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76화 (76/180)

광고? 모조리 씹어먹어 줄게 76화

76. 스토리의 힘(6)

“와. 잘 나오긴 잘 나왔네요.”

웰컴 투 대환장 카페, 편집본을 보던 이미래가 말했다.

“잘 나와야죠, 돈 많이 썼는데.”

탑배우를 네 명이나 썼다. 내가 진행한 일이다 보니 통상 녀석들이 받던 모델료의 반값도 안 되는 값에 쓰긴 했지만 그래도 동남풍 입장에서는 제법 컸던 지출.

보령 주꾸미 축제 광고가 아니었다면 예산이 바닥나 자칫 반도 김형준에게 손을 벌릴 뻔했다.

“그래도 뭐, 영찬이 말대로라면 충분히 뽑고도 남을 것 같던데.”

이야기를 듣던 조영찬이 어깨를 으쓱한다. 실시간 영상과 편집본 조회 수는 상당하다. 예상대로 수익이 나와준다면 또 한 번 적자가 나는 상황은 모면할 수 있을 거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죠.”

아직은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카페가 잘된다니.”

모르는 새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지금 카페 블랙 타이드는 아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대환장 카페의 대미를 장식했던 마지막 장면, 싸우고 화해하고 다 같이 카페의 성공을 이루어낸 출연자들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을 들고 창밖의 석양을 함께 바라보던 장면은 이번 영상의 하이라이트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카페는 서해안 석양 명소로 회자되며 관광 필수 코스로 급부상했다.

연일 석양이 지는 카페를 경험하기 위해 보령으로 찾아온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중.

두 사람만으로 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새로 직원을 뽑았고 다섯 명이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근처 공터까지 주차장으로 빌려 쓰게 되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카페의 무기가 석양만은 아니었다는 사실. 주미가 직접 만드는 커피는 훌륭했고 덕분에 사진 한 장 건지려 카페를 찾은 사람들은 커피 맛에 만족하고 돌아갔다.

게다가 그 커피가 대환장 카페에 출연한 안주미의 핸드메이드.

맛만이 아닌 프리미엄이 더해졌고 지금 안주미는 커피 내리랴, 사인해 주랴 아주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손에 물집이 잡힐 거 같다나 뭐라나.

“이게 다 스토리의 힘인 거 같아요.”

난 이번 영상을 통해 한 번 더 만고의 진리를 몸으로 겪었다. 이미래도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인물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석양 씬도 이렇게 주목받기 힘들었을 거예요. 뭐 주꾸미 광고도 마찬가지고.”

난 쓰게 웃었다.

촬영이 끝나고 휴가를 즐기고 있던 녀석들을 식당에 앉혀 찍은 광고, 주꾸미 볶음을 가운데 두고 급히 촬영한 짧은 광고 역시 대박이 났다.

이슈몰이에 성공한 대환장 카페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등장 인물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가벼운 대화를 나눈 것이 광고의 전부나 마찬가지였지만 너튜브 동남풍 계정에 업로드된 광고 영상은 놀랍게도 대환장 카페의 조회 수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카페도 잘되고 주꾸미 축제도 불났다는데 우리 회사만 재미 본 게 별로 없네요. 아무래도 회사 망하면 내려가서 카페 일이나 해야겠어요.”

“……하하.”

빈말은 아니었다. 밀물처럼 몰려들던 농수산물 광고들, 어느새 동남풍 애드 솔루션의 하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그 광고들은 봄이 오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주로 봄에 시작해 여름 가을에 시작하는 농산물의 특성상 시기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주 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직원도 네 명뿐이잖아요.”

광고가 밀려들던 시기에 직원을 더 뽑지 않은 게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규모도 작은데 적자 폭이 늘어나면 버티기 힘들어지니까.

“웃자고 해본 말이에요.”

굳어 있던 이미래의 얼굴이 스르르 풀어진다.

가볍게 생각해 만든 회사가 아니다. 봄 시즌 잠시 광고가 뜸하다고는 해도 버틸 여력은 충분하다. 또 그렇게 되도록 손 놓고 있지도 않을 거고.

“……그나저나 슬슬 다음 광고가 들어와야 할 텐데.”

