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8화
78. 도플갱어(2)
“참나…… 이게 무슨 경우야?”
아버지와 한바탕 하고 돌아온 샘플실, 윤재원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들 멍청해 빠져서는…….”
그의 눈에 경원 안마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회사를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 기계밖에 모르는 경영 문외한인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희대의 괴작.
“이딴 게 광고한다고 팔리겠냐고.”
그리고 회사의 마지막 여력을 몽땅 털어 넣어 광고를 하게 될 경원전자의 대표 모델.
“에휴…….”
그가 안마의자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람이 앉은 걸 센서가 인식했고 안마의자는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꾹. 꾹.
마침 뻐근해진 뒷목을 꾹꾹 주무르는 감각에 윤재원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윤재원은 부족함 없이 자란 소위 금수저였다.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순간부터 아버지는 가전회사 사장이었고 그래서 그 누구도 자신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영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경원전자는 잘나갔다. 모두가 윤재원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크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지나치게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걸.
경영학과를 포기하고 광고 마케팅을 전공하게 된 건 자신의 것이 될 경원전자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CI와 BI, 세련된 브랜딩,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광고와 홍보.
경원전자에 부족한 것들을 자신이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윤재원을 더 노력하게 만들었고 노력이 거듭될수록 당당함도 커져갔다.
부모님의 사랑과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대학을 졸업하고 마침내 자신의 꿈을 펼치게 될 아버지 회사에 입사했다.
사원, 주임 다 건너뛰고 입사하자마자 달게 된 직함이 부장.
하지만 윤재원은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회사가 생각과는 달리 무너져 가는 중이라는 걸.
전공을 공부하며 누누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변화를 거부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경원전자가 그러했다. 오직 충실한 제품에만 몰두한 나머지 만들어서는 안 될 안마의자라는 괴작까지 만들어낸 상태.
가뜩이나 전같이 않던 회사, 남아 있던 여력은 모조리 그것을 만드는 데 투입되었고 윤재원이 입사했을 때 판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불운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크고 작은 거래업체의 부도, 현장 사고가 겹쳤다. 결국 아버지의 사재까지 끌고 와 망해가는 회사에 쏟아붓고 있었다.
오랜 시간 2세 경영을 준비해온 윤재원에게 회사의 현재에 대한 진단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끝났다.’
진단은 정확했고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상속받아 봐야 껍데기만 남을 회사를 위해 노력을 하는 대신 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만들 물건이 없어 놀고 있는 기술자들을 하나둘 정리했다. 설비 중 불필요한 것들은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하는 짓을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았다. 만약 이것만은 안된다고 말리지 않았다면 안마의자 생산설비도 싹 팔아넘겼을 것이었다.
한편으로 윤재원은 창고에 가득한 재고를 팔아치울 방법을 고민했다. 제조원가 수준으로 팔아넘긴다면 사겠다는 업자가 있었지만 윤재원은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남풍 애드 솔루션에 광고를 부탁했다. 기준에도 못 미치는 광고비에 저쪽 직원은 안된다고 고사했지만 윤재원은 끈질기게 매달렸다.
대학 시절 소모임에서 이슈로 떠올랐던 인물이 그곳의 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안덕모.’
광고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뜨거운 이슈가 된 광고를 줄줄이 만들어낸 입지전적 인물. 대학 소모임에서 안덕모의 광고는 일종의 연구 대상이었다.
기존의 광고와 궤가 다른 스토리텔링. 직접 제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대신 스토리 속에 그것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하는 새로운 기법을 실천하고 있는 선구자.
그가 만든 광고를 보면 볼수록, 그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윤재원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 속에 숨겨진 그의 행동방식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명분이 있다면 적자도 감수한다.’
부대찌개, 김 광고에서 그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광고를 선보였다.
‘싸워야 한다면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KJ식품 불매운동을 불러온 광고가 그랬고 중원 차를 엿 먹인 웹드라마가 그랬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
그에게 광고는 그저 돈벌이가 아니다. 그는 스토리텔러이자 그걸 통해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하는 사람.
사회운동가를 연상시키는 그의 행동방식은 놀랍게도 늘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서 윤재원은 생각했다. 안덕모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고.
도산 직전의 회사, 외고집 장인인 노 사장. 안덕모를 움직일 두 가지 카드였다. 윤재원은 거기에 더해 결정적인 카드 한 장을 더 준비했다.
‘자, 이제 광고비가 적다는 이유로 돌아서 떠나시겠습니까? 아니면 사장님 방으로 돌아가 추가 옵션 협상을 하시겠습니까.’
그를 움직일 결정적인 키워드였다. 그러면 절대 첫 번째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던진 카드였다.
세 가지 모든 카드를 썼을 때 그는 생각처럼 움직이는 듯했다. 샘플실을 거쳐 사장실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추가 협상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잘 만든 광고로 창고 가득한 재고를 털어내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안덕모는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골라도 하필 이딴 걸.”
자기 거실에 이렇게 못생긴 물건을 들여놓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안덕모는 바로 그걸 경원전자의 광고 모델로 선택했다.
그에 대한 기대도, 회사를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하겠다는 꿈도 모든 게 비틀려 버렸다.
“선구자는 개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나직이 흘러나온 안덕모에 대한 평가.
“아오!”
쾅.
윤재원은 거칠게 안마의자를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와…… 정말 못생겼다.”
돌아온 사무실, 화면에 떠오른 경원 안마의자를 본 이미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예요?”
“무슨 1960년 사무실 소파처럼 생겼잖아요.”
“1960년 소파?”
난 몇 차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른다.
컴컴한 사무실. 조명을 켜지 않은 사무실은 창 너머 들어온 햇빛 때문에 지나치게 명암이 구분된다. 햇빛을 받아 도드라지는 뭉게뭉게 담배 연기와 먼지, 그 아래 테이블 하나가 있다.
