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휘의 성자-210화 (21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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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블랙 비(Black Bee)

"오랜만이구나, 설마 그 낯짝을 이 대륙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렇군, 설마 했던 나도 몰랐다. 워커."

짧디 짧은 대화, 오랜만에 만난 이에 대한 기쁨도 원수를 본 것에 대한 증오도 느껴지지 않는 무건 조한 목소리로 하여금 그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까,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한다면 바로 목숨을 빼앗겠다는 듯이 칼날을 더욱 세우는 워커였다.

"왜 바로 죽이지 않은 거지?"

지금의 상황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건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담담하게 질문하는 루인이었다. 확실히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 인기척을 완벽하게 지우고 바로 후방까지 다가올 정도의 실력자라면 일순간에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뒤에 있는 워커가 그런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한다면 수십 번을 죽여도 성에 차지 않겠지만 부마스터의 명이다. 만약 이 대륙에서 다시 너를 만난다면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끌고 오라는군."

"부마스터인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한 워커에 대답에 그립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루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본래 자신이 목적을 상기해낸 루인은 활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사실 애초부터 홀로 블랙 비 길드를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최후까지 싸운다면 전혀 불가능하지는 없겠지만 그들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루인 이었기에 그저 카룬들이 도착하기 전에 최대한 시간을 버는 것, 그것을 목적으로 무리한 공격을 감행한 것이었다.

'빠져나가야 한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지금 카룬들의 위치를 대략 짐작해 본다면 아직 더 시간을 끌 필요가 있었기에 이대로 죽거나 끌려갈 수 없다고 인식한 루인은 숨을 가다듬었다.

"거참, 이 퀘스트 해결하는 것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생각지도 못한 골칫덩이가 또 나타나다니.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거칠게 대할 생각은 없으니 순순히 따라……."

진심으로 골치 아프다는 듯이 비어있는 다른 한손으로 머리를 헝클며 중얼거리고 있던 워커는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고 말을 끊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앞에 있던 누군가가 사라졌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재빨리 앞으로 뛰어들어 거리를 넓혔다.

콰앙!!

그리고 아니다 다를까 방금 전까지 워커가 서있던 위치를 빠른 속도로 관통해간 한 발의 화살이 목표를 잃고 죄 없는 나무 하나를 박살내 버렸다.

"뭐 그리 순순히 올리가 없으려나."

산산조각 나버린 나무를 잠시 쳐다본 워커는 어느새 자신의 정면에서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루인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실수였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났다고 하더라도 기억했어야 했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누구였던 지를, 그리고 그를 기억해내자 온 몸에 호승심이 들 끊는 것을 느낀 워커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호승심에 이끌려 더 이상의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이미 한번 얼굴을 보았다는 데에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는 것으로 기약한 워커는 자신의 왼손을 들어올렸다.

스윽…….

그리고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루인과 워커를 중심으로 완전히 포위하며 나타난 블랙 비 길드 원들,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며 호심탐탐 루인의 목숨을 노리기 위해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이런 더러운 방식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군."

"뭐 세삼스렇게 너도 이렇게 성장해 왔잖아."

빈틈없이 완벽히 포위해 있는 블랙 비 길드 원들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는 루인 이었다. 대륙 10대 길드 중에서도 블랙 비 길드가 유명한데에는 그 거대한 전력 자체이기도 했지만 그에 따른 악독함도 한몫 하였다.

한번 정한 목표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점, 길드에 해악을 끼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길드 전체가 합심해서 그들을 쫓는 것이다. 그저 한두 번 죽이거나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정도가 아닌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는 말 그대로 척살해 버리기 위해 말이다.

길드 초기 때는 정말 길드에 해악을 끼치는 이에 대해서만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심심찮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운 없게 걸린 몇 명 유저들이 소리 소문 없이 「유니즌」을 떠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러기에 남을 추적하는 기술이나 포위하는 능력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뛰어나 다른 단체와의 전투에서 그로인해 큰 활약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였으며 지금 루인 앞에도 나타나 있었다.

"쳐라"

"소드 스톰!"

"프리즌 스피어!"

"방패 치기!"

이내 워커의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각종 스킬을 발동 시키는 블랙 비 길드 원들! 빠른 속도로 쇄도하는 각각의 스킬들이 루인의 인영에 닿으려는 순간 환한 빛이 숲을 뒤덮었다.

"크아악!"

그리고 그 강렬한 빛으로 일순간 시야를 뺏긴 길드 원들의 귀에 스킬의 파성음과 함께 주인을 알수 없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리고 그 비명의 주인공이 자신들이 포위하고 있던 남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긴장을 풀려는 찰나 더 이상 들릴 리 없는 또 한 번의 비명이 숲에 울렸다.

