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마지막까지 떠올린 사람
입사한 지 5년째.
나이 서른의 약간 늦은 나이에 입사하여 한 회사에서만 다니고 있다.
처음엔 대기업에 취업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스펙이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저 열심히 취업을 준비했고, 운이 따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내 또래들보다 앞선 출발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것.
소개팅도 잘 들어오고, 이쁜 여자친구도 만나고.
처음엔 기쁨에 취했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래서 틀려먹었다는 거야.”
금요일 아침. 막 출근한 시간.
“자네, 5년 동안 뭐 했나? 도대체 뭘 맡길 수가 있어야지.”
금요일만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랐는데.
“제품 수입하기 전에 검사 철저히 하랬지? KC 검사는 모든 컬러를 다 해야 한다니까?”
“…….”
“왜 그렇게 안 한 거지? 회사 물 먹이려고 작정했냐? 아니면 나 잘리는 거 보고 싶은 건가?”
제품 예정 입고 보고를 하는데, KC 성적서를 보고 트집 잡기 시작했다.
휴우…….
“왜 모든 컬러 검사 안 하고, 한 컬러만 했냐고!”
대꾸해 봐야 안 좋을 걸 알기에 난 입을 꾹 다물었다.
“왜 대답을 안 해? 내 말이 우스워?”
하지만 난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샴푸 후 머리를 털고 나오는데, 점점 비어 가는 속머리를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35세인데.
“부장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잖아요.”
“뭐?”
나도 모르게 말이 나가고 말았다.
이미 뱉어 버린 말.
순간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
“내가 시켜서 했다고?”
김 부장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네, 검사비가 많이 드니까 대표로 1컬러만 하라고 하셔서.”
“내가 그랬다고? 난 기억이 없는데?”
“네?”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 뒈질 것 같다.
“법이라고, 법! 알아들어? 내가 하란 대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법을 따라야 한다고! 이렇게 네 멋대로 할 거면 왜 회사에 출근하나?”
하아…… 도저히 말로는 못 당하겠다.
정수리에서 머리털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키득.
사무실 어디선가 아주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내가 김 부장의 동네북이 된 것일까.
왜 이 인간은 나한테만 이러는 걸까.
“시키는 대로만 할 거야? 5년 차 대리가?”
언제는 시키는 대로 안 한다고 지랄하더니, 이젠 시키는 대로 했다고 개지랄이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를 만난 이후 내 삶은 망가졌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고.
밤에 잠들기가 무섭다. 다음 날 일어나서 이 인간을 봐야 하니까.
1년쯤 됐을 때는 만성위염이 생겼고, 2년 정도 되었을 때부터는 얼굴이 흙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잠들기 위해서는 술이 필요했다.
‘진짜 너무하네.’
* * *
퇴근 후, 호프집.
“진짜 너무하네.”
김 부장 없는 곳에서만 입 밖으로 낼 뿐이었다.
“야, 좀 앞에서 한마디 하라니까.”
개발팀의 이정수 과장.
그나마 형 같은 그가 있는 게 회사 생활 최소한의 위안이었다.
휴우―
“과장님이 몰라서 그래요. 그 인간이 얼마나 독사 같은데요. 한마디 하면 10배 이상으로 갚아 준다구요.”
“이 답답한 인간아, 제대로 안 하니까 그렇지. 옷 벗는다는 생각으로 들이받으라고!”
이정수 과장은 내 잔을 채워 주었다.
“내가 보기에 너무 물러 터졌어. 왜 유독 김 부장이 자네한테만 그러겠어? 자네가 유독 일을 못해서 그럴까?”
“…….”
“만만하니까 그런 거라고, 만만하니까.”
상사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행동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반박하지 않는다.
시키면 그저 열심히 한다.
그게 문제였을까.
내 문제일까, 김 부장 문제일까.
“이 사람아, 사람을 봐 가면서 행동해야지. 김 부장 같은 사람한테는 이용만 당할 뿐이라고. 잘해 줘 봐야 챙겨 주는 것도 없을 거고.”
