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휘의 성자-209화 (20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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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블랙 비(Black Bee)

"치, 괜히 힘을 빼게 하다니."

자신의 무기인 단도에 묻은 피를 힘껏 휘둘러 떨쳐낸 워커는 주변에 널브러져 먼지로 변하고 있는 엘프 전사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암살자 클래스인 워커가 대부분이 원거리 공격형인 궁수나 마법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힘들지만 그것은 서로의 전력이 엇비슷하거나 충분한 거리가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10대 길드, 그 중에서도 최상 위권에 속하는 워커와 그에 못 미치지만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을 실력을 가진 블랙 비 길드 원들을 상대로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에서 천년에 달하는 시간동안 별다른 전투를 치뤄어 본적이 없는 엘프들이 상대가 될 리 만무하였다.

"그나저나, 그래도 명색이 대장이라고 끝까지 살아남았군."

여유롭게 단도를 양손으로 주고받으며 도발적인 말을 거는 워커, 그의 앞에는 한 늙은 엘프가 숨을 헉헉거리며 서있었다. 사실 서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 진다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엘프 장로 에스 트라는 자신의 지팡이를 목발삼아 버티고 있었다.

"그나저나 과연 놀랐어, 설마 지금까지 대륙에 나타나지 않았던 8서클 마스터가 여기서 나타날 줄이야. '메모리 리저섹션'이라는 고대 대마법도 당신의 작품인가?"

곰팡이 냄새 풀풀 풍기는 고서에서나 시덥지않는 영웅 연대기에서나 나타날법한 8서클 마스터! 현재 대륙에 존재하고 있는 최고의 마법사가 7서클 마스터라고 알려진 가운데 그 의미는 남달랐다. 수천 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을 살아온 만큼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에스트라였고 8서클 마스터라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대 대마법인 '메모리 리저섹션'을 발동시키기 위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마나가 소모되었고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학살당하다 시피 하는 동족들의 죽음을 보다 못해 남아 있던 모든 마나를 사용해 8서클 화염계 최강마법인 '프로미넌스'를 사용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위력을 가진 만큼 마나의 유동이 무척 크고 주문을 외우는 시간도 길었기에 대부분의 이들이 눈치를 채 8서클 마법을 사용한데 비해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블랙 비 길드였지만 울창한 숲 지역이 순식간에 폐허로 변한 것으로 하여금 모든 이들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기 충분하였다.

"인간이여, 수천 년 동안 평화롭던 이 숲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가"

힘없는 목소리, 하지만 진심으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구구절절 드러나는 말투로 워커에게 질문하는 에스트라였다. 그리고 그런 에스트라의 말에 잠시 생각하듯이 눈을 굴리던 워커는 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그게 당신들의 스토리 설정이구나. 뭐 그 설정에 맞게 말한다면 그저 이 땅을 지배하려고 왔다고 할까?"

"지배라……."

장난스럽게 말하는 워커라 달리 진지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으며 워커를 말을 곱씹는 에스 트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였다. 이미 수천 년이 지난 일이었지만 자신을 비롯한 과거 엘프들이 탄생의 숲 살기 이전에 살았던 터전을 인간들이 무차별적으로 빼앗고 동족들을 팔거나 죽인 인간들에 대한 잊어버린 분노를 워커에 말로 하여금 다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뿐 이미 몸 안에 남아있는 마나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시피한 에스트라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뿐이 없었다.

"당신의 힘을 본다면 아무래도 살려두고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저 보호 마법 진은 사라지지 않겠군."

무려 대륙에서 처음 등장한 8서클 마스터였다. 적이냐 아군이냐 상관없이 대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할 테지만 지금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나무를 두껍게 감싸고 있는 보호 마법 진은 에스트라의 의지와 이어져 있다는 블랙 비 길드 소속 마법사의 말에 고민하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짓는 워커였다.

물론 에스트라의 의지로 보호 마법 진을 풀 수 있겠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그러기는 어려워 보였고 그렇다고 보호 마법 진을 깨보자 해보니 다름 아닌 8서클 마스터가 만들어낸 장벽이니 그 강도가 약할 리 만무하였다.

"후, 죽여라"

"네!"

하지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다시 한 번 시간이 없다는 것을 인지한 워커는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길드 원에게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검을 빼든 블랙 비 소속의 검사, 숲을 따스하게 비쳐주던 햇빛이 들어온 검에 반사되어 비추어지자 죽음을 인식한 에스 트라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 신이시여.'