"긴장을 풀지 마고 주위를 경계해라! 어디서 공격이 올지 모른다!"

시야를 되찾음과 동시 정면에 있어야 할 루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과 동시에 바로 자신의 옆에 위치해 있던 길드원이 먼지로 변하는 것을 확인한 워커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하지만 아직도 시야를 잃은 것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우왕좌왕하는 길드 원들의 모습에 혀를 차는 워커였다.

쉬잉!

"제길!"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루인의 인영을 찾고 있던 워커는 순간 느껴지는 위협감에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쇄도하는 한 발의 화살! 완전히 피하지 못해 HP가 떨어졌다는 메세지를 확인한 워커는 안전 범위를 확보하기 위해 더욱 더 뒤로 빠졌다.

그리고 이번건의 공격으로 모습이 들어나 버린 루인을 포착한 워커는 아직까지 어리둥절해 하는 길드 원들에게 날카로운 눈초리를 날렸다. 그리고 그 눈초리의 의미를 바로 눈치 챈 블랙 비 길드원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를 들고 루인 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달려들던 이 모두가 볼수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어째서인지 살짝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활을 든 남자를 말이다.

보통 궁수란 직업이 원거리 공격으로만 그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도 그럴 것이 본래 활이라는 무기가 나타난 이유가 멀리 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 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 자신의 앞을 지키고 있거나 충분한 거리를 유지했을 때만 가능한 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투에서 그런 상황을 따지고 공격할 여유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궁수 유저들이 보조 무기로 단검류을 가지고 다녀 연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활을 이용하는데 특화된 직업을 가진 유저가 아무리 도류를 연습해 보았자 본래 능력의 반도 안나오는 것이 설정인 「유니즌」에서 그러한 방법은 비효율적이기에 전투가 근접전으로 진행된다면 아예 전투를 포기하거나 도망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초중반의 일, 레벨이 올라갈수록 더욱 치밀해지고 복잡해지는 전투에서 근접전이나 원거리 전에 대한 경계가 없어진 가운데 어느 직업이든 양 쪽 모두 숙련될 필요가 있었고 궁수또한 그럴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직업의 의의를 초월해 귀신이라고 불리는 이 또한 존재하였다.

"말.말도 안 돼"

떨리는 목소리, 그저 3여분의 시간. 겨우 컵라면 하나 익힐만한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일들은 겁에 질려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블랙 비 길드원의 눈을 의심케 하지 충분하였다. 무려 수십 명이었다. 그것도 길드 내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유저들, 즉 보통 유저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라 해도 이상할것 없는 정도의 실력과 능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하지만 마치 어른이 아이의 손을 꺾듯이 너무나도 단조로운 전투, 든든하던 수십의 동료들이 지금은 모두 먼지로 변해 있었다. 단 한명으로 인해…….

"컥"

그러나 그 거기까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하고 어느새 자신의 가슴을 관통해 있는 하나의 화살을 인식한 뒤 그대로 먼지로 변하는 길드 원이었다. 그리고 숲에 감도는 침묵, 방금 전까지만 하여도 수십 명에 달하는 인원이 존재했지만 지금 남아 있는 인영은 두 명 밖에 없었다.

"크크……."

그리고 이내 묵직한 침묵을 깨는 웃음소리, 공허한 웃음소리를 내던 워커는 자신의 앞에 멀쩡히 서있는 루인을 바라보았다.

'정말 멍청했군.'

또 한 번의 실수, 그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실수를 범한 자신을 욕하는 워커였다. 옛날부터 힘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벌써 반년도 지난 이야기, 그 반년이라는 시간 사이 더욱 강해진 자신이었기에 다른 길드 원들과 함께 한다면 손쉽게 승리를 거머질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활을 사용하는 유저에게 있어 가장 불리한 전황에서 전투를 벌였건만 오히려 반대로 몰살당해 버린 것이었다. 아직 이곳에 들어왔던 블랙 비 길드 원 중 가장 강한 자신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삽시간에 수십에 달하는 길드 원들을 도륙하는 모습에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린 워커였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려움에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가 과거 무엇이라 불리었는지 기억해낸 워커는 중얼거렸다.

"궁귀(弓鬼), 레인"

과거 10대 길드 간에 일어난 대전쟁에서 손에든 활과 화살로만 모든 전장을 휘쓸어 선망과 두려움의 의미로 붙어진 별명 활의 귀신, 궁귀(弓鬼).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귀신을 깨운 댓가는 컸다.

============================ 작품 후기 ============================

연참은 하고 싶습니다만 제 사정상 불가피 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 대신 이제부터 한편당 용량을 늘려볼 생각입니다

어떻게 일단 그것만으로 만족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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