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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135화 (135/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135화

135. 전면전(1)

“전면전…….”

작은 회의실. 김다미의 목소리는 걱정스러웠다.

“전 잘 모르겠어요. 그걸 꼭 해야 하는 건지.”

“으흠.”

팔짱을 낀 이미래가 두 눈을 감는다. 잠시 생각하던 그녀가 김다미를 바라보았다.

“광인 기획 망했을 때, 다미 신입사원이었지?”

“네, 그랬죠. 입사한 지 세 달 조금 못 다닌 거 같아요.”

“그럼 안덕모 대표 광인 기획 입사했을 때 얘기는 들었어?”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붙인 채 생각에 잠긴 김다미, 잠시 후 미간이 조금 찌푸려진다.

“아뇨.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안 대표, 광인 기획에 게약직 인턴으로 입사했어.”

“네?”

“같이 면접 보고 같이 입사한 경하나는 정규직이었는데 말이야.”

놀란 김다미를 바라보며 이미래가 작게 웃었다.

“나이도 하나보다 많았지, 게다가 안 대표 KJ식품 대리였던 경력자였어. 근데 입사할 때 경력을 하나도 인정 못 받았어. 게다가 처음 들어왔을 때 하나한테 선배라고 해야 했단 말야.”

“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김다미가 광인 기획에 입사했을 때 안덕모는 이미 업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던 존경스러운 선배였다.

그가 창업한 회사에 1호 사원으로 입사하고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아뇨. 몰랐어요.”

그가 그렇게 어이없는 대우를 받으며 입사했을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안덕모에게 광인 기획은 그런 회사였던 거야. 차별적인 대우를 받더라도 꼭 일하고 싶었던…….”

이미래를 바라보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이미래의 얼굴에 다양한 감정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회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어.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다 뿔뿔이 흩어진 거야. 안 대표 어머니에게 까지 몹쓸 짓을 했고 심지어 다른 회사에서 일할 수도 없게 만들어버렸어.”

급변하는 감정이 전해져 왔다. 김다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 안 대표 광인 기획 망하고 나서 아무도 없는 회사에 한 달이나 혼자 출근한 것도 몰랐지?”

“네…… 전혀요.”

고개를 끄덕인 이미래, 그녀의 얼굴은 총공세를 선언하던 안덕모의 표정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머릿속에 오래전 그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중했던 회사를 짓밟았던 황재평과 그의 일당들, 망해 버린 회사에 출근해 폐허가 된 사무실을 지켜보며 그가 했을 생각.

그리고 지난겨울 안덕모의 모습도 떠오른다.

황재평의 뒷배인 중원 자동차 이광배, 겨울비가 내리는 적의 저택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

얼마나 아쉬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뼈에 사무쳤을까?

“안덕모에게 황재평은 용서할수 없는 사람이야. 그가 성수 기획에 남아 있는 한 절대 안심할 수 없겠지. 그 둘은 절대 같은 무대에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니까.”

이제는 김다미도 알 수 있었다. 회사가 정상화된 지금 전대미문의 경쟁사에 대한 총공세를 선택한 이유를.

“경쟁사에 대한 공세가 쉬울 리 없지. 하지만 그래도…….”

이어지던 이미래의 말은 김다미가 받았다.

“해야겠네요. 전면전.”

“그래.”

생각에 잠긴 두 사람, 회의실엔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 * *

“준비됐습니다.”

집무실로 찾아온 기획본부장 성재호. 조심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재킷을 걸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내 뒤를 따르며 그가 속삭인다.

“대표님. 말씀드렸다시피 전 반대입니다.”

DNP가 설립된 후 차혜민을 통해 영입한 성재호라는 사람.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고 더없이 큰 도움을 받았다. 그의 정보력과 혜안이 아니었다면 우린 결코 중원의 공격에서 무사하지 못했을 거다.

늘 그의 의견을 따랐고 그랬기에 그 역시 최선을 다해 날 보좌해 주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나의 의견은 갈리고 있었다.

