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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장. 참회
고요한 숲 속, 푸른 나무들이 울창하게 솟아있는 그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기 충분하였지만 한 남자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못하였다. 아니 그렇지 못할 상황이라는 말이 옳았다.
'미치겠군.'
막무가내라 할 수 있는 마르코의 말 이후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에스트라를 보며 속이 있는 대로 타들어가는 카룬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상대가 무슨 말이나 행동이라도 보인다면 어떻게든 대응하겠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있는 에스트라의 행동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후우……."
숨 막히는 찰나 시간이 지나가고 카룬의 머리에 최악의 방법이 떠오르고 있을 때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에스트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수많은 상념이 담겨져 있는 얼굴로 카룬과 마주하였다.
"따라오시게."
그리고 이어지는 담담한 에스트라의 한 마디, 갑작스럽게 확바뀐 에스트라의 행동에 당황하는 카룬이었지만 이후 곧바로 어디론가 향하는 그의 모습에 일단 따라갈수 밖에 없었다. 바로 뒤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카잔과 상황의 중요성을 깨달았는지 만약을 대비해 몇 명의 길드 원을 남겨두고 카룬의 뒤를 따랐다.
'어디로 가는 거지.'
얼떨결에 따라가고 있기는 했지만 상대가 적의가 있는지 없는지 불확실한 상황, 따라가다 갑작스럽게 습격을 당한다거나 무차별 마법 공격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나 자신의 직업에 대해 모든 열쇠를 쥐고 있기에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카룬이었다.
그렇게 몇 분쯤 걸었을까, 거대한 나무뿌리들 사이에 가려져 미처 발견하지 못한 넓은 공터에서 걸음을 멈춘 에스트라였다. 분명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공터에 불가했지만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확연히 느낄 만큼 이질적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두 손을 들어 올리는 에스트라는 주문으로 추정되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것이 마법 영창인줄 알고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카룬은 눈앞에 나타난 이변에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치지징!
에스트라의 주문에 반응하듯 공터 허공에 마치 유리창 깨지듯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삽시간에 공터 전체로 퍼뜨린 균열은 이내 커다란 소리와 함께 무너져 내렸고 그 뒤에 존재하고 있던 무언가가 카룬들의 눈에 비쳤다.
띠링
「잊혀진 고대 마법의 마법 진을 발견하셨습니다.」
「최대 MP가 500 증가합니다.」
「모든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0.5% 증가합니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아 마법진에 담겨진 위대한 진실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마법사 협회에 보고한다면 큰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귀가 따갑게 들려오는 메시지 소리, 허공의 균열 너머에 존재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말 그대로 거대한 마법 진이었다. 저번 트랩 마법 진사건도 있거니와 다시 한 번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법하지만 꽤 거리가 있음에도 온 몸으로 느껴져 오는 강력한 마나의 느낌은 자신이 진짜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았다.
"까악! 한 번에 최대 MP가 1500이 늘어났어!"
"무슨 지능 스탯이 한번에 20이나 영구적으로 올라갈 수 있지?"
"대박이다!"
그리고 뒤쪽으로부터 들려오는 기쁨의 비명소리, 그저 마법진 하나 본것 뿐인데 무지막지한 보상을 받아버린 특히 마법에 전문화한 마법사 유저들은 그야말로 팔짝팔짝 뛰고 있었다. 카룬 또한 씩 미소를 지었다. 최대 MP가 늘어났다는 것에 대한 장점은 말할 것도 없고 한 가지 속성만이 아닌 전체 속성에 대한 저항력이 늘어났다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말 그대로 기연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지더니 이내 침묵이 자리 잡았다. 지금 보상으로 보거나 온 몸으로 느껴지는 마법진의 기운으로 보나 분명 자신 앞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마법 진은 '메모리 리저섹션'을 유지시키고 있는 마법 진, 즉 이번 퀘스트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 목적이 바로 눈앞에 나타난 이상 동맹이고 실리이고 무엇이든 욕망이라는 종잇장처럼 찢어질 것이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단 카룬이라고 했나? 먼저 자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 인간들의 추악하다 할 수 있는 행동을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에스트라는 가장 활발히 눈치를 보고 있는 카룬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어느 정도 눈치 챘다 싶지만 우리 빛의 나무 일족은 이름 그대로 빛의 신 라이나님을 섬기는 종족중 하나라네. 신도의 입장이라 할 수 있는 내가 어떤 이유에서든 대리자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는 없겠지만."