“그래서…… 진짜 들이받아요?”
취한다.
안주도 없이 연거푸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그래,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는 강하게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특히 자기 같은 상황에서는.”
“그러다가…… 진짜 옷 벗게 되면 어떡해요?”
이정수 과장은 대답 대신 내 정수리에 시선을 두었다.
“소중한 걸 더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지 않겠냐?”
30대 중반에 대머리독수리가 되어 가고 있는 내 모습.
4년 차부터 머리숱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왜 머리털은 하필 빠져도 정수리 부분만 빠지는 걸까.
보기 싫게.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우울증도 함께 오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 내가 보기엔 자네 심각해. 머리털도, 정신 상태도.”
쭉―
난 앞에 있는 잔을 털어 넣었다.
머리털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 부장…… 나이도 많고, 직장 상사라서 많이 참았다.
회사니까, 월급 나오니까, 일반적인 관계가 아니니까.
이 생각을 하며 분노를 꾹꾹 누르며 참았다. 나도 성격이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과장님, 내일 회사 좀 시끄럽더라도 이해해 주십시오.”
“흠…….”
“아, 혹시 육탄전으로 갈 것 같으면 말려 주시고요.”
“알았어.”
그는 내 비장한 표정을 보고는 손을 꼭 잡았다.
“그래, 너무 참지 마. 그동안 많이 참았어.”
휴우―
“저 갑니다.”
“그래, 내일 보자고.”
* * *
호프집을 나왔다.
젠장, 그러고 보니 회사에서도 회사 밖에서도.
김 부장 생각만 하고 있네.
난 그 인간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었다.
“좋아, 내일 두고 보자고.”
흐읍, 하아…….
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결심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걸음까지 경쾌해지는 것 같았다.
“하하, 좋네~!”
진작 이렇게 해야 했는데.
내일 어떻게 맞받아칠지 생각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끼이익―!
어?
쾅!
내 몸이 날았다.
점점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고, 몸이 기우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가눌 수가 없었다.
쿵!
잠시 후 난 땅에 쓰러졌다.
눈앞의 모든 것이 흔들렸고.
점점 시야가 어두워지는데.
사람들은 정신없이 내 주변을 뛰어다녔다.
이상하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절한 건가?
직감적으로 눈을 감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설마 죽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가는 건가.
아, 아쉽다…….
내일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딱, 하루만.
하루만 더 있다가 갔으면 좋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생각나는 사람이 김 부장이라니.
질끈.
그냥 눈을 감아 버렸다.
한줄기 눈물이 눈가를 지나 귀 옆으로 떨어졌다.
* * *
‘응애앵…….’
얼마나 잔 걸까.
여기가 어디지?
‘으애앵…….’
마지막 기억은 분명 어두운 하늘이었는데.
지금 너무 밝은 등이 위에서 날 비추고 있었다.
눈 뜨기도 어려울 정도로.
‘응애앵―!’
뭐야, 수술한 건가?
시력이 나빠진 건지, 좀 먼 거리에 있는 건 뿌옇게 보인다.
―축하드립니다. 건강한 사내아이입니다.
―흑흑.
―자기야, 수고했어.
머리숱이 적긴 하지만.
내가 건장한 남자이긴 하다.
그걸 왜 새삼스럽게.
―남편분께서는 이리로 오셔서 가위 받으세요, 탯줄 자르셔야죠.
―하하, 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
행복에 겨운 듯, 아주 상기된 목소리였다.
―많이 좋으신가 봐요. 하하, 입이 귀에 걸리시겠어요.
―하하, 아들, 딸이 뭐 중요한가요? 그냥 좋아서 그렇습니다.
―아들이라서 좋냐고 물은 게 아닌데…….
한껏 신이 난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익숙한 목소리. 어디서 들었더라?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 남자의 윤곽이 점점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
한 손에 가위를 들고,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
섬뜩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
난 이 남자가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간을 내가 몰라 볼 리가.
