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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블랙 비(Black Bee)
"우리가 바로 자네들과 함께할 지원 병력이네"
사실 지원 병력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다지 기대하지 않은 카룬이었다. 말이 좋아 선봉이지 죽으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대부분 고레벨 유저인 레드 라이언 길드에서 이런 위험한 일을 함부로 도맡을 이는 거의 없을 것이고 자신 또한 여기서 더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것이 부담스러웠기에 많은 인원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룬조차 생각지도 못한 뜻밖에 일이 일어나버린 것이다. 지원 병력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예상대로 불과 3명에 불과하였지만 그의 선두에 서 있는 이는 카룬이 잘 알고 있는 이였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이, 카잔이었다.
"직접 가신다고요?"
"그렇네, 무언가 문제라도 있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얼 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카잔의 모습에 순간 패닉에 빠진 카룬이었다. 가장 먼저 죽을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그나마 덜 죽음에 대한 패널티를 받을 말단 몇 명만 보내줄것라는 생각과 달리 왕초가 직접 와버린 것이다.
사실 보통 선봉대의 입장이라면 카잔의 참여를 기뻐해야했다. 전력이 강한 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한명이라도 실력 있는 이를 포섭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카룬의 입장에서는 약간 달랐다. 현재 카룬은 선봉으로 나섬으로써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챙기러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단 길드원이라면 어떻게든 구워 먹을 수 있겠지만 대장이 직접 같이 움직이게 되었으니 자신의 움직임이 여러 가지로 제안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는 없겠지, 뭐 꼭 나쁜 것만도 아니고.'
움직이기에 불편하기는 하겠지만 있다면 있는 그대로 카룬에게 있어 나쁠 것은 없었고 무엇보다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자신이 직접 황천길로 걸어간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카룬은 재빨리 문제가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문제라뇨, 너무 뜻밖에 원군에 잠시 감탄했을 뿐입니다. 카잔님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겨우 3명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너무 무시하지는 말게, 이래봬도 우리 길드에서도 정예 중에 정예이니 말이야"
카룬의 말뜻을 잘못 이해했는지 살짝 눈을 치켜들며 차가운 말을 내뱉은 카잔의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룬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잔을 비롯해 그 뒤에 서있는 두 명의 인물 또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눈에 보아도 레어 이상의 아이템으로 치장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이템이 모든 전력에 전부일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은 아이템일수록 더욱 큰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또한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은?'
저절로 흐르는 침을 닦은 후 카룬은 카잔 뒤에 위치해 있는 한 남성의 낯설지 않은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에 관련된 것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렴 풋이라도 기억하는 카룬이었기에 지금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있는 저 남성 또한 어디선가 카룬과 돈과 관련되어 만난 적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카룬님."
"당신은?"
"저 고든입니다, 반년 전쯤 카룬님에게서 네잎클로버를 구입했던 사람이지요."
"아!"
자신이 「유니즌」을 접속해서 처음으로 돈벌이의 수단이 되었던 네잎클로버, 행운을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기에 돈좀 있어 보이는 유저한테 짭짤하게 팔았던 기억을 떠올린 카룬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번 손님은 영원한 손님, 한번 이어진 인연으로 어디선가 또 다른 거래를 할 수 있기에 영업용 미소를 필수였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 동료분과 함께 던전을 돌아주셨지요,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그때 카룬님이 팔아주신 네잎클로버 덕분에 이런 멋진 아이템을 얻게 되었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가식에 찬 카룬의 미소와 달리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목에 걸려있는 초록빛 팔찌를 보여주는 고든, 그 팔찌를 바라본 순간 카룬의 표정에서 미
소가 싹 가셨다.
노련한 상인 유저들 중에서는 그저 아이템의 겉모습만 보아도 그 아이템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수만이 넘어가는 방대한 량의 아이템의 정보를 모두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
그리고 그러한 눈을 소유하고 있는 카룬의 감지 결과 지금 고든이 끼고 있는 팔찌는 최상급품 중에서도 최상급 품이 분명하였다.
"이 팔찌가 네잎클로버를 주축으로 세공해서 만들어 진 것인데 그 재료로는 처음으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보너스 효과까지 붙어서 말이죠."
"보.보너스 효과라고 하면?"
"MP 사용량을 줄여준다거나 하루에 몇 번의 한에 행운 스탯을 2배로 올려주는등 저한테 있어 제 활보다도 중요한 보물이라니까요"
항상 강철같이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던 카룬의 미소 가면이 한순간에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카룬이라는 남자, 자신이 일개 유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기에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았고 주변이 지옥이라 할 수 있것만 무척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기에 자신의 시야 안에 놓기 위해 일부러 카룬들을 이곳까지 데려온 카잔이었다.
더군다나 어디서 얻어왔는지 자신들 또한 알지 못하는 최종 목적지까지 알아낸 카룬이란 자의 능력, 그것이 진실이 아닌지 판별할 방법이 직접 가보지 않은 한 없었기에 한번 떠보았지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이 직접 선봉에 나서겠다는 카룬의 모습에 다시 한 번 카룬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기 충분하였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직접 카룬을 감시하기 위해 이런 위험한 일을 자처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대장님께서 가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을 위해서다, 게다가 정보가 거짓이라고 해도 이 한 몸 뺄 자신은 있어"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저 카룬이란 자와 인연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고든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짓는 카잔이었다. 전에도 백발백중의 궁수로써 이름을 날린 고든이었지만 반년 전부터 어디서 얻었을지 모를 유니크급 팔찌를 착용하고 나서는 더욱 유명세를 타 길드 내에서도 꽤 고위직까지 오른 그였다. 그런 그와 인연이 있다니 카잔은 다시 한 번 카룬을 아니볼수 없었다.
"좋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바로 출발하기로 하지, 나머지 길드 원들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돌입한다."
그렇게 남겨진 길드 원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카잔은 보조 역할로 길드 원 중 가장 레벨이 높은 마법사와 고든을 대리고 카룬에게 향했다.
"우리가 바로 자네들과 함께할 지원 병력이네"
"직접 가신다고요?"
"그렇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자신이 직접 간다는 말에 놀라는 것도 잠시 곧바로 미소를 지으면서도 날카롭게 자신을 비롯한 뒤의 두 명의 모습을 훑어보는 카룬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높이는 카잔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인연이 있다던 고든과의 만남, 거짓이 아니었는지 서로 미소를 나누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에 카잔은 약간은 안심이 되는 듯 긴장을 풀었다. 오랫동안 같이 행동해온 고든의 성격을 잘 아는 카잔으로써는 그가 아무나 인연을 맺을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룬의 미소 사이로 미묘하게 보이는 일그러짐을 본 카잔은 다시 한 번 긴장감을 높였다.
'역시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야'
============================ 작품 후기 ============================
요즘 한동안 글을 안써서 그런지 무언가 많이 어색해서 계속 스토리를 질질 끌며 감을 되찾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된것 같으니 다음화부터는 본격적으로 전투씬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