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7화
77. 도플갱어(1)
도플갱어.
이 세상 어디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오래된 도시 괴담. 괴담에 따르면 도플갱어를 만난 자는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난 지금 무척 불쾌하다. 비록 생긴 건 단 하나도 닮은 게 없지만 말투, 하는 짓까지 내 모습을 연상시키는 윤재원이라는 사내 때문이다.
자신과 기묘한 형태로 닮은 존재를 마주하는 순간 인간은 막연한 경계심을 느낀다. 누가 봐도 어색한 인간의 얼굴을 본떠 만든 로봇이 인간의 흉내를 낼 때, 그 입에서 어색한 인간의 말이 흘러나오고 표정을 만들어낼 때 느낀 그 감각을 지금 느끼는 중이었다.
녀석이 내민 선택지는 두 가지.
광고비가 적다며 여길 떠나거나, 부족한 광고비의 공백을 메워줄 추가 협상을 하거나.
난 말없이 걸었다. 윤재원의 어깨를 스쳐 그의 뒤 창고에 가득한 경원전자 제품을 향해서.
눈에 들어오는 제품명을 살피니 알겠다. 경원전자가 어떤 제품들을 만들고 있는지.
가습기, 제습기, 공기청정기, 헤어드라이어, 믹서기.
주로 모터가 들어가는 소형가전부터.
정수기, 전자레인지 같은 주방용 가전까지.
난 그중 다른 제품과는 확연하게 크기 차이가 나는 박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내 뒷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던 윤재원과 김다미가 다가왔다.
“사장님, 그냥 가요.”
귓가에선 계속 김다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이 회사 살아나기 어려워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회사에 치명적인 레퍼런스가 될 수 있다구요.”
맞는 말이다. 경원전자는 도산을 코앞에 둔 상황. 평생을 바쳐온 회사를 살리기 위한 윤장식 사장의 개인 증자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잘못하면 망한 회사 광고를 찍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어요.”
망한 회사의 마지막 광고를 찍었다. 그건 광고주들이 기획사를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기획사의 레퍼런스를 중시하는 이쪽 업계에선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일종의 불문율.
난 손을 뻗었다 손가락 하나로 박스 위를 쓱 문질렀다. 손가락이 지나간 곳에 선명한 궤적이 그려졌고 쌓였던 먼지는 손가락에 층을 이룰 정도로 묻어 나왔다.
“봐요. 이거 다 만든 지 한참 된 제품이에요. 못 팔고 쌓아둔 이유가 있었던 거라구요.”
날카로운 지적이다. 회사가 도산 위기에 처한 현 상황에 정상 제품들을 이렇게 쌓아둘 경영자는 없다.
엄청난 할인으로 털어내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고철값이라도 받으려 했을 것. 머릿속엔 이번 일에 대한 노란 경고등이 반짝였다.
같은 목소리를 들었는지 윤재원의 어깨가 한번 으쓱한다.
“음…… 이건 안마의자네요?”
“네.”
윤재원은 덤덤한 목소리로 답한다.
“방만한 경영의 결정체 같은 거죠. 소형가전을 주로 만들던 우리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에요. 제품만 좋다고 다 팔리는 게 아닌데.”
제품에 대한 녀석의 평가는 박하다 못해 희미한 적대감까지 묻어났다.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거 한번 써볼 수 있겠습니까?”
“사장님!”
옆에선 김다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네, 얼마든지요. 샘플실에 모든 제품이 설치되어 있으니 천천히 둘러보시고 선택하도록 하시죠.”
“그럽시다.”
앞장서 걸어가는 윤재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샘플실을 보고 다시 자리한 사장의 집무실. 조용함 속에서 기대감을 피워 올리는 윤재원 부장에게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합시다. 광고.”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돌아볼 필요는 없다. 김다미라는 건 뻔한 거였으니까.
“조건이 있을 것 같은데요?”
마치 날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윤재원이 중얼거린다.
“있지요. 하지만 그전에 광고의 방향부터 정하고 싶은데.”
