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원하는 걸 잡아봐(2)
역시 사회자답게 눈치가 빨랐다.
그는 천역덕스럽게 멘트를 날리기 시작했다.
“마이크로 좋은 교수님이 되겠네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죠! 마이크 앞에 자주 서시잖아요? 무엇이든 마이크 잡는 건 유명한 사람이라는 뜻이죠~ 하하!”
눈치는 나도 빠르다.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 부장은 ‘가수’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난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노래 부르는 시늉을 했다.
“뱌~ 뱌~!”
“우리 김덕후 어린이, 연설을 하고 있네요. 하하!”
누가 봐도 노래 부르는 시늉을 하는 건데.
사회자의 억지스러운 멘트와 웃음이 장내를 울리고 있었다.
“덕후야, 이리 온.”
불편한 표정으로 김 부장과 가족들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
그녀는 내 손에서 마이크를 빼 내려놓고, 날 안아 들었다.
난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았는데.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제 행사 끝난 거죠?”
어머니는 진행요원에게 조용히 물었고, 그 또한 주변 분위기를 파악한 듯 어색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마지막 인사만 하고 마치시면 됩니다. 보통 아버님이 하세요.”
“아, 네. 여보, 어서 해요.”
어머니는 나를 안은 채 토닥였고.
김 부장이 마이크를 잡고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
“돌잡이 다시 해야 할 것 같아. 이거 기억에 남는다고. 난 지금 상황이 영 맘에 안 들어, 누나들도 왔는데…….”
어머니는 싸늘하게 김 부장을 바라보았다.
“방금 건 무효로 하고, 다시 하자. 내가 사회자한테 잘 말할 테니. 헉!”
김 부장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놀라서 바로 눈을 깔았다.
“뭐? 상황이 맘에 안 들어서 돌잡이를 다시 해요? 그럴 거면 돌잡이 뭐 하러 해요? 그냥 손에 쥐여 주고 말지.”
“…….”
“그리고 뭐든지 좋다면서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돌잡이 하기 전에 했던 말은 뭐예요?”
“아, 아니 그래도…….”
김 부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보였다.
어머니의 말은 싸늘하고 묵직했으며, 또한 틈이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꼴깍.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난 덕후 데리고 먼저 들어갈 테니, 알아서 정리하고 들어오세요. 잔치 즐길 기분 아니니까.”
“여보, 그래도 온 손님이 있는데.”
“손님?”
어머니는 이제 완전히 정색하고 김 부장을 바라봤다.
“이게 누굴 위한 생일잔치인가요? 네? 그리고 덕후가 뭘 잘못했나요?”
“…….”
“그리고 난 당신 과거 때문에 별것도 아닌 일로 내 아들이 이런 시선 받는 거 못 지켜봐요. 비켜요!”
김 부장은 과거라는 단어에 표정이 굳어졌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정색했으므로 바로 꼬리를 내렸다.
김 부장의 갑작스러운 끝인사로 돌잔치는 마무리되었다.
* * *
“덕후야~ 빨리 와!”
김지아. 나보다 세 살 위 누나.
시간은 흘러 어느덧 난 세 살이 되었다.
세 살과 여섯 살.
이 집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는 존재.
누나가 날 대하는 것은 어른들의 것과는 완전 달랐다.
날 아기 대하듯 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칠었지만 이상하게도 누나와 함께 있으면 즐거웠다.
“빨리 안 오면 누나 혼자 간다?”
누나에게는 난 3살 아기가 아니다.
그냥 남동생이다.
그녀는 본인 속도대로 빠르게 걸어갔다.
“가치가―가치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말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누나보다 다리도 짧고 이제 겨우 세 살이라고. 천천히 좀 가라고!’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지만 지금 입으로는 나오는 단어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으휴, 답답해.”
급기야 누나는 내 손을 잡고 막 뛰었다.
“꺄르르.”
과격한데 재밌다.
누나 손에 이끌려서 몸이 붕붕 떴다.
“웃어? 난 힘든데?”
누나는 깔깔대며, 날 더 빠르게 잡아끌었다.
이러다 자칫하다간 팔 빠질 것 같은데.
“꺄르르!”
그래도 재밌다.
머리는 걱정되는데, 몸은 기뻐서 날뛰고 있다.
그렇게 붕붕 떠다니듯 누나와 함께 도착한 곳은.
띵동!
“미진아~ 노올자~!”
누나 친구네 집.
“어서 와라~ 어머, 이 아가는 누구니? 귀여워라!”
김미진의 어머니는 날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귀찮아할 법도 한데, 반겨 주셔서 감사했다.
“제 동생 덕후예요~!”
“어머~ 어쩜~ 이름도 귀엽네~!”
어머님은 연신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셨다.
이 집엔 아들이 없어서 그런가.
그래도 탈모 트라우마 때문에 머리는 좀 민감한데.
딴 데 만지시지.