다시 편집 중인 이미지에 집중하며 이미래가 중얼거렸다.

드륵.

거칠게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린 건 그즈음이었다.

“네?”

범인은 김다미, 전화기를 귀에 붙인 그녀는 뭔가에 놀란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또 시작인가 보네…….”

이미래가 중얼거렸고.

“아 정말, 알았어요. 사장님 계시니까 말씀드려 볼게요.”

전화를 끊은 김다미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녀석의 상기된 얼굴이 내 쪽으로 향한다.

“사장님…….”

누군지 말 안 해도 알겠다. 내가 회사를 비운 열흘, 끈덕지게 김다미에게 연락해 광고를 찍어달라고 부탁했던 회사.

정해진 단가에 한참 못 미치는 광고비를 제안하며 ‘이 가격엔 어렵다.’는 김다미의 고사를 무시하고 수시로 연락해 괴롭혔던 바로 그 회사.

“경원전자에서 오신대요.”

광고를 받아야 하는지를 묻는 김다미에게 난 원칙대로 하라고 했고 덕분에 녀석은 애원하는 고객과 회사의 방침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몇 차례 눈물까지 쏟았다.

우스운 건 경원전자라는 회사가 작은 회사가 아니라는 것.

얼마 전 창사 40주년을 맞이한 가전회사요, 한때 대한민국 소형가전업계에서 이름깨나 날렸던 그 회사라는 점이었다.

“알겠어.”

회사 정보에 따르면 임직원 300명이 넘는 큰 회사가 직원 네 명짜리 기획사에 통상적인 광고비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광고를 뜯어내려 하고 있다. 광고를 안 해본 회사도 아니고 오래되긴 했어도 지금도 씨엠송이 흥얼흥얼 생각나는 대박 광고를 몇 개나 가진 그 회사가.

“오지 말라고 해.”

“네.”

“우리가 가보자.”

그래서 지금 난 그 회사가 조금 괘씸하다. 말뜻을 이해한 녀석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어진다.

“직접 가서 한번 보자고, 대체 어떤 사정이길래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고 있는지.

* * *

약속을 잡아 도착한 경원전자.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고 허름한 공장과 사무동에 괘씸하던 생각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던 직원이 우릴 안내했다. 잠시 후 난 오래된 가구들로 채워진 먼지 냄새나는 소파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름난 경원전자가…….”

초면에 지나치게 실례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뒷말까지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상대는 내 생각을 읽어낸 모양.

맞은편 소파에 앉은 70대 남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가 너무 허름하죠?”

“네. 솔직히 의외네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간 회사에 이런저런 사정이 참 많았지요. 다 얘기하려면 하루 종일 말해도 모자랄 겁니다.”

앞에 앉은 초로의 사내는 경원전자의 사장. 주름진 얼굴에 회한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연이나 듣자고 찾아온 건 아니다. 회사의 숫자만큼 사연이 있다. 그걸로 성공한 회사도 있고 어려워진 회사도 있고 사라진 숫자는 헤아릴 수 없다.

“으흠. 이런 말씀 좀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목청을 가다듬으며 찾아온 목적을 꺼내 놓았다.

“광고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서비스입니다. 물론 규모와 상황에 따라 광고비도 기획사가 가져가는 대가도 달라질 수는 있지요. 근데…….”

난 굳어진 얼굴로 상대를 응시했다.

“귀사가 제안한 광고비는 너무 작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경원전자 윤장식 사장.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물건 만들어 파는 장사치라 선생님 말씀 잘 이해합니다.”

그가 자기 옆의 남자, 이십 대 초반에 부장 직함의 명함을 내밀던 사내를 바라보았다.

“제 아들놈이 직원분께 실례를 한 모양이더군요.”

“아드님이요?”

생각도 못 했다. 70대의 아버지와 20대 초반의 아들, 아들보다는 손자라고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구도다. 하지만 자식을 바라보는 노인의 작은 눈은 더없이 따뜻했다.

“늦게 얻은 독자입니다. 근데 세상 경험이 적어서 배울 게 많은 놈이죠.”

“아…….”

바라보는 눈에도 애정이 묻어난다. 결혼도 자식을 가져본 적도 없지만 늦게 얻은 자식이 더 예쁘다는 말은 사실인가 보다.

