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98화 (98/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98화

98. Accelerando, 점점 빠르게(3)

광고를 대하는 시청자의 자세는 참으로 오묘하다.

제품을 알리고 많이 팔리기 위한 수단인 광고, 하지만 전달 방식에 따라 반응의 온도 차는 극과 극이다.

[지금 바로 구입하세요.]

이런 류의 직설적인 광고엔 거부감을 느낀다. 보기 싫어하는 건 물론이고 때론 판매에 악영향을 줄 때도 있으니.

하지만 스토리가 살아 있는 광고, 직설적인 제품 홍보가 아닌 보고 즐길거리를 안배한 광고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건 물론 때론 트렌드를 주도하며 가끔은 광고 모델이 뜨거운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그건 모두 스토리가 있거나 볼거리를 제공하는 광고에만 해당하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 그런 케이스가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자리 잡은 가족들. TV를 틀어놨지만 집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채널 결정권자인 엄마가 틀어놓은 방송이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가족들은 잡담을 나누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따름.

“저건 뭐야?”

가족 중 막내의 목소리, 자기 일에 한창이던 가족들의 고개에 TV로 향한다. 거긴 모기 모자를 쓴 광고 모델, 배우로 데뷔했지만 예능감이 좋아 배우인지 개그맨인지 헷갈린다고 평가받는 그가 있었다.

“모기네, 모기.”

“뭔데 저러고 나와?”

“그러게 웃긴다.”

모자를 쓴 다섯 사람, 아니, 다섯 모기가 전등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 가족들의 평가가 이어진다.

“아. 안 그래도 나 모기 물렸는데.”

첫째의 말에 엄마의 미간이 화악 일그러진다.

“너도 물렸어? 나도 물렸는데. 아무래도 집안에 한 마리 들어왔나 보네.”

현대의 대중적인 주택, 즉 아파트는 모기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층고가 높고 방충망으로 보호되고 있기에 웬만해선 모기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

하지만 올해의 상황은 다르다. 8월 중순이 지나 밤이 되면 쌀쌀해지는 외부 온도 탓에 유난히 비가 많았던 여름 엄청나게 개체 수를 늘린 모기는 따듯한 실내를 향해 기어들어 오고 있었다.

문제는 외부 모기의 침투가 쉽지 않은 만큼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 모기 한 마리를 잡지 못하면 가족들이 몇 날 며칠을 고통받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아, 잡아야 되는데.”

“낮엔 안 나와. 어두워지면 돌아다닌단 말야.”

가족들이 경계 어린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내려간다.]

결연한 대장 모기의 대사가 들렸다. 그건 이 가족이 처한 상황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가자!”

“그래. 한번 빨아보자!”

진격의 구호를 외치며 대장 모기를 따라 강하하는 모기들. 가족의 얼굴에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결국 모기들은 바이모스의 힘에 무력화되었다. 가장 질긴 목숨을 유지하던 대장 모기도 스프레이 한 방에 나가떨어져 사망하고 말았다.

떠오른 헤드카피에 이어 화면에 다시 떠오른 겁쟁이 모기의 중얼거림.

[우린 수컷 모기…….]

그건 집안에 숨어든 모기를 경계하는 가족에게 제법 통쾌감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모기 손으로 잡기 힘들어. 자기 전에 잡아야 되니까 요 앞 마트 가서 하나사와.”

가장의 결정과 함께 내밀린 카드, 그걸 받아 드는 첫째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다.

“나 올 때 메로나.”

“죽을래?”

투덕대는 두 아이를 보며 부부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 * *

“대단해요. 대표님 평가도 좋고 영업부는 완전 신났어요.”

광고 효과는 대단했다. 방송 중인 광고에 연결해 홍보용 이미지 제작 의뢰를 받기 위해 이미래와 함께 찾은 성아 제약. 바이모스 마케팅 담당자인 김다정은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반면 공장은 울상이죠. 죽어라 생산해도 판매량을 따라잡지를 못하니까.”

모기 살충제 시장은 지속적으로 축소 중인 시장, 제품도 기업들의 홍보마케팅도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었다. 하지만 바이모스 광고는 달랐다. 때아닌 늦모기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그걸 적당히 버무린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덕에 대중의 뇌리에 바이모스라는 브랜드가 효과적으로 각인되었다.

