,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지?

그리고 그의 어깻죽지에 뭔가 있는데.

‘一心’

일심?

“덕후야~ 잘 씻고 있었니?”

“네…….”

김 부장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나왔다.

쫄은 건가? 젠장!

김 부장이 타투이스트는 아닐 거고.

설마…….

날 향해 등 돌리고 있는 김 부장을 향해 물었다.

“등에 그거 뭐예요?”

짜증 나지만, 자꾸 존댓말이 나왔다.

지금 이 순간, 도저히 반말은 못 하겠다.

“아~ 이거.”

김 부장은 멋쩍게 웃으며.

“등에 그림 그린 거야.”

“…….”

“아직 안 지워졌네? 이상하네? 하하…….”

누굴 바보로 아나.

김 부장은 나에게 뻔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는 증거인 것 같은데.

서울대 차석 합격자라고 하지 않았었나?

김 부장…… 도대체 정체가 뭐지?

“덕후야~ 이리 오렴, 할아버지가 때 밀어 줄게.”

“네…….”

더 물어보려 했는데, 할아버지가 말을 끊었다.

할아버지에게 등을 맡긴 채 난 유심히 김 부장을 관찰했다.

등에 문신이 있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욕탕에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왜 욕탕에 안 드러가요?”

김 부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냥~!”

“뜨거워서?”

“아니야, 아빠는 신경 쓰지 말고 씻으렴.”

냉탕도 안 들어가는 걸 보니, 물 온도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렇게 관찰하다가 뭔가를 발견했다.

떼가 둥둥 떠 다니는 목욕탕 물이 넘쳐 바닥을 가로질러 그의 발에 닿으려고 하자.

“으악―!”

기겁을 하며 발을 올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호들갑을 떨며 멀찍이 떨어졌다.

“에이그, 형, 여전하네.”

“그러게나 말이다.”

난 큰삼촌에게 궁금해서 물었다.

“김 부장, 왜 저래?”

“뭐?”

큰삼촌이 반문에

“아, 아니, 아빠 왜 저러냐고.”

큰삼촌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너무 깔끔하셔서 그렇지 뭐. 몰랐냐?”

“아…….”

그래서 욕탕에도 안 들어간 거였어?

그 정도면 심각한 건데.

“덕후야, 넌 네 아비한테 저런 건 닮지 마라. 남자가 너무 깔끔해도 문제야.”

“네, 할부지. 아무것도 안 닮을 거예요.”

김 부장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우리가 있는 자리로 돌아왔고.

난 그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목욕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김 부장은 목욕을 좀 늦게 시작한 데다 이것저것 피하면서 씻느라 좀 더 늦게 나왔다.

그가 나올 때쯤 나와 할아버지, 큰삼촌은 옷을 이미 다 입고 있었다.

“아~ 시원하다. 죄송합니다. 좀 오래 걸렸죠?”

할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담부턴 같이 오자고 안 하마.”

“하하.”

“진짜야.”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서로 패턴이 다르니.

전생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하여간 김 부장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기는 하다.

“아이고~ 목 마르다.”

김 부장은 정수기를 향해 걸어 가려 했다.

“아빠.”

난 김 부장을 불렀다.

“옷 입어, 물 내가 가져다줄게.”

김 부장은 잘 못 들은 게 아닌가 싶은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응? 덕후가? 웬일이냐?”

“빨리 나가고 싶어서. 목욕탕 지겨워. 담부턴 가치 오지 마. 빨리 옷 입어.”

“…….”

순간 김 부장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난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건네주었다.

“자, 마셔.”

“아이고~ 고맙다, 아들~!”

“원샷!”

“뭐?”

헛, 순간 또 전문용어가 나왔다.

“어서 마시라고. 기다리기 지겨워.”

“어, 그래. 그래.”

김 부장은 종이컵에 담긴 물을 쭉 들이켰고.

난 흔들리는 그의 목울대를 보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음?”

김 부장은 입에 뭔가 씹혔는지 혀를 내밀었고, 그 위에 있는 무언가를 집어냈다.

“이거 뭐야, 식혜야? 식혜 맛이 아닌데?”

그의 집게손가락에 있는 건, 때 쪼가리였다.

“냉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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