“지아야~ 우리 뭐 하고 놀까?”
친구는 누나에게 방으로 가자고 했다.
내심 나와는 함께 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3살짜리하고 뭐 하고 놀겠는가.
몸도 제대로 못 가누고, 툭하면 울기만 하는데.
그래도 좀 들리지 않게 말하지.
“야, 근데 동생은 왜 데려왔어? 신경 쓰이자나.”
“응?”
누나는 날 바라봤다.
“엄마가 바쁘셔서. 신경 쓰지 마, 덕후 말 잘 들어.”
누나 둘은 병원 놀이에 집중했고.
난 환자로도 낄 수 없었다.
철저히 나는 배제하고 놀았다.
아줌마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고.
난 그 옆에서 우유를 빨면서 함께 TV를 봤다.
[여러분 1위~ 후보곡입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지윤~ 박!]
이 집 우유는 맛있네.
열심히 빨면서 보고 있는데.
[난 이제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에요~]
가요 ‘성년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이 2000년.
아, 이게 이때 나온 노래구나.
2021년에도 종종 라디오에서 들리며 가수들이 종종 커버하는 명곡이다.
지윤박은 요염한 몸짓으로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덕후야~ 그렇게 가까이서 보면 눈 나빠진단다.”
음?
언제 내가 여기까지.
TV 거의 코앞까지 와서 앉아 있었다.
“네에.”
뒤로 좀 물러나서, 아주머니 옆에 앉아 있는데…….
[장미 서른 송이 내게 줘요~]
음? 몸이 근질근질하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나~ 나~!”
난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벌떡 일어났다.
지윤박이 TV에서 팔을 머리 뒤로 사각형으로 만들고. 다리를 이리저리 뻗는데.
“조아~ 조아~!”
난 흥얼거리며 지윤박처럼 팔을 머리 뒤로 사각형으로 만들었다.
[그대 마음을 느낄 수 있게]
“이께~!”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아줌마는 손뼉을 치며 난리가 났다.
“어머! 어머!”
막상 박자를 타기 시작하자 무아지경에 빠졌다.
정신을 놓았다.
내 몸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빰~ 밤바바밤~ 밤바바밤!
‘성년식’의 댄스 브레이크 구간.
난 지윤박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췄다.
내가 이 춤을 외우고 있었던가?
머리는 모르는데 몸이 따라가고 있다.
킬링 포인트.
엉덩이를 뒤로 치켜들고, 몸을 숙여 부르르 떨었다.
“…….”
노래와 리듬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데, 짜릿했다.
[나 이제 눈 감고 자요~!]
바바바밤~
헉. 헉.
노래는 끝이 났다.
머릿속에 그린 것들이 몸으로 다 이뤄졌다.
아직도 이 노래의 리듬이 내 핏속에서 꿈틀대는 것 같다.
어떻게 된 게 걷는 것보다 흔드는 게 더 쉽네.
[우와아~]
TV 속 관객들의 함성 소리.
“우와아…….”
근데 지금 건 TV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니 아주머니가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뭐야? 진기명기야?”
“네에?”
아주머니는 무슨 신기한 동물 보듯 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덕후, 몇 살?”
“세 짤.”
“맙소사.”
아주머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춤도 춤이지만…… 조그만 게 어쩌면 그렇게 박자를 잘 맞추니?”
“…….”
“이건 뭐 정박도 아니고, 칼박 수준인데?”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몸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을 뿐.
“덕후야~ 이제 가자!”
친구 방에서 누나가 나왔다.
“재밌게 놀고 있었어?”
“…….”
신경도 안 써 놓고, 무슨 이런 질문을?
“얘, 지아야. 너, 동생 아니?”
“네? 뭘요?”
“아니, 방금 TV에서 나오는 춤을 따라 추는데, 정말 잘하던데?”
“아~ 그래요?”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냥 하는 말 아닌데…….”
누나는 시계를 보더니, 놀라서 중얼거렸다.
“아, 맞다! 파란펜 선생님!”
그리곤 내 손을 잡고, 냅다 뛰어갔다.
“안녕히 계세요~!”
쾅!
아주머니는 남매의 뒷모습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게 당연한 건가? 요즘 아기들은 다 저런가?”
김덕후가 엎드린 자세에서 엉덩이만 치켜들고 흔들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 * *
우리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파란펜 선생님이 웃으며 들어왔다.
“어머~ 덕후도 있었구나?”
“안냐때여.”
“아이고, 귀여워~!”
선생님이 내 어깨를 쓰다듬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와서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오늘은 마루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요? 방이 꽉 차서…….”
우리 집에는 방이 세 개다.
안방 :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중간방 : 어머니, 나, 김 부장
작은방 : 큰삼촌, 막냇삼촌.
안방은 원래 사용이 불가하고, 작은방에는 항상 삼촌들이 있다.