“이 녀석이 그러더군요. 이대로 있으면 어차피 회사 망하는데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부탁 한번 해보자고.”

“저한테요?”

그리고 대답은 그의 아들, 윤재원 부장이 돌려주었다. 시선이 그에게 향했고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과 시선이 마주친다.

“네, 안덕모 사장님.”

“절 아세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저 안 사장님 광고 다 챙겨봤습니다.”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윤 부장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KJ식품 음료 마케팅 출신이시고, 광인 기획엔 인턴 카피라이터로 입사하셨죠.”

난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이 녀석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지?

“부대찌개, 신한 소화제, 아주식품 광고 줄줄이 성공시켰고 미국에서 반도 차 광고 만들어서 대박 터뜨리셨죠.”

“호오…….”

솔직한 감탄이었다. 그제야 좀 더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맑고 고운 목소리, 깨끗한 하얀 얼굴에 슈트가 잘 어울리는 스타일 좋은 남자.

“광인 기획 사라지고 동남풍 애드 솔루션 창업하셨고.”

“그만하셔도 됩니다.”

난 두 손을 휘휘 저었다.

“혹시 부장님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광고 마케팅입니다.”

“음.”

역시 이쪽 일에 전혀 문외한이 아니다. 그래서였을까? 조금 짓궂은 생각이 들었다.

“저에 대해서도 잘 아시고 이쪽 전공도 하셨는데, 그럼 왜 터무니없는 광고비를 제안을 하셨을까요?”

“그건…….”

당황할 거라 생각했다. 얼굴을 붉힌다면 조금 미안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아는 안덕모 사장님이라면 광고비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저희 광고 꼭 만들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하는 말.

“…….”

난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 녀석 지나치게 당돌하다. 초년생의 패기라기엔 내게 너무도 익숙한 태도에 왠지 지는 느낌이 들어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죠?”

어쩔 수 없이 조금 날카로워진 대답. 녀석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백문이 불여일견.”

난 멍한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제게 아주 잠깐만 사장님 시간을 빌려주십시오.”

녀석은 내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마 좋은 대답이 될 겁니다.”

* * *

한 시간, 녀석에게 허락한 시간 동안 녀석은 공장 곳곳을 안내하며 아버지의 회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경원전자는 지금 도산 직전, 직접적인 이유는 경쟁에서의 도태였다. 좀 더 자세히는 핵심 없는 방만한 제품군, 그리고 판매 부진.

판매가 되지 않아 재고로 가득 찬 창고를 마지막으로 윤재원이 뒤돌아섰다.

“보시다시피 이 회사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아버지의 회사를 저런 식으로 말하는 아들. 난 한 번 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동의한 부분인데 저희 노력으로 회사의 운명을 바꿀 방법은 없어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가 경쾌하게 뒤돌아선다. 그리고 하늘 높이 쌓인 제품들을 향해 두 손을 활짝 펼친다.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들을 파는 거지요.”

녀석의 이야기에 내 숨결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화가 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지금 이 녀석 말에 흥분하고 있는 건가?

“싸게라도 팔려면 알려야 해요. 그건 결국 광고의 영역이죠. 아쉽지만 저희 경원전자가 광고비로 쓸 수 있는 예산은 딱 그 정도가 한계입니다.”

지금껏 조용히 내 뒤를 따르던 김다미의 중얼거림이 들린 건 그즈음이었다.

“뭐야? 쟤…… 닮았어요. 사장님하고.”

극단을 입에 담는 저 태연함, 상대를 도발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넣는 노련함, 그건 정확히 나의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이 회사의 운명이 안덕모 사장님께 달렸다는 말입니다.”

그가 한걸음, 한걸음 내게 다가섰다.

“자, 이제 광고비가 적다는 이유로 돌아서 여길 떠나시겠습니까?”

난 그때마다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박동을 느꼈다.

“아니면 사장님 방으로 돌아가 추가 옵션 협상을 하시겠습니까.”

어느새 내 앞으로 바짝 다가와 태연히 시선을 맞춰오는 윤재원.

“선택하세요.”

내 입속의 어금니는 단단히 악물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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