덕분에 판매는 순항 중, 두둑한 제작비를 받아낸 내 입장에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네요. 광고 만드는 입장에서 그보다 반가운 말이 없죠.”

고개를 끄덕이는 김다정.

“아직까지는 지원본부 검토사항이긴 한데. 이번에 아예 광고 기획사를 바꾸자는 의견이 있어요.”

성공적인 광고는 단발로 끝나지 않는다. 2차 3차 광고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단발성 광고주가 소울 파트너가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저희 TV 광고보다 온라인 콘텐츠를 많이 만들거든요.”

그리고 지금 테이블에 올라온 것이 바로 소울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

“DNP에서 그런 것도 만들어주실 수 있어요?”

기다렸던 질문이다. 늘어난 규모로 많은 일이 필요한 DNP에겐 무척 반가운 제안, 대답은 일 초도 되지 않아 되돌아갔다.

“물론이죠. 너튜브 콘텐츠를 주력으로 제작하는 별도의 팀이 있고 전문 제작사까지 인수해서 기획에서 결과물까지 온라인으로 제공할 수 있거든요.”

놀란 그녀의 두 눈이 후욱 커진다.

“영상 제작사요?”

“네. 대리님도 한번 보셨잖아요. 스튜디오 판타지아.”

“아!”

지난 바이모스 촬영장엔 그녀도 있었다. 당시 판타지아는 촬영 현장을 완벽하게 지배했다. 광고주로서 수많은 촬영 현장을 지켜본 그녀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 만큼 대단했던 모습이었다.

“잘됐네요. 이번 건 제대로 밀어보자고 팀장님께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와…… 얼떨떨하다, 정말.”

성아 제약과의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른 점심을 위해 식당가를 걸어가는데 뒤에서 이미래가 중얼거렸다.

“뭐가요?”

“뭐긴요. 이미지 제작 의뢰받으러 왔다가 성아 제약 전체가 넘어오게 생겼으니까 그렇죠.”

그녀의 말대로다. 크지 않은 제약회사라고는 해도 성아 제약은 일 년에 네다섯 개의 TV 광고를 집행하는 규모 있는 광고주.

그만한 회사가 DNP에 통째로 넘어온다는 건 향후 몇 년간 든든한 자금줄이 생겨난다는 말과 같다.

“회사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거 같아요. 어제 회사랑 오늘 회사가 다른 느낌이라니까요? 직원도 계속 늘고……. 부끄러운 소리지만 우리 팀 말고 다른 팀 직원들은 아직 이름도 다 기억 못 해요.”

난 쓰게 웃었다. 그녀의 말처럼 지난달까지 우린 직원 20명 이하의 소형 광고 기획사였다. 하지만 이번 달은 어떤가. 새로 들어온 직원까지 DNP 소속 직원만 30명, 게다가 100명이 넘는 제작사를 자회사로 둔 종합 광고 기획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제 성아 제약 정도가 한 번에 넘어온다고 해도 우린 큰 힘 들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우리의 적 역시 DNP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아직 부족해요.”

“네?”

흘러나온 목소리에 이미래가 물었고 난 그녀를 향해 빙글 뒤돌아섰다.

“지금보다 더 빨라야 해요. 그래야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낼 수 있으니까.”

“아…….”

이미래가 고개를 끄덕인다. 난 그녀의 어깨 위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점심은 저기서 먹죠.”

“네?”

놀란 그녀가 그쪽을 바라본다. 제법 허름해 보이는 김치찌개 식당이 있었다.

“잠깐, 김치찌개? 다른 건 안 돼요?”

“네, 안 돼요.”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줘야 하니까.”

“먹을 수 있을 때?”

앞장서 걸었다.

“뭔데요? 어디 가요?”

뒤에선 이미래의 질문이 계속 날아들었다.

* * *

금요일 오후, 경기도 양평의 리조트, 그곳 1층 연회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워크숍을 위해 자유로운 복장을 한 채 삼삼오오 모인 이들.

소란 속에서 거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나 참. 어이가 없구만?”

촬영감독 최주봉이었다. 제작사인 판타지아의 2개 제작팀 중 한 팀을 이끌고 있는 회사의 핵심.