삼촌들은 밖에 잘나가지도 않는다. 온종일 작은 방에서 뭘 하는지.
평소 중간 방에서 파란펜 선생님을 모셨었다.
근데 오늘 창립 기념일이라고 김 부장이 회사를 안 가고.
온종일 자고 있다.
물이라도 확 끼얹을까?
“아, 괜찮아요. 전 상관없어요. 지아도 괜찮지?”
“네, 선생님~!”
어머니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살며시 자리를 피했다.
“덕후야, 누나 공부하는데 방해하지 말고 얌전히 놀고 있어라?”
“네.”
선생님의 표정이 살짝 불편해졌다.
누나와 함께 나를 맡기려는 의도.
어머니의 수작을 눈치챘지만 그냥 모른 척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저 부엌에 있을게요, 우리 집이 워낙 대식구라서 저녁 준비해야 돼서요.”
“네…….”
파란펜 선생님은 학습지를 두고 누나를 열심히 가르치기 시작했고.
누나는 참…… 대답만 잘했다.
하나도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그냥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대답만 열심히 하는.
“자, 지아야. 그럼 이거 한번 읽어 볼래?”
선생님이 가리킨 곳에는 ‘ㄱ’과 ‘ㅏ’가 있었다.
“모라요…….”
누나는 선생님이 가리키는 걸 읽지 못했다.
하긴 나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한글을 익혔던 것 같은데.
도리어 친구들보다 약간 늦은 편이었다.
김지아는 이제 겨우 6살이다.
그런데…… 잠깐만.
그때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자, 지아야. 쉽게 포기하지 말고. 앞에 건 ‘ㄱ’이고, 뒤에 건 ‘ㅏ’잖아. 이걸 합쳐서 말하면?”
“…….”
내가 특별한 아이가 된다면.
김 부장은 날 더 거리감을 두고 대하지 않을까?
맹하고 어리숙한 아이보다는.
좀 보통 아이들보다 많이 빠르고, 다른 아이라면……
“지아야~ 잘 한번 생각해 봐.”
“그아아~!”
순간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과 누나는 눈알이 빠질 것처럼 날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덕후가 한 거니?”
난 어리둥절한 척 표정 관리를 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선생님은 다시 한번 글자를 가리켰다.
“이게 뭐라고?”
“그아아―!”
“좀 더 빨리!”
“가아―!”
“헉!”
선생님의 얼굴이 빨개졌다.
“더, 덕후야! 이것도 한번 보자.”
선생님은 이번엔 ‘ㄴ’과 ‘ㅏ’를 가리키며 발음을 불러 주었다.
“자 봐봐. 니은! 이랑 아!”
“닝, 아.”
“이걸 합쳐서 하면?”
“느아아―!”
“어머! 어머!”
선생님은 손뼉을 쉴새 없이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미쳤어. 어우, 소름 돋아.”
선생님은 얼굴이 벌게져서 소리쳤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부엌에서 튀어나오셨다.
좀 더 발음을 정확하게 하고 싶었으나, 이게 최선이다.
“덕후가요! 덕후가요!”
“헉. 헉. 선생님 왜요!”
“글을 읽어요!”
“네에―?!”
어머니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선생님은 ‘가’와 ‘나’를 마구잡이로 찍기 시작했고.
난 주크박스 마냥 가리키는 대로 외치기 시작했다.
“그아아―! 느아아―!”
“거꾸로!”
“느아아―! 그아아―!”
나의 글 읽는 소리에 방에 있던 가족들도 뛰어나왔고.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신동 났네, 신동 났어.
―이름 지을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무엇보다도.
“…….”
김 부장의 당황한 표정.
훗, 맘에 든다.
그래, 날 단순히 쉬운 3살 짜리 아이로 보지 말라고!
그때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 하셨다.
“허허, 하여간 핏줄은 못 속인단다.”
할아버지의 한마디에 좋았던 기분이 싸늘이 식었다.
핏줄……?
“덕후가 누구 아들이냐? 서울대 차석 합격자 아들 아니냐! 으잉?”
김 부장의 핏줄…….
할아버지는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덕후 아비도 4살 때부터 글 읽었어~ 하긴, 덕후가 지 아비보다 1년 빠르구먼. 허허.”
좀 이상하긴 했다.
머리도 좀 더 빨리 돌아가는 것 같고. 암기도 잘 되고.
그냥 어려서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근데…… 그게 김 부장 덕이라고?
그의 핏줄이라서?
“…….”
젠장. 괜한 짓을 했다.
날 불쾌해져서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아빠. 우유!”
“응? 어어. 그래.”
김 부장은 헐레벌떡 우유를 가지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기다리던 시기가 찾아왔다.
발음은 아직 좀 어눌하지만, 어휘력이 확 늘었고.
이젠 웬만해선 걷다가 넘어지지 않는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김 부장. 웰컴 투 헬이다.
드디어 난.
미운 4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