“사적 원한으로 상대 기업을 공격하는 행위입니다. 논란이 커질 싸움이고 명분도 부족합니다. 아마 여론도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겁니다.”

뚜벅.

성재호가 준비를 마쳐둔 대회의실 앞. 걸어가던 발걸음이 멈춘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 보았다. 눈이 마주친 성재호가 황급히 시선을 내리깐다.

“성 본부장.”

“네. 대표님.”

“이번 일…… 대표로서 마지막 일이 될 겁니다.”

“예?”

당황한 시선이 날 향한다. 난 어렵게 미소를 그려 보였다.

“이해해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 번 더 도와주세요.”

“…….”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자리에 선채 딱딱하게 얼어붙은 성재호를 뒤로한 채 난 회의실 문을 열었다.

“안 대표다.”

“찍어, 찍어.”

찰칵, 찰칵.

회의실에 자리한 수십의 기자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난 단상으로 걸어갔다.

정해진 자리에 서서 그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소중한 시간 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오늘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알지 못한다. 그저 DNP의 안덕모가 중대발표를 한다고 해서 모였을 뿐.

일개 기업 대표의 기자회견 요청일 뿐이었지만 회의실은 수십 명의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다.

안덕모니까.

칸 광고제와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린 유명인이니까.

중원 자동차와의 싸웠고 결국 살아남은 트러블메이커이자 이슈메이커니까.

지금 안덕모는 광고를 만드는 카피라이터가 아닌 좋은 기사감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달려와준 취재진을 난 씁쓸한 미소로 응시했다.

“DNP가 대한민국 광고주 여러분께 알립니다…….”

집중되는 카메라, 바빠지는 기자들의 손놀림. 잠시의 침묵이 지나고 난 곧바로 결론을 꺼내 들었다.

“황재평이 이끄는 성수 기획은 부정한 수법으로 광고주를 매수하고 근거 없는 비방광고를 만들어온 부도덕한 기업입니다. 하여 우리 DNP는 오늘부터 성수 기획과 무한경쟁에 들어갑니다.”

입에서 흘러나간 뜻밖의 말, 당황한 기자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만약 지금 성수 기획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광고주가 있으시다면 즉시 관계를 끊기를 권고합니다. 관계를 끊고 다른 기획사와 손을 잡으십시오. DNP와 손을 잡으시겠다면 좋은 조건으로 양질의 광고를 제공해 드릴 것을 대표로서 약속합니다.”

찰칵, 촤라라락.

일제히 터져 나오는 플래시 소리.

“성수 기획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건 부도덕한 기업을 돕는 일입니다. 권고를 무시하고 황재평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기업이 있다면.”

잠깐의 침묵, 기자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DNP는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겁니다. 그 조치는 귀사에 뼈아픈 출혈이 될 겁니다.”

무한경쟁이라고 했지만 우린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할 것이다.

성수 기획에게 광고를 맡기는 기업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경쟁사 광고를 무상으로 제작할 것이고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폭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논란이 없을 수 없는 무리한 조치, 그로 인해 안덕모의 이미지가 박살 나도 상관없다.

“이번 조치는 황재평이 성수 기획을 떠날 때까지입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성수 기획과 파트너 관계를 가지고 있는 광고주분들은 조속히 다른 파트너를 찾으십시오.”

준비된 이야기가 끝났다. 그런 의미로 단상에서 한걸음 물러서 기자들을 둘러보았다. 내 움직임을 관찰하던 기자들의 입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표님 데일리 포커스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안 대표님!”

여기저기 올라오는 손들. 난 그중 가장 열렬해 보이는 기자 한 명을 지목했다.

“네, 대표님, 서원 일보입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를 향해 시선이 집중된다.

“말씀하신 내용대로라면 공개적으로 상대 기업을 공격하겠다는 말씀인 신데…….”

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정 경쟁에 대한 법률을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대상이 되실 수 있을 텐데요?”

대부분의 기자들이 궁금했던 내용인 모양. 서원 일보 기자에게 향했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달라붙는다.