“네 좋아요.”
녀석이 팔짱을 끼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다. 들을 준비는 됐으니 어디 한번 제안해 보라는 뜻.
이 자리에서 메인 광고주는 윤장식 사장이다. 하지만 그는 어린 자식의 모습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뿐.
어느새 대화에서 한걸음 물러난 사장과 어린 부장을 한 번씩 바라본 후 입을 열었다.
“광고 제품을 안마의자로 하고 싶습니다.”
“네?”
내내 평온하던 어린 아들의 표정은 단숨에 박살 났다.
“아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몇 차례 흔든 그가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왜 안마의잡니까? 경원 이미지 광고도 있고 홍보만 잘하면 팔아먹기 좋은 소형가전도 많은데.”
난 그의 반론을 무시한 채 윤장식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생각은 어떠세요?”
나와 반발하는 아들을 난처한 얼굴로 바라보던 그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
“……좋지요, 좋긴 한데.”
“가지고 계신 재고는 얼마나 됩니까?”
“재고로 만들어 놓은 게 200대쯤 있을 겁니다.”
“추가 생산 문제는 없구요?”
“아 네.”
붉으락푸르락 매 순간 얼굴색이 뒤바뀌는 자신의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윤장식.
“네 저희 공장에서 제일 최근 생산한 게 안마의자입니다. 라인도 공정도 다 거기 맞춰 바꿔놨지요. 이미 가지고 있는 부자재도 상당하니 원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추가 생산은 가능합니다.”
“아버지!”
윤재원의 평정은 완전히 깨어졌다.
“제가 그랬죠? 그거 우리 회사에 맞지 않는 옷이에요. 누누이 말씀드렸잖아요. 저런 걸 버려야 우리가 산다고.”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간의 일이 짐작된다.
윤장식이 지금껏 회사를 성장시킨 원동력은 일종의 장인정신이었을 거다. 규모는 작지만 모터가 들어가는 제품에 자신이 있었던 경원전자. 회사를 성장시킨 건 단순한 소형가전이었지만 윤장식의 장인정신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을 거다.
복잡하고 많은 기술력이 들어가는 대형가전, 특히 수많은 작동부가 들어가야 하는 안마의자가 그 종착점에 있었을 거다.
창고에서 가득 쌓인 제품, 샘플실에 전시된 제품들. 난 그것들을 통해 윤장식의 열망과 회사가 걸어온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안마의자 시장 얼마나 치열한지 아세요? 기능만 좋다고 팔리는 시장이 아니라구요.”
하지만 어린 아들, 윤재원의 생각은 달랐다.
“거실에 들여놔야 하는 큰 놈이라구요. 광고, 디자인, 쇼룸, 전문 AS 센터까지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구요. 우리 회사가 그 어느 하나라도 가능한 게 있어요?”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 마침내 녀석의 입에서 혹시나 나오지 않을까 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결국 그 안마의자 때문에 이 회사 망하는 거잖아요!”
흔들리는 사장의 눈동자, 잔뜩 얼굴을 붉힌 어린 아들.
난 경원전자라는 작지 않은 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숨겨진 부자의 대립을 무척 흥미로운 얼굴로 관전했다.
* * *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
“……사장님.”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김다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생각인지 설명을 좀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달리는 차의 전방을 주시한 채 입술을 뗐다.
“광고 받은 거?”
“저한테는 원칙대로 하라면서요? 이번엔 대체 뭐에 꽂힌 건데요?”
부웅.
운전을 거칠게 하거나 빨리 달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오늘만큼은 발끝의 액셀을 자꾸만 누르게 된다.
“고민해 봤거든? 내가 윤재원 상황이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든 광고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기획사가 있고 쓸 예산이 없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근데…….”
옆얼굴에 김다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대로는 뚫려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잠깐 녀석을 돌아보았다.
“나도 똑같이 했을 것 같더라고.”
“……그게 이유예요? 걔가 사장님이랑 닮은 사람이라서? 뭐 친근감 느껴지고 도와주고 싶고 그런 거예요?”