“기획사가 제작사를 인수해? 쪽팔려서 얼굴이나 들고 다니겠나 정말.”

우락부락한 이목구비, 그걸 더 부담스럽게 만드는 커다란 얼굴. 처음 보는 사람이면 백이면 백 험상궂다고 느끼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다.

웃고 있어도 부담스러운 얼굴이 화를 내고 있으니 연회장은 조용해지고 말았다.

“유 감독, 확실해? 고용보장 된다는 거 말이야.”

최주봉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직원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했다. 거긴 또 다른 제작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 새로운 오너인 안덕모와 수차례 손발을 맞춰온 유원석이 있었다.

연회장에 긴장감이 감돈다.

안타깝게도 회사의 좌우익을 담당하는 두 감독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다. 얼마 전 자기 팀에서 직원을 빼간 일 때문에 유원석은 최주봉의 멱살까지 잡았다.

문제는 그런 일이 있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두 사람이 툭하면 부딪쳤던 것. 그래서 유 감독의 목소리는 더욱 성의 없고 냉랭했다.

“그렇다잖아.”

“그래? 그럼 실망이네. 오너 바뀐 김에 능력 없는 것들은 싹 좀 내보내 줬으면 했는데 말이야.”

그러며 의미심장한 눈으로 유원석 감독 쪽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건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불쾌한 시선이었다.

“킥.”

“어우, 세다.”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최주봉의 스태프들.

“저것들이!”

분노한 유원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할 때였다.

“감독님!”

오랜 시간 보조를 맞춰온 부감독, 그녀가 유원석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러지 마세요. 애들만 더 힘들어져요.”

“…….”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젓는 부감독의 모습에 유원석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회사의 두 개 제작팀을 책임지는 두 감독, 두 사람의 대립은 갈수록 깊어졌고 덕분에 힘든 건 스태프들이었다. 그리고 힘들어지는 건 항상 유원석 쪽이었다.

최주봉과 그쪽 제작팀은 판타지아 창립 초기부터 직원이었던 자들. 반면 유원석 쪽 중간에 들어온 경력직원 위주였다.

캐스팅, 장비와 촬영 지원.

현장에 나가 있는 동안 회사로부터 지원받아야 할 각종 지원이 갑자기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경우 대부분은 유원석이 최주봉의 멱살을 잡은 직후였다.

한마디로 최주봉과 그의 제작팀은 회사의 실세이자 성골. 유원석과 그의 제작팀은 진골이었다.

“저 봐서라도 참으세요, 감독님. 이제 판 바뀔지도 모르잖아요.”

그녀의 말대로였다. 전 오너인 명동 사채왕의 아들은 부족함 없이 회사를 지원해 줬지만 회사의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유원석은 안덕모를 알고 있다. 천재적인 카피라이터, 가끔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힘없는 광고주를 배려할 줄 아는 가슴이 따뜻한 남자.

“쉽지는 않을 거 같네.”

판타지아에 필요한 건 가슴 따듯한 리더가 아니다. 판을 뒤집고 버릇없는 직원의 기를 꺾고 무너진 룰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카리스마 있는 리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덕모는 그런 걸 잘할 수 있는 오너가 아니었다.

끼익.

그때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 하나가 안으로 들어섰다.

“오셨네요. 새 대표.”

부감독의 말에 유원석이 고개를 돌렸다. 거긴 정장 차림의 안덕모와.

“어?”

그의 뒤를 뒤따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유원석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차 본부장?”

“네? 누구요?”

부감독도 뒤늦게 알아보았다. 몇 년 전 광고 촬영장에서, 준비 30분 늦었다는 이유로 판타지아를 개박살 냈던 광인 기획의 마녀.

“차혜민…….”

단상 아래에서 안덕모와 차혜민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잠시 후 안덕모가 단상 위에 올라선다. 백여 명의 직원들을 천천히 둘러본다.

“안녕하십니까. 판타지아 임직원 여러분.”

그 목소리는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DNP의 대표이자, 애드온 부대표를 맡은 안덕몹니다.”

조용하던 연회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부대표?”

“뭐야? 대표가 아니야?”

“그럼 누가…….”

당황은 유원석도 마찬가지.

안덕모가 쓰게 웃으며 차혜민을 바라본다.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반갑습니다. 신임 DNP 애드온 대표 차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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