“충분히 제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공정거래법의 기본은 상대방이 정상적인 기업이라는 전제하에 지켜져야 할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난 기자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성수 기획은, 대표 황재평이 이끄는 그 회사는 부정한 방식으로 업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부도덕한 기업입니다. 게다가…….”

너무 커져 버린 목소리, 잠시 정리 후 흘러나온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황재평은 중원 자동차 서규원, 그리고 이광배로 이어진 커넥션의 몸통입니다.”

단상 뒤편에 위치한 화면, 난 화면 밖으로 물러섰다. 준비된 대로 자료 하나가 화면에 나타났다.

“황재평은 중원을 움직였습니다. 중원은 은행에 압력을 넣었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진 대출 상환 압박에 한 기획사는 결국 파산했습니다.”

“광인 기획?”

“아…… 안덕모 대표 직원일 때 다녔던?”

자료엔 광인 기획의 이름과 동시다발적인 자금 회수를 단행한 은행 리스트, 그리고 중원과 커넥션을 가진 것으로 파악된 은행의 고위 간부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황재평도 중원도 발뺌을 할 겁니다. 하지만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자료가 사라지고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CCTV로 찍힌 영상엔 어느 건물과 그 앞의 공터가 보인다. 공터 위에 주차된 검은색 고급 세단들.

“보시는 곳은 지금은 사라진 광인 기획 건물 앞입니다. 광인 기획이 공중분해 되고 텅 비어버린 건물에 누군가 찾았습니다.”

검은색 세단에서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사내가 나타난다. 멀리서 찍힌 것이었지만 그가 누군지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광배 회장?”

어느 기자의 말처럼.

“네. 이광배와 서규원입니다. 살인자가 현장을 다시 찾듯, 자신이 한 짓을 확인하기 위해 그들이 광인 기획을 찾아온 거죠.”

동남풍 애드 솔루션 창업을 준비하며 매일같이 텅 빈 광인 기획 건물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을 때. 이광배와 서규원을 만났다.

중원과의 원한의 시작점인 동시에 황재평에 대한 총공세라는 이번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던 순간이었다. 그들은 반대편 건물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고생 끝에 확보한 CCTV 영상, 오랫동안 내 집 가장 은밀한 곳에 잠들었던 그 영상이 마침내 세상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영상이 계속 재생된다. 서규원에게 달려드는 정체불명의 한 남자. 몸싸움이 오가고 한 남자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저 멀리 내던져진다.

땅바닥을 구르며 흙먼지로 엉망이 된 남자. 그리고 그의 정체 역시 금새 확인되었다.

“안 대표님?”

난 쓰게 웃었다.

“네, 접니다. 망해 버린 회사의 직원이었죠.”

오래전의 나와 이광배의 대화가 이어지고 잠시 후 주인을 태운 세단들이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영상이 끝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소 대상이 되어도 좋습니다. 이번 결정은 DNP의 수장인 안덕모의 의지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질 겁니다.”

촤라라락.

플래시가 터지고.

“대표님!”

“매일 뉴습니다!”

“월간 코리아입니다!”

또다시 올라오는 기자들의 손.

난 다시 한번 기자 한 명을 지목했다.

* * *

DNP 안덕모의 전격 기자회견. 상대 기업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 선언이라는 파격적인 기자회견 내용은 그날 오후 기사화되어 퍼져 나갔다.

기사의 내용도 기자회견에 대한 기자들의 평가도 제각각이었다.

‘동종업체에 대한 무차별 적대 행위는 매우 우려스럽다.’

부정적인 반응도.

‘모든 일의 발단은 황재평과 이광배. 중단된 이광배 수사는 재개돼야 한다.’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일제히 터져 나온 여론도 뚜렷한 흐름 없이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있는 상태. 어찌 되었건 DNP의 결정은 지금 대한민국 기업계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주목을 받게 된 남자.

“……미친놈.”

기사를 바라보던 황재평의 입에서 살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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