“아니.”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로 제품이 마음에 들었거든.”
“안마의자요?”
“그래.”
“하…….”
녀석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윤재원과 함께한 샘플실에서 우린 경원의 다양한 제품을 만져보고 경험해볼 수 있었다. 독보적인 모터기술을 가진 경원전자답게 대부분의 제품들이 훌륭했다.
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집안 어디에 가져다 놔도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고 예뻐 보이는 디자인은 아니었던 것.
장인의 제품이 그러하듯 윤장식의 경원전자 제품들은 기본에 충실하되 외면엔 신경 쓰지 않은 촌스러운 모습들이었다.
그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안마의자.
난 그것을 보자마자 사형수가 앉는 전기의자를 떠올렸다. 좋은 소재를 쓴 건 분명했지만 크고 투박했으며 최근 유행하는 안마의자들이 채택하는 유선이라고는 단 한 부분도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하다 못해 고풍스러운 디자인.
브랜드도 없고 제품엔 그냥 경원 안마의자라고만 박아놨다.
제품을 보며 김다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와…… 어디 컴컴한 뒷골목에 가져다 놓으면 딱 어울리겠네. 이거 안마의자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제품에 대해 김다미가 내렸던 평가는 강렬하게 뇌리에 틀어박혔다.
“내가 안마의자 좀 좋아하잖아.”
“하긴 그렇긴 하죠.”
녀석이 허탈한 목소리도 답한다.
“그렇게 안 된다고 했는데 그 좁아터진 사무실에 안마의자 가져다 놓은 게 사장님이시니까.”
안마의자에 대한 나의 애정은 남다르다. 마케터 시절부터 카피라이터 시절까지 밥 먹듯 야근을 하는 내 인생에 안마의자란 필수 옵션 같은 거였으니까.
아무도 쓰지 않는 광인 기획 휴게실 한구석에 방치된 안마의자를 홀로 사랑한 게 나였다. 쪽잠도 자고 아이디어 구상도 하고 그냥 몸이 찌뿌둥할 때도 쓰고.
마트, 전자제품 매장, 전문매장까지 안마의자는 도처에 있었고 난 체험을 위해 준비된 안마의자를 단 한 번도 걸러본 적이 없다.
그렇다 보니 비록 전문가는 아니라도 좋고 나쁨은 구분할 줄 안다.
“근데 경원 안마의자 상당히 좋아, 내가 아는 가장 좋았던 녀석과도 비벼볼 수 있는 수준이야.”
윤재원은 그걸 방만한 경영의 결정체이자 회사를 망하게 만든 주범이라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디자인만 설득시킬 수 있다면 대박 가능성 있는 유일한 제품이지.”
“그래서 판매 리베이트 거셨구요?”
난 씩 웃었다.
난 지금 그간 윤재원이 김다미를 괴롭혔던 이유, 회사가 망하기 직전임에도 헐값에 제품을 처분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무척 괘씸한 의도이고 그래서 제품이 마음에 든다고 해도 순순히 광고를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이쪽은 잘못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쓸 리스크까지 떠안아야 하니까.
“대당 십만 원이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잖아?”
“전 윤 사장님이 그 조건을 오케이 한 게 더 이해가 안 가요.”
헐값에 광고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우린 대당 판매 리베이트를 받기로 했다. 기간은 무려 6개월, 재고는 물론 그 안에 만들어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 대당으로 책정된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못 박았다.
물론 윤재원은 극렬히 반대했다. 어렵게 날 데려다 앉혔는데 광고하겠다는 제품도 조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의외인 건 윤장식 사장이었다. 늘 어린 자식의 편을 들었을 아버지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덕분에 성사된 안마의자 광고.
“결국 남은 건…….”
브랜드도, 디자인도, 키바잉펙터도 분명하지 않은 이번 광고 모델. 난 액셀 위에 올려진 다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어떻게 광고를 어떻게 만드느냐지.”
부웅.
동남풍 애드 솔루션의 두 카피라이터를 태운 차는 빠르게 고속도로를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