“여보, 고마워!”
그는 가위 사이로 내 배꼽 위로 연결된 무언가를 올려놓고는.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데.
이건 분명히…….
보톡스 졸라게 맞은 김진하 부장이었다.
‘미, 미친……!’
응애앵―!
“내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싹둑―!
“아빠가 잘 키워 줄게.”
그리고 내 볼에 뽀뽀하려고 다가왔다.
아, 너무 느끼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리 가! 저리 가!
‘꺼져!’
응애애애앵―!
“1998년 4월 25일. 00시 4분. 김진하, 이미영 님의 아들 태어났습니다.”
나의 울음소리 사이로 의사의 차가운 외침이 들렸다.
* * *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내 작은 손과 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면 울고만 싶어지는 기분.
특히 배고프거나 졸리면 너무 울고 싶어진다.
무엇보다도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때 되면 처음 보는 여성의 젖을 물고 있는데.
초면에 이러는 게 불편했지만.
살아가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내 어색한 기분과는 상관없이.
일단 물면 힘차게 빨 수밖에 없었다.
그건 본능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파서.
난 자꾸 울었다. 계속 젖을 찾았다.
“아이고, 이놈아. 엄마 젖 쪼그라들겠다.”
응애앵―
‘죄송합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분유를 주셔도 되는데.’
어머니 같아 보이는 분은 웃으며 다시 젖을 내놓았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고, 난 자연스럽게 그녀를 내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력을 소진하며 날 키워 내는 것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제때 먹지도 못했다.
아기의 몸을 하고 있지만 난 아기가 아니다.
성인의 시각으로 이 시간을 버티더라도, 그녀를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우리 아들, 많이 사랑해.”
피곤함에 절은 눈빛에도 그녀는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뱌뱌―!
‘고맙습니다. 어머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딩동!
어김없이 그 시간이 찾아왔다.
“여보, 나 왔어~!”
하아, 김 부장.
“밥 안 먹었죠?”
저녁 좀 먹고 다녀라. 집에 늦게 좀 들어오고.
“응!”
“어서 씻고 앉아요.”
“그래, 먼저 아들 얼굴 좀 보고.”
오지 마, 오지 마.
“아이고~ 우리 아들, 오늘 잘 놀았어?”
응애앵―!
‘꺼져! 꺼져!’
난 자지러지게 울어 재끼기 시작했다.
“어휴, 또 시작이네.”
어머니는 유독 김 부장한테만 가면 우는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들어갔다.
“내가 달래고 있을게.”
그는 보행기에 앉아 있던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웅애애애애앵―!
집이 떠나가게 울었다.
“우쭈쭈”
눈치 없는 이 인간은 내려놓을 생각은 안 하고, 더 힘차게 둥가 둥가를 하기 시작했다.
우애애앵―!
“오로로~ 까꿍!”
그리고는 느끼한 표정과 미소를 머금고.
짜증나게 혀를 굴리며, 눈을 뒤집어 까며 ‘까꿍’을 외쳤다.
이 눈치 없는 인간아!
우애애애―!
‘제발! 좀! 내려놔! 나 좀 괴롭히지 말라고!’
“까아꿍~!”
‘커, 커컥!’
결국 난 경기를 일으켰고, 눈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이 인간이 날 두 번 죽이려고.
“여, 여보!”
그제야 김 부장은 어머니를 급하게 불렀다.
어머니는 한달음에 뛰어나와 날 안아 들고, 김 부장을 타박하였다.
“어휴, 그러니까 애가 싫어하는 것 같으면 그냥 내버려 둬요.”
“…….”
토닥토닥
“아들~ 괜찮아, 엄마 왔어.”
마음에 안정감이 드는 것 같았다.
김 부장은 잔뜩 위축된 표정으로 벙어리가 되었다.
근데 또 눈치 없이.
내가 울음을 그치려 하자,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때.
나의 세상을 향한 첫마디가 터져 나왔다.
“김부쟈 꼬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