죽기 전 마지막으로 찾아보는 신,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이대로 자신이 죽는다면 전사들 외에 아직 숲에 남아있는 엘프들 또한 발견되어 이들에게 죽거나 끌려갈 것이 분명하였기에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빌어보는 에스트라였다.

"……."

그러나 충분한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몸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것을 느낀 에스 트라는 슬쩍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방금까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이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먼지로 변하며 쓰러져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턱…….

"주.주위를 경계해…….컥!"

이내 바닥으로 널브러져 완전히 먼지로 변한 동료의 모습에 기겁한 한 길드원이 소리 질렀지만 그 또한 말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삽시간에 공황 상태에 빠진 블랙 비 길드 원들, 지금 죽음을 당한 두 명이 결코 평범한 공격 한두 방에 목숨을 잃을 실력과 스탯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 공황의 깊이는 더욱 컸다.

"크악!"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속된 죽음은 그들에게 당황하는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이 곧바로 또 다른 의 이의 목숨을 빼앗았고 대륙의 10대 길드로써 항상 자부심과 오만을 지니고 있던 블랙 비 길드 원들의 표정에는 공포가 들러났다.

"투명시, 절대 명중, 속사, 오연시, 저격"

띠링

「스킬 '투명시'의 효과로 활을 통해 발사되는 화살의 모습이 갖추어집니다.」

「스킬 '절대 명중'의 효과로 명중률이 100%로 상승합니다.」

「스킬 '속사'의 효과로 300% 더 빠른 속도로 화살을 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스킬 '오연시'의 효과로 화살에 의한 모든 공격에 대한 공격력을 500% 증가시킵니다.」

「특수 스킬 '저격'의 효과로 모든 움직임이 제안되는 대신 공격하는 대상에 대한 크리티컬 확률을 대폭 증가시킵니다.」

눈앞을 가리는 수많은 메시지들과 시끄러운 알림 음 소리에 집중이 흐트러질 만도 하지만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화살을 겨눈 루인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활시위를 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비명 소리

적어도 수백 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리에 위치한 이들을 상대로 빠른 속도로 연속해 화살을 날리자 그 비명 소리를 점차 커졌다. 다른 유저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눈을 부릅뜰 만큼 굉장한 일이었지만 당시자인 루인의 표정에는 별다른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저 활시위를 떙기고 쏘는 것을 반복할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대략 수십 명인가…….'

직업 특유의 능력에 의한 월등한 시력으로 아직 남아있는 블랙 비 길드 원들을 파악한 루인은 조금 조급한 마음을 가지며 더욱 빠르게 손을 움직였고 그에 비례해 블랙 비 길드 원들은 빠르게 먼지로 변해갔다.

아무리 최상급 스킬들의 효과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대 또한 최상급에 달하는 유저들, 지금이야 생각지도 못한 공격으로 인해 정신을 못 차려 방비하지 않아 맞는 족족 크리티컬이 터져 일격으로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지만 제대로만 방비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이 단 한방에 당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일단 시간은 늦출 수 있겠군.'

또 한명의 먼지로 만든 뒤 찰나의 시간에 상황이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는지 눈치껏 빠져나가는 에스트라의 모습을 곁눈질한 루인은 일단 대충이나마 에스트라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블랙 비 길드가 곧바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없다는 점에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다음 희생양에게 활시위를 당기려던 루인이 자신의 시야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던 찰나…….

척!

"……."

칼날의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자신의 목에 서늘한 느낌을 받은 루인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최대한 눈초리를 돌려 자신의 뒤에 있는 이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했으나 보다 먼저 말을 꺼낸 이의 목소리로 하여금 단박에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간단한 문제였다. 정말 갑작스럽다고 할 수밖에 없는 루인의 공격에 당황하지 않고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쏘아지는 보이지도 않은 화살의 출처를 파악해 인영을 들키지 않고 단숨에 자신의 뒤를 밟을 만한 실력자는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의 일,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러한 수법을 계속 보아온 이를 상대라면 그것도 동등한 힘을 가진 이라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가령, 같이 싸워왔던 옛 동료같이 말이다.

"오랜만이구나, 설마 그 낯짝을 이 대륙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렇군, 설마 했던 나도 몰랐다. 워커."

그리고 둘의 얼굴에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 오랜만의 재회에 의한 기쁨의 미소가 아닌 무언가 복잡한 사연이 담겨져 있는 그 미소 속에 멈추었던 운명의 수레바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퍽

일단 중간 고사가 끝났기에 오랜만에 올려봅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뭐라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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