아주 옛날 꽃 모양이 선명한 커피잔과 화려한 재떨이가 올려진 원목 접객용 테이블, 그 테이블의 좌우에 배치된 못생긴 옛날 소파.
군데군데 찢어진 곳에 하얀 직물이 올라온 걸 봐선 절대 가죽은 아니다. 앉을 때마다 향긋한 인조가죽 냄새가 올라올 것 같은 우직한 검은색 펑퍼짐한 소파.
거기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바바리코트 차림, 머리가 반백인 노인. 그가 검은 소파와 어울려 오래된 드라마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입에 문 담배 파이프를 깊이 빨아들이며 중얼거린다.
‘미스 김…… 아, 관뒀지?’
“……헐. 진짜네.”
눈앞의 경원 안마의자는 그 검은색 각진 사장용 옛날 소파를 고스란히 빼다 박았다. 옆에서 김다미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이제 와서 표정이 그러시면 어떡해요?”
난 고개를 돌렸다.
“뭘?”
“아까 제가 그랬잖아요. 이거 어두운 뒷골목에 가져다 놓으면 딱 어울리겠다고.”
다시 한번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른다.
좁고 그늘진, 70년대 뉴욕 로체스터의 어느 슬럼가.
뒷골목 한편에 누군가 버려놓은 검은색 소파가 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누군가 걷어차면 채이다 보니 여기저기 스프링이 튀어나오고 안을 채운 솜은 다 빠져나왔다.
균형조차 맞지 않아 눈에 띄게 한쪽이 주저앉아 있어서 여태 부서지지 않고 버티는 게 신기할 지경인 수거 불가 쓰레기.
그 의자 위에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앉아 있다. 그의 한쪽 옆엔 지팡이가 있고 또 다른 한쪽엔 커다란 개가 있다.
개는 활력을 잃고 몇 시간째 땅에 엎드려 자고 있다. 가끔 그의 발치를 오가는 비둘기를 관찰하거나 아주 가끔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피는 것이 유일한 노인의 소일거리.
땡그랑.
마침 지나가던 행인이 던진 10센트짜리 동전, 동전은 텅 빈 노인의 깡통을 활기차게 굴러다닌다.
“멍…….”
놀란 늙은 개가 힘없이 한번 짖고 다시 주저앉는다. 노인을 비추던 한줄기 햇빛마저 구름에 가려 사라진다.
그 모습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 다시 한번 멍한 눈을 깜빡였다.
“……어. 정말이네.”
관자놀이에 한줄기 힘줄을 만들어낸 김다미가 옆구리에 두 주먹을 올려붙인다.
“잠깐만요. 사장님 설마 얘 디자인 많이 심각하다는 거 지금 안 거예요?”
뜨끔.
지금 뭔가 뾰족한 뭔가로 내 심장을 찌른 것 같다. 사실 사용감에 취해서 디자인이 구리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최대한 평온함을 가장했다.
“아닌데? 그럴 리가…….”
“뭐야? 맞나 본데?”
역시 이미래, 독사 같은 눈치는 못 당한다. 옆구리에 두 팔을 붙인 김다미의 반대쪽 관자놀이에 또 다른 힘줄 하나가 솟아오른다.
“조금 솔직해져 보실래요?”
“……어, 사실은.”
난 흔들리는 동공으로 다시 한번 모니터의 제품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심각한진 몰랐어.”
“진짜…….”
김다미의 입에서 험한 소리가 터져 나오기 직전. 난 황급히 손을 들어 녀석의 입을 막았다.
“잠깐만.”
난 재빨리 이미래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내 생각은 그래.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게 자기 기준대로 모든 걸 판단하는 거야.”
자리를 빼앗긴 이미래, 그녀의 자세 역시 김다미를 닮아가고 있었다. 난 인터넷 창을 열어 재빨리 검색 키워드를 적어 나갔다.
딸깍.
화면에 경원 안마의자에 대한 검색 결과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엔 판매 사이트도 있었다.
줄줄이 있을 줄 알았지만 광고를 빼면 실제 판매 사이트는 단 한 곳.
하지만 그건 제법 유명한 온라인 쇼핑몰이었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클릭했다.
“디자인이라는 마찬가지예요. 내 눈엔 못나고 이상해 보여도 또 이런 게 취향을 타는 법이니까. 구매자가 있다는 건 이런 디자인을 찾는 소비층이 있다는 증거죠.”
디자인에 대한 개똥철학에 그쪽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이미래의 관자놀이에도 힘줄 하나가 솟아올랐다.
“아니, 호불호도 적당한 선에서죠. 얘는 그냥 구제 불능이라니까요?”
“일단 기다려 보세요.”
쇼핑몰 사이트에 경원 안마의자가 떠올랐다.
난 확신한다. 아무리 못생긴 물건이라도 사주는 사람은 있다. 1960년 사무실 소파라도, 뉴욕 슬럼가 뒷골목 쓰레기라도.
디자인을 감안하고도 사주는 사람은 있다.
“어…….”
입 밖으로 흘러나간 탄식, 두 고개가 내 옆에 달라붙는다.
구매 수는 제로, 상세페이지 말미엔 딱 하나의 상품평만이 올라와 있었다.
[뭐야? 이 구린 의자는. 안락의자 찾는데 이거 왜 뜸?]
댓글도 반응도 없는 딱 하나의 평가.
“세상에 하나도 안 팔렸어? 우리 사장님 똥손이 아니라 똥눈이셨네.”
이미래가 뼈를 때렸고.
“우리 진지하게 얘기 좀 할까요?”
나와 이번 광고를 만들어야 할 김다미의 목소리에선 희미한 살기가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