"제가 대리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처음에는 반신반의 했다네 하지만 자네 곁에 있는 홀리 나이트의 흔들림 없는 말에 바로 깨달을 수 있었지."
'그럼 알고도 공격했다는 거야?'
말로 들어보면 카룬과 에스트라는 적대할 필요는커녕 우호 관계에 있는 위치였기에 어이없다는 듯이 에스트라는 쳐다보는 카룬이었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네 또한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닌가?"
허무하고도 위협이 깃든 한 마디, 현재 에스트라의 눈에는 자신들의 동족을 처참히 살육한 블랙 비 길드나 빛의 신의 대리자인 카룬이나 같은 인간으로 보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나마 빛의 신의 대리자라는 명분이 그것을 어떻게든 막고 있을 뿐 그렇지 않았더라면 동족의 원수를 위한 살육전이 벌어져도 이상할것은 없었다.
천년이라는 시간동안 무뎌졌던 인간과의 관계, 찰흙과 같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떠한 형태로도 변할 수 있는 첫 만남이 최악으로 어긋나버린 순간부터 어쩌면 이미 에스트라와 인간과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고 볼수 있었다.
"나는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네, 물론 천년도 더 전에 만나본 인간들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인간들도 다르지 않더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 어떠한 일도 꺼리지 않는 탐욕과 무자비함. 우리 엘프들로써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라네. 신의 가호로 빈손으로 태어나 다시 빈손으로 신의 품으로 가는 것이 이 세상 어떠한 생명체라도 거치는 진리이것만 의미 없는 재물과 권력을 모으기 위해 다른 종족을 해하고 심지어 동족끼리 싸운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
"자네와 자네의 일행들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네, 하지만 고집적이라 할 수 있는 나 자신의 선입견으로 본다면 자네들 또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을 악마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네.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믿고 있는 인간, 모든 종족으로부터 성자라고 불리던 헬오스님의 후계자가 바로 내 눈앞에 나타나니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혹시나 하는 믿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네. 어차피 지킬 수 없다면 믿을 수 없는 다른 인간들보다는 차라리 조금이라도 믿음이 가는 자네에게 모든 것을 맡기자는 그런 믿음 말일세."
띠링
「일정한 조건이 만족되어 퀘스트의 내용이 갱신됩니다.」
「숲의 시험(갱신)」
내용: 과거 수천 년전 어떠한 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봉인되어 있던 탄생의 숲은 이내 그 기간이 다하고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에 이른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장로인 에스트라인 중심으로 잊혀진 고대 대마법인 '메모리 리저섹션'을 발동시켰으나 말보다 칼이 먼저인 인간들의 횡포에 대부분의 엘프들이 전멸해버렸습니다. 그런 인간들의 행동에 깊은 허망감과 증오를 속에서 깊은 상처로 인해 목숨이 다해가던 순간 운명적으로 당신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느낀 에스트라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믿고 있던 인간의 후예는 당신에게 탄생의 숲을 맡기려고 합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아닐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퀘스트 난이도 : F-
퀘스트 제한 : 광휘의 사제
퀘스트 내용 : 에스트라의 제안의 수락 혹은 거절
퀘스트 보상 : 수락할시: 탄생의 숲에 대한 모든 전권이 위임됩니다.
거절할시: ?
'히든 피스!'
자신 앞에 나타난 메시지에 눈이 솥뚜껑만 하게 커지는 카룬이었다. 일정 조건이 만족되면 나타나는 히든 피스, 그것이 지금 바로 이 순간 발동된 것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히든 피스였지만 한번 발동되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히든 피스였다.
카룬이 로열 상단에 속해 탄생의 숲에 오게 된 것과 광휘의 사제라는 점, 그리고 블랙 비 길드와 에스트라등 여러 가지 우연히 겹치고 겹쳐 여기서 카룬이 수락만 한다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정말 어이없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갱신되어 버린 퀘스트에 패닉 상태에 빠진 레드 라이언 길드 원들, 그 중에서도 가장 급박할 수밖에 없는 카잔이 입을 열기도 전에 카룬의 입이 열렸다.
============================ 작품 후기 ============================
그냥 이대로 끝내버릴까.
사실 이번화 무척이나 고심했습니다. 그렇게 고심하다보니 3일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허허<-퍽, 여튼 이번화로 인해 스토리가 천차만별이 될수 있기에 퇴고를 반복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연중한거 아니니 걱정마세요, 이제 연중한다면 공지 올리테니까 말이죠 하하!
리리플은 너무 늦고 해서 오늘은 스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